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나만규(羅萬奎) |
생몰 | ? ~ ? |
출생지 | 미상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나만규가 태어난 년도와 장소,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전 경력은 알려진 바 없다. 그는 1921년 음력 12월 대한군정서원(大韓軍政署員)에 가담해 문창학, 김학섭(金學燮) 등과 함께 함경북도 경원군의 신건원주재소를 공격했다. 사실 그들은 당초엔 함경북도 웅기항을 공격하려 했지만 대원들이 낙오하는 등 차질을 빛자 계획을 변경해 신건원주재소를 공격하기로 한 것이었다.공격은 2개조로 나뉘어 주재소와 수비대를 동시 공격하기로 했다. 1921년 12월 5일 새벽 1시, 다른 1개 조가 주재소를 공격하는 동안, 나만규와 강병관은 신건원수비대 막사를 공격하여 그들의 발을 묶은 뒤 주재소 공격이 성공하자 퇴각했다. 이에 일제는 그들을 체포하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고, 1923년 5월 2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은 궐석재판을 열어 나만규에게 살인, 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나만규는 1925년 흑룡강성에서 신희경(申熙慶)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며, 그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나만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