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절벽

“미치겠네”


기둥은 아래로도 이어지고 역시 조명이 약해 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높은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주변은 머리 위의 하늘처럼 컴컴하다.
도시 불빛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바다의 한 가운데일까?
혹시 우주 엘리베이터에 있는데 정전이라도 일어난 걸까?
그건 아니다. 지름 20미터짜리 우주 엘리베이터 케이블은 없으니까.


시선 가장자리로 미약한 빛이 보인다.
헬멧 조명 때문에 눈이 동공이 작아졌다는 걸 깨달은 라미가 조명을 끄자 주변이 다시 어둠에 뒤덮인다.
잠시 후에,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미약한 빛의 정체가 드러난다.


별빛이다.


별아래에도 아득하게 먼 밤하늘이 있다.
눈앞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기둥의 거리감,
그리고 일말의 원근감도 느낄 수 없는 바닥없는 하늘 사이의 경계가 라미의 균형감각을 흩트린다.
몸이 빙글 돌아가며 발아래 하늘로 떨어질 듯한 아찔한 현기증이 라미를 덮친다.
라미는 거칠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장자리에서 엉금엉금 벗어나 벽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아니, 씨발, 이게 뭐야?”


가빠지는 호흡을 힘겹게 가다듬은 라미는 정면을 바라본다.
역시 별빛 가득하고 컴컴한 밤하늘이다. 기둥에 가려진 반대편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제야 라미는 조금씩 상황을 이해한다. 여긴 우주다.
우주복을 입고 있는 시점에서 짐작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렇다기엔 너무나 자연스러운 중력이 여기는 지구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지구는 아니다. 그러니까, 여긴 우주다.
중력이 어디서 오는 것이든 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 생각, 생각해. 내가 왜 여기 있지? 여기가 어디지?”


라미는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미약한 메아리와 불쾌한 습기가 헬멧 내부를 맴돈다.


“지구는 어딨지? 아니, 달이나 태양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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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절벽>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