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18 21:09:31

김룡린

<colbgcolor=#ddd><colcolor=#000> 김룡린
金龍麟 | Kim Ryong Rin
파일:김룡린.jpg
출생 1936년 7월 29일
함경북도 회령군 창두면 풍산동
(現 함경북도 회령시 풍산리)
사망 2015년 6월 19일 (향년 78세)
전직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단장
학력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학부
주요 서훈 공훈배우, 인민배우, 김일성상, 국기훈장 제1급
가족 아내 강여선[1]
활동 1963년~2015년

1. 개요2. 생애3. 출연작4. 연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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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배우.

1963년 데뷔해 굉장한 인기를 끈 유명 배우로, 60년대부터 인기작들에 출연하며 60~80년대 남배우 중 가장 큰 인기를 얻었고 상당히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2. 생애

1936년 함경북도 회령군 창두면 풍산동(현 함경북도 회령시 풍산리)에서 태어났다.

원래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다가 1959년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해 1963년 졸업하고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가 되었다.[2]

첫 데뷔작은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제작된 3부작 '대지의 아들'이다.

1979년 인민배우가 되었으며 2000년 제작된 '자강도 사람들'로 김일성상을 받았다.[3]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단 단장으로 70년대부터 일해온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배경으로 찍은 '보람찬 우리생활'이라는 영화에서 배우단 단장으로 나오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한 북한의 예술인 정보에도 배우단 단장으로 나온다.

2015년 6월 19일 사망했으며, 6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되었다.

로동신문, 민주조선, 문학신문에 부고가 났다.

김정은이 조화를 보냈고 문화성,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등에서도 조화를 보냈다.

3. 출연작

  • 대지의 아들(1963~1964) - 근식 역
  • 나의 매대(1965) - 상도 역
  • 유격대의 오형제(1968) - 준호 역
  • 피바다(1969) - 달삼 역
  • 로동가정(1970) - 두석 역
  • 꽃피는 마을(1970) - 병철 역
  •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1971)
  • 꽃파는 처녀(1972) - 철룡 역
  • 처녀지배인(1973) - 군당 책임비서 역
  • 고압선(1975) - 철민 역
  • 보람찬 우리생활(1975) - 김룡린 역
  • 보충병(1976) - 중대장 역
  • 누리에 붙는 불(1977) - 최경운 역
  • 이름없는 영웅들(1979~1981) - 유림 역
  • 우리는 묘향산에서 다시 만났다(1982) - 학수 역
  • 그날의 맹세(1982) - 부장 역
  • 전환의 해(1983) - 지배인 역
  • 시련을 뚫고(1983) - 설계실장 역
  • 봄날의 눈석이(1985) - 형철 역
  • 은비녀(1985) - 현본부 부위원장 역
  • 어머니의 마음(1986) - 광혁 역
  • 위대한 품(1986) - 김창규 역
  • 보증(1987) - 원석해 역
  • 내가 본 나라(1988) - 류천석 역
  • 한생을 바쳐(1988) - 수민 역
  • 요람(1988) - 성태 역
  • 심장에 남는 사람(1989) - 원학범 역
  • 효녀(1991) - 동준 역
  • 민족과 운명 최현덕 편(1992) - 곽대식 역
  •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들(1993) - 선달 역
  • 위훈의 길(1996) - 훈혁 역
  • 아버지의 모습(1996) - 진국 역
  • 피어린 자욱(1998)
  • 자강도 사람들(2000) - 강호성 역
  • 민족과 운명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편(2001~2003) - 차금석 역
  • 두만강 기슭에서(2003)
  • 고귀한 이름(2003) - 홍명희
  • 가야할 길(2003) - 최일준 역
  • 존엄(2004) - 장현 역
  • 생명선(2009) - 준경 역

4. 연출작

  • 붉은 산마루(1984)
  • 어머니의 마음(1986)
  • 우리가 만나는 곳(1987)


[1] 조선예술영화촬영소 공훈배우 [2] 그래서인지 전성기가 꽤나 늦은 편이다. [3] 일부 기사에서 배우로는 처음으로 김일성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1992년에 이미 오미란의 아버지인 배우 오향문이 김일성상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오향문은 국립연극단 출신이지만 어찌되었건 영화배우로 활동하며 받았기 때문에 김룡린이 최초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