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뷔드니 베르그손
Guðni Bergsson |
|
<colbgcolor=#1c449c> 생년월일 | 1965년 6월 21일 ([age(1965-06-21)]세) |
국적 | 아이슬란드 |
출신지 | 레이캬비크 |
신체조건 | 185cm / 74kg |
포지션 | 센터백 |
유스클럽 | 발뤼르 (1977~1983) |
프로클럽 |
발뤼르 (1983~1988) → TSV 1860 뮌헨 (1986~1987 / 임대) 토트넘 홋스퍼 FC (1988~1994) → 발뤼르 (1994 / 임대) 볼튼 원더러스 FC (1995~2003) |
국가대표 | 80경기 1골 ( 아이슬란드 / 1984~2003) |
[clearfix]
1. 개요
아이슬란드 국적의 전 축구선수. 아이슬란드 국가대표팀과 볼턴 원더러스의 주장을 역임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 축구 협회의 제 9대 회장으로 재직했었다.2. 선수 시절 커리어
레이캬비크 태생으로 고향 팀인 발뤼르에서 데뷔했다. 5년동안 94경기에 나서며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고, 이 기간에 잠시 독일 무대를 경험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 후 그는 큰 무대에서 더 뛰기 위해 바다 건너 영국으로 트라이얼을 받으러 떠났다. 아스톤 빌라 FC에서 입단테스트를 봤으나 떨어졌고, 대신 그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 또 다른 팀인 토트넘 홋스퍼 FC에게 영입제안을 받으며 이적료 10만 파운드에 토트넘으로 이적하는데 성공한다.당시 토트넘은 폴 개스코인, 게리 리네커, 크리스 워들 등 화려한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부실한 수비로 상위권으로 도약하지 못하던 팀이었는데, 베르그손은 이 틈에서 잦은 부상과 대표팀 차출에도 불구하고 테리 베너블스 감독 체제 아래 로테이션급 자원으로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1993년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신임 감독 체제 이후에는 전력외로 밀려 1994년 발뤼르 임대를 다녀오는 등 토트넘에서의 입지가 급격히 약해졌다.
결국 1995년 팀을 떠나게 된 베르그손은 볼튼 원더러스의 트라이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팀에 정식으로 합류했고 잉글랜드에 남을 수 있었다. 1995년 초 시즌 중반부터 합류하게 된 베르그손은 그 해 리그 컵 결승전에서 비록 팀이 패하긴 했지만 맹활약하며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볼튼에서 3번의 프리미어리그 승격, 2번의 강등을 경험하며 볼튼의 대표 수비수로써 총 263경기 출전에 22골을 득점한 기록을 남겼다. 팀의 잔류경쟁, 컵 대회에서의 결승골 등 매우 중요한 경기에서 득점포를 한 번씩 터뜨리는 스타성이 있어 볼튼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나 2002-2003 시즌 볼튼의 잔류를 확정 지은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아이슬란드 대표팀으로써도 오랜 기간 활동했다. A매치 80경기 1골을 기록했고, 이는 한동안 아이슬란드 역대 A매치 최다출장 기록이기도 했다. 1984년 A매치에 데뷔해 2003년 6월 리투아니아와의 평가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아이슬란드에서 축구 관련 방송 진행자로 활약했고, 더불어 변호사 자격증도 취득해 변호사로도 활동했다.그러다가 2017년, 아이슬란드 축구협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2021년 아이슬란드를 떠들썩하게 했던 아이슬란드 선수단의 집단 강간 사건이 폭로되면서 2021년 8월,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4. 여담
-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인 2012년, 괴한에게 습격당했던 적이 있다. 그의 로펌에서 벌어진 일로, 같이 피습당한 동료 변호사들은 중상을 입었고, 그 또한 다리를 꿰메는 수술을 받을 정도로 꽤 심각하게 다쳤다. 현장에서 붙잡힌 용의자는 이 테러행위로 징역 14년을 선고받고 현재까지도 복역중이다.
- 그가 가장 오래 활약했던 볼튼 원더러스에선 레전드로 추앙받고 있다. 베르그손도 볼튼에서 여는 자선 경기, 은퇴 기념 경기등에 꾸준히 참석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