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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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직예(南直隷)는 명나라의 행정구역이다.2. 역사
용봉(龍鳳) 2년( 1356년) 강절행성에 근거했던 한림아가 강남행중서성(江南行中書省)을 설치하고 치소를 응천부(應天府)에 두었다. 명나라가 들어선 뒤인 홍무(洪武) 원년( 1368년) 홍무제는 행중서성을 폐지하고 남경(南京)을 설치했다. 홍무(洪武) 11년( 1378년) 남경을 경사(京師)로 개칭했다. 홍무(洪武) 13년( 1380년) 중서성(中書省)을 폐지했다. 이후 정난의 변으로 즉위한 영락제가 경사를 다시 남경으로 고쳤으며, 영락(永樂) 19년( 1421년) 기존의 북경(北京)을 경사로 고치면서 공식적으로 천도했다.3. 하위 행정구역
3.1. 응천부(應天府)
남북조시대까지 단양군(丹陽郡)으로 불렸으며, 삼국시대 오나라를 세운 손권이 도읍한 이후 남조 국가들의 도읍이 되었다. 589년 수나라의 남북조 통일 이후 장주(蔣州)로 개편되었고 양제의 즉위 후 단양군으로 개편되었다. 이후 당나라 중기인 757년 강녕군(江寧郡)이 설치되고 다음해에 승주(昇州)로 개편되었다가 761년 다시 폐지되었으며, 당나라 말인 887년 다시 설치되었다. 이후 오대십국시대 양오에서 금릉부(金陵府), 남당에서 강녕부(江寧府)로 불리며 두 국가의 수도로 기능했다가 송나라가 남당을 멸한 뒤 다시 승주로 격하되었다. 1018년 승주는 다시 강녕부로 승격되었고 1129년 건강부(建康府)로 개칭되어 1277년까지 존속했다가 건강로(建康路)로 개편되고 1329년 집경로(集慶路)로 개칭되었다.용봉(龍鳳) 2년( 1356년) 집경로는 응천부(應天府)로 개편되었다. 명나라가 들어선 뒤 홍무제는 이곳에 도읍하고 남경(南京)이라 명명했다. 홍무(洪武) 11년( 1378년) 남경을 경사(京師)로 개칭했지만 정난의 변으로 즉위한 영락제가 경사를 다시 남경으로 고치고 영락(永樂) 19년( 1421년) 기존의 북경(北京)을 경사로 고쳤다. 다만 영락제는 신하들의 거센 반대로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지 못했다. 영락제의 뒤를 이은 홍희제는 다시 남경으로의 재천도를 검토했지만 재위 10개월 만에 붕어하면서 재천도 논의는 흐지부지되었으며, 선덕제 때 북경이 정식 수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