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00:45:04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2020)
刻在你心底的名字 | Your Name Engraved Herein
파일: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포스터.jpg
장르 로맨스, 퀴어
감독 류광후이(柳廣輝)
각본 취여우닝(瞿友寧)
주연 천하오썬, 쩡징화
음악 야니스 황(黃雨勳), 크리스 허우(侯志堅)
주제곡 刻在我心底的名字(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
제작사 氧氣電影(양기전영)
촬영 야오홍이(姚宏易)
편집 수페이이(蘇珮儀)
배급사 파일:대만 국기.svg 소니 픽처스 타이완
개봉일 2020년 3월 14일(오사카 아시안 영화제)
2020년 7월 5일(타이베이 영화제)
2020년 9월 5일(대만 국제 퀴어 영화제 개막작)
파일:대만 국기.svg 2020년 9월 30일
2020년 10월 22일, 27일(홍콩 국제 영화제)
2020년 11월 21일(홍콩 게이 레즈비언 영화제 개막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미정
상영 시간 114분
독점 스트리밍 파일:넷플릭스 아이콘.svg 2020년 12월 23일 공개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8세이상_2021.svg 청소년 관람불가
제작비 7000만 타이완 달러(TWD)[1]

1. 개요2. 시놉시스3. 예고편4. 등장인물
4.1. 주연
4.1.1. 장자한4.1.2. 왕버디
4.2. 조연
4.2.1. 우뤄페이4.2.2. 올리버 신부
5. 시나리오에 대한 저작권 분쟁6. 기타

[clearfix]

1. 개요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대만에서 제작한 영화로, 대만 계엄령이 해제된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 시놉시스

1987년, 오랜 세월 지속했던 계엄령이 해제된 대만. 같은 반 남학생 자한과 버디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방에 퍼져 있는 동성애 혐오.
그리고 너무나 무거운 부모님의 기대. 두 사람은 이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3. 예고편

대만 개봉 예고편 넷플릭스 예고편

4. 등장인물

4.1. 주연

4.1.1. 장자한

장자한(張家漢)
파일:장자한.png
배우: 천하오썬
작중에서 '아한(阿漢)'[2] 이라고도 불리며 외성인[3] 출신 아버지와 원주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한데 자신이 남성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 고뇌하는 인물. 자신의 성적 지향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여자들을 만나고 밴드에도 가입하기도 했지만 친구인 버디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져서 괴로워 한다.


중년의 장자한
파일:중년__자한.png
배우: 다이리런(戴立忍)
30년 후, 자한은 유능한 회계사가 되었고 대외적으로 커밍아웃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진 않은, 그저 적당히 감추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그런 평범한 존재가 되었다. 올리버 신부의 장례식을 계기로 버디와 재회하게 된다.


4.1.2. 왕버디

왕보더(王柏德)
파일:왕버디.png
배우: 쩡징화
작중에선 '버디'라고 불리는데 1984년 만들어진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버디(Birdy)'를 보고 감명을 받은 뒤 스스로 버디라고 부르고 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과 한 집안의 외동아들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 자한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 또한 자한을 좋아한다는 걸 눈치채지만 억지로 자한을 밀어내는 대신 일부러 자한의 시그널을 모른 척 하거나 다른 이야기로 둘러대는 등 배려 섞인 외면으로 일관한다.


중년의 왕보더
파일:중년_버디.png
배우: 왕스셴(王識賢)
30년 후, 버디는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삶을 따라 영화감독이 되었고 자신을 좋아했던 우뤄페이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도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하다가 결국 뤄페이와 이혼하였다. 이후 올리버 신부의 장례식을 계기로 자한과 재회하게 된다.

4.2. 조연

4.2.1. 우뤄페이

우뤄페이(吳若非)
파일:우루오페이.png
배우: 샤오이메이
대만 계엄령의 해제로 인해 베르테르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받게 되었을 때 들어온 여학생. 반반(班班)[4]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학교 내 밴드에 여학생들이 가입한 일로 교관이 간섭하자 버디가 강하게 항의했고 뤄페이 또한 교관에게 대드는 일이 있었는데 이 때부터 버디에게 호감을 가졌다.


중년의 우뤄페이
파일:중년_뤄페이.png
배우: 웨이루쉬엔(魏如萱)
이후 자신의 바람대로 버디와 결혼했고, 둘 사이에 아이도 있었으나 결국 버디는 그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자신이 감춰왔던 성 정체성으로 인해 가정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결국 이혼하였다. 어찌보면 자한과 버디 사이에 끼었다가 인생을 망친[5] 또 하나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4.2.2. 올리버 신부

올리버 펠르티에(Oliver pelletier)
파일:신부_올리버.png
배우: 파비오(法比歐)[6]
베르테르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며 밴드를 운영하고 있는 신부. 캐나다 퀘벡 출신으로 신부가 되었으나 자신이 신부로서 가져서는 안되고 사회적으로도 허락되지 않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 결국 캐나다를 떠나 대만으로 와서 선교를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자신이 떠나온 캐나다는 1960년에 발생한 '조용한 혁명(Révolution tranquille)'[7]에 의해 자유로운 국가가 되고 자신이 도망치듯 온 대만은 오히려 계엄령으로 인해 폐쇄적인 사회가 되는 아이러니함을 겪게 되었다.

올리버 신부는 자신의 성적 지향으로 인해 괴로워 하는 장자한을 지속적으로 상담을 해주며 자신의 천주교 신부로서의 신념으로 자한을 설득했으나 점차 숨겨왔던 올리버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게 되고 결국 성직을 내려놓은 뒤 자신의 동성 애인과 함께하는 선택을 했다. 30년 후, 올리버 신부는 별세했는데 자신의 제자들에게 영상 편지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유언을 남겼고[8] 그의 장례식으로 인해 자한과 버디는 다시 재회한다.

여담으로 올리버 신부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바로 '로베르 마세 신부(Père Robert Massé)'인데 1941년 생으로 성 비아토르 수도회(Saint Viator congregation) 소속이며 대만으로 온 뒤 음악을 가르쳤다. 작중 학교가 가톨릭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로 설정되어 있는데 로베르 마세 신부 또한 ' 타이중시 가톨릭 사립 웨이다오 고등학교(臺中市天主教私立衛道高級中學)'에서 음악 클럽(밴드)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이로 인해 학교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이후 2005년에 은퇴한 로베르 마세 신부는 고향인 퀘벡으로 돌아갔고 2013년 선종할 때까지 신부라는 자신의 직분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영화 속 올리버 신부는 실제 인물인 로베르 마세 신부의 모티브에 동성애라는 요소를 가미한 인물인 셈이다.[9]

5. 시나리오에 대한 저작권 분쟁

2021년 8월 29일에 익명의 네티즌이 PTT[10]에 대본 자체가 표절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익명의 네티즌이 쓴 글에서는 해당 영화의 각본을 맡은 취여우닝(瞿友寧)이 영화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천국으로 가는 길에(在天堂的路上)』를 원작자 쩡신메이(鄭心媚)에게서 받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지급해야 했으나 대본 수정과 경비 부족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후 영화가 완성되자 쩡작가의 이름을 아예 지웠다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해당 네티즌에 의해 언급되었던 작가 쩡신메이는 싼리신문(三立新聞)과의 인터뷰를 통해 네티즌들의 비판과 반발은 '대부분 사실'이라면서 "자신은 너무나도 괴로워 영화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고 얘기했지만 취여우닝과 자신의 사이가 틀어진 건 아니고, 이 작품 또한 표절은 아니라는 의견을 밝혀[11] 넘어가는 듯 했으나... #

표절 논란을 받게 된 취여우닝이 8월 30일에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무려 2,800자나 되는 장문의 글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는데, 이전 대본에서는 한 단어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본에 쩡신메이의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해당 익명글을 쓴 네티즌을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에 쩡신메이 또한 같은 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내가 시나리오 자문[12]으로만 등록되어 마음이 아팠고 이젠 이 기회를 빌어 새로운 창작자들을 대변하고 싶다." 라는 의견을 밝혔다.

해당 영화의 감독인 류광후이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영화는 쩡신메이의 『천국으로 가는 길에』를 참조한 게 아니라 실제 경험을 담은 원고를 원작으로 했다"는 의견과 함께 "쩡작가가 단순히 자문으로만 선임된 것에 대해 불쾌하다면 사과드린다"는 의견도 함께 밝혔다.

취여우닝은 결국 문화부 보조금 편취, 표절, 원작자의 이름을 자신으로 바꿔치기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런데 취여우닝이 검찰 조사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에』와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같은 작품이라고 말을 바꿨다. 결국 검찰에서는 쩡신메이와 류광후이를 각각 소환해 조사했고 두 사람은 "두 작품은 같은 줄거리의 틀을 가지고 있고 내용과 정신이 비슷하다"고 증언했다.

검찰에서는 취여우닝이 작가의 이름을 바꿔치기 했다는 표절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쩡신메이의 대본이 없다고 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두 대본은 줄거리가 같다고 판단되기에 여우닝의 페이스북 발언이 과장된 건 맞지만 그게 영화 보조금을 편취했다는 증명은 될 수 없다면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보조금 편취 건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이 나왔지만 영화와 원작의 시나리오가 동일한 줄거리에 속한다는 판단이 나오자 취여우닝은 기자회견을 열어 "나는 이 업계에서 30년이나 일했고 일하는 스타일을 모두 잘 알고 있다.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둬라. 우리에겐 더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발언을 했고 이 발언이 기사로 나오자 쩡신메이는 이 기사를 리트윗한 후 "취여우닝은 사건이 터지니까 두 영화가 같은 영화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은 많으며 이를 바로 잡으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

6. 기타

  •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대만 계엄령 직후인데, 버디 역을 맡은 쩡징화는 1년 전에 마찬가지로 대만 계엄령 시기와 관련이 있는 영화 반교: 디텐션에서 남자 주인공인 웨이중팅(魏仲廷)의 학생 시절을 연기하기도 하였다.
  •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처음 접한 이들 중 이 작품이 영화관에서 개봉했으면 하는 이들이 꽤 있다.
  • 대만에서 2020년 6월 19일에 개봉하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2020년 9월 30일로 변경됐다.[13]
  • 2024년 4월 3일에 한국에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 포토 에세이'가 출판되었다.


[1] 한화로 약 28억 6,300만 원. [2] 아(阿)는 주로 친밀한 사람에게 붙이는 별칭이다. 일본어의 ' ~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3] 장제스 국민당 정부를 따라 대륙에서 대만 섬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4] '뚜렷한(명백한) 모양'이라는 뜻도 있다. [5] 스스로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자신의 인생도 버디의 인생도 망가지지 않았을 거라고 후회한다. [6] 프랑스 이름은 '파비오 줄리앙 빅토르 그랑종(Fabio Julien Victor Grangeon)'이며 대만에서 거주하는 프랑스 출신의 모델 겸 배우. [7] 1960년 6월 22일에 있었던 퀘벡의 총선거 때 퀘벡 자유당의 '장 르사주(Jean Lesage)'가 퀘벡주의 주지사로 당선되면서 당시 캐나다 사회, 특히 보건과 교육의 영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끼치던 로마 가톨릭의 기세가 꺾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동성애에 대한 시각 또한 크게 달라지면서 캐나다는 상당히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다. [8] 이 말은 영화가 말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리버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며 도피했고, 결국 자한을 상담해주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이 영화의 주연인 자한과 버디 또한 주변 환경과 상황, 그리고 솔직하지 못한 태도로 인해 결국 결별 아닌 결별을 하였고 이후 30년 간 무미건조한 삶을 살게 되었다. 올리버의 저 말은 자기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불투명한 내일을 위해 살다가 후회하지 말고 오늘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9] 때문에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In memory of Father Père Robert Massé(로베르 마세 신부님을 추모하며)' 라는 문구가 뜬다. 다만 'Père'는 신부님이라는 의미인데 앞에 마찬가지로 신부님이라는 의미의 'Father'를 붙였다. [10] 대만 학술 네트워크의 자원을 기반으로 구축되었으며 Telnet BBS 기술을 사용하여 운영되는 대만의 전자게시판이다. [11] 물론 "내가 낳은 아이를 남이 키운 것 같다" 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긴 했다. [12] 중국어로는 편극고문(編劇顧問)이라고 한다. [13] 출처: 중국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