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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S 퀸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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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건조사3. 드라마틱한 생애4. 제원
4.1. 탑승객
5. 후계선: RMS 퀸 메리 2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RMS Queen Mary[1]
(1934 ~ )

1. 개요

영국 존 브라운 앤드 컴퍼니[2]에서 건조하고 영국 큐나드 라인에서 운영했었던 대서양 정기 여객선. 모항은 리버풀이고 자매선으로 1940년에 건조된 RMS 퀸 엘리자베스가 있다.

2. 건조사

1920년대 후반, 아직 항공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3]이라 유일한 대양간 이동수단인 정기 여객선의 위상은 엄청났다. 전함과 마찬가지로 대양 여객선은 해당 국가의 부와 기술력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유럽에서 나름 잘나간다는 강대국들은 대형여객선 건조에 열을 올렸다.

1928년 8월, 독일이 5만톤급 정기 여객선인 SS 브레멘과 자매선 SS 유로파[4] 진수하자 영국 역시 대형 여객선 건조를 박찼고 그 첫번째 답변이 화이트스타 해운[5]의 6만톤급 정기 여객선 RMMV 오시애닉[6][7] 의 오더였다. 큐나드는 라이벌 회사인 화이트스타 해운마저 신예 정기 여객선 건조에 들어가자 7만 5천톤급 정기 여객선 건조계획을 세운다.

1929년 4월 3일, 오더가 접수되었고 이듬해 12월 1일, 스코틀랜드 클라이드뱅크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아직 명명식 이전이라서 선체번호 534번으로 불리었다. 건조중인 1931년 12월에는 대공황이 불어닥쳐 건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결국 완성되어 1934년 9월 26일 진수식이 거행되었고 드디어 선체번호 534번이라는 가명 대신 메리 왕비[8][9]의 이름을 딴 RMS 퀸 메리로 명명되었다. 사실 큐나드의 정기 여객선들은 명칭 끝자리가 'ia'로 끝나게 명명하는것이 회사 전통이여서 RMS 퀸 빅토리아(Queen Victoria)로 명명할 예정이었지만,
1. 큐나드 라인 간부가 지나가는 말투로 조지 5세에게 여기에다 왕비의 이름을 붙이는 걸 제안했는데 그걸 기억한 조지 5세가 다시 메리 왕비에게 "당신 이름 붙여도 되냐고 물어보던데?"라고 말하자 메리 왕비가 응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2. 큐나드 라인 간부가 조지 5세에게 "영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Queen(여왕)의 이름을 붙이려고 합니다"라고 했더니 조지 5세가 대뜸 "오, 내 마누라(왕비)가 열라 좋아하겠군!"하는 바람에 퀸 메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출처 : 리더스 다이제스트 세계상식백과)
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이후 빅토리아는 2007년이 되어서야 자기 이름을 가진 여객선을 얻게 되는데 이 시점에는 이미 여객선은 승객수송용이 아닌 관광용으로만 쓰이게 되어서 잘 알려지지는 않게 된다.

사실 RMS 퀸 메리가 진수되기 1년 전 TS 퀸 메리라는 소형 여객선이 먼저 퀸 메리 선박명을 가져갔었다. 그 탓에 큐나드는 자신들의 대형 여객선의 명성에 흠이 될까봐 TS 퀸 메리 운영 선사였던 윌리엄슨 뷰캐넌(Williamson-Buchanan Steamers)과 협상을 하였고 결국 TS 퀸 메리는 TS 퀸 메리 2로 개명된다.[10] 두 여객선이 모두 퇴역한 지금 TS 퀸 메리 2는 다시 본래 이름으로 돌아와 스코틀랜드에 영구보존중이며, 프린세스 로열 앤의 지원하에 2024년까지 전면 재검수를 거쳐 여객 운항을 재개할 예정이다.

3. 드라마틱한 생애

1936년 5월 27일, 에드거 T. 브리튼 선장이 지휘하는 가운데 영국 사우스햄튼을 출항하여 미국 뉴욕으로 처녀항해를 떠났다.

처녀항해 내내 최고속도로 순항했지만 뉴욕 도착 마지막 날, 짙은 안개로 어쩔수없이 감속하여 블루리본[11] 타이틀을 놓치게 된다.

결국 동년 8월, 서향 30.14 노트(55.82km/h, 34.68mph), 동향 30.63노트(56.73km/h, 35.25mph)라는 미친 평균속도를 기록하며, 주 경쟁 상대인 8만 3423톤급 프랑스 선적 여객선 S.S 노르망디로부터 블루리본 타이틀을 뺏어오는데 성공한다. 이때 열폭한 SS 노르망디는 새로운 프로펠러를 장비하는 등 선체를 개량하여 1937년, 블루리본 타이틀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지만 이듬해 서향 30.99노트(57.39km/h, 35.66mph), 동향 31.69노트(58.69km/h, 36.47mph)의 평균속도를 기록한 'RMS 퀸 메리'에게 또다시 타이틀을 뺏긴다(...). 이 타이틀은 1952년, 미국의 쾌속 정기 여객선인 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가 35노트(65km/h, 40mph)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내며 블루리본 타이틀을 뺏어갔고, 이후 다시는 깨어지지 않았다.[12]

1939년 8월 말. 세계적으로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뉴욕에 도착했었던 RMS 퀸 메리는 순양전함 HMS 후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대서양을 횡단[13], 사우샘프턴으로 무사히 귀항한다. 세계적인 전운이 불어닥치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앉아서 손만 빨고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시 출항하여 9월 1일, 뉴욕에[14] 도착한다.

그리고 뉴욕에 도착한 바로 그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전쟁이 터지자 정기 여객선 항로는 당연히 폐쇄되었고 RMS 퀸 메리는 만리타향 뉴욕에서 발이 묶인다. 우연히도 한때 불티나게 경쟁했었던 S.S 노르망디 역시 뉴욕에 도착해 있었고 동병상련의 초대형 정기 여객선 두척은 항만 한쪽 구석에 나란히 정박하여 추후 공문이 떨어질때까지 대기하는 신세가 되었다.

1940년 3월, RMS 퀸 메리의 자매선인 RMS 퀸 엘리자베스가 뉴욕으로 합류한다. 당시 세계에서 거대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기 여객선 세척이 한자리에 모여 발이 묶여있자 연합군 지휘부는 자연스럽게 "이거 어차피 운항도 못하는데 병력 수송선으로 써볼까?"라는 계획을 새우게 되었고 이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세 여객선은 병력 수송선으로 개조되었다. 호화로운 장식품이나 기타 불필요한 것들 특히 불에 타기 쉬운 소재들은 가급적 제거하고, 침대 증설 등 최대한 많은 병력을 수용할수 있도록 개조하는 것이었는데, 이 개조 과정 중 S.S 노르망디에서 화재가 발생, 항만에서 전복되면서 스크랩 처리된다.[15] 병력 수송선으로 개조가 되면서 RMS 퀸 메리는 기존의 화려한 도색 대신 회색 바탕의 위장 도색을 하게 됐는데 특유의 미칠듯한 스피드와 어울려 연합군 장병들에게 '회색 유령(Grey Ghost)'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는 그 유명한 USS 엔터프라이즈의 별명이기도 하다.

화재로 망실된 SS 노르망디를 제외한 두 척의 정기 여객선들은 제2차 세계 대전 간 가장 크고 빠른 병력 수송선이였다.[16]

한큐에 15,000여명의 병력(1개 사단급 병력)을 수용하고 대서양을 횡단한 기록도 있고 미칠듯한 스피드를 백분 활용해 단독으로 대서양을 고속주파하여 크릭스마리네 U보트들이 달라붙을 틈을 남기지 않았던 흠좀무스런 기록도 있다.[17] 그리고 이 경험을 기억한 미 해군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에서 신형 여객선 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를 건조할 때 여객선 회사와 합의하여 전함급의 초대형 기관을 때려박고 설계 당시부터 군용 수송함으로 전용 가능하도록 군함 규격으로 설계했으나... 10년이 지나지 않아 제트 여객기/수송기의 시대가 와버렸다.

이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건이 2개가 있었다.

  • 1. 1942년 10월 2일, 미 29보병사단을 싣고 혹시 유보트가 공격을 해도 피할 수 있게 지그재그 항해를 하다가 호위함인 영국 해군 C형 세레스(Ceres)급 경순양함(5,000톤급) HMS 큐라소(Curacoa)를 실수로 들이받아 침몰 시켜버려서 큐라소의 승조원 338명 중 239명이 사망하였다. 큐라소는 둘로 쪼개져 금방 침몰했지만, RMS 퀸 메리는 선수 하부가 살짝 우그러든것 외에 별 피해없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워낙 배 높이가 높고 선수의 길이도 길어 선교에서 경순양함이 보이지 않았기에 발생한 사고로, 체급 차이가 워낙 컸던 탓에 퀸 메리의 선교에선 충돌 직후 약간 흔들린 거 외엔 별다른 충격도 느끼지 못했고, 무선 침묵중이라 퀸 메리의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순양함을 팀킬했다는 사실을 입항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구조를 위해 속도를 줄였다가 유보트의 어뢰에 피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조를 금지한 규칙에 따라 다른 상선들도 그냥 제 갈 길을 가고, 큐라소의 생존자들은 영국 해군 호위함이 구조했다. 입항 후 조사 및 재판이 열렸지만, 인간의 힘으로 불가항력이었다 하여 딱히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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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1942년 12월, RMS 퀸 메리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는다. 뉴욕에서 16,082명의 미 육군 병력을 승선[18]시키고 영국으로 향하던 중 스코틀랜드 700마일(1,100km) 해상에서 92피트(28m) 높이의 초대형 파도(Rogue wave)를 측면에 얻어맞은것인데 이 여파로 8만톤이 넘는 여객선이 측면으로 52도까지 기울어지는 상황이 펼쳐졌었다. 훗날 조사결과 3도만 더 기울어졌으면 복원력을 상실하고 전복했을 것이라 하는데 만약 전복했으면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는 물론, 9400명이 사망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사고를 뛰어넘는 초대형 해난사고로 기록됐을 것이다.

소설가 폴 갤리코가 이 사건에 영감을 얻어 소설로 쓴것이 바로 ' 포세이돈 어드벤쳐(The Poseidon Adventure)'. 동명의 영화 시리즈가 매우 유명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RMS 퀸 메리는 다시 정기 여객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 1946년 9월부터 1947년 7월까지 10개월 동안 병력 수송선에서 여객선으로 개장 공사를 마치고 자매선인 RMS 퀸 엘리자베스와 함께 대서양의 투톱 정기 여객선으로 활약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급격히 발전하는 항공산업에 반비례하여 대서양 정기 여객선의 인기는 한 없이 떨어지고, 불어나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큐나드는 결국 1967년 12월 9일, RMS 퀸 메리를 퇴역시킨다.

퇴역한 RMS 퀸 메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해변에 영구 정박되어 해상 박물관 및 호텔로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롱비치 아마추어 무선클럽(호출부호 W6RO)의 통신소도 이곳에 입주해 있다. 또한 지금도 뱃고동이 시보장치로 쓰이고 있어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19] 매 정각마다 뱃고동이 장음으로 1회씩 울리며, 때문에 관람객들이나 지나가던 행인들이 당황해하기도 한다. # #2 #3 #4 뱃고동 소리가 방귀 소리같다.

현재 퀸 메리호는 현재 침수문제로 선체붕괴 및 전복 가능성이 제기되어지고 있다.[20]

2022년경에 대대적인 보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기 여객선 서비스 기간동안 2,112,000명이 넘는 승객들을 승선시키고 대서양을 횡단했으며 누적 항해거리는 3,792,227마일(6,102,998km)로 기록되었다.

4. 제원

  • 기공 : 1930년 12월 1일
  • 진수 : 1934년 9월 26일
  • 취역 : 1936년 5월 27일
  • 퇴역 : 1967년 12월 9일
  • 만재 배수량 : 81,961톤
  • 톤수 : 81,237톤
  • 전장 : 1,019.4피트 (310.7m)
  • 전폭 : 118피트 (36m)
  • 높이 : 181피트 (55.2m)
  • 흘수 39피트 (11.9m)
  • 갑판 : 10층
  • 주기관 : 24x Yarrow 보일러, 160,000 마력(120,000kW)
  • 추진체계 : 파슨스 싱글 기어드 증기터빈, 4축 추진
  • 순항속도 : 28.5노트 (52.8km/h, 32.8mph)
  • 최대속도 : 32노트 (59.3km/h, 36.8mph)
  • 승객 : 2,139명
  • 승무원 : 1,101명
  • 무선 호출 부호 : GBTT
  • 선령 : [age(1934-09-26)]년

4.1. 탑승객

  • 승무원 : 1,101명
    • 선장 1명
    • 항해사 25명
    • 기관사 80명
    • 사무장 1명
    • 선원과 기술자 100명
    • 선실담당(남) 200명
    • 선실담당(여) 200명
    • 웨이터 200명
    • 주방장 50명
    • 요리사 200명
    • 의사 1명
    • 외과의사 1명
    • 간호사 50명
  • 승객 : 2,200명
    • 일등실 800명
    • 이등실 800명
    • 삼등실 600명

출처 : 크로스 섹션 시리즈 '크로스 섹션'

5. 후계선: RMS 퀸 메리 2

자세한 것은 RMS 퀸 메리 2 문서 참조.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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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생애
재위 시기 왕비 시절 ( 제1차 세계 대전)
왕대비 시절 ( 제2차 세계 대전)
대왕대비 시절
가족 관계 가족 관계
아버지 프란츠 폰 테크 · 어머니 메리 애들레이드 · 배우자 조지 5세 · 동생 알렉산더 케임브리지 · 장남 에드워드 8세 · 차남 조지 6세 · 장녀 프린세스 로열 메리 · 3남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 4남 켄트 공작 조지 왕자 · 5남 영국의 존 왕자
기타 영국 · 윈저 왕조 · 대영제국 · RMS 퀸 메리 · RMS 퀸 메리 2 · 퀸 메리급 순양전함 · 퀸 메리 런던 대학교 · 켄싱턴 궁전 · 더 크라운 ( 테크의 메리(더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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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몆 안되는 오리지널 오션라이너 [2]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참전의 직접적인 원인이였던 RMS 루시타니아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격침당한 전함 HMS 후드를 건조했었던 회사. [3]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무착륙 단독 횡단비행을 성공시킨 게 1927년이다. [4] 여담으로 이 배는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침몰한 8만톤급 여객선 SS 노르망디에 대한 보상으로 프랑스로 넘어가 활동했다. 참고로 SS 노르망디는 RMS 퀸 메리의 최대의 경쟁자였다. [5] 그 유명한 타이타닉의 운영 회사. 훗날 큐나드에 인수된다. [6] 건조중 재정악화로 건조 취소된다. [7] 대양 같은이란 뜻도 있다 그래서 인지 RMMV 대양 이라고 불린다. [8] 우리가 흔히 아는 네임드 메리 여왕인 메리 1세가 아니라 조지 5세의 배우자인의 테크의 메리(Mary of Teck) 왕비. 영어로 여왕이나 왕비나 둘다 'Queen'이기 때문에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9] 참고로 조지 5세는 당대 신형 전함의 명칭으로 붙여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킹 조지 5세급 전함. [10] 이때 큐나드는 감사의 의미로 테크의 메리 초상화를 선물했고, TS 퀸 메리 2의 라운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11] Blue Riband, 대서양 정기 여객선들의 속도경쟁 정점으로 최단시간내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에게 부여하는 상. [12] 사실 지금까지 안깨지고 있는 이유는 각국의 해운사들이 더이상 블루리본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 가장 크며, 현대에 들어서는 여객선을 능가하는 교통수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속도 면에서는 어차피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대양여객선은 호화 크루즈 쪽으로 발전하는 추세다. [13] 당시 대서양 횡단 여객선의 위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 [14] 이 경로는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을때 타이타닉의 경로와 같다. [15]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화재로 전복된 S.S 노르망디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독일에서 전리품으로 얻어낸 SS 오이로파를 프랑스에 양도했다. [16]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이기도 하였다. [17] U보트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대전기 U보트는 수상 속력이든 수중 속력이든 후기형도 아무리 밟아봐야 속력이 퀸 메리의 절반도 안 됐다(...) [18] 무려 1개 사단급 병력을 한번에 싣고 간 것으로, 당시 단일승선 인원수로 세계 신기록(...) [19] 예외적으로 어스아워 행사가 있는 날에는 소등을 알리기 위해 오후 8시에도 울린다. [20] 자매선인 RMS 퀸 엘리자베스도 직접적인 침몰원인이 단순히 화재가 아니라 선체가 붕괴되어 침몰했다. 퀸메리호는 선체 노후화로 인해 부식이 심하게 되어 선체붕괴가 되면서 침몰 가능성이 제기된거고 퀸엘리자베스호는 화재로 인해 선체 폭발하면서 선체가 붕괴되어 침몰했다. 건조된지 90년이 다 되어가는 선체여서 그런 지 이제는 해체해야될때가 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만 관리측이 바보가 아니기에 이부분을 계속 신경쓰며 보수하고있긴하다. [21] 영화에 등장하는 선박이 퀸 메리호를 모티브로 하였다. [22] 크로스 섹션에 등장한다. 표지 그림도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