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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고응대 (高膺大) |
출생 | 1890년 7월 28일 |
평안남도 강동군 구지면 연리[1] | |
사망 | 1972년 5월 11일 (향년 81세) |
충청남도 대전시 (現 대전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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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제주 고씨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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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고응대는 1890년 7월 28일 평안남도 강동군 구지면 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자신의 고향에서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동했으며, 1920년 2월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송금하는 한편 임시정부에서 보내오는 <독립신문>을 주민들에게 비밀리에 배포했다. 그러다가 체포된 그는 1920년 11월 1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 8.15 광복 후 대전으로 이주했고, 1972년 5월 11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고응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