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3:21

김진주(신라)

金眞珠
미상 ~ 662년? 또는 670년~675년?

1. 소개2. 생애

1. 소개

신라 중대의 진골 출신 장군.

2. 생애

선덕여왕 시기인 639년 2월에 하슬라주(何瑟羅州)[1]가 북소경(北小京)이 되자 사찬으로서 지키게 되었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659년 8월에 아찬(阿湌)으로서 병부령(兵部令)이 되었다.

660년 5월, 백제멸망전에 천존(天存)과 함께 최고지휘관인 김유신을 보좌하여 종군하였다. 백제 멸망 뒤 661년 7월에 대당장군(大幢將軍)으로 임명되어 고구려 원정에 참여하였다.

662년 8월에 백제의 유민들이 내사지성(內斯只城)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김흠순(金欽純) 및 여러 장군들이 토벌하였는데, 이때 동생 남천주총관 김진흠(金眞欽)과 함께 병을 걸렸다면서 출정을 안했는데, 문무왕이 국사에 게을리 했다면서 그를 처형하고 일족들까지 잡아 죽였다. 사실 국사를 게을리 했다는 것은 명분이고 그가 신라에서 세력이 강한 터라 문무왕이 경계했는데 병에 걸렸다면서 출전을 거부한 것이 왕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기에 왕권을 공고히 하고 군기를 잡기 위한 시범 케이스로 삼은 걸로 추측된다. 하지만 670년 12월에 한성주총관(漢城州摠管) 수세(藪世)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를 토벌한 장수가 김진주라서 662년 8월에 처형된 사건이 연도가 잘못 기록되었고, 실제로는 670년 12월 ~ 675년 8월 사이에 처형되었다고 추정된다.

이 일로 인해서 675년 9월에 나당전쟁시 당나라에 숙위하고 있던 김진주의 아들 김풍훈(金風訓)이 원한을 품고 향도를 자청해 당나라 군에 합류하기도 했다.

[1] 오늘날의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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