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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看羊錄. 건거록(巾車錄)이라고도 부른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강항(姜沆)이 선조 30년, 1597년 9월에서 동왕 33년, 1600년 5월까지의 경험을 기록한 책.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영광군의 내산서원에 소장된 필사본이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http://db.itkc.or.kr/dir/item?itemId=BT 책의 내용은 이곳에서 읽을 수 있다.
2. 내용
책의 저자인 강항은 1593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공조좌랑, 형조좌랑을 지냈던 문신이었다. 1597년에 휴가를 얻어 고향 영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을 맞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군량 운반을 돕고 여러 고을에 격서를 보내 의병을 모집하지만 적의 기세가 더욱 거세어져 영광을 공격하기에 이르자 결국 강항은 가족, 친척과 함께 배 두 척으로 피란을 떠난다. 하지만 뱃사공의 잘못으로 아버지의 배와 떨어지게 된 강항 일행은 아버지의 배를 찾다가 9월 23일에 왜적에게 잡힌다. 왜적에게 잡히는 과정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신주를 잃어버리고, 이후 바다 위에서 가족들의 죽음을 보게 되며,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그 후 강항은 일본의 대마도 등을 경유하여 이예주(伊豫州, 이요주, 현재의 에히메현)의 대진성(大津城, 오쓰 성)에 유치되었다. 후에 섭진주(攝津州, 세쓰 주, 현재의 오사카부 북부와 효고현 남동부에 걸친 옛 행정구역)의 대판성(大坂城, 오사카 성)으로, 다시 산성주(山城州, 교토)의 복견성(伏見城, 후시미 성)으로 이송된다. 억류되어 있는 동안 세 차례에 걸쳐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1600년 봄에 귀국을 승인받는다. 그리하여 1600년 4월 2일에 귀국길에 올라 5월 19일에 부산포에 도착한다.
강항은 돌아온 후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오기까지 겪은 체험을 기록했는데 이때 죄인이 타는 수레라는 뜻으로 건거록(巾車錄)이라 이름하며, 본인을 죄인이라고 낮췄다.
3. 구성
내용 구성은 크게 적중봉소(賊中封疏), 적중문견록(賊中聞見錄), 고부인격(告俘人檄),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섭란사적(涉亂事迹)으로 나뉘어진다.적중봉소에는 잡혀서 일본으로 끌려가는 과정과 일본 생활이 요약되어 있고, 조선으로 돌아가 죄를 받겠다는 강항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강항은 비록 자신이 죄인이지만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계책을 제시하고자 함을 밝히고 있으며 적중봉소에는 일본사, 지리, 전쟁에 참여한 군사 수 및 장군 이름 일본의 군사제도, 일본인의 복장, 대마도에 대한 일본의 태도 등이 자세하게 저술되어 있다.
적중문견록은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으로, 조선으로 돌아 온 후 곧바로 조정에 바친 글이다. 왜국백관도(倭國百官圖), 왜국팔도육십육주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 임진정유입구제장왜수(壬辰丁酉入寇諸將倭數)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일본 승려 등에게 자료를 구하여 강항이 등초하여 주를 붙이고 설명을 더한 것이다. '왜국백관도'에서 먼저 일본 제왕과 관직을 간략히 설명한 후 ' 왜국팔도육십육주도'에서 일본의 8도 66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각 주의 관할 군, 땅의 특징, 오곡이 잘 나는지 여부, 통치자의 이름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대마도는 조선과의 관련성 속에서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임진정유입구제장왜수'는 여러 장수들을 설명한 것이다. 적중봉소에는 군사 수 등을 제시하였고, 여기에서는 장수들의 성격, 업적, 장수들 간의 대립 등이 제시하였다. 특히 풍신 수길에 대해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태어날 때 손가락이 여섯이었다는 것에서부터 권력을 잡는 과정, 조선 침략 계획과 실천, 양자를 죽이는 과정, 그리고 죽고 나서 일어난 일까지 기술하였다. 그리고 이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계책을 제시하고 있다.
고부인격은 포로들에게 당부하는 글로, 고사를 다수 인용하여 일본을 비판하고 성은(聖恩)을 강조한다. 또 포로로서 자신의 심정을 서술하며 포로들에게 힘을 모으라고 당부하고 있다.
예승정원계사는 부산에 도착하여 명으로 한양으로 바로 올라간 후, 일본의 사정을 묻기에 작성한 글이다. 여기에는 일본인과 나눴던 대화가 실린 후 일본의 풍속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의 평가를 덧붙이고 있다. 백공(百工) 중 최우수자(天下一)를 내세우는 풍습, 복서에 대한 무지, 중국인이 일본에 계속 머무르려 한 일, 일본의 궁실과 후원, 승려들의 생활과 신사, 교역을 좋아하는 성질, 특이한 날씨와 지진 등 일본을 체험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을 서술하고 자신의 평가를 덧붙였다.
섭란사적은 가장 문학성이 짙은 부분으로 그 동안의 체험을 일기체로 기술한 것이다. 피란 전의 상황에서부터 일본에서 억류가 끝나고 조선으로 오는 중의 마지막 경유지인 일기도을 출발할 때까지, 시간 순서대로 체험과 작자의 심리가 서술되어 있다. 또 당시에 썼던 시 31수가 삽입되어 있어 강항의 정서가 압축되어 표현되고 있다.
4. 의의
적국에서 당한 포로들의 참상과 그곳에서 보고 들은 실정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전란에 대비해야 할 국내 정책에까지 언급하고 있는 충절의 기록으로 사료적, 교훈적 의의가 꽤 크다.거기에 당시 일본 각지의 주요 다이묘들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기록하고 았기에 그러한 면에서의 가치 또한 크다.
임진왜란기에 조선에서 만들어진 해외 체험 포로실기의 대표 5대 작품인 간양록(看羊錄), 금계일기(錦溪日記), 만사록(萬死錄), 월봉해상록(月峯海上錄), 정유피란기(丁酉避亂記) 중 하나로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도 그 모든 것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의 소중한 기록유산 중 하나다.
5. 여담
6. 외부 링크
-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간양록, 처절한 임진왜란 포로 체험의 세계
- 문화재청 홈페이지: 영광내산서원소장필사본건거록(간양록)등문적일괄 (靈光 內山書院 所藏 筆寫本 巾車錄(看羊錄) 等 文籍一括) : 간양록과 함께 『강감회요(綱鑑會要)』, 『운제록(雲堤錄)』 3종과 『문선주(文選註)』와 『잡지(雜誌)』 2종 등 강항이 친히 짓고 쓴 5종 10책의 필사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