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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김인수(金仁守) |
출생 | 1910년 6월 20일 |
경상북도 경주군 서면 대곡리 | |
사망 | 2003년 7월 6일 (93세) |
서울특별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학력 | 광주농업고등학교 졸업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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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10년 6월 20일 경상북도 경주군(현 경주시) 서면 대곡리에서 출생하였다. 광주농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11월 3일 학생결사 성진회에 가입했다. 성진회는 조선의 독립, 사회과학 연구, 식민지노예교육 반대 등을 기본 강령으로 삼은 항일 비밀결사였다. 그러나 도중에 이반자가 생겨 누설의 위험이 생겼기에 1927년 3월 성진회가 해산되었다. 하지만 이건 형식적이었고, 주동학생들의 활동은 계속되었다.1928년 2월 졸업을 앞두고 광주군 서암면 두암리에 소재한 지용수의 집에서 동창생 임주홍, 최규창, 김광용, 문승수 등 성진회 주동 학생들과 만나 졸업 후 항일운동 방향을 논의하여 성진회의 사업을 비밀리에 이어가기로 했다. 그해 3월 졸업한 그는 군농회 기수로 근무하면서 성진회 활동을 지속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 발발 후 성진회 주동 학생들이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될 때 그도 체포되었고,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003년 7월 6일 서울에서 사망했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3. 참고 문헌
-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 판결문
-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 판결문
-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