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길버트 5세 드 움프라빌 Gilbert V de Umfravil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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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90년 10월 18일 | |
잉글랜드 왕국 리즈데일 | ||
사망 | 1421년 3월 22일 (향년 30세) | |
프랑스 왕국 보제 | ||
아버지 | 토머스 2세 드 움프라빌 | |
어머니 | 아그네스 | |
누이 | 엘리자베스, 모드, 조앤, 마가렛, 아그네스 | |
아내 | 앤 네빌 | |
직위 | 리즈데일 남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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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과 맞섰지만 보제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1390년 10월 18일 잉글랜드 왕국 리즈데일에서 토머스 2세 드 움프라빌 경과 아그네스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누나로 엘리자베스, 모드, 조앤, 마가렛, 아그네스가 있었다. 1391년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갓난아기였던 그를 위해 후견인이 두 차례 정해졌다. 첫번째는 러틀란드 백작을 맡고 있었던 노리치의 에드워드였고, 두번째는 초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이었다. 랄프 네빌은 1413년 성년이 된 그를 자기 딸인 앤 네빌과 결혼시켰다. 한편, 리즈데일 남작령 관리는 숙부인 로버트 4세 드 움프라빌이 맡았다.1407년 9월 4일 더럼 대성당에서 열린 새로운 더럼 주교 토머스 랭글리의 즉위식에 숙부 로버트 4세와 함께 참여했으며, 1408년 로버트 4세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티비옷데일을 습격해 심각한 약탈을 자행했다. 1410년 1월 10일 리즈데일 남작으로서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1411~1412년에 몬머스의 헨리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했다. 이때 그는 1411년 11월 10일 잉글랜드-부르고뉴 연합군이 아르마냑파를 상대로 맞붙은 생클루 전투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헨리 왕자의 주목을 받았다. 1413년 헨리 왕자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로 등극했을 때 왕실 기사에 임명되었다.
1415년 헨리 5세의 프랑스 원정에 참여해 아르플뢰르 공방전과 아쟁쿠르 전투에 참여했고, 뒤이어 2차 캉 공방전, 루앙 공방전 등 노르망디 정복을 위한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한 연대기에 따르면, 여러 마을 사람들이 왕의 자비를 간청하기 위해 잉글랜드 숙영지에 찾아왔을 때, 그는 자신을 옛 노르만 혈통의 전사라며 자신이 그들과 같은 혈통인 것에 신에게 감사했다고 한다. 움프라빌 가문이 노르망디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이 이야기는 노르망디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정복이 아닌 잃어버린 영토의 회복으로 제시하려는 헨리 5세의 열망을 반영했을 수도 있다. 이후 움프라빌 가문이 시작된 곳으로 추정되는 오프랑빌을 포함한 여러 영지를 수여받았으며, 캉, 퐁투아즈, 멜룬의 보안관을 맡았다.
1419~1420년 헨리 5세와 프랑스 공주 발루아의 카트린의 결혼 협상이 벌어지고 있을 때 프랑스 궁정에 사절로서 머물렀고, 1420년 성탄절 축하 행사에 참여해 마상창시합에 참여했다. 1421년 헨리 5세의 동생인 클라렌스 공작 랭커스터의 토머스가 이끄는 군대의 일원으로서 프랑스 원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해 3월 22일 보제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는 앤 네빌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지 못했기에 숙부인 로버트 4세가 리즈데일 남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