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나오키 산주고(直木 三十五, なおき さんじゅうご)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1891년 2월 12일생으로 1934년 2월 24일 사망하였다. 소설가뿐 아니라 작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상으로 나오키 산주고상이 있으며, 이 상은 아쿠타가와상과 함께 문예춘추지에서 시상하는 권위 높은 문학상이다. 본명은 우에무라 쇼이치(植村宗一).1.1. 필명 관련해서
성씨의 우에(植)를 둘로 나누어서 나오키라는 성씨를 만들고, 자신의 나이에 맞춘 이름을 지어 필명으로 사용했는데 처음에는 나오키 산주이치(31)로 시작해 산주고(35)까지 매년 필명을 바꾸다가, 산주고로 고정했다. 지인 기쿠치 칸에 의해 중지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본인이 그만뒀다는 이야기도 있다.2. 생애
1891년 2월 12일 현재의 오사카시 주오구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영문과 예과를 거쳐 와세다대 고등 사범대학 영어과에 진학했으나 수업료를 미납하여 중퇴했다. 하지만 대학 자체에는 계속 등교했다. 1920년 창간된 <인간> 지의 편집을 담당하게 되는데, 그때는 본명인 우에무라 쇼이치를 사용했다. 1923년 문예춘추 지의 문단 가십난을 맡아 독설로 화제를 불렀으며, 관동대지진 이후에는 오사카로 돌아가 오락잡지 <고락>의 편집을 맡았는데, 이 무렵 시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이후 마키노 프로덕션의 마키노 슈조의 집에 얹혀 살았다. '영화 연합 예술가 협회'를 만들어 영화 제작에도 몰두했으나 영화 실적이 나쁘자 1927년 '영화 따위 애들 장난이다'라는 발언을 남기고 영화계에서 손을 뗐다. 1929년 대중문학 작가로 인정받았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1930년 신문에 발표한 오유라 소동을 다룬 <남국태평기>로 일약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품은 50편 가까이 영화화되었으며, 스스로 영화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기도 했다.
1934년 2월 24일 43세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