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당료, 지방의원 출신 정치인. 현재 국민의힘 소속2. 생애
1962년 대구에서 출생함. 본관은 선산. 6.3.3.4 학제 제정 등 대한민국 교육의 기본틀을 창설한 천원 오천석박사(전 문교부장관)[1] 가 고모부. 대구 삼덕초등학교에서 서울 충암초등학교로 전학 후 충암중·고등학교를 졸업함. 중앙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同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함.1. 정계 입문
1992년. 지지하던 정치인 YS가 민주자유당 대선후보가 되고나서 실시한 그해 9월의 민주자유당 당료 공채에 응모하여 정당에 입문하게 됨. 여의도 출근 첫 날 아침의 어머니 말씀, "바닷 속에 살아도 살이 소금기에 절지 않는 물고기처럼 살아라" 는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고 함. 당에서 주로 정무기획, 정세분석, 현안대응 파트에서 일함.
국회정책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에는 번역서 '개혁에는 마침표가 없다' (원제 Unfinished Business. 풀빛출판사)를 출간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11207/7767035/1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고도 국가부도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뉴질랜드의 개혁사례를 국내에 소개함.
한나라당 태스크포스(TF)팀장으로 일하던 중 거주하던 일산에서 촉발된 '러브호텔 파동'[2] 을 접하면서 정치 진로를 지방의회 진출로 정하게 됨, 러브호텔 문제 재발을 막으려면 학교상대정화구역 내 영업장 개설 여부에 광범한 재량권을 행사하는 지역교육청에 대한 합리적 규제, 특히 광역의회 교육위원회의 견제, 감시, 심사 강화가 선행되는 것이 해법의 기본이라 판단했기 때문임.
2. 지방의원 활동
한나라당 일산 지구당(당협의 전신) 당원 경선을 통해 후보가 됨. 마지막 무보수명예직 지방의회인, 2002. 6. 13. 제6대 경기도의원 선거(일산)에 출마해 57.12%의 득표로 당선되어 임기 4년을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됨,
임기 중 신도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주요 성과물로는 - 일산 과밀학급, 학교부족 문제 해소 위해 경기도내 최다 교육예산 확보, 고양시 전체 학교운영위원 여론조사 통해 특목고 유형 결정 후 예술고 유치 성사(고양여중을 고양예술고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2006년 개교 관철), 실업계 고교의 일반계 고교로 전환 통한 지역의 교육수요공급 미스매칭 해소, 부실 논란을 낳았던 경기도내 학교 수직증축 문제를 파헤쳐 도교육청 차원에서 민간 수준의 안전 증축지침 마련해 시행토록 관철, 도교육청 제작 논술교재의 좌편향 내용 삭제를 관철해 일각의 불순한 정치의도로부터 학생 교육권 보호, 장애학생 특수학급당 보조교사 증원과 인건비 지원 제도화 등 - 이 있음.
또한 중앙에서 해법을 내지 못한 채 3년 간 끌어온 '제2자유로 일산구간 노선갈등 문제'[3.] 를 해결했음. 약 만 가구가 거주하는 일산의 거주단지를 양분하는 원안 노선의 문제점을 파헤쳐 원안에 접근해가던 경기도에 조정안 재검토를 설득하는 한편 주민들을 설득해 수용가능한 중재안을 제시해 확정을 보게 된 것임.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60508/8304307/1
당시 단국대분쟁해결연구센터(소장 김태기)로부터 청계천 개발 서울시와 노점상 간 갈등해결과 함께 대표적 해결사례로 선정되어 특강을 초청받은 바 있음.
경기도의원으로 일하면서 한국항공대 교통물류학부에서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는 한편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객원연구원으로 양국을 오가면서 일본의 교육자치 제도 실태를 비교 고찰하는 기회를 가짐.
2005년에는 호주정치교류협회(APEC) 주관 '한국호주 차세대정치지도자교류 프로그램' 한국대표단에 선발(국회의원은 송영길, 김명주 동참)되어 호주 현지에서 정관계와 학계 요인들과 다가오는 아시아태평양시대 양국 간 공동번영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짐. .
3. 공백기
낙선 후 대학 강의와 중증장애인 대상 지역복지관 이동목욕봉사활동 참여, 차상위계층 결식아동 급식비 마련을 위한 개인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6/0000051116?sid=102 과 수익금 전달(고양교육청 통해 수급대상 학생 14명 선정, 1년치 중식비 전달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34) 등의 활동을 하다가 그해 연말 '민생대장정'을 마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요청으로 뒤늦게 캠프에 합류함. MB. 박근혜 측과의 대선후보 경선 룰 협상 업무를 맡게 되나 2007년 3월 손 전 지사가 돌연 탈당함에 따라 태국으로 출국함,
그후 1년 가까이 방콕에 거주하면서 틈틈히 부라파대학 특강이나 국제NGO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한편 방콕 이민국수용소 탈북자 처우, 동남아 잔류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활동을 함. 2009년 당시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해 '방콕스토리: 아시아의 창으로 본 세계' 란 책을 펴냄.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21353
그후 당으로 복귀를 꾸준히 타진했으나 당규상 복당은 탈당 당시의 지역구 원내외 당협위원장으로부터 사실상의 승인을 거치게 되어있어 6년이 넘도록 복당은 한치도 진척이 되지 않았음. 그 기간 중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초청을 받아 도미, 방문학자 자격으로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사회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또 브루킹스연구소, CATO 등 워싱턴DC 씽크탱크들의 각종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국가시스템에 대한 안목을 더하는 한편 새로운 도시발전 모델에 대해 연구함.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24983
2010년 지방선거 시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캠프에서 정책본부장을 맡아 그의 재선을 도운 바 있음. https://realestate.daum.net/news/detail/hotissue/224005/20100601040404320 이처럼 당이 필요로 할 때마다 흔쾌히 달려가 일했지만 복당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음,
중앙대행정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던 중 2011년 중국 북경대 정부관리학원으로부터 방문학자로 초청되어 중국의 국가전략에 대한 공부의 기회를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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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당 및 사회활동 2012년 새누리당이 대선에 앞서 보수진영 내 군소정당 합당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합당을 준비하고 있던 미래희망연대 입당을 통해 우회형식으로 6년 만에 비로소 복당을 하게 됨, 복당 후 첫 당직으로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직을 받아서 3년간 직을 수행함. 2012년 18대 대선선대위에서도 수석부대변인직을 맡음.
2015년 2년 임기의 충암고등학교 제11대 총동문회장으로 선출됨. 취임 반년 만에 주요 숙원사업 - 총동문회 주사무소 개설, 동문회보 창간, 장학재원 통합과 장학지원 증대, 각계 유력동문 네트워크 '충암인포럼' 창립 등 - 을 성사시킴. 특히 2005년 충암중고교 학교급식비리의혹이 언론 사회면 톱을 장식했을 때, 중고교 학부모회, 동문회 연합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https://www.news1.kr/photos/view/?1579497 자체조사를 단행하고 학교 급식환경 개선 활동의 가시적 성과를 도출해 동요 일로에 있던 학교 동문 사회와 학생 학습환경을 조기에 안정화시킴. 또한 모교 문제에 해결 주체로서 동문회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했다는 평가. https://radio.ytn.co.kr/program/?f=2&id=38781&s_mcd=0201&s_hcd=09
2021년 11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에 참여함, 중앙당 선대위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보좌역으로 활동했으나 2022년 1월 김종인위원장의 "연기" 발언[5]이 파장의 발단이 되어 총괄선대위원장 선거지휘 권한을 실질화하는 선대위 조직 보강개편 방안이 무산되고 기존 총괄선대위 체제도 전격적으로 사실상의 해체 수순을 밟게 됨. 이에 따라 선대위 당직에서 물러나 평당원으로 대선 선거운동을 지원함. .
2023년 3. 8. 국민의힘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는 김기현 당대표후보선대위의 전략기획단장을 맡아 윤석열 정부 춟범 후 첫 당 지도부 출범을 도움,
3. 사건사고
1. 국회529사건
1998년 12월 신한국당 기획조정국부장으로 재직하던 중 이른바 '국회529호사건'(안기부국회사찰의혹사건) 이 터짐. 이에 대한 규탄과 진상규명에 앞장서다가 그 다음해 벽두 심야에 검찰로부터 긴급체포, 출국금지 처분을 받음. 보수정당의 사무처당직자가 정치사건으로 입건, 연행된 최초의 사례이었음,
구속영장실질심사 재판에서 "정보정치의 부활을 경고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민주주의 가치수호를 요체로 하는 공당의 당연한 책무" 라는 취지로 진술했고 법원은 검찰측이 주장한 혐의들을 모두 기각함으로써 풀려남 (당시 변호사 홍준표,황우여,정인봉, 엄호성 등). 이 사건을 계기로 수사를 이회창 총재 등 윗선으로 확대하려던 검찰 계획은 사실상 좌초됨,(검찰은 1년여 경과후 기소유예로 사건을 정리)
DJ정권 초반 야당에 대한 강경 압박공세에 제동이 걸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
2. 교육청 교재 유시민 서적 삭제
[1]
1901~1987. 독립운동가, 교육사상가. 美 콜럼비아대에서 박사를 받고 보성전문(고려대 전신)에서 민족교육 펼치다가 일제 탄압으로 상해로 피신. 해방후 귀국해 美 군정청 문교부장으로 일하며 일제에 빼앗긴 한국교육을 민주주의 토대 위에 정립하는 일에 매진. 6.3.3.4 기간학제 제정, 홍익인간 교육목적 수립, 국립 서울대학교 창설 등을 주도. 민주당 장면 장권에서 문교부장관 역임. 장례는 우리나라 최초로 교육인장으로 거행.(출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
2000년 일산, 분당, 중동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주거·교육 위해요인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의식이 집단행동으로 분출된 사건. 학교 인근의 러브호텔이나 향락시설의 신축 중단과 허가취소를 요구하는 연이은 주민 단체행동으로 전국적 이슈가 됨.
[3.]
파주 운정신도시 입주 임박 상황에서 제2자유로 건설이 3년째 공전. 제2자유로의 일산 구간에서 파주시와 도로 경유 지역인 고양시측이 서로 다른 노선을 주장하면서 갈등의 평행선을 달려 전체 건설 사업에서 제동이 걸렸던 사태
[4]
2006. 5. 20. 한나라당 박근혜대표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 나오던 중 괴한에게 커터칼로 얼굴을 피습당해 자상을 입은 사건.
[5]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자 2022, 1. 3.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 후보에게 "내가 비서실장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演技)를 좀 해달라"고 밝혀 논란이 됨. 후보와 상의없이 선대위 개편 추진한 것으로 드러나 후보패싱 논란도 불거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