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김창익 Kim Chang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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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8년 5월 17일 |
사망 | 2008년 1월 29일 (향년 49세) |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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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어머니, 형 김창완, 김창훈 |
배우자 이영숙 장남 김신환 차남 김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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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한영중학교 (졸업) 성남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 / 학사) |
소속 그룹 | [[산울림|{{{#!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4px 5px; border-radius: 5px; background: #8FBC8F; font-size: .8em"]] |
포지션 | 드럼 |
데뷔 | 1977년 《 산울림 새노래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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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락밴드인 산울림의 드러머, 기업인.2. 생애
성남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작은 형 김창훈과 같이 육군 군악대에서 군복무하였다. 김창훈에 따르면 김창훈 본인은 군복무 기간에 음악 실력이 정체기에 있었으나 동생 김창익의 드럼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했다. 김창훈은 군악대가 아닌 문선대에 갔어야 했다고 덧붙였다.9집까지 같이 활동하고 10~12집은 큰형 김창완 혼자서 활동하다가 1997년 13집 활동 당시 오랜만에 3형제가 뭉쳤다. 9집 활동 후 김창익은 1983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1997년 IMF 외환위기에 회사를 나와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1] 벤쿠버의 한 식품도매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IMF 시기 직후 캐나다로 이민한 것은 시기적으로 맞은데, 캐나다로 이민 간 이유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1. 아들의 영어 교육을 위한 목적이 굉장히 컸다고 했다.
2. 작은형 김창훈이 캐나다에서 식품 사업을 하다가 미국에 있는 회사로 스카웃 돼서, 캐나다 회사를 대신 운영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업무를 맡아 달라는 요청으로 이민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정황상은 2번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곧 위의 글에서 벤쿠버 한 식품도매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단 얘기는 김창훈 창업 회사의 실질적 운영자라고 해석하는 게 옳다.
3. 사망
2008년 1월 29일 2시 30분 경(현지시간) 회사 직원들에게 눈이 많이 와서 지게차 작업이 위험하다고 직원들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지게차를 운전하다가 경사길에 미끄러져 넘어져서 사고를 당해 곧바로 인근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출혈이 심해 결국 사망하였다.4. 여담
- 산울림으로 활동하면서 산울림 4집 수록곡인 풋내기들과 합창, 9집 수록곡인 길엔 사람도 많네 2곡을 작곡하였다.
-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요즘에도 먹힐 만큼 되게 세련된 미모를 가졌다.
[1]
작은형 김창훈은 1982년 해태상사에 입사했고, 해태 아메리카에서 근무하게 되며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에 미국 시카고 CJ푸드 부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