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권유현(權有鉉) |
생몰 | 1876년 2월 30일 ~ ? |
출생지 |
경상도
진보현 북면 흥구리 (현재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유현은 1876년 2월 30일 경상도 진보현 북면 흥구리[1]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유시연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동지 100여 명과 함께 50여 정의 총기를 휴대하고 경북 안동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해 음력 12월 17일 같은 군 임남면에서 일본 순사 16명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였다.그리고 1909년 음력 정월 초순에는 정해일(鄭海日)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총 16정, 칼 1자루를 휴대하고 경북 풍기군과 순흥군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해 음력 2월경 순흥군 북면에서 헌병보조원과 교전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일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09년 5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 7월 6일 대구공소원에서 각각 징역 5년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대심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권유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