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9:10:09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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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Élection présidentielle française de 2002
파일:1024px-Élection_présidentielle_française_de_2002_T2_carte_départements_&_régions.svg.png
주별 결선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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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일시 1차: 4월 21일
결선: 5월 5일
투표율 1차: 71.60% ▼ 6.78%p
결선: 79.71% ▲ 0.05%p
선거 결과
후보 [[공화국연합|
공화국연합
]]
자크 시라크
[[국민연합(프랑스)|
국민전선
]]
장마리 르펜
1차
19.88%
5,665,855표
16.86%
4,804,713표
결선
82.21%
25,537,956표
17.79%
5,525,032표
당선인
공화국연합
자크 시라크

1. 개요2. 배경3. 1차 투표
3.1. 1차 투표 전3.2. 1차 투표 후
3.2.1. 1차 투표 결과 원인
4. 결선 투표
4.1. 결선 투표 전4.2. 결선 투표 후
5. 후폭풍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를 막고 투표하라"
-당시 프랑스 좌익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나돌던 말.[1]

2002년에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비판적 지지자의 사례를 보여주는 선거로 좌파 성향의 후보들이 1차 투표에서 대거 탈락하고 자크 시라크 장마리 르펜이 결선 투표에서 맞붙어 자크 시라크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한 선거이다.

2. 배경

때를 거슬러 올러가서 보자면 1997년도 당시 프랑스는 계속해서 경기침체에 시달리면서 실업률이 미친듯이 솟아올랐고[2]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정국이 불안해지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위기 반전을 위해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렀다. 즉 재신임투표같은 성격이었던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데 총선을 앞당겨서 치르다니 미친거 아닌가 싶겠지만, 프랑스 현대사에서 이미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1968년도에 학생과 노동자 시위가 폭발하면서 프랑스 전역이 혁명의 물결이 휩싸이는 68운동이 벌어지자,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은 오히려 사퇴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의회해산과 총선으로 몰고가는 승부수를 던진다. 그리고 혁명적 분위기에 위기감에 휩싸여있던 보수우파 유권자들의 대결집하면서 오히려 우파가 국민의회 의석의 2/3 이상을 차지하면서 단독 개헌선을 넘기는 역사적 대승을 거두었다.

항상 스스로를 드골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있던 시라크는 이 사례를 따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라크가 간과했던 것이 68운동은 베트남 전쟁과 권위적인 사회 분위기에 반발하는 이념적인 문제로 시위가 폭발했던 것이지만, 이번에는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폭발하는 등 경제문제가 주요하여 역효과가 제대로 일어나 집권당인 공화국연합을 포함한 우파가 대참패하였다. 반면에 한때 몰락 직전까지 갔던 프랑스 사회당이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공산당, 녹색당 등 좌파진영이 의석을 크게 늘려서 의회 과반수를 넘겨 버렸다. 의회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이원집정부제의 특성으로 좌파 대표로 사회당의 당수였던 리오넬 조스팽이 총리가 돼서 내각을 구성하면서 좌우 동거정부가 탄생하였고, 시라크는 결국 실권을 잃어버린다.[3][4]

계속해서 이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게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는 7년이었으나 하원 임기는 5년이었다. 즉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의회 해산을 한다 해도 결국 5년 안에 총선을 다시 치러야만 했고 이런 경우 대부분 정부심판론이 먹혀 여소야대 국회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5]

결국 좌우 모두 문제점을 느꼈고 마침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97년도에 의회 해산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대선과 총선 모두 2002년도 같은 해에 실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에 프랑스 주요 정당들이 합의해서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헌법개정안을 2000년에 국민투표에 붙였고, 이게 통과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대선과 총선이 다가왔다.

3. 1차 투표

3.1. 1차 투표 전

당시 상황은 좌파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1997년 총선에서 좌파진영이 승리하면서 프랑스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이끄는 좌파내각의 경제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낸 덕분에 실업률이 떨어졌고, 당연히 조스팽 총리의 인기는 매우 높아졌다. 그리하여 모두가 조스팽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에 비해 우파는 상황이 별로 안 좋았는데 총선 패배의 후유증으로 시라크가 주도권을 잃으면서 UMP와 UDF로 분열한 상황이라서[6] 딱히 기대를 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1995년도 처럼 리오넬 조스팽과 자크 시라크의 재대결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3.2. 1차 투표 후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2002. 4. 21.)
순위 후보명 정당 성향 득표수 득표율 결선 여부
1위 자크 시라크 공화국연합 (RPR) 중도우파 5,665,855 19.88% 진출
2위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 (FN) 강경우파 4,804,713 16.86%
3위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PS) 좌파 4,610,113 16.18% 탈락
4위 프랑수아 바이루 민주연합 (UDF) 우파 1,949,170 6.84%
5위 아를레트 라기예르 노동자 투쟁 (LO) 극좌 1,630,045 5.72%
6위 장피에르 슈벤망 시민운동 (MDC) 좌파 1,518,528 5.33%
7위 노엘 마메르 녹색당 (LV) 생태주의 1,495,724 5.25%
8위 올리비에 브장스노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LCR) 좌파 1,210,562 4.25%
9위 장 생조스 사냥, 낚시, 자연, 전통 (CPNT) 좌파 1,204,689 4.23%
10위 알랭 마들랭 자유민주당 (DL) 중도우파 1,113,484 3.91%
11위 로베르 위 프랑스 공산당 (PCF) 좌파 960,480 3.37%
12위 브뤼노 메그레 공화국운동 (MNR) 강경우파 667,026 2.34%
13위 크리스티앙 토비라 좌익급진당 (PRG) 좌파 660,447 2.32%
14위 코린 르파주 21세기를 위한 시민의식, 행동, 참여 (Cap21) 생태주의 535,837 1.88%
15위 크리스틴 부탱 사회공화포럼 (FRS) 우파 339,112 1.19%
16위 다니엘 글뤼크슈타인 노동당 (PT) 좌파 132,686 0.47%
선거인수 41,194,689 투표수 28,498,471 -
무효표수 997,262 투표율 71.60% -

득표율이 많이 저조하긴 했지만 자크 시라크는 어쨌든 1등으로 결선투표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연히 결선투표 진출에 성공할 것으로 예측되었던, 중도좌파의 대표선수인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아니라 뜻밖에도 극우파인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아무도 예상 못했던, 심지어 본인도 상대후보들도 이를 전하던 앵커도 당황했던 충격적인 결과였다.

르펜은 항상 득표율이 17% 안팎이었는데, 좌파 후보의 대난립으로 인해 다른 후보들의 득표율이 너무 낮아지면서 예상을 깨고 결선 투표까지 진출하고 말았다. 이 때는 1위로 결선에 나선 자크 시라크마저도 20% 득표에 실패했을 정도로 표가 엄청나게 분산되었다.

3.2.1. 1차 투표 결과 원인

가장 큰 원인은 좌파 후보의 난립.

워낙에 집권 우파와 시라크 대통령의 인기가 형편없다보니 중도좌파진영에선 이번엔 무조건 정권교체라는 안일함이 흘러넘쳤다. 때문에 보통 1차선거부터 정책연합과 후보단일화를 하던 프랑스 사회당, 프랑스 공산당, 녹색당, 좌익급진당 등 중도좌파 진영이 모두 독자출마하였다. 어차피 인기가 높은 사회당의 조스팽 총리가 결선투표에 진출해서 대통령에 당선될거라고 예상하고, 다른 좌파정당들은 다가오는 의회 총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의 세력확대를 위해서 나선 것이다.

여기에 극좌파 정당, 비제도권 극좌파들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대거 출마하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등을 외치면서 주로 거리에서 투쟁해온 이들이 급진적인 구호를 들고 선거에 등장하면서 새바람을 일으켰다. 극우파 장 마리 르 펜의 약진에 많이 가려졌지만, 1차투표에서 노동자투쟁(LO)의 아틀라트 라귀에 5.72%,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LCR)[7]의 올리비에 브장스노 4.25% 등 극좌파 진영에서도 도합 10%가 넘는 득표를 하였다.

이렇게 되자 정작 좌파의 대표선수로 여겨지던 조스팽의 득표율은 고작 16.2%에 그치면서 광탈해버린다. 참고로 그 이전 1995년 대선에서 조스팽은 1차투표에서 23.3%, 결선투표에선 47%를 얻었다.

사실 1차투표에서 중도좌파와 극좌파 후보들의 득표율을 다 합쳐보면 무려 60%가 넘는다. 프랑스 사회당도 기득권이라 공격하면서 협력을 거부하는 극좌파 진영의 10%를 빼도 결선투표 당선을 위해 필요한 50%에는 충분하다.

한편 극우세력인 르펜과 국민전선은 총선과 대선 때마다 1차투표에서 항상 10% 초반 정도를 득표해왔다. 그런데 2002년 대선에선 시라크 대통령이 워낙에 인기가 없다보니 여러 후보한테 표가 분산되었고, 일부 유권자들이 외국인 노동자와 이슬람을 공격하면서 선동적인 구호를 외치는 극우파 장마리 르펜으로 옮겨간 것이다.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모두가 표가 분산되었고, 극우와 극좌 모두가 돌풍을 일으킨 선거이다.

4. 결선 투표

4.1. 결선 투표 전

1차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공화국을 사수하자'라면서 전국적인 르 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1998년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국민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은 인터뷰에서 "장마리 르펜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더 이상 레 블뢰의 대표로 뛰지 않겠다!"고 분노어린 발언으로 그를 비난했다.[8]

당시 좌파 성향 유권자들은 "우파 시라크도 맘에 안 들지만 극우 르펜 보다 백만배는 낫다!"면서 시라크에게 몰표하자며 독려하였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도 " 파쇼보다 부패한 놈을 뽑자"며 자크 시라크를 지지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를 의식한 듯이 장마리 르펜도, "르펜이냐! 지단이냐! 선택하라!" 라는(...) 슬로건을 내밀었다.

물론,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 축제 분위기였으며, 그의 딸 마린 르펜은 눈물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4.2. 결선 투표 후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 (2002. 5. 5.)
순위 후보명 정당 성향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1위 자크 시라크 공화국연합 (RPR) 중도우파 25,537,956 82.21% 당선
2위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 (FN) 강경우파 5,525,032 17.79% 낙선
선거인수 41,191,169 투표수 31,062,988 -
무효표수 1,769,307 투표율 79.71% -

결국, 자크 시라크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전체 투표자 31,062,988명 중에서 25,537,956 표를 득표하면서 무려 82%가 넘는 득표율과 동시에 2,500만표를 넘긴 유일무이한 대통령이 되었다. 사실상 1차 투표 때 르펜을 찍었던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르펜을 찍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5. 후폭풍

결선투표제 때문에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항상 개나 소나 모두 출마한 다음에 결선 투표에 진출한 후보를 중심으로 좌-우 진영이 뭉치는 형태였다. 거기에 극우 극좌 후보는 대체로 득표율이 한 자리대라서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중도우파 후보 1명, 중도좌파 후보 1명이 결선투표에서 맞붙는 구도였다. 그런데 이 법칙이 극우와 극좌의 약진과 함께 2002년도에 무참히 깨져버린 것이다. 이런 결과에 놀란 프랑스 정치권은 이후 선거부터는 사전에 확고한 정책연합과 후보단일화를 구성한 이후에 1차투표에 임하고 있다.

당시 현역 총리이자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리오넬 조스팽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게(3위 탈락이) 사실이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 라는 폭풍 선언을 해버렸고 결국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게 됐다. 덕분에 좌파진영은 대거 멘붕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도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패배하는 등, 한동안 힘을 못쓰다가 간신히 2012년에 프랑수아 올랑드가 승리하면서 프랑수아 미테랑 퇴임 이후 17년 만에 다시 정권을 되찾아 왔다.

반대로 우파는 축제 분위기 였으며 뒤이어 치러진 총선에서 프랑스 하원 577석 중에서 무려 357석을 가져가는 대승을 거두며 자크 시라크는 다시 실권을 되찾았고 임기 12년을 무사히 마치고 퇴임하였다.

사실 시라크의 경우에는 3선 출마도 가능했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만 해도 프랑스 헌법에는 연임 제한이 없었기에 잘하면 17년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게 흠이었고 2004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고 2005년에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유럽연합 헌법 비준안 마저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레임덕이 극심하게 와버린 바람에 결국 2007년 대선 막바지에 재출마를 포기했다.

6. 관련 문서



[1] 왜 코를 막고 투표하라고 했냐면 코를 막고 음식을 맛보면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 해석하자면 르펜이 대통령 되는 꼴은 못보니 시라크를 뽑으라는 말이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된 이유는 후술. [2] 어느 정도 였냐면 강레오 셰프가 본래 프랑스에 가서 요리공부를 하려 했으나 당시 프랑스의 실업률이 심각하여 영국으로 갔었다고 한다. [3] 프랑스에선 동거정부가 구성될 경우 내정을 관장하는 총리가 실권을 쥐게 된다. [4] 사실 이것도 본인이 자초한거다. 1986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 우파가 과반을 점하자, 본인이 총리에 오른 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조기대선을 요구했었다. 그러자 미테랑 대통령이 조기대선 대신 내치에 관한 모든 권한을 넘겨주는 선에서 합의한 거다.(핵발사권과 외교대사 임명권같은 외치 제외) 애초에 이러한 관례를 만든 원인이 본인이었고, 그대로 되돌려 받은 것. [5] 프랑수아 미테랑도 당선되자마자 한번, 재선하자마자 또 한번 의회를 해산했다. 하지만 이렇게 과반수를 넘겼어도 매번 그뒤 총선에서 패배해 국정운영권을 상실 했었다. [6] 원래 프랑스 우파는 항상 선거 때마다 유력 후보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 결선투표제가 이런 상황을 부추기기도 했고.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미국의 공화당 등의 다른 서방 주요 국가들에 비해 역사가 오래된 보수우파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7] 다른 극좌파 그룹과 통합하여 2009년 반자본주의신당으로 새롭게 창당하였다. [8] 참고로 당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불과 한달 전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