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00:30:38

가토 기요마사(징비록)

가등청정(징비록)에서 넘어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이 배역의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가토 기요마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img.kbs.co.kr/cast07_3_1.jpg
"나는 쓰시마 놈들의 피맛을 아주 좋아해…."[1]
"목을 벨까요?"
네놈 대낮부터 술을 쳐 마셨나?! 뭐야?!
아아아 그거... 그거야. 네놈이 진척이 없으니까 내가 직접 나서는 것이야. 어느 누구도 타결하면 좋은거 아니냐?'
어어어. 오해하지 마라. 나는 네놈이 그토록 원하던 귀향을 도와주려 했을 뿐이야. 내가 네놈 먼저 협상마다 먼저 타결되면 네놈이 내게 고마워해야 할걸. 안 그러냐? 코이치?'
"참으로 허망하구나. 이 전쟁도, 관백 전하도, 그리고 나도 결국 손에 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
加藤淸正

1. 개요2. 작중 행보3. 기타4. 관련 문서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서브 빌런. 이정용[2]이 연기한다.

이정용은 10년 전에 출연한 불멸의 이순신에 이어 같은 역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10년 전과 달리 삭발을 했으며[3] 구마모토 성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제작진이 일본 세트와 기타 소품을 역대 어느 사극보다 신경을 쓴 듯 하지만 조선에 온 적 없는 다테 군 깃발을 쓰는 등 일부 고증 오류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가토의 갑주만큼은 정말 고증에 충실했다. 가토 특유의 금색의 긴 고깔 투구 등을 충실히 고증했다.[4]

불멸의 이순신에서 가토와 고니시는 서로 하오체를 쓰며 대화했지만, 징비록에서는 서로 반말로 대화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철천지 앙숙으로 묘사된다.

2. 작중 행보

첫 회에서 도요토미의 지시를 받고 칼을 뽑아 단번에 타치바나 야스히로를 처단한다. 그리고 겁을 먹고 주저앉은 소 요시토시의 얼굴에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묻히면서 "나는 쓰시마 놈들의 피를 좋아해"라고 위협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 표현할 가토의 잔혹성을 상징하는 대목이었다.[5] 실제 역사에서의 가토는 당시 일본의 다이묘 중에서도 굉장히 [6]사려깊은 인물로, 기존 한국 사극에서의 묘사와는 상당히 다른 인물이다. 다만 임진왜란에서의 행적을 보면 조선 입장에서는 다스 베이더여서, 2회까지의 행적을 보면 그야말로 도요토미의 칼이자 충견이다. 도요토미가 피를 손에 묻힐 일은 대부분 가토가 맡게 되며 도요토미에게 충직한 모습을 보인다. 4화에서는 아사작전을 주장하는 고니시에게 반발하며 그 전략을 폄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정작 후일 자신이 그 아사작전에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묘한 부분. 통신사와의 연회에서는 클리셰에 따라 칼춤으로 통신사 일행을 가볍게 위협했다.

7화에서도 성을 1년만에 다 지을 수 없다고 말하는 신하를 도요토미의 지시에 따라 처단했다. 더불어 도요토미가 자신이 왜 대륙침략을 계획했는지 주변 가신들에게 묻자 고니시와 우키타는 각자의 생각을 말하지만 가토는 자신은 단지 도요토미의 의지에 따를 뿐이라는 우직한 면모를 보여준다. 조선으로부터 답서가 도착하자 즉시 정벌에 나서자고 하다 또다시 마누라 드립을 당하며 고니시의 의견에 따라 도쿠가와를 선봉장으로 하자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도쿠가와 선봉장 작전은 무산되었고 10화에서는 자신이 선봉장이 되려하지만 고니시에 밀려 실패하여 실망감을 느끼지만 이후 도요토미의 비밀명령, 고니시보다 먼저 조선왕을 잡으라는 명령에 다시 자신감을 찾는다. 또한 10화에서 '방비가 허술한 전라도로 상륙하겠습니다'라는 대사를 남겼다. 전라좌수사가 누구였는지 생각해 본다면[7] 11화에서는 한 무리를 이끌고 고니시와 모의전투를 벌이지만 전술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 때 부장에게 눈짓하여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게 한 뒤 고니시 부하들도 고니시의 이름을 연호하게 하여 두 사람의 일기토를 유도해내었다. 그 일기토에서 승리는 하였지만 고니시에게 어차피 백병전에서 졌다는 소리만 듣는다.

12화에서는 병력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쓰시마와 군량 2만석을 내지 않은 류큐를 응징하자고 주장했으며 탈영으로 오해받은 병사를 모든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베어버린다. 13화에서는 경쟁자인 고니시가 빠른 속도로 동래를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노하며 부관인 고이치에게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도록 하게하고 사야가를 선봉으로 임명한다. 14화에서 고니시가 대구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니시보다 빨리 한양으로 가기 위해 건너오자마자 사야가의 의견에 따라서 울산과 경주를 거쳐 이동하며 학살을 자행하고 병사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웃으면서 만족스럽게 본다. 15화에서 고니시군이 충주에서 조선군을 격퇴했으나 절반이상의 사상자를 냈다는 탐방병의 보고에 히데요시의 선택이 맞았다며 고니시를 비웃으며 고니시 얼굴을 보기위해 계속 진군을 한다. 그러나 밤에도 충주를 향해 진군을 하는 중 사야가의 부대에 있었던, 등에 화살이 꽂힌채 중상을 입은 병사를 만나고 그 병사가 기력이 다해 죽기 전에 사야가의 탈영사실을 보고하자 이에 격노하며 추격하려 했으나 고니시에게 선두를 유지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고이치의 말에 사야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며 고니시에게 알려져서는 안된다며 정보가 세어나지 않도록 모든 병력에게 철저히 함구하라는 지시한다.

그렇게 고니시를 만나서 뒷따라 오느라 수고가 많다는 말에 대규모 사상자의 발생을 우회해서 비웃으나 고니시는 이미 사야가의 일을 알며 역관광을 하였다. 그리고 고니시와의 작전회의에서 고니시의 양보대로 묘시(오전 5시~7시)에 고니시군과 같이 출발하여, 음성-죽산-용인을 거치는 단거리루트로 한양을 향하기로 한다. 당연히 약속을 어기고 먼저 출발을 하여 고니시에게 엿 먹인 것에 기뻐하며 조선왕을 먼저 잡은후에 하루먼저 일찍도착해서 잡은 걸로 장계를 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고니시에게 속은 것을 알자 분개한다. 17화에서 고니시에게 찾아가 한강을 넘는 뱃길까지 빼앗은 것에 분노하며 선조를 추격하러는데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는 것과 같은 우키타의 명령서를 보고 분개하여 소리를 지른다. 이후 18화에서 자신이 조작한 장계를 이유로 진격방향을 먼저 정하겠다고 주장하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함경도로 가게 되었으나 개경까지는 고니시와 함께 진군한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조선수군에 의해 보급이 차단되었다는 소식에 후방이라서 방심하다 당한걸로 파악하고 고니시가 남도에서 근왕병들이 올라오고 평안도에서 조선군이 방어전을 시작했다고 우키타에게 보고를 하자 자신의 주장대로 전라도를 공격했으면 군량문제도 해결되었을 거라며 고니시를 까고는 위 아래로 포위당할 수 있으니 선제공격을 하자고 주장한다. 우키타도 이에 동의하여 각 지휘관들에게 척후병 파견 및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이 하달이 되자 날쌘 병사 100여명 정도로 선발하여 조선군의 패전시 조선왕의 다음 도피처를 파악하여 먼저 조선왕을 잡을 생각을 하고 고이치에게 준비하도록 한다.

19화에서는 척후부대가 신각에 의해 전멸당했단 소식을 알고 대노하여 출병을 준비하는데 우키타와 고니시가 섣불리 출병하면 낭패를 볼수있다고 만류한다. 하지만 여기서 가토가 단순 돌격대장이 아닌 전술가로서 어느정도 면모가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토는 임진강의 적들을 공격하지않으면 남쪽에서 오는 이광의 5만 병사들과 협공받을 수 있다며 선제공격을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우키타도 이에 동의했다. 또한 임진강전선에서 대치할 때 이미 배가 임진강 반대편에 있는 바람에 철수를 해야하는 상황이고 고니시가 협상을 한다며 철수하라고까지 하여 분노하지만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조선군을 유인하여 괴멸시킬 계획을 세운다. 당연히 한응인은 일본군이 철수한다는 것으로만 알고 기습 공격을 해왔고 소식을 들은 가토는 하늘이 우릴 돕는구나라고 여기고 역습을 하여 임진강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20화에서는 라이벌인 고니시와는 달리 등장이 없었고 21화에서도 역시 등장씬이 없었다. 그리고 22화에서 드디어 잠깐이나마 등장했다. 함경도에서 조선조정의 피난루트를 막고 축제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생긴건 이래도 마음만은 부드러운 남자라고 유부녀를 희롱하려다가 유부녀가 자신이 지아비가 있는 몸이라고 하자 나에게는 마누라가 있다는 명언을 남긴다. 그리고 옷 고름을 풀어 겁탈을 하려다가 팔을 깨물리게 되어 화가 나서 유부녀를 군사들에게 던져버리게 하고 그 남편을 죽여버리라 명령하게 된다. 이후 고니시가 평양을 점령했으나 조선 왕을 잡는데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닭쫓던 개 신세인 고니시를 비웃으며 자신의 승리를 장담한다.

24화에서 조선 백성들이 잡아다 준 임해군과 순화군을 협박하여 항복권유문서를 작성하게 한다. 이후 임해군이 국왕인 선조가 아닌 세자인 광해군에게 항복문서를 보내자 도대체 누가 조선의 왕이며 자신은 누구에게 항복을 받아야 하냐며 혼란에 빠진다. 덤으로 고이치는 이게 조선의 전략 아니냐고 할 정도. 이후 임해군과 순화군은 풀려나 조선 조정으로 돌아갔고 고니시와 심유경의 국제 사기극으로 임시 휴전 상태가 되자 부산포로 거처를 철수했다.

40화 이후로는 고니시랑 유난히 싸우는 장면이 많다. 그러다 상관인 우키타에게 걸리는 건 덤. 장문포에 주둔하고 있던 자신이 의병장들을 태운 이순신의 함대를 막게 되자 '씁 이거 제비뽑기를 했어야 하는데'라는 드립을 친다. 그리고 절대로 바다에 나가 싸우지 않고 틀어박히는 전략을 쓴다. 헌데 가토의 이 전략이 반은 맞아떨어져, 윤두수의 명령을 받은 김덕령과 선거이 등의 의병들이 공격을 망설이는 이순신 대신 장문포에 상륙한 것을 역공을 걸어 승리한다. 기세등등하게 본진으로 돌아가 우키타에게 승전보고를 하며 이순신을 거의 잡을 뻔했다고 허세를 부리지만, 척후를 통해 '이순신은 상륙도 안한 거 알거든? 죽일 한 거 진심으로 축하한다 ㅋㅋㅋ' 하고 웃어대는 고니시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 사자후를 내지르는 것은 가히 연기의 절정이었다.

그리고 조선과 명과 한동안 싸우지 못하여 내심 분해하다가[8] 심유경의 사기극이 히데요시에게 발각되고 정유재란이 터지자 그에게 다시 기회가 생긴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조선 왕의 목을 가져가겠다며 출정을 하는데 마침 이순신을 유인하는 고니시의 계략에 걸린다. 뒤늦게 자신이 고니시의 계략에 미끼로 이용된 걸 알고 화를 내지만, 히데요시도 알고 있었던 일이라는 고니시의 말에 충격을 받는다.[9] 이후 히데요시가 죽고 고니시가 분개하는 것에 비해 가토는 씁쓸하고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10] 철군했다. 사실상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수혜자로 드라마 상에서는 다뤄지지않지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그토록 원하던 고니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뭐 결국은 도요토미 파벌이었기에 이에야스가 천하를 제패한 이후엔 팽당하고 몰락했다.

3. 기타

전술했듯 실제 역사에서의 가토는 단순한 무골이지만은 않았고, 사려 깊은 행정관으로서의 면모가 강했는데, 드라마 상의 가토는 따로 등장하지 않는 도요토미의 다른 가신인 후쿠시마 마사노리(천생 무골[11])의 면모가 더 강하다. 사실 이건 관대한 평이고 거칠게 말하면 작가가 임진록을 사료로 삼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인물 고증이 아주 개판으로 된 인물이다. 다만 이는 일본 사극에서도 주로 나타나는 문제다. 드라마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 <황금의 나날>, <사나다마루>, 영화 <세키가하라> 등에서도 가토는 무식하고 거친 이미지로 등장한다. 즉, 실제 가토 기요마사의 모습과는 별개로 일본 내에서도 이미지 자체가 일단 거칠고 단순무식하다. 따라서 일본 내에서의 이미지가 한국에서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가토의 성격 묘사는 엔도 슈사쿠의 작품 <숙적>을 모티브로 하였다고 한다. 링크 한편으로 실제 가토는 겸창의 명수였는데 고니시와의 대결에서는 그냥 일본도를 다룬다. 고니시는 이도류가 특기라며 도요토미가 띄워준 것과는 대비된다.
한편 인물고증과는 별개로 불멸의 이순신에 이은 이정용 배우의 가토 연기는 그야말로 찰지기 그지없는 호연. 사실상 일본 파트의 재미는 도요토미와 가토 두 사람이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징비록 갤러리에서는 국민가토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가토가 나오면 온갖 드립과 함께 열광했다.

18화에서 " 위아래로 협공당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데 악센트를 위!아래와 같이 끊어서 발음하는 바람에 노리고 한 거 아니냐는 말이 있다. 이런 패러디물도 나왔다. 그리고 39화에서 또 나왔다.

성격이 급해서 고니시와 엮이면 열폭을 심하게 한다. 고니시에 비해 물건 파손도 많고 소리 지르는 일이 대부분이며, 고니시와 유독 대립이 후반에서 격화되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는 나중에 고니시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렇게 수틀리면 고니시와 티격태격하다 보니 징비록 갤러리에서는 이 둘을 톰과 제리에 비유하기도 하며, 징비록에서 선조의 행동과 당쟁이 벌어진 직후 가토가 등장하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1562년 생으로 임진왜란 출정 당시 나이는 만 30세였다.

가토와 그의 앙숙인 고니시를 연기한 배우 이정용과 이광기는 두명 다 야인시대에 출연했었다. 이정용은 주인공 충실한 부하 역을 맡았고, 이광기는 2부 메인빌런 경호원 역을 맡았다.

4. 관련 문서



[1] "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다", "한국 사극의 중2병화냐"고 까는 사람들도 있다. [2] 야인시대에서 김관철(야인시대)를 맡았다. [3]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후반부부터 삭발을 했지만 이번 징비록에서는 시작 전 부터 삭발을 했다. 다큐3일 징비록 촬영현장 편에서 이유가 나오는데 분장 문제를 언급한다. [4] 사실 이 가토의 갑주는 불멸때도 착용하긴 했었다. [5] 당시 가토는 막 3천 석의 다이묘에서 구마모토 방면의 약 19만 석의 다이묘로 승진했다. [6] 임진왜란 말기에 조선군에 포위당해서 꼼짝을 못할 때 군마를 도축해 먹어야만 할 정도로 엄청나게 식량난에 시달렸고 실제로 그게 한이 맺혀서 구마모토 성을 축성할 때 다다미를 토란 줄기로 만들고 우물을 120개나 파고 사과나무 배나무 등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나는 나무로 도배를 하는 등 그야말로 음식에 제대로 환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7] 왜구들이 중국 남해안을 곧잘 침탈했고 조선의 전라도 지역으로 자주 침입한바 있으니 왜선은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그런 능숙한 항해가 가능한 항해술을 보유한건 '왜구'지 20만이 넘는 정규 '왜군'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원양항해 경험이 있는 해적영주들은 임란때 육전에 투입된 경우가 태반이었으며, 원거리항해는 위험성이 너무 높다. 바다라는 것은 범선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변덕스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으며, 그래서 나라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원거리 항해를 당시 사람들은 위험한 행위로 인지했기에 바다에 대해 잘 모르는 가토가 그런 의견을 냈다는 사실 자체에 문제가 있다. [8] 이때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 기다리라는 고니시에게 "할지를 요구한게 아니라 무조건 항복하겠다고 사신 보낸거 아니냐"고 정확하게 짚기도 한다. [9] 이는 훗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가토가 동군 편에 서는 암시였다. 허나 가토 기요마사가 동군편을 든 이유는 서군 측에 있는 이시다 미츠나리 고니시 유키나가와 사이가 안 좋은 탓이 컸고, 세키가하라 전투에 동군이 된 것 역시 이시다 미츠나리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물론이고, 미츠나리를 "어린 히데요리님을 끼고 도요토미가를 좌지우지하려는 간신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당초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쿠가와 대 도요토미의 항쟁이 아니라 도요토미 가 내부 권력투쟁의 성격이 더 강하다. 실제로는 죽을 때까지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충성했다. [10] 결국 이 전쟁에서 태합도 자신도 손에 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자조하는 가토에게, 부하가 "그래도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에 씁쓸하게 웃는다. [11] 앞에서 보듯이 히데요시가 네 마누라를 먼저 이겨야될 거라고 농담을 하자 가토가 자기가 봐주니까 아내가 그러는 거라고 변명했다. 실제 가토는 이 당시 아내가 있었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다. 한편 마사노리는 아내가 집 현관에서 치도를 휘두르자 급히 도망치고는 내가 전장에서는 도망친 적이 없는데 마누라 앞에서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는 일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