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질 아이번 그리섬 Virgil Ivan Griss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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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6년 4월 3일 |
미국 인디애나주 미첼 | |
사망 | 1967년 1월 27일 (향년 40세) |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 미합중국 공군 |
최종 계급 | 미국 공군 중령 |
복무 기간 |
1944~1945 1950~1967 |
학력 | 퍼듀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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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이자, 인류 역사상 세번째 우주비행사 이다.2. 생애
인디애나주 미첼출신으로 어린시절 보이스카우트 소속이였고 낚시와 사냥을 즐겨했다. 한편으로 비행기 모델을 보며 조종사를 동경했고 2차 세계 대전기간인 194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항공대에 조종사 과정을 지원했고 1945년 1월 조종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조종과 거리가 먼 행정업무에만 종사하다가 종전을 맞이했다.전후 전역해 퍼듀 대학교를 다니며 목수일을 했다. 이후 레스토랑에서 주방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부인이 근무하는 전화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1950년 졸업했다.
6.25 전쟁이 터지자 공군으로 복귀했고 다시 조종사과정을 밟고 1951년 수료해 제334전투기중대소속으로 김포공항에서 발진해 북한에서 중공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쳤으며 항공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수훈비행십자장, 항공메달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비행교관으로 있다가 항공대학교를 수료했다. 1959년 NASA의 우주조종사 계획에 채용되었다.
1961년 머큐리 계획 중 리버티 벨 7호를 타고 두 번째 탄도비행을 성공시킨 우주인이 되었는데, 착수 직후 우주선 캡슐 해치가 저절로 열려버려 익사할 뻔 했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리섬 중령의 과실로 여겨졌다가 재조사후 해치의 오작동 문제로 밝혀졌는데 이 때문에 그리섬 중령은 징계를 받지 않고 아폴로 1호의 사령관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리섬은 아폴로 1호의 해치를 쉽게 열리지 않도록 하고 문을 안으로 열리도록 설계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었다.
1965년 3월 23일 존 영과 함께 제미니 계획의 제미니 3호에 탑승하여 4시간 52분 31초간 비행하면서 우주선의 운용시스템들을 시험하고 우주선의 기동성이 랑데부와 도킹 작업에 적절한지 판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67년 1월 27일 새턴 IB 로켓이 투입된 AS-204 미션 훈련 중 사령선 기체를 테스트하기 위해 그리섬, 에드워드 화이트, 로저 B. 채피 우주비행사 3인이 탑승해 있던 중 사령선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사령선의 문을 여닫는 부분의 전선의 피복이 벗겨져서 생긴 스파크였는데, 당시 사령선 내부의 공기는 순수한 산소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스파크는 순식간에 격렬한 화염으로 확산되고 말았다. 우주비행사들은 급히 탈출하려고 했지만 당시 사령선의 해치는 안전 문제 때문에 열리는 데 90초가 걸렸고 화재가 퍼지는데엔 15초였다. 결국 해치가 열리기 전에 3명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질식사였다.
죽은 우주비행사들이 탑승한 우주선은 비록 비행은 하지 못했지만 아폴로 1호가 되었다. 원래 이 미션은 AS-204라는 이름의 임무로, 아폴로 1호 미션을 대비한 훈련이었다. 그전에 실시된 유사한 3회의 미션은 AS-201, AS-202, AS-203으로만 불릴 뿐 아폴로 몇 호라는 식으로 불리지 않았다. AS-204 역시 원래 그러한 아폴로 1호를 대비한 훈련미션 가운데 하나였으나 사고로 희생된 우주비행사들의 유가족들이 아폴로 1호로 명명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결국 그들을 달래기 위해 아폴로 1호로 명명되었다.
사후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