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21:55:47

김려



1. 개요2. 생애3. 김려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 방주의 노래
<colbgcolor=#003764><colcolor=#fff> 김려
金鑢
성명 김려(金鑢)
본관 연안 김씨
출생 1766년
사망 1822년
국적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사정(士精)
담정(藫庭)
직업 학자

1. 개요

김려는 조선시대의 학자이다.

2. 생애

1780년, 15살의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당시 유행하던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의 문장을 익혔다.

1791년에는 생원이 되었고, 이옥(李鈺)과 활발하게 교류를 하면서 소품체 문장의 대표적 인물로 주목받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1797년까지 청암사(靑巖寺), 봉원사(奉元寺) 등의 절에서 독서하였다.

1797년 유배를 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강이천의 비어사건"에 엮겼기 때문이다. 그는 유배지 부령에서 가난한 농어민과 친밀하게 지냈는데,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그의 문학작품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연희, 노심홍, 관옥, 영산옥과 어울리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시를 짓다가 필화를 입었다. 지방의 자제들을 가르치면서 벌열들에 대한 비판의식도 키웠는데, 이 때문에 1799년 한 번 더 필화를 당하게 된다. 그가 쓴 책들도 대부분 이 시기에 불탔다.

1801년에 "강이천 사건"이 재조사되면서 천주교도와 알고지냈다는 혐의를 받게되고, 이번에는 진해로 유배가게 된다. 하지만, 1806년 아들의 상소 덕분에 유배생활을 끝마친다.

1812년에 벼슬길에 올라서 정릉참봉, 경기전 영, 연산현감을 차례데로 역임하였다. 1819년에 몸이 약해진 탓에 함양군수로 일하던 도중 생을 마감하게 된다.

3. 김려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 방주의 노래

김려의 대표적인 작품인 "방주의 노래"는 서사시로, 17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 글의 주인공인 방주는 천민 집안의 자식으로 비록 직업이 좋지는 못하지만, 성실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다. 어느 날, 방주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양반 장 파총을 만나게되고, 장 파총은 자신의 아들과 방주를 결혼시키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을 잃고, 선비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신분차별들을 목격하게 된다. 장 파총이 생선 장사를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마을의 특산물인 전복을 세금으로 바치지 못하자 관청의 포졸들에게 두들겨맞는 것을 본 것이 그것이다.(신분제도로 인해 방주와 장 파총의 아들은 결혼하기 쉽지 않다.)

이를 계기로, 장 파총은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으로 고향에 집을 구입하였고, 능금과 곶감을 재배하는데 에도 성공해 부모님과 맞먹는 부를 쌓게 된다.

이후 장 파총은 부모님과 친했던 양반집 딸과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으며, 어느 날 군대로 가게 된다. 그 때는 신미양요가 일어난 때로 전투를 어느정도 할 줄 알았던 장 파총은 적군의 주력선 1척과 그 가까이에 있는 배3척을 침몰시키는 공을 세웠다. 그 후에도 여러 전투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 왕의 눈이 띄게되어 땅과 함께 사또라는 직위를 얻는다.

사또가 된 장 파총은 옆 마을 사또가 사람들에게 사과를 10 궤짝씩 내라고 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그 소식을 들은 장 파총은 자신의 지난날을 생각하며 마을 사람들을 보살폈다. 장 파총이 다른 사또들과는 다르게 통치를 잘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졌으며, 소문을 타 왕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번의 전투에 더 참가하여 파총으로 승진했고, 바른 성품으로 인해 병사들의 무한한 기대감과 신뢰까지 받게 된다. 파총이 되어 성공한 그는 과거 자신이 고기잡이를 마지막으로 했던 곳으로 한 번 가보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우연히 방주와 만난 것이다.

안타깝게도, 방주와 장 파총의 아들은 신분이 달랐기 때문에 마음데로 결혼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방주네 집 안에서 간소하게 결혼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 방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녔으며, 그녀는 주막집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주막집을 하기로 한 이유는 방주의 요리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방주의 주막집은 대박이 났고, 가게를 확장하였다. 손님들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본디 성실하고 일을 많이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방주는 가게 일에 힘듦보다는 재미를 느꼈고, 방주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번 돈으로 방주는 양반의 신분을 구입했고, 장 파총의 아들과 정식으로 떳떳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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