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개그 프로그램 | ||||
웃는 데이 | → | 개그야 | → | 하땅사 |
1. 개요
MBC에서 2006년 2월 16일부터 2009년 9월 27일까지 방영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녹화는 여의도 사옥 공개홀에서 진행했다.2. 개그야의 시작
과거 MBC 코미디하우스에서 노브레인 서바이버가 끝나게 된 뒤, MBC는 코미디 프로에서 KBS의 개그콘서트와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물론 어느 정도의 투자와 프로그램 제작은 했고, 전작이었던 라이브 무대 식의 웃으면 복이와요[1]를 도입했으나 지나치게 구세대적인 개그 포인트 탓에 흥행에 실패했고, 버라이어티 개그에 초점을 둔 웃는데이도 역시 실패하게 된다.[2]
이후 웃는데이의 후속으로 다시 무대 개그를 도입한 프로그램이 바로 이 개그야이다.
2.1. 개그야의 정체성 문제
초중반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지원은 SBS의 웃찾사를 견제하기 위한 나름의 수단으로 생각되며, 2008년 말엔 약 2달간 웃찾사보다는 높은 시청률이 나와주어 프로그램은 유지되었으나, 2009년 초봄부터 시청률이 따라잡히더니 결국 지상파 3사의 개그 프로그램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었다.무엇보다 개그야가 한창 방영될 당시, MBC에서는 이미 무한도전이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점차 성장하는 중이었다.
이 때 MBC는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피하려는 의도로 봄개편을 핑계 삼아 개그야를 시청률이 잘 나오는 시간대로 이동시켜 프로그램의 유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개그야는 2009년 가을 개편 발표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프로그램이 3년 6개월 동안 진행됐다는 점에서 마냥 흑역사까지는 아니다. 이전의 웃으면 복이 와요와 웃는데이, 그리고 이후의 하땅사와 웃고 또 웃고, 코미디에 빠지다, 그리고 코미디의 길 등 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방영된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MBC 코미디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개그야의 행보
3.1. 초창기
코미디하우스 종영 이후 MBC 개그계는 암흑기를 걷고 있었다. 이경실, 조혜련, 박명수, 김현철 등 선배 코미디언들은 예능으로 진출했으며, 기존 MBC 코미디언들조차 웃찾사로 이직을 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와 웃는데이의 실패로 KBS의 개그콘서트와 SBS의 웃찾사에 비해 초라했다.고참라인(고명환, 정성호, 고정호, 손헌수, 양헌, 김선정, 추대엽 등)과 데뷔한지 얼마 안 된 14기 개그맨(전환규, 김완기, 이선미, 오나연) 넷, 15기 신인 개그맨에 더해 컬투엔터테인먼트, 틴틴패밀리 출신 개그맨들이 위주가 되어 개그야가 신설되었다. SBS 6~7기 개그맨들이 개그야에 많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MBC는 KBS와 달리 공채 조건이 엄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초반만 해도 웃복과 웃는데이를 이은 전형적인 단물개그라는 편을 받았으나 7월 개편에서 나온 일부 코너가 대박을 터지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김미려를 메인으로 내세운 ' 사모님', 조원석이 최민수를 패러디한 캐릭터인 죄민수로 흥했던 ' 최국의 별을 쏘다', 정성호가 땀 쭉쭉 흘리는 '주연아', 성우 안지환의 나레이션과 전환규의 몸개그가 어우러진 '고독한 킬러', '명품남녀' 등의 코너를 내세워 개그콘서트와 웃찾사에 맞먹는 신드롬급의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3]
하지만 이들을 뛰어넘을 이렇다 할 임팩트 있는 후속 코너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고, '사모님'과 '최국의 별을 쏘다'의 경우 등장해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던 개그맨들이 사채업 광고에 출연하여 시청자들과 여론 모두 등을 돌리게 되었다. 당시 개그야의 주축 개그맨 중 한 명이었던 조현민이 자신의 유튜브에서 얘기하기를, 무명 개그맨들이 갑자기 한 번에 너무 많은 인기를 얻고 그걸 컨트롤해 줄 고참도 없는 상황에서[4] 상당수 개그맨들이 개그 짜야 할 시간에 여기저기 행사를 더 다니면서 돈벌이에 치중했는데, 그 사이에 새로운 인기 코너를 발굴하지 못했고 기존 인기 코너가 힘이 빠지자 자연스레 프로그램도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개그야에 출연했던 개그맨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 때 새로운 코너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5]
리즈 시절에는 설날 특집으로 개그야 vs 웃찾사라는 지금껏 TV에서 볼 수 없었던 역대급 빅 카드[6]를 꺼내든다고 했기에 시청자들도 많이 기대했지만, 정작 섭외한 웃찾사 개그맨들이라고는 당시 웃찾사에 출연하지 않던 개그맨들 뿐이었다. 여기에 웃찾사 로고까지 허락없이 멋대로 사용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3.2. 중반기
개그야를 인기 프로그램으로 만든 세가지 코너가 종료된 뒤, 시청률이 바닥을 기게 되자 개그콘서트 출신의 박준형과 정종철, 웃음을 찾는 사람들 출신의 리마리오(본명 이상훈)를 개그야에 영입하지만, 메인 코너의 분배에 실패, 화젯거리조차 되지 못했다.저 작전마저도 실패한 이후에는 개그콘서트로 유명해진 심현섭까지 섭외했으나[7] 당시 심현섭은 이미 끝물이었으며, 개그콘서트의 초기 멤버들의 이탈을 조장했단 부정적 이미지가 아직 남아 있었던 심현섭을 받아들였다는 것만으로 시청률을 깎아먹는 결과만 낳고 말았다.
3.3. 후반기
2009년 봄 개편을 통해 프로그램의 방송시간도 옮기고 수명을 연장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했으나 다 실패했다. 개그夜이면서 방송은 정작 오후에 하는 기현상만 낳았을 뿐.[8] 결국 2009년 가을 개편 계획이 발표되며 2009년 9월 27일 164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후속 프로로는 컬투 패밀리를 영입한 " 하땅사(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는다)"라는 개그 버라이어티가 방영되었지만, 이것도 저조한 시청률과 낮은 완성도를 사유로 오래 가지 못하고 7개월만에 종영되었다.
4. 역대 출연진
- MBC 공채(~14기까지)
- MBC 공채(15기부터~)
- 기타
- 나준경
- 박창용
- 무기(김성범)
- 이준
- 윤지영
5. 역대 코너
자세한 내용은 개그야/역대 코너 문서 참고하십시오.
[1]
MBC에서 아주 예전 197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동명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름만 따왔던 1990년대 중반의 코미디 프로그램... 을 복각한 프로그램.
[2]
웃는데이 때엔
이경규와 개콘에서 나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막 자리잡기 시작한
정형돈이 콤비로 투입되었을 정도로 MBC도 꽤 흥행을 위해 노력을 했었다. 다만 개그 스타일이
이경규의 1990년대 히트작 별들에게 물어봐를 응용한 수준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3]
웃찾사와 개그콘서트가 함께 슬럼프에 빠지던 시기고, 개그콘서트는 그나마 KBS 기본 시청률빨로 버티는 중이었는지라, 개그야는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를 제치고 동시간대 1위를 꾸준히 차지하며 2006년 ~ 2007년 기준으로 개그 프로들 중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모님의 김미려는 이 프로로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대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도 토해냈다.
[4]
당시 개그야는 14 ~ 15기 신인 개그맨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개그야 방영 당시 가장 고참이 1997 ~ 1998년에 데뷔했던
고명환과
정성호 단 둘뿐이었다. 사실 고명환과 정성호의 기수를 다른 개그 프로그램에 반영한다면 개콘의
박준형/
박성호 혹은
심현섭/
강성범이 있었던 꼴이 되는데, 이걸 보면 고참의 부재라기보다는 컨트롤에 실패한 감독 문제일 수도 있다.
[5]
최국 역시 이 점을 지적했다. 조원석이나 김미려 등 스타덤에 오른 개그맨들이 예능과 개그를 병행했더라면 시너지 효과가 났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6]
지방행사 때는 볼 수 있었지만, 방송에서 대놓고 방송사들끼리의 맞대결은 없었다.
[7]
사실 개그야의 전신인
웃으면 복이 와요에 출연한 바 있다.
[8]
물론 이러한 모순을 막기 위해 프로그램명을 개그Ya로 스리슬쩍 바꾸기는 했다.
[9]
개그야 출연 당시에는 박성아라는 이름으로 활동.
[10]
개그야 출연 당시에는 이석재라는 이름으로 활동.
[11]
개그야 출연 당시에는 이미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12]
개그야 출연 당시에는 정명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