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士觀水圖.
1. 개요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예술인 중 한 명인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이 말년에 그린 한 폭의 그림.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원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23.4㎝×15.7㎝. 지본수묵(紙本水墨).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예술인으로 시(詩), 서(書), 화(畫)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絕)이라 일컬어졌던 강희안이 말년이던 15세기 중엽, 1460년대에 그린 그림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양팔을 모아 턱을 괸 채 수면을 바라보는 한 노인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에서 '고사관수'의 명칭은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본다"라는 뜻이다.
조선 전기와 중기 화풍의 변화를 대변하는 그림으로, 이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기점으로 하여 이후부터 한국의 산수화에서 전면에 나무 대신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져가기 시작한다. 조선 전기 산수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후 한국 절파계 화가들의 소경산수인물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 말기까지 같은 이름을 가진 고사관수도들이 다량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후에 만들어진 고사관수도 중 일부.
3. 기타
2018년 3월 28일 천상의 컬렉션에 출연하였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강희안이 당시 왕이었던 세조의 시해를 모의하다 붙잡혔으나 역적으로 처형하라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세조가 강희안을 살렸으며, 이후 자신이 살아남고 말았다는 강희안의 죄책감과 자괴감이 그림에도 실려있다고 추측하였다. KBS 천상의 컬렉션
결론부터 말하면 근거 없는 이야기다. 강희안이 후에 고발당한 것은 원래 집현전 출신이어서 친하게 지냈던 성삼문의 부친 성승의 집에 드나들면서 술 마셨다거나, 이개가 '민심이 흉흉하다' 같은 소리를 하는데도 고발을 안 했다 같은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걸린 사람이 강희안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육신의 입을 통해서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만 70여 명이었는데 여기서 강희안만 빠질 이유도 별로 없었다. 강희안은 사육신 사건에 이야기가 나왔고 안 죽은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했고, 그 때문에 소설 육신전에도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