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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코 F. 후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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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코 F. 후지오 후지코 후지오 A
1억부 클럽 만화(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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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만화 작가 연재 기간 권수 수치
1위 원피스 오다 에이치로 1997년 ~ 연재 중 92권 4억 5700만부
2위 드래곤볼 토리야마 아키라 1984년 ~ 1995년 42권 2억 5000만부 ~ 3억부
3위 나루토 키시모토 마사시 1999년 ~ 2014년 72권 2억 5000만부
4위 명탐정 코난 아오야마 고쇼 1994년 ~ 연재 중 95권 2억 3000만부
5위 고르고13 사이토 타카오 1968년 ~ 연재 중 191권 2억부
6위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아키모토 오사무 1976년 ~ 2016년 200권 1억 5700만부
7위 맛의 달인 카리야 테츠(원작)
하나사키 아키라(그림)
1983년 ~ 2014년(휴재) 111권 1억 3000만부
8위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1990년 ~ 1996년 31권 1억 2600만부
9위 블리치 쿠보 타이토 2001년 ~ 2016년 74권 1억 2000만부
10위 철완 아톰 데즈카 오사무 1952년 ~ 1968년 27권 1억부
10위 도라에몽 후지코 F. 후지오 1969년 ~ 1996년 45권 1억부
10위 터치 아다치 미츠루 1981년 ~ 1986년 26권 1억부
10위 북두의 권 부론손(스토리)
하라 테츠오(작화)
1983년 ~ 1988년 27권 1억부
10위 죠죠의 기묘한 모험 아라키 히로히코 1987년 ~ 연재중 124권 1억부
10위 소년탐정 김전일 아마기 세이마루(스토리)
사토 후미야(작화)
1992년 ~ 연재중 74권 1억부
출처 1 / 출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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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코 F. 후지오
藤子 F. 不二雄 |Fujiko F. Fujio
파일:img_fujiko.jpg
필명 후지코 F. 후지오 ([ruby(藤子 F. 不二雄, ruby=ふじこ・エフ・ふじお)])
본명 후지모토 히로시 ([ruby(藤本 弘, ruby=ふじもと ひろし)])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png
출생 1933년 12월 1일
일본 제국 도야마현 타카오카시
사망 1996년 9월 23일 (향년 62세)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직업 만화가, 작가
서명 파일:m242564495.1.jpg [1]
{{{#!folding [ 그 외 정보 펼치기 · 접기 ] 학력 토야마현립 타카오카 공예 고등학교 전기과 졸업
배우자 후지모토 마사코
자녀 슬하 3녀
데뷔 천사의 타미짱 (1951년)
장르 SF, 아동, 개그, 일상물
활동 기간 1951년 – 1996년
링크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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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특징4. 작품 목록5.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6. 출연
6.1. 영화6.2. 텔레비전
7. 트리비아8. 수상 경력9. 틀 둘러보기

1. 개요

파일:91ZEaOsoodL.jpg
그가 만든 캐릭터들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만화가 중 한 사람. 1951년 후지코 후지오 A(이하 A)와 같이 마이니치 소학 신문에 투고한 천사의 타마짱이 채용되어 연재되면서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생전 그가 발표한 만화들은 일본 만화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2. 생애

어린 시절 자주 질병에 걸린 일을 이유로 따돌림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2]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생의 절친 후지코 후지오 A를 만났으며, A와 매일같이 서점을 찾아 출간된지 얼마 안됐던 테즈카 오사무 만화들의 초판을 모두 사서 모으기도 했다. 여기서 후지코 F. 후지오의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테즈카 오사무로, 생전 데즈카를 스승처럼 존경했었으며 테즈카의 만화들에 너무 감격한 나머지 아무한테나 테즈카 만화들을 보여주면서 상대가 다 읽을 때까지 곁에 있었는데, 그다지 재미있어하지 않으면 바로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고 한다. 극초기 그림체는 테즈카 오사무의 판박이었으며, 데뷔 초기 필명도 테즈카 오사무에서 따온 "아시즈카 후지오"라는 필명을 사용했었을 정도. 테즈카의 작품에 특별한 생각을 가지며 언젠가 테즈카 선생같은 멋진 작풍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테즈카를 무척이나 신봉했던 나머지, 월간 코로코로 코믹의 초대 편집장이 테즈카에 대한 비판을 토로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1주일 가까이 사무소에 출입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우선 취직하기로 마음먹어 제과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로 만화를 그릴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해 며칠 뒤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만화가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봄방학 시기에 테즈카 오사무를 만난 적도 있었다. 이 무렵 자신이 과연 만화가로서 잘 해나갈수 있을지 불안했었는데, 그에게 너희라면 해나갈 것이란 말을 듣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론 집에서 만화를 집필하는데 전념하며 휴일엔 신문사에서 일하던 A와 함께 만화를 그렸고, A를 꾸준히 권유한 끝에 1954년 도쿄로 도착해 후지코 후지오로 필명을 바꾸고 토키와 장에 입주해 다른 동료 만화가들의 작업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제로를 설립한 후론 만화를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A와 공동으로 그린 요괴 Q타로, 자신의 단독 만화인 퍼맨은 상당한 히트를 쳤으나 21에몬, 우메보시 덴카, 우주에서 온 모자코는 오래가지 않아 연재가 종료되는데 그치면서 몇년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었다. 당시 후지코 스튜디오에선 에비하라 타케시 등의 일부 지원들을 제외하곤 괴물군, 웃는 세일즈맨, 마타로가 온다! 등을 연재하던 A를 중심적으로 지원했었으며, 후지코 F. 후지오는 주간 소년 선데이의 편집장에게 자신을 선데이 작가진에서 분리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도 했다.

그러던 중 빅 코믹에서 집필 요청 의뢰를 받았고, 후지코 F. 후지오는 자신의 만화가 청년만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처음엔 이를 거절했으나 편집장의 열렬한 요청에 따라 마지못해 승낙했다. 이때 그린 단편이 바로 ' 미노타우르스의 접시'로, 빅 코믹 편집부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자신도 이런 것이냐라는 새로운 장난감에 넣은듯한 기쁨이 있었다고 후에 밝혔다. 1969년 소학 잡지에 도라에몽을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인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4년 뒤인 1973년에 애니메이션이 종영하면서 편집부에서도 연재를 종료시키려 했을 정도. 이에 반발한 후지코 F. 후지오는 미키오와 미키오를 새로 연재하면서 도라에몽의 연재를 속행했고 그 결과 도라에몽은 6년이 지난 1979년 TV 아사히에서 재애니메이션화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후지코 후지오 A의 작품들 또한 애니메이션화되어 보다 많은 인지도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 콤비를 해체한 뒤론 후지코 후지오 Ⓕ로 필명을 변경해 활동했지만 1년 뒤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권유로 F를 이름 가운데에 넣는 지금의 필명으로 바꾸었으며, 친구인 A와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몇년이 지난 1996년 9월 20일, 가족이 저녁 준비를 이야기하면 평소 작업실에서 대답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록 식탁에 오지 않아서 딸이 이상하게 생각해 부르러 갔다가 책상에 앉아 의식을 잃은 상태인 아버지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 62페이지를 그리다가 연필을 잡은 채로 쓰러졌으며,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3일 후인 9월 23일 새벽 2시 10분에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간부전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본인도 이전부터 운명을 예감했는지, 그 상황을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의 ​​줄거리를 쓰기 전 감독인 시바야마 츠토무한테 미리 알려주거나 사후 자신의 만화들의 행방과 후지코 프로덕션의 활동 등에 대해 걱정을 보인 내용을 쓴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3] 또한 1992년 간암으로 투병할 당시 코로코로 코믹에서의 대장편 도라에몽 작품 노비타와 구름의 왕국 연재를 일시적으로 중단해 후지코 프로덕션에서 비주얼 스토리를 게재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하였다.

후지코 후지오 A는 당시 인터뷰에서 마음이 혼란했던 상태라서 오늘 아침부터 계속 다리를 떨고 있었는데 (이런 소식이 나와서) 몹시 유감스러우며, 그는 대단한 천재였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가 있었기 때문에 만화가가 되었을것 같다고, 정말 순수한 마음의 남자였다고 말했다.[4] 9월 29일 장례식이 진행됐을 땐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였고, 발인식에서 "감사합니다 히로시 씨"로 많은 사람들이 외쳤다. 성우 오오야마 노부요 또한 장례식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었다. 같은 날 후지코 F. 후지오를 추모하는 특집 프로 노비타의 일본탄생이 TV 아사히에서 방송되었다. 이후 2000년에 소학관은 한정 후지코 F. 후지오 복제 원화집을 발매하였으며, 2006년엔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의 설립이 정식 발표되었고, 2008년 12월 건설예정지가 확정지어져 2011년 9월 3일 완공되어 개관하였다. 소학관은 2009년에 후지코 F. 후지오 대전집의 발매를 발표하였고, 1기, 2기, 3기 순서대로 출간되었다.

3. 특징

트레이드 마크는 오너캐에 그려진 빵모자와 파이프 담배. 하지만 빵모자를 쓰게 한 사람은 같은 모자가 트레이드 마크인 데즈카 오사무가 아니라 친구인 A였다고 한다.[5] 주로 소학관의 학습잡지나 코로코로 코믹에서 아동 성향의 만화를 연재했으나, 빅 코믹 같은 청년만화 잡지에서 성인 취향의 단편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접했던 무기, 군사, 쿠데타, 혁명 등등을 모티브로 하여 훗날 이와 관련되거나 묘사시킨 만화들을 다수 발표하였다.[6] 물론 전쟁과 군국주의에 대해선 어렸을 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경험이 작용해 대체로 인간성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혹사시키는 행위로 묘사하며, 초창기의 도라에몽 연재분에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개 존재해 군국주의로 미쳐가던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의 상황을 표현해낸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7]

생전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가 무척 다양한 덕후 기질의 만화가이기도 했다. 야구,[8] 철도 모형은 생전에 즐기던 취미 중 하나였으며, SL 등을 소재로 한 작품도 다수 그려내기도 했다.[9]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촬영해보거나 디오라마를 만들어보기도 했었다.[10] 후지코 F. 후지오는 비밀 도구의 아이디어를 짜낸 팁 중 하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으며, 특수 촬영, 프라모델, 무선 조종 등에서도 많은 탐구를 했었다.

뿐만 아니라 공룡에 대한 관심도 깊어 책상에는 시조새의 복제 화석 티라노사우루스의 프라모델과 진짜 디플로도쿠스 꼬리뼈까지 장식되었었다고 한다. 어시스턴트였던 무기와라 신타로가 그린 익룡 일러스트를 보고 그 자리에서 팔관절이 이상하다고 지적한 일도 있었다.[11] 서부극이나 카우보이에도 무척 관심을 가져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이 그려낸 것과[12], 생전 A, 스즈키 신이치, 츠노다 지로랑 8mm 카메라로 서부극을 촬영한 경험도 있었다.

후지코 F. 후지오는 대표작이 도라에몽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SF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13] 그가 제창한 SF는 본래의 의미가 아닌 S - 스코시(少し 약간), F - 후시기(不思議 신기한)란 뜻으로 일상생활에서 비일상적으로 들어온 내용의 만화들이 많다. SF 단편집에 수록되어있는 작품들은 그런 공상 과학 소설의 흐름을 이어받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또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횬효로 같은 코즈믹 호러에 가까운 단편집을 많이 만들었다.

자신의 작품에서 설정된 세계관들이 연결되는 일도 많아서 한 작품의 캐릭터가 시공간을 넘어서 다른 작품에 등장하고, 심지어 후일담이나 전의 내용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콤비를 해체하기 전에는 A의 작품인 닌자 핫토리군과 퍼맨의 크로스오버도 존재했었다. 그의 만화들에서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동물 캐릭터가 평범한 소년 주인공과 함께 살고, 여자아이 캐릭터 1명, 골목대장 1명, 앞잡이 1명의 구도 설정이 많다.( 도라에몽식 구성 참조.)

생전 작품이 단행본화되었을 때는 수정 및 삭제작업을 거쳐 보다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을 활용했는데, 실제로 도라에몽에서 보듯이 캐릭터의 대사나 연재본이 변경된 사례들도 있다. 히로인 팬티에 집착했었는지, 초등학생 여성 캐릭터의 판치라가 연출되는 장면들이 만화에서 종종 나온다. 그래서 소아성애자가 아니냔 얘기도 나올 정도. 그나마 애니메이션에선 이런 장면들을 줄인 것이다.

4. 작품 목록

  • 천사의 타마짱
  • 요괴 Q타로 - 후지코 후지오라는 필명으로 집필했던 작품으로, 또다른 대표작이다.
    • 신 요괴 Q타로
  • 퍼맨 - 작가 본인이 제일 아꼈던 작품이며, 역시 대표작들 중 하나이다.
  • 21에몬
  • 우메보시 덴카
  • 도라에몽 - 그의 작품들 중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인지도가 높은 대표작. TV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으로 매년 제작되어 방영되고 있다. 또한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고 많은 후배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 포코냥
  • 정글 쿠로베[14]
  • 키테레츠 대백과 - 후지TV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한 이래 인지도가 상승한 또다른 대표작.
  • 에스퍼 마미
  • 침푸이 - 도라에몽식 구성을 사용한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
  •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
  • 모자코( 우주에서 온 모자코) - 원작은 종종 그로테스크 씬들이 나오고[15] 블랙 코미디한 스토리지만, 애니메이션화되면서 대부분 순화되었다.
  • T·P본 (타임패트롤 본)
  • 대장편 도라에몽 시리즈 등 다수

1968년부터 1995년까지 112개의 SF 단편들을 발표했다. 자세한 작품들은 일본 위키피디아의 후지코 F. 후지오 작품목록을 참조할 것. #

5.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문서 참조.

6. 출연

6.1. 영화

6.2. 텔레비전

7. 트리비아

  • 생전 애용하던 연필 미쓰비시 유니의 B 사이즈로, 펜촉은 지브라의 카브라 펜을 주로 활용하였다.
  • 3명의 이 존재하며, 그들에 의하면 평균 ​​수면 시간을 4시간으로 맞추었던 일상 속에서도 시간이 날 때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 좋아했던 여 배우 시라카와 유미. 토키와 장에 머무르던 시절 A에게 담배가게 앞에 시라카와 유미가 있어!라고 전해듣고는 황급히 방을 뛰쳐나가 담배 가게까지 달려나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어서 가게의 할머니에게 시라카와 유미 씨가 여기에 없었습니까?라고 묻자 할머니는 창문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 포스터 안에 시라카와 유미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 초대 전속 비서는 '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을 그린 에비하라 타케시가 맡았으며, 무기와라 신타로(하기와라 신이치로)도 어시스턴트로 그를 지원해주면서 함께 연극을 보거나 소바( 메밀국수)를 같이 먹는 등 무척 친밀한 관계로 지냈다. 더욱이 후지코 F. 후지오는 무기와라가 그린 만화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지도해주면서 도라에몽 단행본의 표지를 맡기는 등 자신의 미래를 대비한 후진으로도 준비시키고 있었다.
  • 뒷골목 뒷골목 명화관에서 영화 ' 남극 이야기'(南極物語)를 은근히 비난하는 주장이 나와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깊어 대장편 도라에몽에서도 환경 보호를 일찍이 주창했었다.
  • 어린이가 말한 여러 순진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동심파괴스럽지 않게 말했다. 아래는 사례들.
    • 타케다 테츠야가 어린 을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딸이 도라에몽은 어디 있냐고 묻자 바로 도라에몽은 지금 방송국에 있는 거다고 말했다.
    • 도라에몽의 인기가 높았던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4차원 주머니를 가지고 있지 않냐고 묻자 도라에몽이 착용하고 있지만 그 외에 예비 주머니가 있는데, 이 2개밖에 없기 때문에 나한테 없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 스튜디오 제로의 사장을 지냈을 때는 당시 스튜디오가 80명의 직원들을 보유하며 성장했었기 때문에 전무가 혼자서 사장 전용 차량으로 중고 링컨 컨티넨탈을 구입했고 개인 운전사도 고용했었다. 그러나 오다큐 선의 열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익숙하던 작가는 꺼려 링컨 컨티넨탈은 일년에 몇번만 가동하는데 그쳤다고 한다.
  • 도쿄로 올라왔을 당시에 사망률 1위를 기록했던 결핵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얼마 안가 기력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 골프도 취미 중의 하나였지만, 자타가 공인한 상당히 서투르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말년에 그린 작품인 「미래의 추억」에서는 골프가 서투른 자신을 모델로 한 캐릭터가 후지키 F. 후지오 쪽이 서툴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자아비판적 장면이 있다.
  • 사실상 그의 첫번째 작인 노비타의 공룡이 개봉하기 전날에 관객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에 영화관 건너편에 있는 한 호텔로 숙소를 잡았으나 영화를 보러 많은 아이들이 달려와서 감상한 것을 보고 안심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인스턴트 컵라멘[16]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코이케의 모델이자 동료인 스즈키 신이치는 자신보다 매우 라멘을 좋아했다고 언급했다. 후지코 F. 후지오는 생전 컵라멘을 을 뿌리는 것만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마술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스튜디오 제로 회사 건물 옥상에서 인스턴트 라멘을 먹고있는 모습이 촬영되기도 했었다.
  • 그의 작품 대부분이 한국에 방영이 되어서인지 국내에서도 익숙한 인물이자 유명하다. 그의 작품중에서 첫번째로 한국에 방영이 된 것이 도라에몽이며 그 후에도 만화채널에서 퍼맨, 만능 비리몽등 여러가지 방영을 했다. 만약 2010년대까지 살았다면 감사의 의미로 한국에 갔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매우 아쉽다.
  • 타케다 테츠야의 노래에 집착을 가졌는지 극장판의 엔딩 테마를 계속 담당하고 있던 그의 강판을 제작사 측에서 제의했을 때 강하게 거부한 것이 도라에몽 대전집에서의 증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후지코 F. 후지오가 점찍어 오랜 기간 동안 도라에몽 극장판의 주제가의 작곡을 맡았던 타케다 테츠야는 1996년 개봉한 노비타와 은하초특급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 그의 작품들에는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판치라, 목욕씬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대표작인 도라에몽만 하더라도 주인공인 신이슬(미나모토 시즈카)라는 초등학생 여성 캐릭터의 치마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가 왜 판치라를 자신의 작품에 자주 넣었는지 정확한 사유는 불명. 팬과의 좌담회에서 한 팬이 "왜 시즈카의 목욕씬이 자주 나오나요? 선생님은 변태인가요?"라는 돌직구질문에 "저 또한 여러분들과 같답니다"라고 대답한 일화는 존재하나 이 대답에 담긴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별개로 소아성애, 즉 작가 자신이 어른의 시각에서 여자아이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표현한 게 아니라 주인공 남자아이의 시각으로 또래 여자아이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
  • 생전에 데즈카 오사무라는 일본 만화계의 대선배이자 거장을 존경했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후지코 F. 후지오의 만화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54년 데즈카 오사무가 입주한 이래로 여러 만화가들이 거주하며 많은 만화가들을 양성한 토키와 장에 후지코 후지오 A와 함께 입주한 이래로 데즈카 오사무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제자 격의 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2016년 4월 23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롯데와 KIA 경기에 시구자로 등장했다. 영상 사실은 롯데 조지훈 응원단장 10주년을 맞은 몰래카메라. 도라에몽데이를 맞아 식전행사 사회를 본 조지훈 단장이 시구자로 도라에몽의 원작자 후지코 F 후지오를 소개했지만 전광판에 나온 시구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서 그의 숨겨진 명작인 UTOPIA 최후의 세계대전가 나왔다. 국내에서는 그닥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기에 화제가 잠깐 되기도 했다.

8. 수상 경력

  • 1982년: 제27회 소학관 만화상 아동 부문 수상 (도라에몽) [17]
  • 1989년: 영화 공로상, 골든 글로스 상 수상
  • 1994년: 제23회 일본 만화가 협회상 문부 대신 수상
  • 1996년: 애니메이션 고베 '96 요미우리상 수상 [18]
  • 1997년: 제1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 대상 수상 (도라에몽)

9. 틀 둘러보기

후지코 후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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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후지코 F. 후지오 후지코 후지오 A
공동 작품
요괴 Q타로
(1964년-1974년)
후지코 F. 후지오의 작품
퍼맨
(1966년-1986년)
도라에몽
(1969년-1991년)
우주에서 온 모자코
(1969년-1970년)
포코냥
(1970년-1978년)
키테레츠 대백과
(1974년-1977년)
에스퍼 마미
(1977년-1978년)
친푸이
(1985년-1991년)
후지코 후지오 A의 작품
꾸러기 닌자 토리
(1964년-1988년)
괴물군
(1965년-1982년)
웃는 세일즈맨
(1968년-1995년)
관련 문서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 후지코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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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라에몽 왼쪽에 있는 것이 서명이다. [2] 이 경험이 자라서 영향을 미쳤는지 데뷔 후에도 종종 텔레비전 출연, 논술, 골프 등을 하던 후지코 후지오 A와는 다르게 만화들을 집필하는데 전념하였다. 그리고 이 어린시절을 바탕으로 캐릭터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3] 2006년 2월 19일 TV 아사히에서 방송된 '도라에몽 탄생 이야기 ~ 후지코 F. 후지오의 편지 ~ '에 따르면, 1986년 위암이 발견되어 이후 컨디션을 무너뜨리는 현상을 가졌던 것이 밝혀졌다. [4] 이후 A는 만화의 길의 속편 만화에서 F를 추모하는 작품인 '안녕 친구여'를 집필했다. [5] 어느 날 A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베레모를 받았지만 그다지 쓰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대로 F에게 양보했고, 이것이 후지코 F. 후지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고 한다. [6] 만화의 길에서는 전함의 삼면도와 비행기의 모형이 나오는 장면도 있다. [7] 도라에몽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혹사당하는 아동의 모습을 묘사한 흰 백합의 여자 아이와 만나는 '아빠의 추억' 에피소드, 우에노 동물원에서 코끼리의 살처분에 대해 언급한 '코끼리와 아저씨' 에피소드 등이 있다. [8] 소학 4학년 1971년 1월호에서 독자의 질문에 자신이 긴테츠 버팔로즈를 좋아했다고 답했다. [9] SF 단편 만화 다다미 4장 반 SL 여행, 도라에몽의 SL 굴뚝 편, 노비타의 모형철도 은하철도 승차권 편, 포코냥의 다이나믹도 경전철 편 등등. [10] 그 증거로 도라에몽의 비밀 도구 중에서는 수많은 카메라가 등장하는 것 외에 디오라마 제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11] 이런 흔적들은 노비타의 공룡, 노비타와 용의 기사나 T·P본 등에서 드러나온다. [12] 특히 노비타에게 사격의 재능이 존재한단 설정의 에피소드를 많이 그려낸 바 있었고, T·P본과 SF 단편집 휴일의 총잡이 등에서 카우보이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경력도 있었다. [13] 대표적으로 스타워즈가 일본에서 인기였을 때엔 도라에몽 만화판에 스타워즈에 관련된 패러디를 많이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이 에피소드 외에도 예비 기계를 이용해 찍은 영화의 제목이 '스타 죠스'라는 것과, SF 단편인 "어느 날...", "뒷골목 뒷골목 명화관"에 패러디 극중극이 존재하며, 노비타와 우주소전쟁의 줄거리는 전체적으로 스타워즈에서 패러디해온 것이다. [14] 한때 인종차별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15] 원작 만화책을 읽다보면 과연 이 작가가 도라에몽을 그린 그 유명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끔찍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16] 특히 치킨 라멘을 가장 좋아했었다고 한다. [17] 당시는 후지코 후지오 명의로 수상. [18] 애니메이션의 문화와 산업 진흥에 기여함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