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21:35:12

다테 쿄코

伊達杏子 (だて きょうこ)
파일:external/green.ap.teacup.com/middle_1330750277.jpg
1. 개요2. 역사
2.1. 개발과 그 배경2.2. 활동2.3. 한국 진출2.4. 그 후
3. 실패 요인

1. 개요

일본의 대형 연예기획사 호리프로에서 만든 사이버 아이돌. 1996년 세계 최초의 CG를 통한 가상 아이돌로서 데뷔했다. 3D CG로 만들어진 캐릭터이지만 호리프로의 소속 탤런트로서 소개되었다. 배경으로 도쿄 훗사역 앞의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스카웃되었다는 설정이 있었다. 큰 인기는 얻지 못하였다.

다테 쿄코는 'DK-96'이라는 코드 네임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1996년에 '다테 쿄코 DK-96'이라는 예명으로 데뷔하였다. 'DK'는 '디지털 키즈'의 약자, 96은 '1996년판'이라는 의미이다. 이듬해에는 'DK-97'로 버전이 올라갔다. 1999년 한국에서 데뷔했을 때에는 'DiKi'라는 에명을 사용하였다.

2. 역사

2.1. 개발과 그 배경

다테 쿄코는 호리프로 창설 35주년을 기념하여 주식회사 비주얼사이언스연구소와 공동으로 개발되었다. 프로듀스를 담당한 것은 호리프로 창설자 호리 타케오의 아들이고 후에 호리프로의 사장이 되는 호리 요시타카였다. 당시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인 <도키메키 메모리얼> 등이 인기를 얻었고, 작중의 여주인공인 후지사키 시오리 등의 게임 캐릭터가 '버추얼 아이돌'로 불리며 탤런트와 같은 인기를 얻는 상황이었다. 호리프로가 3D CG에 기반한 버추얼 아이돌의 개발을 시작한 배경에는 이런 흐름이 있었다.

다테 쿄코의 개발에는 호리프로 사원 10명과 기술 스탭 50명이 투입되었고 초기 투자만 수십억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음성은 진짜 인간이 담당하였는데, 호리프로 소속 탤런트와 여성 사원 50명 중에 아이돌 같은 목소리를 기준으로 선정하였다. 라디오 등에서 얘기하는 내용은 호리프로 측에서 작성하였다. 몸의 움직임에는 모션 캡처가 사용되었고 춤 동작은 미국의 전문 댄서로부터 받았다.

2.2. 활동

일본 사이버 가수 '다테 교꼬' 데뷔

활동 내용으로는 음반 발매나 라디오, 텔레비전 출연 뿐 아니라 버추얼 라이브 개최나 사진집 발매 등이 검토되었다. 호리프로 측에서는 '병에 들지 않고 스캔들도 없으며 다채널 시대에 대응해서 전세계에 같은 시간에 노출시킬 수 있고, 목소리나 노래 등은 어느 나라 말로도 교환 가능한 글로벌한 활동을 싸고 빠르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진, 정말로 21세기의 멀티미디어 시대에 대응한 꿈의 탤런트 1호'라고 설명하였다.

당초에는 1995년 가을에 데뷔시킬 예정으로 선전 계획 등을 짰지만 개발이 늦어져서 기자 발표가 1996년 5월, 실제로 활동을 개시한 것은 같은 해 말이 되었다. 이렇게 데뷔가 늦은 것도 실패 요인으로 분석된다. 11월 21일 싱글 <Love Communication>으로 첫 음반을 발매하였지만 판매량은 3만 장에 그쳤다.[1]


1997년에는 목소리를 바꾸어 '다테 쿄코 DK-97'이라는 이름으로 버전을 올리고 7월 21일에는 싱글 <TOUCH>를 발매하였다. 이것이 다테 쿄코로서의 마지막 활동이 되고 말았다.

2.3. 한국 진출

1999년 '디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진출하였다. 방송물 제작 업체인 인디컴에서 한국 내 매니저를 맡았으며 IT업체인 나우콤이 PC통신 서비스 나우누리의 광고 모델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일본 연예인(...)의 한국 진출이었다고 한다.[2]

같은 해 2월 데뷔 앨범 <Between>을 발매하였다. 황세준, 손무현, 유진박 등의 음악가들이 디키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이미 사이버 가수 아담, 류시아 등의 사이버 가수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디키는 이렇다할 관심을 못 받았다.


디키의 <알바트로스> 뮤직비디오. 신인시절 고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위의 <Love Communication> 뮤직비디오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지만, 새 뮤직비디오에 맞춰서 CG를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춤 동작을 우려먹었다. 안타깝게도 노래는 참 좋다.

2.4. 그 후

2001년에는 카나가와현의 카나자와 공업 대학의 인터넷을 이용한 일반인 대상 강좌 '엔터테인먼트 공과대학'의 네비게이터를 담당할 '다테 쿄코 DK-2001'이 등장했는데, 초기 버전과는 달리 양갈래에 노란 염색을 했다.[3] 이듬해에는 인터넷의 동영상 광고에 진출할 구상도 발표되었지만 이렇다할 활동은 없었다.[4]

2007년 인터넷 가상현실 게임인 세컨드 라이프의 아바타로서 다시 등장하였다. 캐릭터 디자인은 2001년판을 기반으로 했으며 96년판 다테 쿄코와 많이 달라진 것이 화제가 되었지만, 세컨드 라이프 자체가 망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다만 호리프로 측에서는 완전히 까먹진 않았는지, 2019년 다테 쿄코의 딸이라는 설정으로 다테 아야노가 버추얼 유튜버로 데뷔했다. 링크. 덩달아 다테 쿄코도 트위터 봇으로 부활했다.

3. 실패 요인

일단 비용 문제가 컸다. 당시 기술로는 버추얼 아이돌을 구현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였다. 다테 쿄코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 출연에 수백만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호리프로 측에서도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 위한 선행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특성 상 팬들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도 실패 요인이었다. 단순히 노래나 외모가 좋다고 해서 아이돌로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시대가 가고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지만, 인간적인 교감이라는 문제는 아무리 시대가 가도 버추얼 아이돌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단점이다. 현재는 아이돌이 인격체보다는 캐릭터로서 사랑받고 있어 아이돌 마스터 러브라이브 가상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장르로 발달되었다곤 하지만, 그마저도 소설이나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각본가에 의해 성격이 결정되는데다 보면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정체를 감추고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다테 쿄코의 담당 가수와는 다르게 가상 아이돌을 연기하는 성우들은 팬들과 각종 행사 등을 통해 교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교감 관련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가상 아이돌이 팬들과 교감을 나눈다는 개념은 기술이 현저히 발달한 현재 버츄얼 유튜버라는 형태에서 실현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캐릭터의 외모가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다. 동시대에 활약한 릿지 레이서 나가세 레이코와 비교하면 거의 처참한 지경이었다. 1999년에 에이벡스 트랙스가 내놓은 '테라이 유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1] 3만 장이 절대 높은 판매고가 아니다. 1996년의 일본 음반 시장에서 판매량 3만 장이면 쪽박 수준이었다. [2] 틈으로 본 세상 日 사이버스타, 한국시장 데뷔 - 동아일보, 1999년 1월 26일 [3] 부활한 다테 쿄코와 즐겁게 공학을 배우자! - ITMEDIA, 2001년 12월 4일 (일본어) [4] 버추얼 아이돌 다테 쿄코가 진화한다? - ITMEDIA, 2002년 7월 31일자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