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남병희(南秉熙) |
본관 | 의령 남씨[1] |
생몰 | 1900년 2월 20일 ~ 1959년 12월 15일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안군 비곡면 금암동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2] |
사망지 | 경상남도 함안군 |
추서 | 대통령표창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병희는 1900년 2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 비곡면 금암동(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금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고종의 인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상경했다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에 참가한 뒤 함안으로 돌아온 조한휘(趙漢輝)· 이찬영(李讚榮) 등이 주도한 3월 19일 함안면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군중 3천 명과 함께 마산주재소를 파괴하고 뒤이어 등기소, 우체국, 일본인 소학교를 차례로 파괴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5월 1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함안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9년 12월 15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남병희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