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남주원(南柱元) |
이명 | 남경천(南敬天), 남주학(南主學) |
생몰 | 1893년 10월 3일 ~ 1947년 10월 15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사성리 (現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사성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서산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주원은 1893년 10월 3일 충청남도 서산군 대호지면 사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중순 대호지면장 이인정(李寅正)과 면내 유지 남계원(南桂原), 면사무소 사환 송재만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3월 19일 경찰 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후 송재만, 이인정 등의 주동자들이 체포되자, 그는 검거를 피한 뒤 면민들을 동원하여 다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했다. 이윽고 4월 4일이 되자, 그가 이끄는 군중은 대호지면에서 출발해 정미면 천의리에 이르러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했고 일본인 순사와 순사보를 구타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그러나 서산, 당진, 공주에서 동원된 일본 군경에 의해 군중은 해산되었고 수백명의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10월 2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7년 10월 15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남주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