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 곽경희(郭耕熙) |
족보명 | 곽준희(郭駿熙) |
자 | 성준(聖俊) |
본관 | 선산 곽씨[1] |
출생 | 1870년 |
충청도
옥천군 이내면 구룡리 (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리마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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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0년 8월 14일 |
중화민국 충칭 | |
묘소 | 중국 상하이 만국공원묘지[3]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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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곽중규은 그의 장남이며, 곽중선은 그의 막내 아들이다.
2. 생애
곽준희는 1870년 충청도 옥천군 이내면 구룡리(현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구룡리마을)에서 아버지 곽동보(郭東保)와 어머니 인동 장씨 장종하(張鍾夏)의 딸 사이의 4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1907년경 장운식(張雲植)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해 부장을 맡아 군수품 및 군자금 모집 임무를 수행하기로 하고 민한식, 임해준(任海俊), 김평근(金平根) 등의 동지들과 함께 충북 옥천, 충청남도 금산 등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수합했다. 그러나 1909년 3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6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장남 곽중규와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고 1940년 8월 14일 충칭에서 사망했다.
사후 유해는 중국 상하이 만국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곽준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