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80년 10월 9일 |
충청도
공주목 산내면 대전리 (현 대전광역시 동구 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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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8년 11월 14일 |
경기도 인천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1001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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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곽병도는 1880년 10월 9일 충청도 공주목 산내면 대전리(현 대전광역시 동구 인동)에서 태어났다.그는 1912년 음력 11월 정인교(鄭寅敎), 이범규(李範圭) 등 뜻을 함께 하는 8명의 동지들과 더불어 권총 및 단도를 휴대하고 충청북도 회인군 강외면 산수리(현 보은군 회남면 산수리)에 있던 양국환(梁國煥)의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으나, 양국환이 부재중이었으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1913년 12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면소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 그는 경기도 인천부 외리(현 인천광역시 중구 경동으로 주소지를 옮겨 독립운동을 계속할 기회를 모색하다가, 1919년 강택진(姜宅鎭) 등이 조직한 조선13도총간부(朝鮮十三道總幹部)에 참여했다. 그는 조선13도총간부에서 군자금 수합 임무를 담당하여 경상북도 지역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1919년 10월부터 1920년 3월까지 경상북도 영주군 곳곳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면서 동료들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21년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미결 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인천부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8년 11월 14일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곽병도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10월 11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