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3:31

노병욱

1. 임실군 출신 독립운동가, 노병욱2. 나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노병욱

1. 임실군 출신 독립운동가, 노병욱

성명 노병욱(魯炳旭)
이명 노춘근(魯春根)
생몰 1887년 5월 16일 ~ 1924년 8월 25일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목마동
사망지 전라북도 임실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노병욱은 1887년 5월 16일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목마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북 진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에 추대된 이석용의 친구이자 임실 일대의 거부(巨富)로, 자신은 물론 처가의 재산까지 의병진의 군자금으로 제공하였고, 각처의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징발하기도 했다. 그는 1907년 8월 7일 진안 마이산에서 이석용 의병대에 가담했고 1908년 3월 20일 임실군 성수면 태평리 대운고개에서 일본 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또 1908년 음력 4월 11일 전북 전주군 상관면에 거주하는 서준보(徐俊甫)의 집에서 그 곳 동장에게 군수품을 각출했으며, 같은 면의 노동(蘆洞)에서도 동장에게 군수품을 각출했다. 1908년 4월 15일에는 임실군 상북면 사일리에 거주하는 김미지(金美旨)에게 ‘엽전 300냥을 기부하라’고 요구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09년 2월 경찰에 체포된 그는 미결수 신분으로 7개월 동안 구금되었다가 1909년 8월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임실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24년 8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노병욱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나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노병욱

파일:노병욱.jpg
성명 노병욱(盧炳旭)
생몰 1908년 8월 11일 ~ 1950년 9월 18일
출생지 전라남도 나주군 송산면 중포리
사망지 전라남도 나주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포장

노병욱은 1908년 8월 11일 전라남도 나주군 송산면 중포리에서 태어났다.그는 나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가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7월 10일 나주군 공산면사무소에서 "전남 무안군 흑산도 방면의 바다에는 일본 병사의 시체가 다수 표류하여 어선 등이 왕래할 수 없다. 또 대륙 전선에서는 반도 출신의 군인들이 다수 장제스 군대에 투항하였는데, 장제스군은 이를 환영하였다."는 등 시국담을 유포했다. 또 자신의 나룻배를 이용해 독립운동가들을 실어나르고 독립운동 자금을 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군에 체포된 그는 1944년 9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 송치되었고 10월 1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육해군형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0일에 출옥했다. 이후 고향에서 대한청년단 부단장으로 활동했으며, 20여 마지기의 논에서 나는 수확을 토대로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후 북한군이 나주를 점거했다가 9월 인민군이 잠시 물러나자 국군 환영식에 참석해 태극기를 제작하여 지역 유지들과 함께 국군을 환영했다가, 며칠 뒤 나주가 다시 북한군에게 넘어가면서 그의 운명이 결정되고 말았다. 북한군은 그가 국군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9월 18일 한밤중에 유지들과 함께 끌고 가서 총살했다. 이때 그의 아내와 두 아들도 처참하게 살해되었고, 오직 딸 노장순 씨만 이웃집에 숨어있다가 목숨을 건졌다.

노장순 씨는 이후 결혼하여 5남매를 뒀지만 남겨진 재산이 친척의 손에 넘어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전주 시내 15평까지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부친과 가족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산군에 끌려가 희생당한 것만으로는 국가유공자 대상에 포함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대해 노장순 씨는 2010년 8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청년단 활동도 하지 않았을 테고 그랬으면 가족까지 처참한 죽임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이런저런 오해를 받을까 봐 60년 세월동안 가족의 죽음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는데 정부가 묘비 하나 세워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