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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명 | 이시카와 쥬샤쿠(石川重錫) |
본관 | 안동 권씨 |
출생 | 1926년 2월 1일 |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면 법상동[1] (현 경상북도 안동시 대석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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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4년 7월 25일 |
인천광역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510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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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26년 2월 1일 경상북도 안동군 안동면 법상동(현 안동시 대석동)에서 태어났다.그는 고향 안동군에서 권영동(權寧東)·이준택(李準澤) 등과 함께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중, 안동공립농림학교 학생들의 권유로 교내 비밀결사 '조선독립회복연구단'에 가입했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1945년 4월경 연합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국내 주둔 일본군의 전력에 타격을 입히기로 계획했다. 이들은 야음을 틈타 경찰서와 헌병파견대의 무기고를 장악하여 우체국 교환대, 읍사무소 등 일제 관공서를 파괴하고 악질 일본인을 처단하는 등 교통과 통신을 마비시키기로 하였다.
이들은 당초 1945년 2월 17일 안동경찰서에 있는 일본 경찰과 일본인 학교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을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계획의 일부가 발각됨으로서 어쩔 수 없이 거사일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월 10일 안동공립농림학교 학생조직이 완전히 드러나면서 단원들이 모두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때 권중석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안동경찰서 유치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그해 8월 15일 8.15 광복이 되면서 이튿날인 8월 16일 기소유예로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후 인천광역시로 이주하여 살다가 1994년 7월 25일 별세했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12년 5월 12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