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강영섭 康永燮 | Kang Yong-so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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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1년 10월 15일 |
평안남도 평양부 | |
사망 | 2012년 1월 21일 (향년 80세) |
북한 평양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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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신천 강씨 |
가족 |
강량욱 (부) 김일성 ( 삼당조카) |
직업 | 종교인, 정치인 |
소속 | 조선그리스도교련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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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종교인.강량욱의 아들이다.
2. 생애
1931년 10월 15일 평양에서 강량욱의 아들로 태어났다. 레닌그라드 대학을 졸업하고 초기에는 1969년에는 내각 사무국 부국장, 이후 루마니아 대사, 1971년 몰타 대사를 지내는 등 정치인 및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귀국 후 최고재판소 검열담당 부소장에 임명되는 등 법조인도 했었다.하지만 80년대에 김일성의 지시로 3년제 평양신학원을 이수하였으며 강량욱이 사망한 이후 1989년 2월, 조선기독교연맹 중앙위원장에 임명되면서 관제종교인 커리어에 집중하게 되었다. 강명도의 회고에 따르면, 최고재판소 부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목사가 되면서 도무지 못해먹겠다고 짜증을 많이 냈다고 한다. 1989년 5월, 조선종교인협의회 부회장이 되었으며 1990년 5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소위 조그련 중앙위원장 및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91년 1월 범민련 북측본부 위원장, 1991년 3월 평양신학원장, 1991년 7월 북일 우호친선협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1993년 8월, 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으로 한단계 내려갔으며 1989년 11월, 최덕신 장의위원, 1991년 1월, 리계백 장의위원,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의 말석에 임명되었다. 1996년 2월, 려연구 장의위원도 지냈다.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1998년 12월, 전문섭 장의위원, 1999년 7월, 김병식 장의위원, 1999년 9월, 리종옥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2년 3월 27일,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03년 9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2003년 9월에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2007년 6월, 리인모 장의위원,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09년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2012년 1월 21일, 80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종교인협의회, 조그련 중앙위원회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을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 강영섭은 비록 우리곁을 떠났으나 조국통일위업수행에 이바지한 그의 공로는 길이 남아있을것이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는데 조선로동당원이 아니라 어용종교인이라 로동신문이 아닌 민주조선에만 부고를 게재하였다. 후임 조그련 중앙위원장으로는 그의 아들 강명철이 2013년 7월에 선출되었다.
이후 시신은 조그련 중앙위원장 명의로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13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