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1:41:57

김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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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용만 (2) 장진범
조종규
(4명)
강정남
김윤환
조도연
문희수
(7명)
김기철
김태업
선동열
신태순
이순철
최상주
허세환 (1)
(10명)
강상진
김경호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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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우 (1)
신동수
이건열
장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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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백인호
박철우
김만후
송영복 (1)
조계현
한경수 (1)
이광우
이강철
장호익
정회열
이호성
오희주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박재홍 이종범 최재영 김동호 김종국
(고졸)
김상훈
김상진
서재응 (1)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오철민
(고졸)
김병현 (1)
김원 (1)
김준희 (1)
최희섭 (1)
(고졸)
강철민
김정진 (1)
이현곤
정성훈
(고졸)
류찬
김성호 정원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김진우 고우석 김주형 곽정철 한기주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정영일 (1)
오준형
전태현 정성철 심동섭 (2) 한승혁 (2)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박지훈 (2) 손동욱 (2) 차명진 이민우 김현준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유승철 한준수 김기훈 정해영 이의리
2022년 2023년 2024년
김도영 윤영철 (2) 조대현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연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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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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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7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5번}}}
정성훈
(2002)
김주형
(2004~2006)
손지환
(2007)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33번}}}
손지환
(2004~2006)
김주형
(2007~2008)
채종범
(2009~2011)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9번}}}
김형철
(2008.5.5.~2010)
김주형
(2011~2012)
장시하
(2013)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33번}}}
장지환
(2012)
김주형
(2013~2019)
유재신
(2020)
}}} ||
}}} ||
파일:tigers_co_kr_20171016_175508.jpg
김주형
金柱亨|Kim Joo-Hyeong
출생 1985년 12월 15일 ([age(1985-12-15)]세)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학강초 - 광주동성중 - 광주동성고
신체 186cm|108kg
포지션 내야 유틸리티[1], 좌익수, 우익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4년 1차 지명 ( KIA)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4~2019)
지도자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0~2022)[3]
동신중학교 야구부 감독 (2023)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4~)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8년 12월 22일~2010년 10월 30일)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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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곡 Bon Jovi - It’s My Life
응원가 노브레인 - 그것이 젊음[4][5] }}}}}}}}}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지도자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동신중학교 야구부 감독.

KIA 1차 지명자 중 단 세 명 뿐이었던 야수였으나[6]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여주었다. 타 팀 팬덤 사이에서도 워낙에 유명해 자 팀에서 모종의 문제로 재능을 피우지 못한 유망주가 나오면 제 2의 김주형으로 불릴 정도로 리그 내에서는 만년 유망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기대를 많이 받던 선수라 올드 KIA 팬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사실 KIA 팬덤 뿐만 아니라 타 팀에서도 올드 야구팬 사이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편.

KBO 리그 역대 선수들 중 2000타석 이상 누적 WAR이 뒤에서 2위. 심지어 플러스도 아니고 -0.54. 참고로 1위는 허준이다.[7]

2. 선수 경력

김주형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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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김주형/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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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007~2008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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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퇴 후

2020년 5월 연예인 야구단 크루세이더스에 입단한 것이 알려졌다. 코치와 동시에 사회인 야구 선수 활동도 하는 듯.

4. 지도자 경력

방출당한 후의 근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2020년 창단한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 아마야구 지도자 자격증이 없었던 관계로 정식 코치로 등록되지 않았다가 2021년 10월에야 등록되었다.

이후 신규 창단하는 서울 동신중학교(서울컨벤션고등학교와 동일 재단 소속) 야구부 수석코치로 이동했다. 거포 유망주→수석코치, 전 KIA 김주형 지도자 이야기 협회 사이트에는 2023년 5월부터 감독으로 표시되어 있다.

2024년 다시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이동했다.

5. 플레이 스타일

훌륭한 신체조건과 이에 뒤따르는 신체능력 등, 소위 하드웨어가 매우 뛰어나서 거포 유망주로 기대받았던 선수. 그러나 그에 못미치는 소프트웨어가 선수생활 내내 발목을 잡으며 결국 미완의 대기로 남은 선수다.

KBO에 등록된 프로필 기준으로 185cm, 93kg의 뛰어난 피지컬과 이에 기반한 훌륭한 파워를 갖췄다. 잠실 중앙을 라인드라이브(!)로 넘긴 적도 있어서 '천연 도핑'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그러나 부족한 컨택과 통산 135볼넷/389삼진이라는 절망적인 선구안 때문에 장타 툴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수비의 경우 좋은 유연성 덕분에 코너 내야수로서는 평가가 꽤 괜찮았다. 파울라인으로 붙어서 오는 타구를 부드러운 자세로 잡아서 좋은 송구로 땅볼 수비를 하는 경우나, 1루수로 출전 시 다리를 쫙 벌려서 잡아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유튜브 등에서 호수비 모음집 동영상들을 보면 1, 3루에서 어려운 타구를 낚아채는 김주형의 호수비 장면을 의외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런 유연성 덕분.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수비[8]가 아니라 신체 능력을 적극 활용해 몸으로 때우는 거친 수비를 하기 때문에 기복이 심하고 실책이 잦으며, 수비 센스도 썩 좋지 않다. 유연성 있는 수비를 살려 센터라인 내야수나 코너 외야수로 기용해본 적도 있으나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으며, 특히 유격수로 자주 나선 2016시즌에는 기아 팬들이 김주형의 수비에 벌벌 떨었을 정도.[9]

6. 여담

도플갱어가 있다.[10]

2006년 10월에 가시를 부른 적이 있다. #

디시인사이드 갸갤에서는 짐짝, 짐주형이라고 불린다. 잦은 에러와 형편없기 그지없는 타격으로 팀에 짐과 같다고 붙여진 별명. 이 별명이 널리 퍼져 이제는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거의 그렇게 부른다. KIA 타이거즈 전담기자인 김여울의 블로그에 따르면 김주형 본인도 짐짝이라는 별명을 안다고.
파일:짐주형.png

얼마나 유명한지 네이버 검색창에 '짐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짐주형'이 뜬다.

2011년 이후로 그의 별명은 지미로 낙찰되었다. 파울만 잘 친다고 하여 ' 지미 파울러' 라는 뭔가 그럴듯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잘할 때에는 짐금님, 지미 소사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김주형의 타율이 바닥을 치면서 갸갤에선 지미라고 부르기도 싫다며 거의 욕설로 대신하기도 했다. 2017년에 이르러서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생긴다고. 아마도 KIA 타이거즈 역사상 야구 외적으로 아무 잘못없이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선수일 것이다.

2018년 이후부터는 별명인 '짐짝'이란 단어도 불러주기 싫은지 KIA 팬들은 '그 화물'이란 단어로 부르고 있다. 또한 갸갤에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 처리해야 한다는 드립이 종종 나오고 있다. 훗날 김주형이 떠난 뒤 이 번호를 물려받을 다른 선수는 뭔 죄냐며. 한편 김주형이 방출된 뒤 KIA의 새 33번은 히어로즈 시절부터 아버지 유두열의 등번호를 달고 뛰었던 유재신에게 돌아갔지만 번호를 바꾼지 1년만에 방출됐고, 유재신이 방출된 후에는 김주형과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한 장영석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장영석도 시즌 종료 전에 방출되면서(...) 후반기에는 군 전역 후 복귀한 신범수가 달았다가 2022년부터 오선우로, 2023년부터는 변우혁으로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11]
파일:GM_MS_joohyeong.jpg
최훈 카툰에서는 때때로 짐(MS)으로 그려진다.[12]

헨리 소사에게 이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작 소사는 33번 선수라며 기억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수비 포지션에 입단 동기인 박석민과 많이 비교가 되기도 하는데, 두 선수 다 초고교급 타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결과는 근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로 인해 지금처럼 격차가 벌어졌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

은근히 금강불괴인데, 그래서 더 까인다. 야구도 못하는 야구선수 주제에 안 다쳐서 오히려 팀에 해만 끼친다고. 하지만 생각 외로 잔부상도 있는 편이라서, 실은 정작 필요할 때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2015년 12월에 품절남이 되었고, 이듬해 9월 득남하였다.

팬 서비스 안 좋기로 유명한 KIA 타이거즈 내에서도 아니나다를까 별로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어느정도 감안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김주형 본인이 욕을 워낙 많이 먹어서 팬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도 욕을 먹어서 프로가 팬을 두려워 하는 지경까지 다다랐다.[13] 그러나 김주형이 19시즌 중 방출되면서, KIA 팬덤에서는 그딴 고민은 이제 더 안 하게 됐으니 기뻐하라는 비아냥으로 대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오오타 타이시라는 김주형과 아주 비슷한 유형의 선수가 있다. 2명 다 1차 지명 출신의 고졸 우타 거포 내야수에[14] 등번호도 5번과 33번으로 겹쳤으며[15], 큰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16] 2군만 거하게 폭격하고 1군 타석에서는 헛스윙만 하며 기회를 말아먹는 등 애증의 선수였다.[17] 허나 오오타는 2017년 15홈런, 2018년 14홈런, 2019년 20홈런, 2020년 14홈런 등 맹타를 휘두르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반면[18], 김주형은 2016년의 플루크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기대 이하의 모습만 보여주다가 방출당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19]

디시위키에서는 헛스윙 삼진, 루킹 삼진, 파울팁 삼진에 대한 설명이 김주형 세글자다.

알루미늄 배트 마지막 세대였다.[20]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일본의 상당수 거포 유망주들처럼 알루미늄 배트 덕분에 본래 실력보다 더 장타로 주목받은게 아닌가 하기도 한다.[21] 김주형의 배트 손잡이 윗부분에 맞은 타구가 홈런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7. 관련 문서


[1] 주로 1루수 3루수를 맡는데 가끔씩 2루수도 본다. 2016 시즌에는 유격수도 맡았다. [2] 2015년 7월 9일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익수로 출장했고, 2016년 6월 8일 경기에서 또 우익수로 나왔다. 2016년 9월 7일 우익수로 출전했지만 성적은 매우 좋지 못했다. [3]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자격증 취득은 2021년 가을. [4] KIA의 김주형(김주형!) 힘차게 날려봐 화끈하게 (으쌰 으쌰 으쌰 으쌰~) KIA의 김주형 화이팅 (하나!둘!셋!넷!) KIA의 김주형(김주형!) 힘차게 날려봐 화끈하게 김~주형(화이팅!) [5] 추후 김태군의 응원가로 부활하였다 [6] 나머지 둘은 한준수 김도영. 이 두 명의 포지션이 포수 유격수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순수 타격 성적만으로 1차 지명을 받았다는 점에서 얼마나 타격 능력을 높게 평가받았는지 알 수 있다. [7] 허준은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였다. 통산 WAR은 -0.56. [8] 첨언하자면 링크된 선수는 김주형과 같은 해에 1차 지명을 받은 내야수이다. 다만 유격수로서의 수비력은 서로 극과 극이다. [9] 김주형을 포함해 유재신 등 단순 대수비 요원을 자꾸 유격수로 돌리려는 시도 때문에 터진 경기가 2017시즌에도 몇 번 있는지라 팬들은 김기태 감독이 유격수 수비를 너무 만만하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10] 공교롭게도 김주형과 최대성은 1985년생 동갑내기다. 김주형이 동성고 재학시절 부산고와 경기를 치르기 위해 부산을 찾았을 때 최대성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최대성의 어머니는 김주형을 보고 ‘아들과 똑같다’며 웃었다. 심지어 방출 및 은퇴한 해도 2명 다 2019년으로 똑같다. [11] 참고로 김주형이 사용했던 9번과 33은 다른 팀에서 영구결번이다. 9번은 이병규, 33번은 박용택. [12] 등번호가 틀렸다. 9번은 2012년까지 사용한 등번호이며 2013년 5월 23일 연타석 홈런을 친 당시에는 33번. [13] 단적인 예로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대수비로 나와 평범한 3루 방향으로 가는 번트 타구를 1루에 악송구를 하면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양현종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양현종이 세이브를 챙기며 KIA 타이거즈가 우승을 하자 양현종 덕분에 광주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할 정도. 그만큼 자신이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팬들에게 욕 먹는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2군에 박힌 지금 시점에선 만나면 사인을 해준다고 한다. [14] 2008년 드래프트 1라운더 중 유일한 고졸 타자였다. 즉 당시 드래프트 고졸 타자 중 최대어. 심지어 앞 순서에서 소프트뱅크가 먼저 지명한 상태였으나 후순위로 지명한 요미우리가 추첨을 통해 교섭권을 얻어가면서 스틸픽까지 따냈을 정도의 유망주였다. 다만 오오타는 프로 데뷔 후에는 외야수로 전향했다. [15] 오오타 타이시는 원래는 마츠이 히데키의 55번을 받았다. 해당 번호는 마츠이가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준 영구결번 상태였는데 그것까지 깨고 신인이었던 오오타에게 등번호를 준 것. 마침 김주형도 팀의 결번급 레전드인 홍현우의 5번을 물려받은 선수라 이 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다. [16]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순혈주의 특성상 오오타 타이시는 요미우리에서 포텐이 터지기만 했으면 1군 감독 자리까지 보장되는 상황이었다. [17] 심지어 등장곡도 똑같이 본조비의 It's my life였다. 닛폰햄 시절 오오타 타이시 등장 영상 [18] 다만 공갈포 기질은 여전히 심해서 2019년에 타율 .289에 20홈런을 찍고도 OPS .776을 기록하기도 했다. 심지어 2020년에는 2018년이랑 똑같이 14홈런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OPS는 .812에서 .721로 불과 2년 사이에 1할 가까이 떨어졌다 (...) [19] 하지만 오오타는 본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기회를 받다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한 뒤에야 포텐이 터진 것이고, 김주형은 KIA 한 팀에서만 원 클럽 플레이어로서 기회를 받았지만 끝내 성장을 이룩하지 못하면서 방출됐다는 차이점은 있다. 참고로 오오타는 요미우리 시절 타격 커리어 하이가 4홈런에 불과하다. 즉 트레이드되기 전만 해도 오히려 오오타가 김주형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선수였다. [20] 고교야구가 나무 배트로 전환한 것은 200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부터였다. [21] 사실 한국에서도 강혁 등의 이런 케이스로 꼽히는 선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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