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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1년 3월 15일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 |
사망 | 1907년 2월 16일 |
서대문형무소 | |
본관 | 광주 노씨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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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61년 3월 15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에서 노이선의 2남으로 출생했다. 허전 밑에서 유학을 공부하였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최익현, 송병선 등에게 학문을 연마했다.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의병이 들고 있어나자 노응규 또한 자신의 고향인 함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침공해 관리들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얼마안가 일제의 개입으로 노응규의 의병은 해산되었다.
이후 호남 일대로 피신을 가서 살다가 1897년 사면받는다. 1902년 10월 규장각 주사로 등용되었으며 경상남도 사검 겸 독쇄관(9품), 중추원 의관 등의 관직을 지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906년 의병에 가담하여 지속적으로 항일운동을 했으나 1907년 밀정에게 기밀이 유출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감옥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