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4 15:47:21

과이마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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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imar I
생몰년도 미상 ~ 901년
출생지 살레르노
사망지 산 마시모
재위 기간 880년 - 901년

1. 개요2. 행적

1. 개요

살레르노 공국 6대 대공.

2. 행적

살레르노 공국 5대 대공 구아페르와 카푸아 백작 란도 1세의 딸인 란델라이카(Landelaica)의 아들이다. 877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레르노 공국을 다스렸으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3세 사라센을 남부 이탈리아에서 몰아내기 위한 원정을 준비했을 때 가담했지만 카를 3세가 전투를 회피하는 바람에 싸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880년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살레르노 공국의 대공이 되었다.

881년 사라센들이 아그로폴리에 진출한 뒤 살레르노를 위협했으며, 나폴리 공작 아타나시우스 2세도 살레르노 공국의 가신인 카푸아 백국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으려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를 3세가 무능한 치세로 일관해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살레르노 공국을 도와줄 여력이 없자, 과이마르 1세는 신성 로마 제국 대신 동로마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886년 카푸아의 란도 2세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서 로마 황제 레온 6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파트리키오스와 프로토스파트리오스의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병력을 지원받았다. 이에 대한 대가로, 동로마 제국의 관리가 살레르노 공국으로 파견되어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과이마르 1세는 스폴레토 공작 귀도 4세의 여동생 이타(Itta)와 결혼함으로써 스폴레토 공국과 동맹을 맺었다. 895년 귀도 4세가 동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베네벤토 공국을 재정복한 뒤 베네벤토 대공을 겸임하면서 과이마르 1세에게 베네벤토의 섭정을 맡겼다. 그러나 그가 베네벤토로 가던 도중에 동로마 황실에 의해 가스탈다토(Gastaldato: 특정 지역의 군사 및 사법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위임받은 관료)로 선임된 아벨리노의 아델페리오가 도중에 습격해 포로로 삼고 실명형에 처했다. 귀도 4세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아벨리노를 포위 공격해 과이마르 1세를 돌려받았다.

895년 아나스타시우스 2세의 지원을 받은 친 나폴리 파벌이 살라르노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아들 과이마르 2세가 토벌대를 이끌고 출진해 가까스로 진압했다. 이후 실권은 과이마르 2세에게 넘어갔고, 과이마르 1세는 명목상의 권위만 있었다. 901년 아들의 종용에 따라 은퇴한 뒤 산 마시모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몇 달 만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