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본관 | 부안 김씨 |
출생 | 1881년 9월 1일 |
전라도 부안현 상서면 가오리 (현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 우덕마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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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5년 4월 27일 |
전라북도 부안군 | |
본명 | 김낙진(金洛振)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김낙선은 1881년 9월 1일 전라도 부안현(현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 우덕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9년 3월 8일 이용서(李用西) 의병장의 휘하에서 총 15정과 도검 1자루로 무장한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 부안, 태인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09년 3월 태인에서 일본군 기병대와 교전 중 허벅지 총상을 입고 피신하여 집에서 치료를 받았다.1909년 8월 8일 회복 후 이용서 의병장의 휘하로 복귀하여 선봉장(先鋒將)으로 임명되어 총 8정과 칼 1자루를 무장한 부하 12명을 지휘했다. 그러다 그해 8월 김제 홍산면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교전 중 총상을 입고 체포 구금된 후, 11월 9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6년 총상과 고문으로 수감불능 수인으로 석방되지만, 1925년 4월25일 총상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45세.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김낙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