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05:07

김복동(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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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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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1926년 5월 1일
경상남도 양산시
사망 2019년 1월 28일 (향년 92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직업 인권운동가

1. 개요2. 생애3. 국정감사 참고인4.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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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내 이름이 왜 '위안부' 입니까? 내 이름은 김복동 입니다.
대한민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이다.

2. 생애

1926년 5월 1일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출생하여 양산 보통학교[1] 4학년까지 다니다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내보내졌다. 그의 언니들은 먼저 시집을 갔다. 열다섯살에 동네 구장과 반장, 일본인에게 속아서 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위안부'로 가게 되었다.

'위안부'로 지금의 대만, 광둥성을 거쳐 홍콩, 싱가포르, 수마트라, 인도네시아 자바 섬, 말레이시아, 방콕 등으로 이동했다. 일제 패망 후 수년 후에 귀국했다. 후에 결혼했으나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재결합 후에 얼마 못가 남편과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홀로 살았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다가 가게가 철거되는 바람에 아파트를 보상으로 얻었다. 나중에는 채소밭 일로 연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세계 곳곳을 돌며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려고 뛰어다녔다. 1992년 피해자임을 밝히고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파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곳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에서 함께 기거하는 길원옥과 함께 나비기금을 출범했다.

2019년 1월 28일,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오후 10시 41분쯤 대장암으로 사망했다.[2] 향년 92세. 장지는 충남 천안의 망향의 동산. 일본 주요 매체 중에서는 아사히신문만 사망 소식을 다뤘다.

3. 국정감사 참고인

2016년 9월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복동은 본인을 포함한 피해 당사자들과 아무런 얘기도 없이 위안부 합의안을 체결했다며 박근혜 정부를 꾸짖었다. 그리고 "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정부가 직접 석고대죄를 하기 전에는 어떠한 얘기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대충대충 처리할 바에는 때려치우라고." 말했다.

4.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복동(영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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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2020년 5월 정의연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이 발생하면서 김복동 피해자의 활동이 마냥 좋게 끝난 것이 아니게 되고 있다. 여러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2022년 1월 29일 정의연 측이 윤미향의 국회의원 제명을 반대하기 위해 고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도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 기사

[1] 현 양산초등학교 [2] 이때 장례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국가원수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장례식에 참석해 조의를 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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