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14:18:04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하비에르 페르난데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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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페르 토렌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마르틴 스틱스루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스위스 국기.svg 조르주 가우치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벨기에 국기.svg 로베르트 판제이브룩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몽고메리 윌슨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디 라다 6회 1952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제임스 그로건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데이비드 젠킨스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도널드 잭슨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앨런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트릭 페라
11회 1972 삿포로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트릭 페라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캐나다 국기.svg 톨러 크랜스턴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티크너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체코 국기.svg 요제프 사보프치크
15회 1988 캘거리 파일:소련 국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체코 국기.svg 페트르 바르나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프랑스 국기.svg 필립 캉델로로 18회 1998 나가노 파일:프랑스 국기.svg 필립 캉델로로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괴벨 20회 2006 토리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21회 2010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22회 2014 소치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데니스 텐
23회 2018 평창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4회 2022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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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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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896년) ~ 50회(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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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896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897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3회 1898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헤닝 그레난더 4회 1899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5회 1900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6회 1901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7회 1902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8회 1903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9회 1904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0회 1905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1회 1906 뮌헨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길버트 푹스 12회 1907 빈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3회 1908 트로파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4회 1909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5회 1910 다보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6회 1911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7회 1912 맨체스터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18회 1913 빈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19회 1914 헬싱키 파일:스웨덴 국기.svg 괴스타 샌달 20회 1915 취소 WWI
21회 1916 취소 WWI 22회 1917 취소 WWI
23회 1918 취소 WWI 24회 1919 취소 WWI
25회 1920 취소 WWI 26회 1921 취소 WWI
27회 1922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28회 1923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29회 1924 맨체스터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30회 1925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1회 1926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2회 1927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3회 1928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4회 1929 런던 파일:스웨덴 국기.svg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35회 1930 뉴욕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6회 1931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7회 1932 몬트리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8회 1933 취리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39회 1934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0회 1935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1회 1936 파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2회 193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3회 1938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4회 1939 부다페스트 파일:영국 국기.svg 그래험 샤프
45회 1940 취소 WWII 46회 1941 취소 WWII
47회 1942 취소 WWII 48회 1943 취소 WWII
49회 1944 취소 WWII 50회 1945 취소 WWII }}}}}}}}}
51회(1946년) ~ 100회(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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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1회 1946 취소 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2회 1947 스톡홀름 파일:스위스 국기.svg 한스 게르슈빌러
53회 1948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4회 1949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5회 1950 웸블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6회 1951 밀라노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7회 1952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8회 1953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59회 1954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0회 1955 빈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1회 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미국 국기.svg 헤이스 엘런 젠킨스 62회 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3회 1958 파리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4회 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드 젠킨스
65회 1960 밴쿠버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66회 1961 프라하 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
67회 1962 프라하 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잭슨 68회 1963 코르티나담페초 파일:캐나다 국기.svg 도널드 맥퍼슨
69회 1964 도르트문트 파일:독일 국기.svg 만프레트 슈넬도르퍼 70회 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71회 1966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2회 196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3회 1968 제네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4회 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75회 1970 류블랴나 파일:미국 국기.svg 티모시 우드 76회 1971 리옹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7회 1972 캘거리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8회 1973 브라티슬라바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79회 1974 뮌헨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80회 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소련 국기.svg 세르게이 볼코프
81회 1976 예테보리 파일:영국 국기.svg 존 커리 82회 1977 도쿄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3회 1978 오타와 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티크너 84회 1979 빈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5회 1980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86회 1981 하트퍼드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7회 1982 코펜하겐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8회 1983 헬싱키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89회 1984 오타와 파일:미국 국기.svg 스캇 해밀턴 90회 1985 도쿄 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91회 1986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브라이언 보이타노 92회 1987 신시내티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93회 1988 부다페스트 파일:캐나다 국기.svg 브라이언 오서 94회 1989 파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5회 1990 핼리팩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6회 1991 뮌헨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7회 1992 오클랜드 파일:독립국가연합 기.svg 빅토르 페트렌코 98회 1993 프라하 파일:캐나다 국기.svg 커트 브라우닝
99회 1994 치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00회 1995 버밍엄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
101회(1996년)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white> 101회 1996 에드먼턴 파일:미국 국기.svg 토드 엘드레지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02회 1997 로잔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비스 스토이코
103회 1998 미니애폴리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4회 1999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5회 2000 니스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6회 2001 밴쿠버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07회 2002 나가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렉세이 야구딘 108회 2003 워싱턴 D.C.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09회 2004 도르트문트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 플루셴코 110회 2005 모스크바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11회 2006 캘거리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테판 랑비엘 112회 2007 도쿄 파일:프랑스 국기.svg 브라이언 주베르
113회 2008 예테보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제프리 버틀 114회 2009 로스앤젤레스 파일:미국 국기.svg 에반 라이사첵
115회 2010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다카하시 다이스케 116회 2011 모스크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7회 2012 니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8회 2013 런던 파일:캐나다 국기.svg 패트릭 챈
119회 2014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120회 2015 상하이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121회 2016 보스턴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122회 2017 헬싱키 파일:일본 국기.svg 하뉴 유즈루
123회 2018 밀라노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4회 2019 사이타마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5회 2020 몬트리올 취소 COVID-19 126회 2021 스톡홀름 파일:미국 국기.svg 네이선 첸
127회 2022 몽펠리에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128회 2023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쇼마
129회 2024 몬트리올 파일:미국 국기.svg 일리야 말리닌 130회 2025 보스턴 파일:국기.svg ?
131회 2026 프라하 파일:국기.svg ? 132회 ? 파일:국기.svg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885C2 20%, #FBB132 20%, #FBB132 40%, #000 40%, #000 60%, #1C8B3C 60%, #1C8B3C 80%, #ED334E 80%); font-size: 1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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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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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896년) ~ 50회(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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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891 함부르크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오스카 울릭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892 빈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에드워드 엥겔만
3회 1893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에드워드 엥겔만 4회 1894 빈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에드워드 엥겔만
5회 1895 부다페스트 파일:헝가리 국기.svg 티본 본 폴드바리 6회 1896 미개최
7회 1897 미개최 8회 1898 트론헤임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9회 1899 다보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0회 1900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1회 1901 빈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구스타프 휘겔 12회 1902 취소얼음 부족
13회 1903 취소얼음 부족 14회 1904 다보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5회 1905 본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맥스 보하치 16회 1906 다보스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7회 1907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18회 1908 바르샤바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에르니스트 헤르츠
19회 1909 부다페스트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20회 1910 베를린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21회 1911 상트페테르부르크 파일:스웨덴 국기.svg 페트르 토렌 22회 1912 스톡홀름 파일:스웨덴 국기.svg 괴스타 샌달
23회 1913 오슬로 파일:스웨덴 국기.svg 울리히 살코 24회 1914 빈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프리츠 카글러
25회 1915 취소 WWI 26회 1916 취소 WWI
27회 1917 취소 WWI 28회 1918 취소 WWI
29회 1918 취소 WWI 30회 1920 취소 WWI
31회 1921 취소 WWI 32회 1922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3회 1923 오슬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4회 1924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5회 1925 트리베르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6회 1926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7회 192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8회 1928 트로파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빌리 뵈클
39회 1929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0회 1930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1회 1931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2회 1932 파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3회 1933 런던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4회 1934 체펠트인티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5회 1935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6회 1936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카를 섀퍼
47회 1937 프라하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8회 193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펠릭스 카스파
49회 1939 다보스 파일:영국 국기.svg 그래험 샤프 50회 1940 취소 WWII }}}}}}}}}
51회(1941년) ~ 100회(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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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1회 1941 취소 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2회 1942 취소 WWII
53회 1943 취소 WWII 54회 1944 취소 WWII
55회 1945 취소 WWII 56회 1946 취소 WWII
57회 1947 다보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한스 게르슈빌러 58회 1948 프라하 파일:미국 국기.svg 딕 버튼
59회 1949 밀라노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디 라다 60회 1950 오슬로 파일:헝가리 국기.svg 에드 키랄리
61회 1951 취리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헬무트 자입트 62회 1952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헬무트 자입트
63회 1953 도르트문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를로 파시 64회 1954 볼자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를로 파시
65회 1955 부다페스트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66회 1956 파리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67회 1957 빈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68회 1958 브라티슬라바 파일:체코 국기.svg 카롤 디빈
69회 1959 다보스 파일:체코 국기.svg 카롤 디빈 70회 1960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71회 1961 서 베를린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렝 질레티 72회 1962 제네바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73회 1963 부다페스트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74회 1964 그르노블 파일:프랑스 국기.svg 알랭 칼마
75회 1965 모스크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6회 1966 브라티슬라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7회 1967 류블랴나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8회 1968 베스테로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메리치 단저
79회 1969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80회 1970 레닌그라드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81회 1971 취리히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82회 1972 예테보리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83회 1973 쾰른 파일:체코 국기.svg 온드레이 네펠라 84회 1974 자그레브 파일:동독 국기.svg 얀 호프만
85회 1975 코펜하겐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6회 1976 제네바 파일:영국 국기.svg 존 커리
87회 1977 헬싱키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8회 1978 스트라스부르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89회 1979 자그레브 파일:소련 국기.svg 블라디미르 코발료프 90회 1980 예테보리 파일:영국 국기.svg 로빈 커즌스
91회 1981 인스브루크 파일:소련 국기.svg 이고르 보브린 92회 1982 리옹 파일:독일 국기.svg 노베르트 슈람
93회 1983 도르트문트 파일:독일 국기.svg 노베르트 슈람 94회 1984 부다페스트 파일:소련 국기.svg 알렉산더 파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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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
파일:스페인 빙상연맹.png
살바도르 바예호
(2006)[1]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09)
하비에르 라야
(2010)
하비에르 라야
(2010)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2011~2018)
헥터 알론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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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비에르 페르난데스10.jpg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동메달 획득 당시
이름 하비에르 페르난데스 로페스(Javier Fernández López)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출생 1991년 4월 15일 ([age(1991-04-15)]세)
마드리드
신체 175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은퇴 2019년 1월 26일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2006-07 시즌2.2. 2007-08 시즌2.3. 2008-09 시즌2.4. 2009-10 시즌2.5. 2010-11 시즌2.6. 2011-12 시즌2.7. 2012-13 시즌2.8. 2013-14 시즌2.9. 2014-15 시즌2.10. 2015-16 시즌2.11. 2016-17 시즌2.12. 2017-18 시즌2.13. 2018-19 시즌
3. 평가4. ISU 공인 최고점수5. 커리어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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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동메달리스트이다.

스페인 내에선[2] 피겨 스케이팅은 물론, 빙상 종목에서 최초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딴 선수이다. 2016년 스페인 국왕 훈장을 수여받았다.

2. 선수 경력

2.1. 2006-07 시즌

그 전까지는 제대로 된 국제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하다가, 2007 유럽선수권 2007 세계선수권에서 프리컷을 당했다.

2.2. 2007-08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영국과 에스토니아 대회에서 각각 11위와 9위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출전한 2008 유럽선수권에서는 17위를 했다. 200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13위를 차지하였는데, 프리 연기 중 부츠와 바지 사이를 고정하는 끈이 풀려 경기 중단 후 다시 시작하였다. 2008 세계선수권에서는 또 프리컷을 당했다.

2006-07 시즌부터 이 시즌까지 페르난데스는 스페인의 자카에서 훈련했으나 두 시즌 연속 침체된 성적, 게이라고 놀림받는 환경 -과연 축구의 나라 스페인 답다.-[3], 코치들과의 불화 등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마드리드로 돌아와 선수 생활을 지속할지 말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참가한 안도라에서의 모로조프 섬머 캠프에서 인생의 첫번째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된다.

2.3. 2008-09 시즌

세계적인 코치인 모로조프의 캠프에서 모로조프 코치의 눈에 들어 무려 훈련비 무료 제자로 들어갔다. 페르난데스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 한 스페인 방송에서 모로조프 밑으로 들어가 훈련하게 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인생 최악의 스케이팅을 했었다며, 모로조프가 자신을 눈여겨 볼 줄은 몰랐다고 한다. 캠프 마지막 날, 모로조프가 자신을 조용히 불러 미국행 티켓을 던져주며 ‘올지 말지는 네게 달려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민할 것도 없이, 만 17세의 소년은 바로 그 제안을 승낙했다. 많은 이들이 굴곡이 많은 그의 인생의 첫번째 터닝포인트로 꼽는 사건이다. 일단은 세계적인 코치의 눈에 들어 제자로 들어갔지만, 스페인어 외에는 아는게 없었던 하비는 모로조프의 말 한 마디를 알아듣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4] 아무도 말이 통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하비는 훗날 이 시기에 불안 발작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훈련 비용이 무료라고 넉넉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였다. 미국에서의 체류비는 한달에 3000 유로 가까이 들었기에 페르난데스의 아버지는 투잡을 뛰기 시작하셨다. 또한 스페인의 피겨 선수로 활동하던 누나 로라 페르난데스 역시 피겨 스케이팅을 그만둬야 했다. 온 가족의 희생과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셈이다.[5] 이 시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2009 유럽선수권 11위, 2009 세계선수권에서 19위를 차지하며 1956년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스페인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만 18세에 트리플 악셀 점프를 장착했다. 모로조프에게로 간 후, 기술적인 발전이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첫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고 2주 후에 바로 랜딩을 했다.

2.4. 2009-10 시즌

처음으로 그랑프리에 초청을 받으며 2009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 11위, 2010 유럽선수권에서 8위를 달성하며 다음 해 스페인의 유럽선수권 남자 싱글 출전권을 2장으로 늘렸다. 그리고 출전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 프로그램 16위, 프리 프로그램 10위로 종합 14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서 잘해서 스페인 피겨 스케이팅을 알리고 싶다던 본인의 소원을 어느 정도는 이룬 셈이었으며,[6] 쿼드러플 점프를 처음으로 대회에서 들고 온 시즌이다. 2010 세계선수권에선 12위를 차지했다.

2.5. 2010-11 시즌

전 해의 활약으로 두 곳의 그랑프리에 배정을 받았다. 2010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5위, 2010 로스텔레콤 컵에서 9위를 기록했다. 스페인선수권에서 웜업 도중 스케이트 날에 손을 베여 경기가 20분 지연됐다. 그럼에도 별도의 웜업 없이 바로 경기에 임해 스페인선수권 우승자 자리를 동명의 하비에르 라야에게 넘겨주며 2위에 머물렀다. 그해 2011 세계선수권에서 쿼드러플 살코와 쿼드러플 토룹 점프를 랜딩하며 9위를 기록했다.

이 시즌이 지난 후 코치 변경을 택했다. 니콜라이 모로조프에게 가며 엄청난 발전을 이뤘으나, 모로조프가 훈련지를 자주 옮기고 새 제자인 플로랑 아모디오에게 신경을 쏟자 캐나다 토론토 크리켓 클럽으로 훈련지를 옮겨 브라이언 오서를 코치로 선임했다.

2.6. 2011-12 시즌

파일:2011 스케이트 캐나다 남자싱글 포디움2.jpg 파일:2011 로스텔레콤 컵 남자싱글 포디움.png 파일:2011-12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1 스케이트 캐나다 2011 로스텔레콤 컵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
2011 스케이트 캐나다 2011 로스텔레콤 컵에서 모두 은메달[7]을 따며 스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기세를 몰아 그해 2011-12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동메달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탑 스케이터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이후 양학수준인 스페인선수권에서는 무려 80점 차로 우승했다.

그해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히던 2012 유럽선수권 2012 세계선수권에서 각각 6위와 9위를 차지했다. 프로그램 런쓰루[8] 훈련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더 자주 런쓰루를 하며 프로그램을 정비하겠다고 다짐했다.

2.7. 2012-13 시즌

파일:2012 스케이트 캐나다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2 스케이트 캐나다
2012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스페인 선수 최초로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다음 대회인 2013 NHK 트로피에서 4위를 하며 2012-13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에서는 프리에서 1위를 했음에도 쇼트 점수 때문에 4위에 머물렀다.
파일:2013 유럽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3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3.jpg
2013 유럽선수권 2013 세계선수권
2013 유럽선수권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스케이트 화를 잃어버렸다. 극적으로 하루 전에 발견되었으나, 연습에 제대로 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우승하였다. 우승 후 소감을 물어봤더니, "다음에도 스케이트화를 잃어버려야겠다."라는 농담을 남겼다. 2013 세계선수권에서는 자신의 첫 세계선수권 메달인 동메달을 땄다.

2.8. 2013-14 시즌

파일:2013 로스텔레콤 컵 남자 싱글 포디움.jpg 파일:2014 유럽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2.jpg
2013 로스텔레콤 컵 2014 유럽선수권
2013 NHK 트로피에서 5위, 2013 로스텔레콤 컵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2013-14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사실상 페르난데스 원탑 체제인 2014 유럽선수권에선 2연패를 달성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3위를 차지하여 다들 페르난데스가 동메달을 딸 거라고 예상했던 그 때, 결과적으로는 자약 룰을 시원하게 날려먹으며 4위를 했다. 프리 프로그램에선 최대 3개의 점프를 컴비네이션으로 뛸 수 있다. 또한 같은 종류의 점프는 트리플과 쿼드러플 점프를 합쳐 2개까지만 뛸 수 있다. 당시 페르난데스의 구성은 쿼드러플 살코 2개, 트리플 살코 2개로 상당히 위험한 구성이었다. 까딱하다 쿼드러플 살코 1개를 트리플로 뛴다면 바로 자약 룰을 어기게 되기 때문이다. 프리 경기에서 두 번째 쿼드러플 살코를 트리플로 처리하며 이미 1번 트리플 살코를 단독으로 뛰었다. 다행이게도 트리플 플립+하프룹+트리플 살코 컴비네이션에서 후속 살코 점프를 더블로 처리하며 자약 룰을 피하는 듯 했으나, 더블 살코나 트리플 토룹 점프만 뛰었어도 동메달이었던 마지막 트리플 살코를 정말 쓸데없이 잘 뛰며 SEQ[9] 처리를 받고 0점으로 처리가 돼 결국 최종 4위를 차지했다. 이런 경우 보통 플랜 B를 가동해 자약 룰을 어기지 않도록 하는데,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의 중압감인지 아니면 플랜 B가 없었던 것인지 원래 구성대로 수행해버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남자싱글 대환장파티[10]의 단골 이야깃거리 중 하나이다.
파일:2014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4 세계선수권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2014 세계선수권에선 극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2.9. 2014-15 시즌

파일:2014 스케이트 캐나다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4 로스텔레콤 컵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yuzuru2014.jpg
2014 스케이트 캐나다 2014 로스텔레콤 컵 2014-15 그랑프리 파이널
원래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스킵하려고 했으나, 파이널이 자국에서 열린다는 소리에 결국 참가하기로 한다. 2014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은메달, 2014 로스텔레콤 컵에서 우승하며 2014-15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해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달성했다.
파일:2015 피겨 스케이팅 유럽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5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5 유럽선수권 2015 세계선수권
2015 유럽선수권에선 너무나도 당연하게 3연패를 달성하였다. 이 기세를 모아 2015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쇼트는 하뉴 유즈루에 이어 2위, 프리는 데니스 텐에 이은 2위였다. 쇼트와 프리 모두 1위가 아니었고, 둘 다 깔끔하게 수행한 프로그램은 아니었기에 어부지리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페르난데스에겐 어마어마한 동기부여가 됐다.

2.10. 2015-16 시즌

파일:2015 컵 오브 차이나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5 로스텔레콤 컵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2015_Grand_Prix_of_Figure_Skating_Final_men%27s_singles_medal_ceremonies_IMG_9483.jpg
2015 컵 오브 차이나 2015 로스텔레콤 컵 2015-16 그랑프리 파이널
2015 컵 오브 차이나 2015 로스텔레콤 컵에서 우승하고 2년 연속 자국에서 치러지는 2015-16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파이널에선 준우승을 하였다. 또한 프리 프로그램에서 200점을 넘기며 하뉴 유즈루에 이어 2번째로 200점을 넘긴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파일:2016 유럽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6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6 유럽선수권 2016 세계선수권
무난하게 유럽선수권 4연패를 달성하고, 그곳에서 하뉴 유즈루에 이어 두 번째로 쇼트 프로그램에서 100점을 넘긴 남자 싱글 선수가 되었다.

2016 세계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 살코 점프에서 넘어지면서 98점대로 2위를 차지했다.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 스케이트를 타기 힘든 상태였으나 프리 프로그램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스핀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로서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했다.

2.11. 2016-17 시즌

직전 시즌 쇼트 프로그램 음악을 그대로 썼는데, 시즌 내내 계속 고전하다가 유럽선수권에서 클린에 가깝게 경기하며 개인 최고점을 달성했다.
파일:2016 로스텔레콤 컵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2016 트로피 드 프랑스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6 로스텔레콤 컵 2016 트로피 드 프랑스
이번에도 시즌의 시작은 꽤나 완벽한 것으로 보여졌다. 2016 로스텔레콤 컵 2016 트로피 드 프랑스[11]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고는 1위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모두가 예상한대로 2016-17 그랑프리 파이널은 망했다. 원래 컨시가 안 좋은 쇼트라지만, 그날은 더더욱 심했다. 평소에 트리플 토룹 점프를 연결하지 못하고 고전했던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기막히게 잘 뛰고[12] 나머지 두 점프에서 각각 넘어짐에 가까운 스텝아웃과 넘어짐을 기록했다. 보통은 쇼트에서 말아먹고 프리에서 만회하는 타입이어서, 이때만 해도 팬들의 우려의 눈빛이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리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도 쇼트를 만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오프닝 점프인 쿼드러플 토룹을 트리플로 처리했다.[13] 이어진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룹의 쿼드러플 살코에서 랜딩이 박혀버리며 트리플 토룹을 연결하지 못하고 더블 토룹으로 처리했다. 후반 쿼드러플 살코에서도 스텝아웃이 나왔으며, 트리플 악셀에선 넘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전체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첫 포디움 아웃이다. 코치 브라이언 오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페르난데스가 곧 열릴 아이스쇼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고 한다. 선수로써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럴만도 한 것이 스페인이란 나라에서 그렇게 큰 규모(12000석)로 아이스 쇼를 한 적이 없었던데다, 워낙 다들 축구를 좋아해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여튼 그랑프리 파이널을 망친 장본인인 그 아이스 쇼[14]모두 매진되며 성황리에 잘 치러졌다.
파일:미하일 콜야다2.jpg
2017 유럽선수권
2017 유럽선수권에서 이 프로그램을 들고 온지 9경기 만에 큰 실수가 없는 클린 경기를 펼쳤다. 사실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에서 위기가 있었으나 잘 넘겼고, 주무기인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3회전 뛰듯 쉽게 뛰어내며 시즌 처음으로 100점을 넘겼으며,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프리 경기에서는 랜딩이 흔들리는 모습을 여럿 보였으며, 후반 쿼드러플 살코에서 넘어졌다. 초반 쿼드러플 살코+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의 연결 점프를 더블로 처리했으나, 트리플 악셀+더블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트리플 악셀+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로 바꿔 뛰었다. 적수가 없는 유럽선수권이었기에 5연패를 달성했다.

2017 세계선수권 쇼트에서 인생경기를 하며 109점대로 쇼트 1위를 차지했다. 종전의 세계 신기록 110점대를 깨지 못한 것은 중간에 스핀과 활주에서 살짝 삐끗하는 등 전체적인 프로그램에서 작은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프리에선 폭망하였다. 최종 4위를 기록하며, 2013 세계선수권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포디움 아웃을 기록했다.

2.12. 2017-18 시즌

쿼드러플 룹 점프를 가지고 오겠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프로그램 구성에 더 신경쓰겠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챌린저 시리즈 어텀 클래식에서 우승하고 재팬 오픈에서 네이선 첸 우노 쇼마를 누르며 개인과 팀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파일:2017 인터내셔널 드 프랑스 남자싱글 포디움.jpg 파일:미하일 콜야다8.jpg
2017 엔테르나시오노 드 프랑스 2018 유럽선수권
2017 컵 오브 차이나에서 5위, 2017 엔테르나시오노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였으나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2018 유럽선수권에서는 총점 295.55점으로 6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7연패에 도전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파일: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포디움.jpg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에서 107.58점, 프리 197.66점, 총점 305.24점으로 하뉴 유즈루 우노 쇼마에 이어 3위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13. 2018-19 시즌

재팬 오픈에 참가하여 팀 2위, 개인 3위를 기록했다.
파일:2019 피겨 유럽선수권 남자싱글 포디움.jpg
2019 유럽선수권
2019 유럽선수권에서는 쇼트 3위, 프리 1위로 최종 우승을 하며 유럽선수권 7연패를 달성했다. 3주만 연습했는데 재능은 재능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3. 평가

첫 세계선수권 프리컷,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14위에 그치는 등 처음부터 탑 스케이터는 아니었다. 두 번째 올림픽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다 가진 동메달을 자약룰을 어기며 데니스 텐에게 넘겨줘 포디움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세계선수권에서 2연패를 하는 쾌거를 이루며 20대 초반이 전성기라는게[15] 거의 공식처럼 여겨졌던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전무후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에서 구사했던 4회전 점프는 쿼드러플 토룹과 살코였으며, 쿼드러플 룹도 연습했었다. 그렇지만 모든 점프가 정석은 아니었다. 깊은 아웃 엣지로 뛰어야 하는 러츠 점프를 중립-얕은 인 엣지로 뛰었고, 토픽을 이용해서 뛰는 러츠와 플립을 풀 블레이드(날 전체)로 뛰었으며 180도 이상의 프리로테이션을 가졌었다. 안정적인 점프가 강점이며, 가장 잘 뛰는 점프는 쿼드러플 살코였다. 찰리 채플린 같은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4. ISU 공인 최고점수

<colbgcolor=#58a5dd><colcolor=#fff> ISU 공인 최고점수
쇼트 109.05( 2017 세계선수권)
프리 197.66(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총점 305.24( 2018 평창 동계올림픽)

5. 커리어

대회
올림픽 <colbgcolor=#ffe970,#c3a100> 0 <colbgcolor=#c0c0c0,#555555> 0 <colbgcolor=#d7995b,#6d441a> 1
세계선수권 2 0 2
유럽선수권 7 0 0
그랑프리 파이널 0 2 1
합계 9 2 4

올림픽
동메달 2018 평창 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5 상하이 남자 싱글
금메달 2016 보스턴 남자 싱글
동메달 2013 런던 남자 싱글
동메달 2014 사이타마 남자 싱글
유럽선수권
금메달 2013 자그레브 남자 싱글
금메달 2014 부다페스트 남자 싱글
금메달 2015 스톡홀름 남자 싱글
금메달 2016 브라티슬라바 남자 싱글
금메달 2017 오스트라바 남자 싱글
금메달 2018 모스크바 남자 싱글
금메달 2019 민스크 남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은메달 2014-15 바르셀로나 남자 싱글
은메달 2015-16 바르셀로나 남자 싱글
동메달 2011-12 퀘벡 남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03–04 05–06 06–07 07–08 08–09 09–10 10–11 11–12 12–13 13–14 14–15 15–16 16–17 17–18 18–19 19–20
올림픽 14th 4th 3rd
세계선수권 35th 30th 19th 12th 10th 9th 3rd 3rd 1st 1st 4th
유럽선수권 28th 17th 11th 8th 9th 6th 1st 1st 1st 1st 1st 1st 1st
GP 파이널 3rd 4th 2nd 2nd 4th
GP 컵 오브 차이나 1st 5th
GP NHK 트로피 4th 5th
GP 로스텔레콤 컵 9th 2nd 3rd 1st 1st 1st
GP 스케이트 캐나다 5th 2nd 1st 2nd
GP 트로피 에릭 봉파르 11th 1st 1st
CS 어텀 클래식 1st
핀란디아 트로피 3rd
네벨혼 트로피 4th
메라노 컵 1st
컵 오브 니스 3rd 5th
NRW 트로피 3rd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 13th
국제대회:주니어, 노비스
주니어 세계선수권 13th
JGP 스페인 4th
JGP 멕시코 6th
JGP 에스토니아 9th
JGP 영국 11th
JGP 네덜란드 23th
가데나 스프링스 트로피 5th J
유러피언 유스 올림픽 페스티벌 4th J
트리글라브 트로피 4th N
메라노 컵 3rd N
국내대회
스페인선수권 2nd J 1st J 1st J 1st J 1st 2nd 1st 1st 1st 1st 1st 1st 1st
단체전
재팬 오픈 3rd T
1st P
1st T
2nd P
3rd T
2nd P
2nd T
2nd P
1st T
1st P
2nd T
3rd P
1st T
5th P
GP=그랑프리, JGP=주니어 그랑프리, N=노비스, J=주니어, T=팀 결과,
P=개인 결과, CS=챌린저 시리즈

6. 기타

  • 우체부이신 어머니와 육군 정비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던 누나를 따라 6살 때부터 피겨 스케이팅과 다른 스포츠를 병행하다가 8살 때 피겨 스케이팅으로 완전히 전향했다. 어릴 때의 발전 속도는 굉장히 늦었는데, 만 12세에 첫 트리플 점프를 배웠다.[16] 페르난데스의 첫 코치였던 카롤리나 산즈 코치는 그가 훌륭한 재능을 가졌으나 연습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페르난데스를 담당했던 코치들인 브라이언 오서와 모로조프에게서 공통적으로 '게으르다'라는 말이 나왔던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17] 어마어마한 재능충이었다.
  • 가족들 사이에선 별명이 도마뱀이었는데, 반항적인 성격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때 스케이트를 타려고만 하면 경기를 일으켰을 정도였다. 난장판을 만들지 않고서는 절대로 스케이트를 신지 않았다고 한다. 빙판에 들어서서도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잡아당기거나 얼음 조각을 던지며 노는 등 피겨 스케이팅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본인들 스스로도 스케이트 선수셨던 부모님이셨기에 최대한 자식들의 훈련비를 지원하고자 하셨다만, 두 아이의 훈련비는 상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1500유로를 벌 때도 매달 450유로 이상을 두 아이의 훈련 비용으로 쓰셨다.
  • 코믹한 연기를 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전설이 아닌 레전드 프로그램이 있는데, 2013 올댓 스케이트 아이스 쇼에서 에어로빅 갈라를 선보였다.
  • 한때 안도 미키와 교제를 한적이 있으며 안도 미키의 딸 히마와리의 양육비도 지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 초반 헤어졌으며, 결별 후 스페인 여성을 만나 결혼하였다.
    파일:하비에르 페르난데스9.jpg
  • 2016년 12월 29일, 스페인에서 12000석 규모의 아이스 쇼를 열었다. 본인의 꿈이었던 '스페인에 피겨 스케이팅 알리기'를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 어릴 때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으며 현재도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한다.

[1] 2007년과 2008년에는 대회가 개최되지 않았다. [2] 스페인은 하계 종목에서 유명하지만, 동계 종목은 역사상 올림픽 메달이 페르난데스의 동메달을 포함해 4개밖에 없을 정도로 발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나마 올림픽 메달 4개 중에서도 페르난데스의 메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설상 종목에서 가져간 메달이다. [3] 사실 남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에게 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비단 스페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안무와 함께 음악을 표현하는 요소가 포함된 종목이라 그런 것으로 보인다. [4] 현재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5]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드는 돈이 상당한 종목이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 가정환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비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항상 가족에 대해 각별한 사랑과 고마움을 드러낸다. [6] 두 시즌 만에 프리컷에서 올림픽 14위가 된 것이니, 페르난데스 기준에선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한 것이다. [7] 쇼트와 프리 둘 중 하나는 1위를 차지했다. [8] 음악에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맞춰보는 것을 뜻한다. [9] 당시 명칭은 시퀀스였으며, 현재는 REP로 바뀌어 기초점만 깎으나 당시에는 컴비네이션 점프를 1번 뛴 걸로 간주했다. 당시 4S+2T, 3Lz+2T, 3F+1Lo+2S로 컴비네이션 3개를 모두 썼는데 마지막 점프가 SEQ 처리가 되며 아예 무효가 됐다. [10] 당장 금메달을 딴 일본의 하뉴 유즈루도 2번을 넘어졌고, 은메달이자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패트릭 챈도 프리를 말아버렸다. [11] 前 트로피 에릭 봉파르였으나, 에릭 봉파르 회사가 더 이상 후원을 해주지 않게 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12] 심지어 후속 토룹의 회전수를 풀고 내려왔다. [13] 쿼드러플 토룹의 기초점(10.3점)은 트리플 토룹(4.3점)의 2배보다도 약 2점 가량이 높다. [14] 본인 외에 메건 두하멜 / 에릭 래드포드, 안나 카펠리니 / 루카 라노테, 안도 미키,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키이라 코르피가 참가했다. [15] 여자 싱글의 경우 10대 후반기가 최고의 전성기이고, 남자 싱글 선수는 대부분 20대 초반이 신체적 전성기이다. [16] 시대가 다르지만, 보통 한국 여자 선수들은 평균적으로 만 12세에 3회전+3회전 컴비네이션 점프를 구사한다. [17] 브라이언 오서는 처음 페르난데스가 크리켓 클럽으로 왔을때, 아침에 깨우느라 꽤나 고생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