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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시는 차라리 가칭 ‘강남특별자치구’ 설치를 중앙에 건의해 아예 강남구를 서울시에서 추방시키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신연희 강남구청장.
2015년에 당시 강남구청장이었던
신연희가 상술된 발언으로
강남구의
서울특별시 분리 독립 관련 논란을 빚은 사건.신연희 강남구청장.
발언 이후 초반에는 "강남구의 답답함을 서울시에 호소하려 했던 것이었다"며 해명하였지만 "강남 독립요구는 진심이었다"며 말을 바꾸었다.
2. 박원순 시정 이전
서울특별시와 강남구의 갈등은 2006년 재산세 공동과세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 관내 자치구간의 재정자립률 격차가 커짐에 따라[1] 그동안 자치구에서 걷어 자치구에서 자체적으로 활용하던 재산세의 50%를 서울시가 일괄 징수하고 이를 각 자치구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조례를 바꿨다. 국회도 이에 부응하여 지방세법을 개정하여 이를 전국화하기로 합의하면서 2007년 7월 3일의 국회 임시회 본회의 에서 이러한 공동과세에 근거한 지방세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2] 강남구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예산을 서울시가 무전취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반발하였고 이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0년 결정에서 재산세를 기초자치단체만이 과세할 근거가 없고, 50%만 공동과세하므로 자치구의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지방자치권의 침해로 보기 어렵다며 기각하였다. # 이후 강남구의 재정자립도는 50%대로 크게 하락하였고 # 서울시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었다. #3. 박원순 시정 이후
이러한 갈등은 박원순 시장 이후부터 첨예화되었다. 특히 영동대로 및 한전부지 개발건이나 구룡마을 재개발, 대치 은마아파트 재건축 등 대규모 개발사업 허가문제가 이 시기에 집중된 반면 박원순 시장 특유의 공공성 논리와 토건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표면화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서울시-강남구의 첫 충돌은 구룡마을 재개발 문제에서 발생했다. 2011년 서울시가 환지 방식을 골자로 하는 구룡마을 개발안을 내놓았다. '환지 방식'이란, 우선 토지를 개발한 뒤 토지주에게 보상금 대신 땅의 일부를 다시 돌려주는 개발 방식으로, 토지주 이익의 보장을 확약해줄 수 있어 원만하게 합의하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신연희 강남구청장이 토지주에게 지나친 특혜를 주는 방식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자 서울시는 이를 수정하여 2011년 공영개발 방식으로 입장을 바꿨다. # 그러나 2012년 6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공영개발안에 다시 환지 방식을 추가하기로 입장을 번복하자 신연희 구청장이 재차 강하게 반발하면서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고 본격적으로 박원순 대 신연희 갈등 구도가 시작되었다. # 구룡마을 재개발 문제는 2014년 12월에 서울시와 강남구가 전면수용방식으로 합의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2015년 2월, 서울시와 강남구는 2차로 맞붙었다. 발단은 박원순 시장의 수서동 임대주택 건립 문제로, 수서동 일대에 임대주택을 지어 서민주택난을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신연희 구청장은 임대주택이 이미 과밀집되고 있다면서 반대하였는데 서울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16년 서울시 산하 SH공사의 공공임대주택 개발계획을 인가해 주면서 갈등이 다시 폭발했다.
한 달 뒤 강남구는 이곳에 광장을 조성할 계획이라며 3년간 개발행위 허가를 제한하겠다는 고시를 내면서 맞불을 놓았고 이에 서울시는 강남구에 두 차례에 걸쳐 '개발행위 허가 제한을 해제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을 두고 강남구가 대법원에 소송을 내며 법적 다툼으로 치닫게 되었다. # 참고로 이 문제는 2016년 국토교통부가 해당 임대주택 부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면서 잦아들었고 신연희 구청장 퇴임 후인 2018년에 대법원이 서울시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3차 갈등이 바로 강남구 분리독립 논란을 부른 2015년의 영동대로 및 한전부지 개발 문제다. 2014년 현대자동차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전력 부지를 10조 5,500억 원에 사들이면서 공공기여금이 대거 발생하게 되었다. 공공기여금이란 개발 사업을 할 때 사업자로부터 개발 이익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서 현금으로 돌려받는 것으로, 용적률을 완화해 주거나 용도를 변경해 주는 대가로 공공이 쓸 수 있게 기부채납을 받는 돈이다. 공공기여금은 개발사업을 하는 지구단위 계획구역 관할 기초 지자체 안에서만 쓰게 법에 규정돼 있는데 현대차가 한전 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기로 하면서 강남구엔 공공기여금 1조 7,491억원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다른 지역 구청장들이 1조 7,491억 원을 강북 등 다른 지역에서도 함께 사용해 서울시 공동의 발전을 이루자고 제안하였고 박원순 시장도 이에 공감을 표하면서 복잡한 사안으로 바뀌었다. 가뜩이나 수서동 임대주택 문제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던 신연희 구청장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하였지만 서울시는 공공기여금을 다른 지역에서도 공동 사용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에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을 건의하였다. 서울시는 한전 부지 인근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로 개발 지역을 넓히는, 즉 송파구와 공동 사용하는 내용의 ‘국제교류 지구단위’를 내놓았는데 이에 강남구는 신연희 구청장 등 49명을 원고로 해당 계획에 무효 소송을 제기하였다. # 요컨대 서울시의 주장은 한전 부지 개발이 향후 강남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공공기여금만큼은 다른 지역을 위해 써야한다는 논리였던 반면 강남구의 주장은 개발과정에서 공공기여금은 원칙대로 강남구에 쓰여져야 하고 개발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상당한 불편이 예상되므로, 강남구가 가져가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서울시의 공공성 확보 논리와 강남구의 법적 타당성 또는 지역 이기주의 논리로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사업이 표류되자 서울시는 국제교류 지구단위 사안에서 강남구를 제외시킨 채 논의를 이어나갔다. 여기에 신연희 구청장이 폭발하면서 박원순 시장에게 '공개질문'을 보내기에 이르게 되었다. '강남구 분리 독립'은 바로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신연희 구청장은 2015년 10월 1일 서울시장 앞으로 보낸 공문을 통해 다음 공개질문을 했다.
질문1. 한전부지 개발 사전 협상에 강남구를 철저히 배제하는 이유를 하교(下敎)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2. 이럴 바엔 서울시는 차라리 가칭 ‘강남특별자치구’ 설치를 중앙에 건의해 아예 강남구를 서울시에서 추방시키실 용의는 없으십니까. 하답(下答)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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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에서 서울시장 앞으로 보낸 당시 공문 |
사실 서울특별시청과 강남구청의 갈등이라는 프레임 자체가 사실관계 상 허구에 가깝다. 상하위 관계에 있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사이에 감정싸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진영논리를 떠나 말도 안 되는 일에 가깝기도 하고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양 기관 사이에 실제 갈등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발생한 적도 없다. 새누리당 계열 정당이 구청장과 강남구의회의 다수를 단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지만 더불어민주당 계열 서울시장 시대에도 이 정도의 폭발적이고 전국적인 주목을 끌 정도의 갈등을 빚은 적은 분명히 없었다.
한편 일련의 갈등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 강남구 유권자들은 제7회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순균 후보를 선택하였다.
4. 전개
4.1. 발언의 형식과 너무 뻔한 언론플레이
형식적으로도 이 발언은 정략적 정치공세다. 아무리 강남구가 논의에서 배제되고 민주당이 서울시의회를 다수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호소'말고 방법이 없다고는 하나[3]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면 구청장 본인이 직접 독립 지자체의 필요성을 고민해 서울시와 행정안전부[4]를 직접 설득하고 법적 절차를 병행해야지 갈등을 빚고 있다는 당사자인 시장에게 '공개질문'의 형식을 취해 도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크다.물론 서울특별시 의회는 2010년 지방선거 이래 계속 더불어민주당 계열이 절대적 우세를 보이고 있으나 남경필 경기지사나 원희룡 제주지사의 경우처럼 연정과 같은 협의체를 만드는 등 본인이 성의를 갖고 진정성을 제대로 보여주면 상대당이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어도 추진이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지만 비교적 숫적 차이가 적은 경기도나 제주도와는 달리 서울시에서의 비율 격차는 매우 크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집권하던 시절에는 한나라당이 서울특별시 의회가 절대다수였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저런 식의 막무가내식 행태를 저지르는 것은 옳지 못한 짓이다.
4.2. 댓글조작 파문과 그 이후
2015년 12월 8일 경향신문 단독 보도로 강남구 도시선진화담당관 산하 시민의식선진화팀 이 모 팀장이 업무시간에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 시의회 등을 비방하고 구청장을 두둔하는 집단 댓글을 2개월간 최소 200여 개 이상 작성해 인터넷 포털 등에 올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사 당초 강남구 관내에 밀집한 불법 성매매업소 등의 단속을 위해 설치된 시민의식선진화팀은 아예 신 청장의 별동대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서울시는 시의회 등 비방 댓글의 피해기관들과 함께 적법 절차에 따라 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신연희 구청장은 강남구 공무원들이 올린 것으로 의심되는 댓글만을 골라 구의회에서 배포하려다가 새누리당 소속인 강남구의회 의장이 배포를 불허하여 말싸움을 벌이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
회의 규칙상 회의 도중 자료 배포도 금지지만 김명옥 구의회 의장이 "저희가 자료 내용도 봤다. 수천 개의 댓글에서 검정 머리에서 새치 뽑듯 유리한 것만 뽑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청장께서 과격하게 말씀을 해서 상당히 유감이다."와 같이 신 청장을 비판하는 말을 한 것을 보면 같은 당의 구의회 의원들에게도 넓은 지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5]
엄청난 논란과 함께 2016년 20대 총선 출마 의혹이 끊이지 않던 신연희 청장은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선언했다.
이 사건 이후 2016년 7월까지 구의회에 계속 불출석했다고 한다.
4.3. 서울시의 반박
서울시는 강남 개발 자체가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예산과 역량을 집중투자해서 이루어진 것인만큼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다. 강남 발전에 예산과 역량을 쏟아내고 신경쓰다 보니 오늘날 강남북 간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원래 강남은 지금처럼 서울의 제2도심이자 경제력 등으로 보면 실질적인 제1도심이 아니라 고층 건물이라고는 눈꼽 하나 찾을 수도 없는 미나리밭만 있던 허허벌판의 농촌지역이었던 것은 물론[6] 1963년 이전에는 아예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에 속하지도 않았던 지역이다. 당시 강남은 광주군 언주면이었다. 언주읍도 아닌 언주면이었다는 건 그냥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서울에 편입된 이후에도 1970년대 개발 이전의 강남은 서울 영등포, 아니 부천군 소사읍(지금의 부천시 구시가지), 시흥군 안양읍(지금의 안양시 구시가지)보다도 못한 배추밭 많은 깡촌[7]이었다. 인터넷에서 '1960년대 강남', '1970년대 강남' 등을 검색해 보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21세기의 강남과는 사뭇 다른 그야말로 '깡촌'인 당시의 강남 사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경부고속도로가 처음 놓인 시점에도 아무 것도 없어서 지금의 ' 만남의 광장' 자리에 서울 톨게이트가 있을 정도였으며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6.25 전쟁 피란길에 올랐던 길의 일부였지만 여전히 깡촌이었던 곳(...)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진행했다. 서초구는 1988년에 강남구 관할 구역 가운데 과거에 과천군->시흥군이었던 구역을 따로 분리하여 설치되었기 때문에 고속도로는 오랫동안 강남구 관내에 있었다.
서울시는 '강남이 그 당시 서울 성저십리 바깥 지역에다 경기도 지역에서 편입시켜 경기도 농촌의 여운이 남아있는 영향 때문에 강북(사대문안, 성저십리) 이외 지역 발전을 위해 강남 개발정책을 실시하였다,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 '강남은 촌구석이라 살기도 싫다.'는 인식이 강해서 강북(사대문안, 성저십리) 지역은 이미 포화될 대로 되었으니 새로 편입된 강남 신도시로 시민들의 이주를 유도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고 종로를 포함한 기존의 지역에는 백화점, 거대상권의 허가를 일체 불허하고 강남 지역의 상권에 투자할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끝에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고 강남으로 건너갔던 이들이 많아져서 지금의 강남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역효과로 강북과 불균형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며 강남구청장의 입장을 반박하기도 하였다.
서울을 한양이라고 부르던 조선시대에는 강남이 있지도 않았고 한강 이남을 서울로 인정도 하지 않았다는 게 함정.
5. 반응
그야말로 명분도 실리도 없는 발언이었다. 서울시민, 하다못해 강남구민들도 뜬금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원순 시장은 당연히 반대 의견을 밝혔고 강남구 의회에서도 반대했다. 서울에서 나가서 좋을 게 없다는 게 이유고 쓸데없는 갈등을 유발하여 서울시청과의 공조에도 빨간불이 켜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한편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강남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탓에 일부 외신에서 "강남이 독립하려고 한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6. 결론
특기할 사항으로 당시 강남구청장 신연희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학원에서 지방행정학을 전공하여 석박사를 딴 이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방행정학 전공자라면 행정구역 분리로 인한 각종 문제점을 충분히 예상할 지적 능력이 될텐데 이를 알고서도 일부러 강남구 분리론을 외친 것은 박원순 당시 시장을 공격할 정치적인 의도가 의심될 여지가 컸다. 결론적으로 본인은 진지한 주장이었다고 항변했지만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정치적 공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1]
재산세는 소득에 비례해서 과세하는데 2005년 기준 당시 강남구민의 평균 재산세는 42만원, 도봉구민의 평균 재산세는 1만 7천 원 정도로 그 격차가 20배 이상에 달했다. 이로 인해 강남구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1위인 97.3%에 달했지만 도봉구의 경우 28.7%에 불과했다.
[2]
손화정, 이희선. 2008. 서울시 재산세 공동과세 제도에 관한 확립방안 - 공동과세율과 배분방식의 쟁점을 중심으로 -. 지방행정연구 제22권 제3호.
[3]
사실 갈등은 오세훈 시장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시장 당적을 따지는 건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
[4]
지방자치단체 사무의 주무 부처
[5]
지방도시의 규모와 상관없이 자치단체장은 지방의회의 지지와 연합이 필수적이다. 당이 다르더라도 어쨌든 목표는 도시 발전과 시민들의 이익이기 때문에 소속 당이 달라도 이렇게 대립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하물며 같은 당 소속이면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의회의 신뢰를 잃었다고 밖에 볼 수 었다.
[6]
7차 교육과정 두산동아(김) 영어 교과서에는 1960년대의 강남은 문자 그대로 깡촌이었다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7]
조정래의 소설
한강이나
황석영 소설
강남몽에서는 당시의 이곳을 배추밭 대신
과수원으로 표현했다.
[8]
그냥 성동구라고 부르면 어딘지 가늠하기 힘들고 한강 이북 지역이 더 연상되는지라...
[9]
흔히 강원도 동쪽 동해안 지방을 부르는 영동(嶺東)과는 한자 자체도 다르다. 이쪽의 영동은 대관령(大關嶺)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영동(嶺東)이라고 쓰고 이쪽의 영동은 영등포(永登浦)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영동(永東)이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