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닐스 아르비드 에발드 악셀손 (Nils Arvid Evald Axelsson) |
생년월일 | 1906년 1월 18일 |
사망년월일 | 1989년 1월 18일 (향년 83세) |
국적 | 스웨덴 |
출신지 | 라우스 란드스콤문 |
포지션 | 라이트 풀백 |
신체조건 | 177cm / 76kg |
소속팀 |
헬싱보리 IF (1927-1944) 빌레스홀름 GIF (1944-1948) |
국가대표 | 23경기 0골 ( 스웨덴 / 1929-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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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1]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악셀손은 라우스 란드스콤문(Raus Landskommun)에서 태어나고 헬싱보리의 펠타바켄(Fälrabacken)에서 성장했다. 처음 악셀손은 에네보리 SK(Eneborgs SK)에서 축구를 시작했지만 1927년 헬싱보리 IF로 이적한 이후 전성기를 헬싱보리에서 보냈다.악셀손은 헬싱보리에서 5차례 알스벤스칸 우승을 맛보았고 헬싱보리 소속으로 총 584회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고 1골을 넣었다.
1944년에 헬싱보리를 나온 악셀손은 빌레스홀름에서 4년을 더 뛰었다.
1.1.2. 국가대표
악셀손은 1929년 6월 14일, 핀란드를 상대로 첫 A매치를 치렀다.1929년 2경기, 1930년 1경기를 치르고 대표팀과 인연이 없던 악셀손은 1933년 이후에 대표팀에 다시 선발되었고 지역예선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본선에는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스웨덴은 8강에 만족해야 했다.
원래 악셀손은 1936년 올림픽에도 참가할 수 있었지만 이데올로기적 문제로 악셀손이 참가를 거부했고 스웨덴은 일본에 패해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악셀손은 1937년까지 대표팀에서 27경기를 뛰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악셀손은 좋은 테크닉, 볼 컨트롤, 공에 대한 감각을 토대로 한 우아한 풀백이었다.그는 전례 없이 우아한 우리의 라이트 풀백입니다. 그는
발레리노같이 움직일뿐만 아니라 기술적이고 빠르고 공에 열광하며 아름다우면서도 공격적이었어요.
하리 룬달(Harry Lundahl, 악셀손의 전 팀 동료)
하리 룬달(Harry Lundahl, 악셀손의 전 팀 동료)
3. 뒷이야기
- 악셀손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별명이 '침묵(Den tyste)'이었다.
- 악셀손은 당시 축구 선수들과는 다르게 옷에 관심이 매우 많았다. 그의 아들은 헬싱보리 구단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닐스에게 옷으로 가득찬 방이 하나 있었다고 밝혔다.
4. 수상
4.1. 클럽
- 알스벤스칸 우승 5회: 1928–29, 1929–30, 1932–33, 1933–34, 1940–41( 헬싱보리 IF)
- 알스벤스칸 준우승 1회: 1927–28(헬싱보리 IF)
- 스벤스카 쿠펜 우승 1회: 1941(헬싱보리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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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