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1:51:49

2018년 코스타리카 총선거




1. 개요2. 명칭3. 배경4. 각 정당별 상황5. 여론조사6. 결과
6.1. 대통령
6.1.1. 1차6.1.2. 2차
6.2. 국회의원
7.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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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8년 2월 4일에 열린 코스타리카의 총선거.

2. 명칭

코스타리카를 비롯한 웬만한 중남미 국가들은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며, 따라서 이 선거는 대선을 중심으로 서술하되 총선에 대해서도 다루게 된다. 뭐 국내에서는 종종 "대선"이라고만 부르며 스페인어 프랑스어판 위키백과 문서도 "대선"이라고 하고 있지만, 영어판은 "총선"이라고 한다. 물론 2018년 코스타리카 대통령 선거도 리다이렉트로 처리된다.

3. 배경

시민행동당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가 2014년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최초의 시민행동당 정부 출범과 동시에, 그간 민족해방당 사회기독통합당의 주류 정권의 종식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유야 민족해방당 정권의 실책이 컸지만 무엇보다도 기성세대들에 불만을 갖고 새정치를 갈망하는 코스타리카인들의 마음이 반영되었던 것이 원인.

그러나 집권하자마자 계파 갈등에 직면하면서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기 시작했고, 이어 원내 1당 지위를 여전히 유지한 민족해방당이 제1야당을 빌미로 솔리스의 각종 정책에 발목을 잡았는데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해, 2016년 코스타리카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참패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이 여파로 안그래도 떨어지던 솔리스의 지지율에 제대로 결정타를 날려버렸고 결국 차기 대권을 빼앗길 것이 확실해진 상태..였지만 대역전승으로 여당을 유지하였다.

4. 각 정당별 상황

4.1. 시민행동당 (PAC)

집권당인 시민행동당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무능과 내분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를 타다가 지방선거까지 참패하는 굴욕 of 굴욕을 겪은 상태. 대통령 솔리스의 지지율이 겨우 10 ~ 20%밖에 안 되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더더욱이나 헌법상 현임 대통령은 다음에 두 번이나 출마할 수 없으므로 2026년부터야 비로소 재출마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후보를 새로 선출해야만 했는데, 문제는 집권당 꼬락서니가 개판인데 누가 나와도 결국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분위기.

그나마 강력한 후보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바로 시민행동당 창당의 주역이자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3번이나 출마했음에도 떨어진, 어떻게는 코스타리카의 이회창이라고 볼 수도 있는 오톤 솔리스. 무려 세 차례의 도전에도 떨어지자 2014년 4수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지지자들로부터 "꼭 나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허나 민족해방당의 상황이 개판이었던 당시에도 좀 불안불안했던 판에, 시민행동당의 꼬락서니가 이런 지금 와서 4수에 도전하려는 바보같은 자살 행위를 할 오톤이 아니었고, 결국 2017년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가망이 없어졌다.

뭐 가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또 다른 대안 강력 후보가 있기는 했다. 그는 바로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솔리스의 경쟁자로 나섰다가 떨어진 엡시 캠벨이었다. 여성[1]에다가 흑인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솔리스와 같은 개혁파에 비교적 대응되는 실용파(다소 보수적)라는 점 때문에, 솔리스의 이미지를 그나마 지울 수 있는 적자였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를 틈타 엡시는 경선에 출마를 선언했고, 여론 조사에서 오톤마저 누르면서 후보가 되는 듯 싶었는데... 3월 27일 사퇴를 선언했다.

결국 카를로스 알바라도 케사다와 웰메르 라모스 두 명만이 남게 되었는데, 문제는 오톤이나 엡시는 대통령과도 충분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고건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지만 이들은 쉽게 말하자면 정동영이나 이해찬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한마디로 상처투성이였으며 격하게 말하자면 쓰잘데기 없는 쓰레기나 다름 없었다. 둘 다 솔리스 정권의 내각에 입각했던 사람이었고 솔리스와고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 그나마 남은 둘이 그것도 진흙탕 경선을 벌이게 되었는데, 케사다는 개혁파로 솔리스에 매우 가까웠던 인사지만 라모스는 오톤계로 분류되는 실용파였다. 당장 대안 후보가 사라진 판국에서 라모스는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리라 믿었지만...

케사다가 비록 친솔리스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선택한 대통령"을 구호로 내걸어 포지티브를 강조한 반면, 라모스는 알바라도를 겨냥해 "너 같은 놈들"을 구호로 내거는 등 네거티브 공세를 취했다. 그런데 이게 역풍이 되었다. 대안 후보 지지자들에게는 둘 다 오십보백보였고, 역으로 네거티브를 쓰면서 타 후보를 저격하려는 라모스에게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

결과: 케사다 56%, 라모스 44%

결국 케사다가 56%로 과반득표를 해, 시민행동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4.2. 민족해방당 (PLN)

라우라 친치야 정권의 실책과 기성세대에 질린 민심의 결과, 그리고 조니 아라야의 뻘짓으로 2014년 정권을 잃은 민족해방당이었지만, 대선의 참패에도 정작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여전히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하면서 시민행동당 정권의 국정 운영을 방해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안그래도 시민행동당 정권이 각종 삽질로 망하면서 이를 이용해 "여당 심판론"을 내걸었고, 이에 지지율이 빠르게 상승해 2016년 지방선거에서 압승했으며 차기 대권까지 노려볼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민족해방당도 유력한 후보가 실종되어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후보가 바로 오스카르 아리아스로, 1986년부터 1990년까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을 지내면서 평화주의자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으면서 출마가 가능해진 2018년 민족해방당의 초강력 주자로 부상했고, 그 덕에 출마 요구가 있었지만, 2016년 9월 16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유는 자신이 너무 고령이라 "젊은 인재를 찾아야지 원로가 끝까지 버티면 안 된다"라고... 근데 어쩌면 이게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만약에 출마를 해서 당선되었으면 3선을 한 셈인데, 민주주의가 발달한 코스타리카는 장기집권 저지를 이유로 현임 대통령이 다음과 다다음 대선에 나오는 것을 막을 정도다. 그런데 민주 국가에서 금기 of 금기인 3선을 한다면, 평화주의자, 원칙주의자라는 아리아스의 이미지가 깨질 것이 뻔하기 때문.

당연히 이에 반등을 얻은 사람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로, 아리아스가 사라진 후 집계된 여론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20년 만에 대통령에 복귀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막 나돌기 시작했다. 중요한 점은 피게레스가 현대의 코스타리카를 구축한 국부인 호세 피게레스 페레르의 아들로서 그러한 부친의 후광을 얻는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덕분에 피게레스 대세론을 굳혀가는 듯 싶었는데...

그만 악재가 터졌다. 대통령 재임 시절 있었던 일련의 스캔들이 갑자기 재조명을 받기 시작하면서, 부친의 후광을 얻어 잘 나가던 경선 무드에 제대로 찬물을 끼얹은 것. 안그래도 현재 솔리스 또한 부패 논란을 받고 있는 와중에서, 이러한 "부패한 대통령"을 심판할 적자가 부패했으면 빼도 박도 못할 내로남불이 되는 셈이었다. 거기다가 코스타리카인들의 정치 수준이 만만치 않게 높아서, 이러한 부패 논란이 있는 후보를 부패 정권의 심판자로 내세우는 것을 달갑게 여길 리도 없었다.

결국 피게레스의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러던 2016년 11월 10일 안토니오 알바레스가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고, 아리아스의 지지를 전적으로 받으면서 지지율을 무섭게 상승시키기 시작했다. 2017년이 접어들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페게레스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4월 2일...

결과: 알바레스 45.56%, 피게레스 37.91%, 곤살레스 9.49%, 아이사 7.03%

알바레스는 무난히 민족해방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4.3. 사회기독통합당 (PUSC)

비록 분량은 적어도, 어쩌면 경선 부분의 진 주인공?

20세기 민족해방당과 더불어 코스타리카를 주도한 주요 양당의 하나였지만, 이 당 소속의 전직 대통령 2명이 스캔들에 휘말렸고 이 무렵 대통령이었던 아벨 파체코 또한 이 당 소속으로 있으면서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바람에, 졸지에 군소정당으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6년 3위는커녕 4위를 기록해 제대로 떨어지다 못해 총선마저 10석도 못 건지면서 그야말로 폭망했다.

그러나 2010년에는 비록 미약하지만 세를 아주 약간 불렸고, 2014년에는 그보다 좀 더 불렸으며 2016년 지방선거에서 시민행동당을 누르고 2위를 기록하면서, 10여년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재도약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선에서는 "대권의 적자"를 자처하며 2006년 이후 빼앗긴 정권을 12년 만에 되찾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곧바로 경선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기도 난항을 겪었는데 지난 2006년 대선에 도전했다가 제대로 K.O.를 당한 로돌포 피사 외에는 강력한 대권 주자가 없었다. 그나마 경쟁자로 라파엘 오르티스가 있었지만, 2016년 9월 ~ 10월 당시 당 한정으로 집계된 여론조사에서 딱 12%를 기록했을 뿐, 정작 전 국민, 전국적으로 조사된 여론조사에서는 10%를 넘긴 적이 없었다. 당장 제1의 라이벌이 이런데 다른 후보야는 말을 말자... 그로는 코스타리카 철도공사의 사장을 지낸 미겔 카라바기아스, 대마초 합법화를 지지하는 운동가인 제럴드 머레이가 있었지만 둘 다 불출마를 선언했다. 근데 불출마의 원인이 뭔가 봤더니 입당한 지 2년도 안 되어 경선 출마가 불가능했기 때문.

그리하여 피사 대 오르티스의 양자 대결로 진행되었고, 오르티스는 반(反)피사 진영의 대표주자로 나섰지만...

결과: 피사 69%, 오르티스 24%

피사가 69%를 얻어 과반은 물론 ⅔도 가뿐히 넘겼다. 반면 오르티스는 24%를 얻어 ¼도 못 얻었다.

4.4. 그 외 정당

주류 정당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좌파 색이 뚜렷한 시민행동당 정권을 심판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각계의 우파 정당들이 자기가 먼저 나가겠다고 안달인 상황이다. 그런데 역으로 이랬다가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처럼 강력한 우파들이 죄다 망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일부를 중심으로 코스타리카의 민주주의가 파괴될 것을 우려하는데, 이유는 바로 주류 세력들의 돌풍이 크지 못하고 오히려 극우 세력들이 갑작스러운 돌풍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중도우파 성향의 민족해방당과 일반 우파 성향의 사회기독통합당을 제외하면 죄다 강성 우파 내지 극우다.

일단 자유주의운동은 오토 게바라를 후보로 내세웠으나, 이 사람은 말하자면 2002년 이후 벌써 5수 상태다. 무려 4번을 나갔는데도 표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한 채 떨어졌다. 거기다가 시민행동당의 몰락을 틈 타 2016년 지방선거에서 그나마 반등을 노렸으나, 반등은커녕 오히려 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면서 앞으로의 미래마저 불투명한 상태. 게다가 게바라가 도널드 트럼프를 모티브로 우익 대중주의적 성향을 취하면서 이게 각계의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 안그래도 이에 대항해 당의 반대파들이 신당을 창당하거나 쇄신을 거친 사회기독통합당으로 들어간 상태.

이어 국가통합당[2]이 후안 디에고 카스트로를 후보로 선출했는데, 종종 트럼프나 두테르테와 비교되는 사람이다. 다만 그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사실은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워낙 코스타리카의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

정작 경선 문단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돌풍을 일으키는 후보가 하나 있는데, 그는 바로 기독교 우파를 전면으로 내건 국가재건당[3] 파브리시오 알바라도 무뇨스. 대놓고 동성애 반대를 정면으로 내걸면서 강성 우파들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현재 잘하면 결선 진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5. 여론조사

여기서 확인이 가능하다.

보듯이 한동안 1위를 기록해 파란을 일으킨 국가통합당 후안 디에고 카스트로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했으며, 비교적 대세론을 유지하던 민족해방당 안토니오 알바레스 후보도 하락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반면 얼마 전만 해도 지리멸실하던 국가재건당 파브리시오 알바라도 무뇨스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탔으며, 당연히 정권심판론 앞에서 K.O.를 당하리라 믿었던 시민행동당 카를로스 알바라도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사실 여당의 차기 대선주자가 제대로 망하는 줄 알았으나 막판에 돌풍을 일으킨 건 한국에도 있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이 또한 비슷한데 극우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불안감을 느낀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막판에 결집해, 다른 극우 후보가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일종의 심리로 보인다.

그동안 1위를 기록하며 잘 나가던 민족해방당이 하락세를 보이다가 급기야 시민행동당과의 격차가 좁아지면서, 잘못하면 정권심판, 대세론이 뒤집어지고 본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상태.

6. 결과

2월 4일 치러진 1차 선거 결과, 국가재건당(PRN)의 유일한 의원이자 초선의원인 파브리시오 알바라도 무뇨스 후보가 24.99%를 득표하였고 중도좌파 여당인 시민행동당(PAC)의 카를로스 알바라도 케사다 후보가 21.63%를 득표하였다. 전통적인 거대 양당인 민족해방당 안토니오 알바레스 후보와 사회기독통합당 로돌포 피사 후보는 각각 18.63%(3위), 15.99%(4위)를 기록하며 결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어느 한 명이 40%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였기에 4월 1일 2차 대선(결선)이 이루어진다. 이번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국가재건당의 파브리시오 알바라도 무뇨스 후보는 코스타리카의 트럼프라고 불리고 있으며, 코스타리카의 젊은이들 대부분은 파브리시오라는 그 이름만 들어도 흥분하고 화내는 상황... 이지만 은근히 파브리시오를 지지하는 젊은이들도 보이는 상황이다.

6.1. 대통령

그 누구도 40%를 득표하지 못해서 4월 1일에 결선이 치러지게 된다. 하지만 결선투표 여론조사에서 내내 접전이 벌어진 것과는 다르게 결선 투표에서는 중도층이 극우인 파브리시오 무뇨스에게 정권을 넘겨주면 안된다고 생각해 카를로스 알바라도 케사다에게 표를 몰아준 결과, 시민행동당 카를로스 알바라도 케사다가 60.59%라는 득표율을 획득하면서 예상을 깨고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4]

6.1.1. 1차

6.1.2. 2차

6.2. 국회의원

현역에다가 초선인 의원 1명이 다였던 극우 중소 정당인 국가재건당이 1차 대선에서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키고 총선에서도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무려 14명을 원내에 입성시키며 원내 제2당에 안착했고, 민족해방당은 대선에서는 3위를 기록하며 대참패를 당했지만 17명이 당선되면서 원내 제1당을 유지해 체면치레는 했다. 반면 대역전승으로 여당을 유지한 시민행동당은 10명을 당선시키며 원내 제3당에 만족해야 했다. 사회기독통합당은 단 9명을 당선시키며 4등.. 2014년 총선에서 9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진보정당 광역 전선은 8석을 까먹으며 단 1석만을 얻어 보수정당인 국가통합당(4석)과 사회기독공화당(2석)에 밀려 원내 제7당으로 밀려났다.[5]

7. 총평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에 힘입어 극우 세력이 활개를 펴나 싶었지만, 이를 경계한 민심의 반작용으로 집권당이 어부지리격 정권 유지에 성공한다.

집권당 시민행동당은 예상보다 선전해 여당 자리도 유지한다. 그러나 총선에서의 3당으로 여소야대 국면이 된 것은 아픈 지점.

민족해방당은 대통령 선거에서의 3등 타격은 컸지만 총선에서의 1당 유지로 체면치레는 했다.

사회기독통합당이 4당으로 몰락하면서, 상당수 지지층이 신흥 강호로 떠오른 극우 국가재건당으로 향한다.
[1] 하지만 솔리스의 전임자인 라우라 친치야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서, 이 사람이 나서서 당선되었다고 쳐도 최초는 전혀 아니다. [2] 민족통합당이라고도 불린다. [3] 민족중흥당이라고도 부른다. [4] 2002년 프랑스 대선도 중도층이 시라크에 표를 몰빵해준 결과, 결선에서 80%가 넘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수(득표율)를 기록하며 결선이 싱겁게 끝났다. [5] 물론 코스타리카의 국회의원은 모두 57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명 한명이 가지는 권력이 매우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