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남상빈(南相斌) |
생몰 | 1887년 2월 23일 ~ ? |
출생지 |
함경남도 원산부 교하동 (현재 강원도 원산시 교하동)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상빈은 1887년 2월 23일 함경남도 원산부 교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8월 미국 국회의원단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9월 22일 김상익(金相翊), 조병철(趙秉喆), 김병륜(金秉綸), 이용훤(李容暄), 서원태, 이용구, 최종현(崔鍾泫), 최종빈(崔鍾濱)ㆍ김연희(金演熙) 등과 함께 다음날인 23일 원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했다.9월 23일, 최종현, 이용구 등은 원산부 장촌동 장춘교 부근에서 반일 성향의 창가 한양가(漢陽歌)를 부르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소리를 듣고 모여든 군중 수백명은 남산교, 공립보통학교, 극장 동락좌, 북촌동 시장, 파출소 등으로 이동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이때 남상빈은 동락좌 부근에서 시위대에 가담해 원산부 북촌동으로 행진하여 경찰관 파출소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1920년 12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해 공소했지만 1921년 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 1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남상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