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정부(正夫) / 석당(石堂) |
본관 | 안동 권씨[1] |
출생 | 1890년 9월 21일 |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춘양현 의양리 (現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2] 233번지[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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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58년 7월 15일 (향년 67세) |
경상북도 봉화군 | |
묘소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운곡마을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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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조선 명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권벌의 13대손이다.
2. 생애
1890년 9월 21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춘양현 의양리(현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서 아버지 권철연(權喆淵, 1874 ~ 1951. 7. 22.)과 어머니 진주 강씨(1870 ~ 1898. 5. 18.)[4] 사이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권철연은 1888년( 고종 25) 식년 생원시에 3등 173위로 입격하였던 인물로, 이때문에 봉화군 일대에서는 '권 진사'로 주로 불렸다. 외조부 강심(姜鐔, 1837 ~ ?) 또한 1876년(고종 13) 식년 생원시에 2등 25위로 입격하였다.1925년 김창숙은 만주와 내몽골 지역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그 수익으로 무관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만주에 있는 조선 청년들로 하여금 무기를 훈련하여 마침내 독립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 필요한 자금 20만원을 조선에 들어와 경상도의 부호들에게 거두기로 했다.
김창숙은 그해 6월 말 베이징을 떠나 조선에 들어왔고, 그해 10월 권상경을 찾아왔다. 이때 권상경은 김창숙의 자금 권유에 응하여 총 1,000원의 군자금을 제공했다가, 1926년 5월 9일 경상북도경찰부에 체포되었다.
그 뒤 고초를 겪다가 출옥하여 은거하다가, 1958년 7월 15일 별세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