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영양 남씨[1] |
출생 | 1877년 |
경상도 문경현 가동면 작천리 (현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 |
|
사망 | 몰년 미상 |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만귀는 1877년 경상도 문경현 가동면 작천리(현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작천리)에서 아버지 남대환(南玳煥)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해두(李海斗)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그는 1907년 음력 8월에 이인영의 의병대에 가담했고, 동료 의병 100명과 함께 총 수십정, 군도 1자루를 휴대하고 경북 문경, 충북 괴산군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8월 9일 괴산군 내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했다. 그러나 곧 체포된 그는 1909년 5월 1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남만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회령공파(會寧公派) 15대손 만(萬) 항렬. 영양 남씨 23세. 남씨대동보 5권 밀직공파(영양 본관)-회령공파 280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