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02:54:53

그뷔드뮌뒤르 베네딕트손

RÚV
Ríkissjónvarpið
파일:Gummi_Ben.jpg
<colbgcolor=#0a469e> 이름 그뷔드뮌뒤르 베네딕트손
Guðmundur Benediktsson
출생 1974년 9월 3일 ([age(1974-09-03)]세)
아이슬란드 아퀴레이리
국적
[[아이슬란드|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아이슬란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74cm
직업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해설자
소속 <colbgcolor=#0a469e> 선수 소르 아퀴레이리 (~1989 / 유스)
소르 아퀴레이리 (1990)
KFC 헤르미날 에케런 (1991~1994)
소르 아퀴레이리 (1994)
KR 레이캬비크 (1995~1999)
KFC 베르부더링 힐 (1999~2000)
KR 레이캬비크 (2000~2004)
발뤼르 (2005~2008)
KR 레이캬비크 (2009)
감독 UMF 셀포스 (2010)
브레이다블라크 (2011~2014 / 수석코치)
브레이다블라크 (2014)
KR 레이캬비크 (2015~2016 / 수석코치)
해설 RÚV (2016~ )
국가대표 10경기 2골 ( 아이슬란드 / 1994~2001)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감독 경력4. 해설 경력
4.1. 전설의 UEFA 유로 2016 해설
5. 여담
5.1. 가족 관계

[clearfix]

1. 개요

아이슬란드 축구선수 출신 감독.

어린 시절에 아이슬란드의 차기 스타로 주목받았으나 부상으로 인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선수다. 그래도 나름대로 KR 레이캬비크에서 활약하기는 했다. 그리고 감독으로는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유로 2016에서 해설진으로 아이슬란드를 감동적으로 묘사하며 선수나 감독이 아닌 해설로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그뷔드뮌뒤르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소르 아퀴레이리에서 데뷔했다.[1] 이렇게 어린 나이에 활약하며 여러 외국 클럽들의 관심을 받았다. 15세에 아스날 FC[2], 에버튼 FC, 토트넘 홋스퍼 FC, VfB 슈투트가르트 등의 팀들이 관심을 보였다. 나중에 그는 아직 15세 때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 부상 후, 그는 VfB 슈투트가르트 또는 제르미날 에케렌[3]으로 가는 선택을 제안받았는데, 그는 그가 더 많은 경기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에케렌을 선택했다.

하지만 에케렌에서 세 시즌 간 4경기 출전에 그치며 해외 진출을 실패로 끝났다. 결국 시즌 후 1994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소르 아퀴레이리로 다시 복귀했다. 그래도 이 때 나이가 19세라는 것이 아직 기대를 걸 수 있는 점이다. 그리고 1994 시즌에 17경기 4골을 넣으며 수준급의 활약을 해줬다.

그리고 1995년에 KR 레이캬비크로 이적했다. 세 시즌 반 동안 75경기 32골을 기록하며 확실히 부활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 1999년에 팀을 떠나기 전 까지 18경기 9골이라는 어마무시한 골 수를 기록했다. 이 시즌에 KR 레이캬비크가 우승했고 그 시즌에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그의 활약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 덕분에 1999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KFC 베르부더링 힐로 이적하며 또 다시 해외 진출을 했다. 그리고 첫 시즌에 15경기 4골을 기록하며 첫 해외 진출 때 보다는 확실히 출전 기회를 얻었으며, 조커로 활약했다. 순도율이 4경기에 1골이니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시즌 후 어째서인지 갑자기 KR 레이캬비크로 다시 이적했다. 우연인지 또 3시즌 반을 뛰었다. 한편 53경기 7골을 기록하며 아마 이 때부터 미드필더로 전향한 것으로 보인다.
파일:그뷔드뮌뒤르 발뤼르.jpg
2005년에 발뤼르로 이적했다. 네 시즌을 뛰었으며 70경기 10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6년에 팀의 아이슬란드 슈퍼컵 우승도 기여했다.

2009년에는 KR 레이캬비크로 3번째 이적을 했으며 리그에서 20경기 4골, 유로파 리그 예선에서 4경기 1골로 총 24경기 5골을 기록했다. 유로파 리그 예선 1골이 3차예선 1차전 FC 바젤을 상대로 전반 6분 만에 만들어낸 선취골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물론 경기는 2:2 무승부, 2차전에 3:1 패배를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시즌 후에 레이캬비크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선술했듯 그뷔드뮌뒤르는 어린 시절에 해외 클럽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었는데, 아이슬란드 U-17 대표팀에서 무려 18경기 13골이라는 괴물같은 골 수를 기록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다 15살에 무려 U-19 대표팀까지 승격하게 되는데, 거기서는 4경기 4골을 뽑아내며 더 큰 기대를 하게 했다. 심지어 부진했던 에케렌 시절에 U-21 대표팀에 차출돼서 11경기 3골을 기록했다. 아이슬란드 연령별 대표팀에서의 모습만 본다면 루카스 포돌스키가 생각나는 골 수다.

그리고 국가대표 데뷔전에서도 그 모습을 보였는데, 1994년 8월 30일 아랍에미리트와의 친선전에서 후반 33분에 하랄두르 잉고르손과 교체되었으며 후반 41분에 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쯤되면 국가대표에서 그 포텐을 터트리는 건가 싶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하필 경쟁 상대가 아이두르 구드욘센인지라 구드욘센에게 밀려 자주 차출되지 못했으며, 결국 2001년에 칠레와의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에 소집되지 못했다. 하필 그뷔드뮌뒤르의 전성기 시절에 구드욘센은 첼시 FC에서 뛰고 있는지라 더욱 그랬다.

3. 감독 경력

은퇴 직후 감독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 시작은 레잉귀데일드에서 우승하며 우르발스데일드로 승격한 UMF 셀포스였다. 하지만 5승 2무 15패로 승점 17점을 기록했고, 또한 32득점 51실점을 기록하며 득실차는 -19로 결국 12위 꼴지로 또 강등당했다. 그래도 10위와 승점 차이가 단 4점, 근 몇년간 꼴지 중에 최다 승점을 기록한 점이 고무적인 부분이나 결국 강등은 당했기에 시즌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2011년에 브레이다블리크 UBK의 수석코치로 부임했으며 올라뷔르 크리스티아운손(Ólafur Kristjánsson)을 보좌했다. 그리고 2014년까지 이 직책을 맡았다. 이유는 브레이다블리크가 6라운드까지 무승을 하며 11위로 강등권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결국 크리스티얀손의 후임으로 부임한 그뷔드뮌뒤르는 7, 8라운드 1:1 무승부로 5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며 10위로 아슬아슬하게 강등권으로부터 떨어졌다.

한편 비카르케프니 16강에서 프로 데뷔한 팀인 소르 아퀴레이리를 만나 3:1 승리를 거두며 부임 후 첫 승을 했다. 그리고 9라운드 비킹귀르전에서 1:0 패배를 당하며 또 위기에 처했으나 10라운드에 소르 아퀴레이리를 상대로 3:2 진땀승을 거두며 이번에는 리그 첫 승을 했다. 소르 아퀴레이리에게는 유망주였던 선수가 감독으로 자신에게 강등 위기를 만들어냈으니...

그래도 이 경기 이후 리그에서 12라운드 FH전과 21라운드 소르 아퀴레이리전 빼고는 안 졌다. 물론 12라운드 FH전은 FH가 우승 경쟁을 하고 있기에 상대가 안됐다. 그리고 21라운드 소르 아퀴레이리전은 아퀴레이리가 이미 강등이 확정된 상황이었으며 브레이다블리크도 잔류가 확정이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2014 시즌 도중에 브레이다블리크에 부임해 기록한 성적은 18경기 6승 8무 4패 승점 26점, 33득점 27실점으로 득실차 +6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리그 성적만 보면 5승 8무 3패 승점 23점, 30득점 24실점으로 여전히 득실차 +6이다. 이렇게 시즌 도중에 부임한 것 치고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재계약을 하지 않고 아르나르 그레타르손을 새로 선임하며 결국 브레이다블라크를 떠났다.

2015년에는 선수 시절에 활약했던 KR 레이캬비크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새로 부임한 비야르니 귀드욘손 감독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2015년은 3위를 기록하며 나름 좋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2016년 6월까지 8경기 동안 1승 3무 4패라는 성적 부진을 겪으며[4] 결국 KR 레이캬비크에서 새로운 감독을 앉히며 결국 2016년 6월 26일에 귀드욘손과 함께 해임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떠난 후에 KR 레이캬비크는 시즌 초반에 당한 4연패 때문에 결국 5점 차이로 3년 연속 3위를 기록했다.

떠나면서까지 KR 레이캬비크에게 좋은 말을 남겼다.
시즌이 좋지 않은 출발을 한 후 나는 이사회와 함께 내가 사임하는 것이 팀의 이익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저를 믿고 훈련팀을 맡겨주신 KR 이사회에 감사드립니다. KR의 미래는 밝으며, 머지 않아 팀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후에 감독은 물론 코치직도 완전히 은퇴했다고 하나 확실히 확인 된 것은 없다.

4. 해설 경력

선술했듯 코치계에서 발을 뺀 직후에 아이슬란드의 공영 방송사인 RÚV[5]에서 축구 해설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유로 이후에도 여전히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유로에서의 해설은 아이슬란드인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아이슬란드의 서포터 안톤 소로드센은 "그는 왕이고 전설입니다. 그는 한때 아주 좋은 선수였지만 부상을 입었고 축구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잉글랜드를 이기면 그는 아마도 목소리를 잃을 것입니다."고 했다. 물론 이 인터뷰가 16강 경기 전에 했다. # 하지만 진짜로 잉글랜드를 이기며 그 감정을 표출하는데 믿을 수 없다는 톤으로 크게 말 하느라 목이 쉬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를 조 1위로 예상했으며, 아이슬란드는 16강에 대한 희망을 있다고 했다. # 그리고 러시아 월드컵에서 해설진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아들 알베르트 그뷔드뮌손이 월드컵 명단에 들며 아들의 출전을 보며 그가 놀면 확실히 약간의 자극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아빠 크리 #

한편 러시아 월드컵 1차전 시작 전에 이렇게 인터뷰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11개의 슈팅을 시도했으나 수비수에게 슈팅이 막혔고, PK를 할도르손에게 막히는 등 꽤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그뷔드뮌뒤르의 예상이 빗나갔다. 그러자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 꽤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일지도 모르는 리오넬 메시와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론 저도 약간 긴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두렵습니다.

그리고 해설에 대해 중립적으로 해야한다고 했다.
편견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팀에 대해 논평할 때는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여기 아이슬란드를 응원하고 있으며 아이슬란드는 제 팀입니다.

한편 진짜로 크로아티아가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으며 아이슬란드는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4.1. 전설의 UEFA 유로 2016 해설

RÚV에서 해설 위원으로 일하며 처음으로 해설하게 되는 무대다. 한편 이 대회는 아이슬란드 축구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대회 진출이다. 코치직과는 관련해서는 겸직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에 KR 레이캬비크에서 최근 팀의 성적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해임되었지만 말이다. # 그리고 이 대회에서 아이슬란드가 동화를 써내며 그뷔드뮌뒤르의 해설 또한 주목받았다.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르노르 잉그비 트뢰이스타손!!!!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결승골!!!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2라운드(16강) 진출 아아아아아아!!!! 유로 2016 챔피언십아아아아아!!!!!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3차전 오스트리아전에서 아르노르 잉그비 트뢰이스타손이 후반 추가시간에 골을 넣으며 흥분하며 중계하는 모습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6] # 심지어 한국에도 뉴스로 나왔다. # 이 골이 아니었다면 포르투갈이랑 순위 비교를 해서 3무로 승점 3점, 상대 전적 1:1이나 다득점에서 포르투갈이 4점, 아이슬란드가 3점이여서 1점 차이로 밀려 3위로 아슬아슬하게 16강에 진출했을 것이다.[7]
끝났습니다! 끝났습니다! 끝났습니다! 끝났습니다! 골을 향해 패스를 합니다... 그리고 놓쳤습니다, 끝났습니다! 끝났습니다!! 끝났습니다!!! 끝났습니다!!!!!! 우리 파리로 갑니다! 우리는 절대 에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 집에 가지 않습니다!!! 이것만 보세요! 이것만 보세요!!! 그런 것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 눈이... 이건... 절대로 저를 깨우지 마세요... 절대로 저를 이 미친 꿈에서 깨우지 마세요! 잉글랜드처럼 원하는 만큼 야유하세요.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는 일요일에 스타드 드 프랑스로 갑니다! 프랑스 vs 아이슬란드입니다! 당신에 갈 수 있습니다! 당신 유럽을 떠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 1 : 2 아이슬란드 니스에서의 최종 스코어입니다. 그리고 동화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잉글랜드 2:1로 격파하며 8강에 진출했을때 그뷔드뮌뒤르의 반응이다. 경기 종료 직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판에게 휘슬을 불라고 외쳤고, 해리 케인의 크로스가 중앙으로 날아오며 우려대로 동점골을 넣으나 했으나... 생각보다 높게 떠서 라힘 스털링, 게리 케이힐, 조 하트, 마커스 래시포드가 모두 머리에 맞추지 못해 경기가 종료되자 환호한 모습이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한편 BBC에도 이 해설이 뉴스로 나왔으며 번역본이 조금 다르다. " 잉글랜드 1 : 2 아이슬란드 니스에서의 최종 스코어입니다. 그리고 동화는 계속됩니다!"부분이 추가되었다. #

그러나 8강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할 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해당 방송본이 유실된 바람에 알려져있지 않다.

후에 3차전 오스트리아전, 16강 잉글랜드전에서의 해설에 대해 "그 순간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다."고 했다.

5. 여담

  • 그뷔드뮌뒤르 베네딕트손이라는 이름 외에 "굼미 벤(Gummi Ben)"으로 불린다.
  • 일반적으로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이라고 하며 그렇기에 유로 2016에서의 해설이 더욱 의외여서 주목받았다.

5.1. 가족 관계



[1] 이 당시 소르 아퀴레이리에서 2경기를 출전했다. [2] 공교롭게 후에 장조어른이 될 알베르트 그뷔드뮌손(1923)이 아스날에서 뛴 바가 있다. 아스날에 입단했다면 2번째 아이슬란드인이었다. [3] 후에 베이르스홋 AC로 이름을 바꿨으며, 2013년에 해체되었다. [4] 3라운드에 승리를 했으며 5라운드부터 4연패를 당했다. [5] Ríkissjónvarpið로도 불리며 뜻은 국영 텔레비전이다. 그리고 동명인 RÚV가 소유하고 있으며 두 RÚV를 구분하기 위해 소유하고 있는 채널을 아이슬란드 국영 방송으로도 부른다. MBC를 소유하고 있는 문화방송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6] 여기서 "AO FARA AORA UMFERO AAAAAA" 부분은 너무 흥분했는지라 못 알아들었다고 했으나 분위기상 아이슬란드어로 " 아르노르 잉그비 트뢰이스타손이 방금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골을 터트려 아이슬란드 유로 2016 챔피언십 2라운드(16강)로 이끌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AO FARA AORA UMFERO 부분을 맥락 상 2라운드(16강) 진출로 의역했다. [7] 북아일랜드가 2득점 2실점으로 3위간 전적에서 4위니 설렁 트뢰이스타손이 골을 못 넣었더라도 포르투갈처럼 3위간 전적에서 3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