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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도
金幸道}}}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923년 1월 10일[1] |
경상남도
통영군
사등면 지석리 1029번지 (현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지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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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0년 12월 25일[2] (향년 27세) |
서대문형무소 | |
본관 | 김해 김씨[3]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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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소설가 박경리의 배우자이다.2. 생애
1923년 1월 10일 경상남도 통영군 사등면(현 거제시 사등면) 지석리 1029번지에서 태어났다.일본 도야마현 다카오카(高岡)공예학교 재학 중이던 1942년 3월, 강종범 등과 함께 친교회를 조직하고 조선독립의 지도를 목표로 삼았다. 이후 동지를 규합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체포 후 고초를 겪다가 징역 2년형, 집행유예 5년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주오대학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1946년 경기도 인천부에 있던 미군정 인천 전매청에 취직하여 서기로 근무했다. 그리고 그해 1월 30일 서울특별시에서 박경리와 결혼했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직후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아 투옥되었고,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던 도중 행방불명되었다.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서는 1950년 12월 25일 사망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