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막부 싯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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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 제8대 싯켄
호조 도키무네 北条時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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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251년 ~ 1284년 (향년 34세) |
재임기간 | 제8대 싯켄 |
1268년 ~ 12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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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마쿠라 막부의 제8대 싯켄(執權).싯켄이라는 직책은 쇼군가의 섭정역인데, 호조 도키무네는 17세에 이 싯켄직에 취임했다. 말하자면 본인에게 섭정이 필요한 나이에 취임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당시는 이미 쇼군이 유명무실하고 호조 가문이 싯켄직을 대대손손 물려받아 실권을 장악한 시대였으므로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호조가에서 제대로 된 싯켄은 그가 마지막이다.[1]
2. 생애
가장 유명한 업적은 당대 세계 최강국 몽골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방어한 것이다.[2]그가 싯켄직에 취임했을 해에 몽골제국은 자신들에게 복속하라는 내용의 국서를 일본으로 보낸다. 도키무네는 물론이고 호조 가문에는 큰 위기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만약 이미 이름 뿐인 일본 덴노가 쿠빌라이 칸에게 책봉을 받게 되면 막부 체제는 붕괴하고 호조 가문은 멸문지화를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3]
그래서 카미카제라 불리는 태풍으로 몽골의 1차 침입이 실패했을 때, 도키무네는 항복을 권하는 사신을 아예 참살해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전술했듯, 일본은 몰라도 호조 가문에게 항복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2차 침입이 이어졌지만, 이번에도 태풍이 일어 정복에 실패한다.[4] 이렇게 호조 가문은 권력을 독점한 채 목숨줄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불과 34세의 나이로 병사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는 막부 무가 정권시대와 메이지 유신을 거쳐 일본 제국 때까지 구국 영웅으로 높이 평가받았는데, 일제의 패망 이후로는 객관적으로 평가되어 전통적 시각과 비슷한 맥락인 '국난을 맞아 최선을 다해 외침을 격퇴한 리더'라는 평가와 함께 '운 좋은 행운아이자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당시 일본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함께 받는 편이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오늘날의 일본인들에게는 호의적으로 평가받는 편이다.
그밖에도 일본사적으로 호조 도키무네 시절부터 호조 가문이 가마쿠라 막부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5] 도쿠소 전제 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이 시기 호조 일가의 사적인 회합이 가지는 권위가 막부의 공식 회의 기관인 효조슈(評定衆)의 권위를 뛰어넘었다.
3. 창작물에서
NHK 대하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조명된 적이 있다. 2001년작인 <호조 도키무네(北条時宗)>[6]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하다.3.1.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원조비사
시나리오 2 <원조(元朝)의 성립>에서 가마쿠라 막부의 군주로 등장했다. 능력치는 정치D 전투B 지도B 매력B의 전형적인 전투형 군주 앞날을 위해 정치력이 준수한 아들을 얻는것이 관건이다.3.2. 징기스칸 4
징기스칸 4에서는 시나리오 2에서 가마쿠라 막부의 군주로 등장했다. 능력치는 정치 56, 전투 82[7], 지모 51이며 특기는 상업, 건설, 외교, 돌격, 연사, 공성이 있는데 돌격과 연사가 있어서 무사 위주로 운영하기 쉽다. 또한 일본판(PK 포함) 기준으로 시나리오 2의 가마쿠라 막부로 시작하면 국내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측근인 아다치 야스모리(1256~1285)의 간언을 받아들여 일본 밖의 도시[8]를 하나 점령하면 도키무네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문제는 가까운 남송, 원, 고려 중에서 가장 약한 고려가 자연스럽게 플레이어의 목표가 되기 쉽다(...). 이 이벤트는 한국 정발판에서는 반대로 고려로 일본의 도시를 하나 점령하면 원종의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게임상에서의 능력치와는 별개로 도키무네의 수명이 어중간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진행할 필요가 있다. 플레이할 경우 시나리오 1에 비해서 부하들이 비교적 부실하므로 다케자키 스에나가와 함께 전투에 직접 참여시키는 게 효율적이다. 정작 플레이하면 역사와는 달리 원나라보다는 남송이나 고려가 규슈로 더 자주 쳐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3.3. 문명 6
2016년 10월 21일에 발매된 문명 6에서 일본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1]
이후의 싯켄들은 모두 무능하여 가신들이 실권을 행사했다.
[2]
사실 역대 쇼군이나 싯켄 중에 근왕주의적 입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인물은 드물다. 하지만 전근대 일본사에서
가장 강대한 적을 상대로 일본을 지키는 대업적을 이뤘기에 호조 도키무네는 전쟁영웅으로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단적으로 다른 싯켄들은 최종 품계가 기껏해야 4위에서 그쳤지만 호조 도키무네는 사후에나마 종1위가 추서되었다.
[3]
막부 체제 자체가 군권을 지닌 쇼군이 모든 실권을 장악하고 덴노를 뒷방에 앉혀버리는 바람에 성립했는데, 덴노가 책봉을 받아 전권을 위임받게 되면 막부는 동 시기 고려의 무신정권마냥 괴뢰정권으로 전락하게 된다. 쇼군 가문도 저런데, 쇼군의 섭정에 불과한 호조 가문은 어떻게 되겠는가?
[4]
다만 2차 침입 때는 일본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는데 고려에 첩자를 파견하고 1차 침입 때 몽골의 상륙지인 하카타에 석축을 쌓고 이국경고번역이란 정책을 실시해 각지의 고케닌 등 무사들에게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하게 했다. 이런 대비책으로 인해 몽골은 1차처럼 압도적으로 싸우지 못하고 대치만 한 채 시간을 낭비하다가 태풍이 오면서 2차 침입도 실패로 끝난다.
[5]
물론, 그 이전부터 싯켄으로 막부의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미나모토노 사네토모 사후 겐지 적통을 상실한 쇼군을 대행한다는 의미가 컸다.
[6]
왠지 이 부분이 한국에서는 유명한 듯. 저게 무어야~? 가루메기게찌라는 구수한(?) 한국어 때문인 것 같다. <호조 도키무네> 제 36화 <몽고습래(蒙古襲来)>의 일부분으로,
여몽연합군의
하카타 상륙전을 묘사하고 있다.
[7]
태풍의 도움이 있긴 했으나,
원나라의 일본원정을 막았다는 점에서 높게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
[8]
신도시가 아닌 일본 밖의 아무 국가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