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3:31:21

핍진성

1. 개요2. 정의3. 어형과 역사4. 유사 개념과 비교
4.1. 개연성과의 차이
4.1.1.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핍진성은 확보한 개별 예
4.2. 사실성과의 차이
5. 워크래프트 시리즈 오크 해리 포터 시리즈 집요정의 예6. 차용을 통한 핍진성 보충
6.1. 현실 개념 차용6.2. 기존 작품 차용
7. 창작물의 여러 사례
7.1. 가상의 개념 도입7.2. 핍진성이 어긋난 예7.3. 핍진성과 현실성이 차이를 보이는 예7.4. 대놓고 핍진성을 무시하는 설정을 짜기7.5. 핍진성과 캐릭터
8. 여담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핍진성(, verisimilitude)은 진실 거짓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을 때 객관적인 관측자가 진실에 가깝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이르는 형이상학적 성질로, 주로 철학과 문학에서 사용된다. 문학적 핍진성은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를 의미한다.

2. 정의

핍진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아래 핍진성의 정의는 대부분 문학에서의 핍진성을 가리킨다. 칼 포퍼를 필두로 한 철학자들이 구획 문제 논의 등에서 사용하는, 철학적 핍진성(truthlikeness)은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의 문서(영어)를 참조.
verisimilitude literature
verisimilitude, the semblance of reality in dramatic or nondramatic fiction. The concept implies that either the action represented must be acceptable or convincing according to the audience's own experience or knowledge or, as in the presentation of science fiction or tales of the supernatural, the audience must be enticed into willingly suspending disbelief and accepting improbable actions as true within the framework of the narrative.
핍진성은 극적인, 또는 극적이지 않은 픽션 속 현실의 외형으로, 묘사되는 행동이 독자 스스로의 경험 또는 지식에 비추어 수용할 만 하거나 설득력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는, 사이언스 픽션이나 초자연적 설화 등을 제공함에 있어, 독자가 기꺼이 의심을 멈추고 이야기의 틀 안에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 Cambridge Dictionary의 정의 #
verisimilitude noun [ U ] formal /ˌver.ɪ.sɪˈmɪl.ɪ.tʃuːd/
the quality of seeming true or of having the appearance of being real:
She has included photographs in the book to lend verisimilitude to the story.
진실되어 보이거나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질.
그녀는 이야기에 핍진성을 부여하기 위해 책 속에 사진들을 끼워넣었다.


또한, 이에 대응하는 한국어 사전에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핍진-하다2(逼眞하다) 형용사
1.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대저 진상(眞像)을 그림에 있어 핍진하게 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다. 가령 대면해서 모사(模寫)한 칠분의 진본(眞本)이라 할지라도 털 하나 머리카락 하나가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것인데….
<<번역 정조실록>>
2.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그리고 심유(沈攸)의 소(疏)가 묘사한 것이 너무나 핍진하여, '심극전(沈極傳)'이라고 하였다.
<<번역 숙종실록>>
핍진성(逼眞性) 명사
(형태: ±逼眞-性)
1.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 시키는 정도.
소설을 이해하거나 평가하는 데 있어 핍진성이나 리얼리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핍진-하다2(逼眞--) 형용사
(활용형: <불규칙 활용> 핍진하여 핍진해 핍진하니 / 형태: ±逼眞-하_다)
1.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8b8b8b 그 작가의 필치는 생동하고 표현은 핍진하다.
2. (무엇이)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3. 어형과 역사

원어 'verisimilitude'는 신고전주의에서 '현실성', '도덕성', '일반성'의 부속 개념으로, '정말인 것 같음', '진짜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킨다. 용어로서의 'verisimilitude'는 17세기 영국에서 라틴어 verisimilitudo(truth-like)의 변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영어권에서는 이 용어를 'truthlikeness(진실성)'나 'fidelity(충실도)'로 풀어 쓰기도 한다. 한국어에서는 영미권 해석인 'truthlikeness'를 번역하여 현실성(現實性), 진실성(眞實性)의 유의어로 설명한다.

국립국어원은 'verisimilitude'의 번역으로 '핍진성', '정말 같음'을 제시했는데, 용어의 한자 뜻을 풀이해 보면 (핍박할 핍), (참 진), (성품 성)으로 '진실에 가까운 정도'가 된다. 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상기 정의처럼 '핍진-'은 '핍진하다'의 어근으로서만 제시하고 있고 '핍진성'을 단독 명사로 등재하지는 않았다.

이 '핍진성'이라는 어휘는 이전부터 문학계에서 쓰여 왔던 '핍진하다'라는 말로부터 유래했다. 이러한 어휘가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20년대 내외로 추정되며 ("1921년 '핍진한 회화'의 예", 조선일보), 일제강점기의 문학 비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

오늘날 '핍진하다', '핍진성'이라는 말은 일상 회화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용어지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자주 쓰인다.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단어는 아니므로 비평문, 특히 대중문화 비평문에서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면 비평문에 익숙치 않은 대중들에게 자칫 현학적으로 보여 독자들과의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4. 유사 개념과 비교

4.1. 개연성과의 차이

개연성과는 다르다. 개연성은 '이야기 속 인과관계의 올바른 정도'를 의미하지만, 핍진성은 '작품 세계, 배경, 설정에서 나올 수 있는 관계인가'를 의미한다.
  • 개연성의 예시
    • 그 사람이 나의 친구를 죽였다. → 오랜 세월 끝에 복수에 성공했다.
    • 마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당이다. → 용사는 미련없이 그를 죽였다.
    • 친구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고백했다. → 세 사람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핍진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읽다가 개연성과는 다른 의미로[5] "뭐야 이게 말이 돼?"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작가가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세계의 규칙이나 법칙을 어긴다면 핍진성을 상실한 것이다. 보통 작가가 자신이 세운 세계의 규칙을 간과, 혹은 까먹었거나 미리 생각해둔 줄거리가 자신이 앞서 만들어온 세계의 규칙을 어기게 될 때 수정하지 않고 앞서 만들어온 수많은 이야기들과 엮여 있는 세계의 규칙을 뒤늦게 수정할 수는 없으니까 어거지로 이야기를 끼워넣어 서사를 이어가면 이런 일이 발생하며, 일반적으로 설정오류 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현상은 이런 핍진성 부족을 의미한다.

핍진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사실적인 작품 내 바탕(=배경설정)이고 개연성은 해당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 작품 내 과거 사건(=전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쉽게 말해 그 작품 속의 인물이 그 작품에서의 발생하는 상황들을 봤거나 들었을 때 사실적이라고 생각되면 그 이야기는 핍진성을 지킨 것이고 아니라면 핍진성을 어긴 것이다.

4.1.1.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핍진성은 확보한 개별 예

고전 문학에는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핍진성이 좋은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그리스·로마 시대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전개의 연극을 들 수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연극에서 이야기 마무리에 모든 사건과 갈등이 신의 등장으로 한방에 다 해결되는 스토리 전개를 일컫는데, 이는 분명 개연성을 심각하게 해친 부분이다. 하지만 당대 연극은 대부분 신화의 신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신탁, 계시, 예언 등의 방법으로 작품 초반부터 신에게 물음을 구하고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신이 내린 과업이나 신들 자체가 등장인물이 되는 일이 많았다. 신들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의 갈등 구조 따위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이며 관객들 또한 이에 충분히 공감했다. 따라서 핍진성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셈이다.

이러한 양상은 현대에도 성경과 같은 종교 문헌을 읽는 독자들에게서 유사하게 발견할 수 있다. 신자로서 성경을 읽는 이들은 기적과 같이 개연성을 어기는 현상이 일어나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며, 신이라는 인물이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충분히 납득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기적들을 통해 신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역시 성경 독서의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들 수 있다. 먹을 게 없다는 난관을 그냥 음식을 복사해서 해결한다는, 다소 개연성 떨어지는 전개로 끝내는데 의문을 표하는 독자는 없다. 오히려 그게 신의 권능이고 기적이라고 받아들인다.

중국의 대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 역시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핍진성이 좋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 도원결의를 맺고 의기투합하는 모습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뜬금없게 보일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황건적이 날뛰고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시대상, 나라를 걱정하는 세 젊은이의 등장,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다는 충의(忠義) 정신의 부각이 '이런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함으로써 좋은 핍진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고전 문학들은 권선징악으로 대표되는 결말에서 알 수 있듯 대체로 스테레오타입적이며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흘러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인물들 사이에 개성이 떨어질 경우 오히려 지루한 전개와 뻔한 결말만 보기 쉬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4.2. 사실성과의 차이

So there’s sound in space. I can’t suddenly have spaceships flying around without any sound anymore because I’ve already done it. I’ve established that as one of the rules of the — of the — of my galaxy and I have to live with that.

그래서, (나의) 우주에는 소리가 있다. 이제 와서 아무 소리도 없이 날아다니는 우주선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내가 그런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이미 내 은하의 규칙 중 하나로 굳어졌고, 나는 그 규칙과 함께 살아야 한다.
조지 루카스, '왜 스타워즈 시리즈의 우주에서는 소리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핍진성은 ' 작품 안에서 설정된 세계'를 근거로 현실적인 정도를 판단하기 때문에 사실성과 구별된다. 사실성은 작품 속 세계가 현실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면 사실적이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리지만 핍진성은 작가가 설정을 그렇게 짰다면 현실의 세계는 어떻든 관계가 없다. 오직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작품 속 세계에 맞게 살아가는지만이 중요하다.

만약 이종족과 마법과 주술이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면 판타지는 원래 허구이기 때문에 사실성을 따질 수가 없다. 하지만 허구성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설정이 정교하게 짜여있고 작중 사회와 등장인물들이 서로 적절히 어우러져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라면 핍진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인기 만화인 헌터×헌터에서 작중 등장하는 국가나 집단, 넨 등의 능력은 완전한 허구지만 그 안에 국가체제, 인터넷 등 통신 인프라, 국가간 대립구조, 협회 규정 등이 나름의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독자는 허구성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혹은 마찬가지로 중세 판타지 왕좌의 게임이나 이 분야 끝판왕 반지의 제왕 또한 사실성은 떨어진다 할 수 있겠지만 핍진성과 이야기 연출력은 굉장히 정교하다고 평가받는다.

단, 어떤 작품이 명백한 현실에 기반한 작품, 예컨대 역사 소설이나 사극[6] 혹은 현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면 핍진성과 사실성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작품에서 설정해둔 세계가 곧 현실의 사람들이 만든 세계이므로, 핍진성을 따지는 것이 곧 사실성을 따지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배경의 작품이라 해도 사실성이 바로 핍진성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핍진성은 어디까지나 작품 향유자가 느끼는 사실감이며, 이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그 사실이 물리적으로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인지의 여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추신구라를 보면 중세 일본에서는 칼싸움이 벌어지면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자까지 할복하는 게 일반 통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맞춰 창작물에서도 그런 전개를 넣으면 그 사실을 모르는 현대인으로서는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세계가 있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설령 현실의 일이라 해도 독자가 핍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충실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현실과 다른 관념을 지닌 세계를 그리는 작품에서는 독자들이 그런 세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초반부에 그런 규칙을 활용한 상황들을 제시해주곤 한다.

여기에 더해서 사람은 사실성과 개연성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개연성 없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현실이 오히려 사실성이 없게 느껴지는 것 역시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자신의 문명권을 구한 전쟁영웅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죽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런 일은 개연성 없이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창작물은 현실이 그렇게 개연성이 없다 해도 창작물로서 최소한의 개연성은 확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창작물의 확률적 요소, 즉 이란 작가가 설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7] 개연성 없이 확률적으로 전개한단 건 사실상 작가 맘대로 전개해놓고 운이 좋아서 그랬다고 우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핍진성 역시 창작물에 적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개연성은 있어야지만 그것을 현실감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즉, 핍진성이란 사실성과 동시에 개연성도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지만 느낄 수 있는 개념인 것이다. 괜히 현실이 소설보다 더하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8] 소설은 어느 정도는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연성이 없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실화를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벙찌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실화 배경 작품들도 우연한 사건들을 두고 앞으로 일어날 일의 징조였다느니 하는 (현실적이진 않고 오로지 창작물 상의 개연성만을 위한) 복선을 넣어 개연성을 보강할 때가 많다.[9]

5. 워크래프트 시리즈 오크 해리 포터 시리즈 집요정의 예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오크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에 등장하는 집요정, 두 종족을 비교해보자. 오크는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말마따나 힘과 명예를 중시하고 다른 종족으로부터의 지배를 거부하는 반면 집요정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종족이다. 이러한 뒷설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다면 워크래프트의 오크가 다른 종족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이야기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인간들의 권유를 오히려 거부하는 집요정들의 행보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똑같이 허구의 존재들이고 서로 상반된 전개임에도 독자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핍진성이 잘 지켜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워크래프트의 스랄처럼 오크 하나가 탄압받는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이야기로 간다고 해보자. 워크래프트의 지식이 없더라도 반란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범죄이며 매우 큰 소동이 될 것이라는 걸 독자들은 예상이 가능하다. 이처럼 작품 내 명시된 설정이 없을 때 독자는 현실의 핍진성을 작품 내 세계에 대입시키게 된다. 즉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냥 안 넘어가겠구나'하는 사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가 붙잡혀 처형된다거나 스랄처럼 반란에 성공한다거나 하는 전개가 찾아오면 독자는 이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반란을 일으킨 중죄인이 처형되거나 반란에 성공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개연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런 사전 설명이 없었는데 집요정 캐릭터 하나가 등장하여 탄압받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란을 도모하는 전개가 등장한다면 독자는 위화감을 받게 된다. 이는 개연성을 해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새로운 전개'의 등장은 명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A라는 원인이 있으니 B라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부분의 'A'에 해당되는 부분이 처음 언급됐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분명 설정상 집요정 종족은 남에게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을 즐기는 종족인데, 반란을 일으키는 전개는 어색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핍진성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자연스럽게 바꾸기 위해서는 작가가 핍진성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즉 집요정의 예를 다시 들자면, 집요정 도비가 그렇게 자기 종족의 본성과는 다른 행동을 한 데에는 루시우스 말포이라는 요인이 필요하며, 도비가 특이한 건지 종족 전체가 생각이 바뀐 건지 등 보충 설정으로 핍진성을 보충해야 한다.

6. 차용을 통한 핍진성 보충

핍진성 보충을 위해 실제 현실이나 다른 유명한 작품을 끌어오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 게임, 소설, 만화 등 많은 창작품들이 나오지만 보다 보면 어디선가 봤을 법한 설정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마따나 쓰다 보니 우연히 겹쳐진 것도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작품의 설정을 차용함으로써 핍진성을 세우는 데 소모되는 자원을 줄이려는 것이다.

한편 각 분야에서 소위 ' 대작'을 넘어 '바이블'로 취급받는 작품들은 이러한 핍진성을 밑바닥부터 세운 경우가 많으며, 더 나아가 다른 작품에까지 영향을 주곤 한다.

6.1. 현실 개념 차용

현실의 개념을 가져오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제국', '황제' 같은 단어를 쓰거나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프로토스 종족의 직책에 '집정관', '법무관' 같이 로마 제국 시대의 단어를 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경이 우주인 SF 장르이고 외계 종족의 직책은 창작자가 어떻게 설정하든 자유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개념을 넣어줌으로써 독자들은 현실의 그 개념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된다. 프로토스는 초능력과 오버 테크놀러지가 난무하는 외계 종족임에도 플레이어는 고결함, 싸움에 물러서지 않는 용맹함 등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스타워즈 또한 마찬가지로 은하계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물에 전근대시기에나 존재했던 황제와 제국이라는 단어를 넣었음에도 관객들은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제국이란 단어가 주는 위압감과 지배욕, 무력 등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반대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 은하 제국'이 다른건 모두 같지만 이름만 '은하 깐따삐야'였다고 해보자. 창작물의 명칭은 창작자가 어떻게 설정하든 자유지만 이렇게 해버리면 독자들은 현실의 배경지식에서 오는 이미지와 심상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선 '은하 깐따삐야'라는 국가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고 왜 현실의 '제국'과 같은 분위기를 보이는지를 따로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해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순수 100% 밑바닥부터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핍진성을 끌어올리려 하다 보면 많은 분량과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묘사할 결과물이 결국에 공화국, 제국처럼 현실에 있는 것이라면 현실의 배경지식을 굳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크지 않다.

이러한 실제의 개념이 차용된 세계는 엄밀히 말하자면 실재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세계와 전혀 연관이 없는 세계가 만약 실재한다면 '제국(Empire)'이라는 표현을 쓸 리도 없고, 국가 체계도 실제 세계와 비슷할 순 있어도 완전히 같을 리야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물에서 가상 세계를 만드는 것은 완벽히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데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이입을 시키는 데에 주안을 두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톨킨이 기존 언어/문화 표현을 활용하는 방법을 쓰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 것은 앞선 단락에서 언급한 "이런 세계가 실재할지도 모른다"와 같은 사실감까지도 표현하기 위함이다.[10] 이와 같은 시도는 핍진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운 개념이기에 독자들이 이해하기 매우 어려워지고 작품의 허들이 높아진다. 핍진성을 밑바닥부터 끌어올린 것도 모자라 퀘냐 같은 인공언어까지 창조했음에도 그 정교함과 사실감에 많은 독자들이 감탄하고 이입하는데 성공한 톨킨의 창작이 그만큼 대단한 창작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6.2. 기존 작품 차용

기존 작품의 개념을 차용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판타지 장르에 숱하게 등장하는 엘프 종족이라는 설정을 들 수 있다. '엘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판타지 장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길고 뾰족한 귀와 여리여리하고 창백한 외모, 인간보다 긴 수명, 자연을 벗삼고 궁술과 마법에 능한 종족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반지의 제왕을 통해 정립된 내용이다. 따라서 이후 작품에서 이러한 유형의 엘프가 등장하거나 비슷한 판타지 종족을 디자인한 다음 이름을 '엘프'로 짓는다면 톨킨이 정립한 핍진성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반지의 제왕 설정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쓰는 것이기 때문에 "엘프? 그거 먹는 건가요?"하는 사람에게는 핍진성이 확보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 방법을 쓸 때에는, 특히 상업 작품을 만들 때에는 저작권 문제를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엘프의 경우 엘프라는 단어 자체를 톨킨이 만든 것은 아니고 톨킨이 이를 종합한 정도이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의 엘프 느낌을 가져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편 발록이나 미스릴 저작권이 보호되는 개념들이기 때문에 표절로 간주될 수 있다. 다만 특정 개념의 인상을 가져왔다고 해서 모두 표절이라고 문제 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철자를 좀 바꾼 것들은 대충 묵인해주는 편이다.

때문에 취미로 쓴 작품을 나중에 상업 작품으로 출간할 때 이 부분이 뒤늦게 문제가 되곤 한다. 취미로 쓴 작품은 영리 활동이 아니고 규모도 작으니 저작권상으로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낮고, 독자에게 관심을 끌려면 익숙한 작품을 설정을 가져다 쓰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다가 인기를 얻어 상업 작품이 되면 문제가 되어 수정이 되기도 한다.

7. 창작물의 여러 사례

7.1. 가상의 개념 도입

현실에서 잘 쓰이지 않는 이족보행병기가 등장하는 장르에서는 핍진성을 살리기 위해 '인공 근육의 가성비' 등 온갖 설정들을 붙여서 세계를 보완하곤 한다. 건담 시리즈에서도 이족보행병기가 버젓이 돌아다니지만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 세계, 즉 그 작품에서의 '현실세계'에서는 미노프스키 입자를 비롯 핍진성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등장한다. 더 자세한 것은 픽션에서의 보행병기 변명 참고.

작품을 관통하는 '가상의 아이템'들에도 핍진성을 채우기 위한 여러 설정들이 곁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드래곤볼 시리즈의 드래곤볼이나 원피스 악마의 열매, 데스노트 데스노트 같은 아이템들은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전개와 묘사를 납득할 수 있게, 다시 말해 '핍진성'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설정을 부여한다. 예시 중에서 데스노트 같은 경우 거의 법전에 가까운 규칙을 묘사하고 있다.

바키 시리즈와 같이 비현실성이 매우 짙은 작품들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핍진성이 있다. 제 3자의 말을 빌려 서술하는 장면이나 그럴듯한 저명인사(당연히 그조차도 허구지만)의 말을 인용하는 장면이 핍진성을 강화하는 장치에 해당한다. 이와 비슷한 장치 중 특히 유명한 게 민명서방.

핍진성을 지키기 위해 뒤늦게 설정을 추가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드래곤볼이 그런데 초사이어인이 너무 많이, 그리고 쉽게 범람한다는 말이 나오자 뒤늦게 '사이어인이 평안한 마음을 가지면 S세포가 늘어나고 전투력이 일정 이상이면서 S세포가 일정 수치 이상이 되면 초사이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전투민족인) 사이어인과 달리 지구인 혼혈은 (평안한 마음이 더 많아서) S세포가 선천적으로 많다'는 땜방 설정을 내놓은 바 있다. 이대로면 어렸을 때부터 전장에서 구른 오공, 베지터, 오반에 비해 10살이 넘도록 가족들이랑 단란하고 행복한 삶을 산 오천과 트랭크스가 초사이어인이 더 쉽게 되는 것에 대해 비록 완전하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마법을 쓰기 위한 자원으로 자주 등장하는 마나라는 설정 역시 핍진성을 보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는 작가 설정하기 나름이니 마법에 필요한 자원 따위 없이 누구나 다 무한히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해도 안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행위에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 세상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때문에 가상의 현상인 마법에 대해서도 무언가 자원이 있어서 그것을 소모하여 일어난다고 설정을 짜는 것이 보다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11]

7.2. 핍진성이 어긋난 예

핍진성을 무시한 유명한 사례로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들 수 있다. 태양의 후예에선 이야기와 연출과는 무관하게 주인공 군인들의 행동들이 전혀 군인답지 않고 말이 안 된다고 까인다. 여기에 반박하여 "판타지니까 문제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별다른 설정이 없다면 그 세계의 핍진성은 자동적으로 현실에 비추어 판단하게 된다. 태양의 후예는 설정 차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실제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현실과 비교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현실과 비교했을 때 어색함이 나타난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독자가 그 세계를 '현실'이 아니라 ' 현실과 비슷한 가상 세계'로 생각할 수 있도록 설정을 보강해야 한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미 세종대왕에게 호통치는 장면 또한 핍진성을 무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세종대왕이 살았던 시기에 살진 않았으나 이 장면을 보면서 상식적으로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즉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임금의 위엄과 조선시대의 사대부 문화 그리고 당시의 숭유억불 정책 등을 학습을 통해 알고 있기에 보는 관객들은 무너진 핍진성에 위화감을 받게 되는 것.

드라마 수리남(드라마)에서도 핍진성 파괴가 등장한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후 에필로그에서 “전목사가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다”는 대사가 그것. 드라마 자체는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와 각색했고 그 실제 사건에서 주범이 실제로 징역 10년을 선고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극중에서 그려낸 해당 인물은 마약유통 뿐 아니라 살인, 살인교사, 마약제조 등 법정 형량이 무기징역 또는 사형으로 정해져 있는 죄를 여러번 짓는 것으로 묘사했으면서 정작 마지막에는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설명하여 작품 내 세계가 현실과 같다고 생각하며 마지막회까지 드라마를 감상한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짓을 저질렀다.

파워 인플레가 문제되는 이유 중 하나로는 핍진성 하락이 있다. 능력이 점점 세지면서 뒤의 전개에 익숙해진 핍진감으로는 앞의 전개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예로는 원피스의 샹크스가 아주 유명하다. 무려 사황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샹크스가 1부 시점 루피의 한주먹거리 밖에 안되는 근해의 주인에게 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는 말도 안되는 전개가 되어 버렸다. 현실은 언제나 상호 연관 관계 속에서 사건이 벌어지지만 창작물은 대개 단선적 스토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좀비물도 어느 정도 핍진성 확보가 필요하다. 좀비라는 개념 자체는 작품 내에 위기를 부여하는 요소로서 작품 향유자들이 그것의 현실성에 대해서 지적을 하지 않지만 좀비가 나타나는 상황은 주로 21세기 현실의 재난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현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즉 좀비가 나타났다는 데에 대해서는 작품에 따라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지만 그런 좀비가 일단 나타났는데 군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같은 설명은 필요하다. 영화 반도가 이에 실패한 예인데 세계에서부터 한국만 좀비사태로 멸망했다는 다소 무리한 설정을 도입했다. 어차피 상상의 사태이니 그렇다고 하면 그럴 수야 있긴 하지만 좀비가 있으면 전세계에 다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럽지 한국에 무슨 좀비의 원천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한국에만 좀비가 잔뜩 나타나서 한국만 멸망하는 것은 이상하다. 게다가 국가 하나가 소멸되었는데 국제 사회에서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차라리 월드워 Z처럼 국제적인 스케일로 그리거나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특정 지역에 한정된 국지적인 스케일로 그렸다면 최소 납득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미진한 설정은 해당 작품의 혹평 요인이 되었다.

위 사례들 중 '현실의 핍진성(=사실성)'을 위반한 사례들의 특징은 단순히 그 장면만 나열해도 문제점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개연성과 핍진성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인터넷에서 '태양의 후예'나 '나랏말싸미'를 검색하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짤방으로 편집해서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는 사람들은 앞뒤 내용을 몰라도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문제가 없다. '개연성'은 사건의 인과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앞뒤를 다 자른 내용만 봤을 때는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기 힘든 때가 많다. 다시 말해 전후 사정을 다 들어봐야 잘 짜인 것인지 개연성이 무너진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전후사정'이 필요하고 '핍진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매체는 이러한 배경지식이 독자들에게 이미 학습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그 장면만 봐도 문제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것.

설정 오류가 작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핍진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러이러하다고 했던 것이 나중 가서 말이 바뀌면 작품 세계가 잘 짜여져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고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당연하지만 현실은 거의 늘 일정한 규칙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종류의 설정 오류가 동일하게 핍진성 하락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언급된 지 너무 오래됐거나 별로 중시되지 않았던 설정은 작품 향유자들도 까먹기 때문에 오히려 어색하다는 느낌을 잘 받지 못한다.

7.3. 핍진성과 현실성이 차이를 보이는 예

선술했듯이 만화 원피스에서 쿠이나가 계단에서 실족사한 것도 무너진 핍진성의 좋은 사례다. 원피스에서는 위험한 흉기나 폭탄 등 수많은 살상무기들이 터져도 등장인물들이 잘 죽지 않는 설정이라고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계단에 굴러떨어져 죽은 쿠이나를 보면서 많은 독자들이 위화감을 느낀 것. 이는 오히려 현실이었으면 꽤나 위험한 사고이기 때문에 '현실성'은 높은 사망 원인이지만, 작품 내적으로 설립된 배경지식이 이를 뒤바꾼 것이다.[12] 만약 원피스가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다면, 독자들은 쿠이나를 정상으로 여겼을테고, 반대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말도 안되는 내구력에 위화감을 느꼈을 것이다. 잘 궁리해보면 핍진성을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아무리 초인이 넘치는 원피스 세계라 해도 쿠이나처럼 어린 아이일 땐 약하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러한 보충이 없다면 다들 잘 안 죽는데 혼자 잘 죽는 것처럼 (비록 현실적인 이유일 지라도) 보일 수밖에 없다.
So there’s sound in space. I can’t suddenly have spaceships flying around without any sound anymore because I’ve already done it. I’ve established that as one of the rules of the — of the — of my galaxy and I have to live with that.

그래서, (나의) 우주에는 소리가 있다. 이제 와서 아무 소리도 없이 날아다니는 우주선을 만들 수 없는 것은 내가 그런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이미 내 은하의 규칙 중 하나로 굳어졌고, 나는 그 규칙과 함께 살아야 한다.
조지 루카스, '왜 스타워즈 시리즈의 우주에서는 소리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앞서 인용했듯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도 현실성과 핍진성이 차이를 보이는 예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우주선을 들 수 있다. 우주 공간은 진공이라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문제는 관람자들 중에서 그런 우주 공간을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 관람자들은 큰 트럭이 시끄럽게 움직이는 소리, 비행기가 공기를 찢는 소리 등 일상의 경험을 통해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면 굉음이 잇따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긴다. 따라서 위의 인터뷰에서처럼 "나의 우주는 그런 우주다"라고 해버려도 관람자들로서는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즉, 쉽게 말하자면 우주선 같은 물체가 움직이는데 아무 소리가 안 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재미의 기준은 관람자마다 다른 면은 있으나,[13] 오늘날 대다수의 관람자, 특히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인상 깊은 거대한 시청각 효과를 기대하는 면이 있다.[14] 커다란 물체가 움직이면 현실에서 겪는 커다란 소리가 나야 웅장함을 느끼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많다. 즉, 이는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현실성을 어쩔 수 없이 희생한 일종의 만화적 허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7.4. 대놓고 핍진성을 무시하는 설정을 짜기

대놓고 현실성을 무시하는 설정이나 아예 작정하고 설정의 생략을 해버리면 핍진성 논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핍진성을 좀 덜 신경 쓰기로 하자"라고 작품 향유자와 작품 창작자가 암묵적인 합의를 하는 것이다.

가령 좀비 같은 소재가 그렇다. 좀비가 비현실적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좀비물을 주로 즐기는 이들은 좀비의 현실성을 따지기보단 일단 좀비가 존재했을 때 생겨나는 공포, 좀비를 쏴죽이는 액션감 등의 요소를 좋아하기 때문에 좀비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작자들도 향유자의 그러한 경향을 반영해서 작품을 만든다. 즉, 향유자와 창작자가 좀비의 핍진성에 대해서는 무시하자고 합의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좀비의 핍진성을 일부 측면에서만 다루기 시작하게 되면 이 합의가 깨지고 기존의 장르에서 다들 짚지 않고 넘어갔던 부분까지도 이상하게 느껴지게 된다. 원래 "좀비는 뭘 안 먹어도 계속 버틴다"라는 게 당연했는데 28일 후 시리즈에서 "감염자도 살아있는 인간이라 영양분이 필요하다"라는 현실적인 설정을 넣으니 "그럼 사람하고 비슷한 정도로만 버텨야지 훨씬 더 오래 버티는 건 이상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게 된다. 더 나아가서 "살아있는 인간인데 신체 결손이 극심한 좀비 상태에서 움직이는 게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이족보행병기가 나오는 작품도 지구를 지키는 열혈물에서는 "이족보행로봇이 멋있으니까" 하는 로망으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리얼로봇물을 표방하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서는 왜 그 기술력으로 무한궤도 차량을 안 만들고 이족보행병기를 만드느냐, 저렇게 기술이 발전했는데 왜 AI 파일럿은 없느냐 등의 논란이 생긴다.

다만 어디에나 핍진성을 보다 더 중시하는 작품 향유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장르에서도 좀 더 핍진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장르가 갈라져 나가기도 한다. 거대로봇물에서 리얼로봇물이 갈라져 나온 것이 이런 맥락이다. 위에서 언급된 현상은 핍진성을 거의 추구하지 않는 장르에서 핍진성을 조금씩 추구하게 되면서 생기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장르가 굳어지면 또 그 나름대로의 핍진성이 구축되어 창작자와 작품 향유자가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는 선이 생겨나게 된다.[15]

7.5. 핍진성과 캐릭터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캐릭터는 갑작스러운 전개를 설명하기 좋기 때문에 '이 캐릭터는 개연성이자 핍진성'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일리단 스톰레이지나 유희왕 시리즈의 카이바 세토가 그 예이다. 캐릭터 성격 자체가 돌발적이므로 그 캐릭터의 행적이라고 하면 돌발적인 전개를 설명할 수 있는 개연성이 생기게 된다. 현실에도 별 이유 없이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은 존재하므로, 묘사만 충분하다면 이런 캐릭터가 작품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다지 핍진성을 해치는 일이 아니게 된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일리단 카이바도 처음 등장했을때와 현재 독자들의 이미지가 굉장히 달라져 이런 평가를 받는 부분도 있다. 일리단은 처음 설정으로 언급되었을 땐 '위대한 운명을 점지받은 영웅에서 힘에 취해 동족을 배신한 배신자'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다가 '만년 동안 한 여자만을 바라본 고독한 순정파+신과 같은 절대자의 지배를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갈 것을 주장하는 혁명가'라는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카이바 또한 처음 등장했을 땐 그저 유희에게 시비를 걸다 처발리고 사라진 삼류 악당이었다가 그때를 계기로 각성해 한 기업을 이끄는 회장이자 동시에 온갖 그럴싸한 기행을 선보이는 웃음벨로 평가받는게 지금의 평가다. 이런 이미지 탈피나 재평가 역시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꾸준히 핍진성을 확보하려고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8. 여담

흔히 ' 고증'이라고 싸잡아 잘못 이르는 경우가 많다.[16] 고증은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극이 진행될 때에 한해서만 핍진성과 거의 의미가 동일하다. 이외의 경우에는 겹치는 부분은 있을지언정 같은 용어는 절대 아니다.

PC, 즉 정치적 올바름이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가치를 무작정 집어넣으려다 보니 작품 속 세계에 어울리지 않고 핍진성을 해치게 된다. 여성들이 억압받던 조선시대 배경에서 여성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똑같이 PC를 의도하더라도 조선시대를 현대의 비유로서 활용해, "여성에 대한 억압은 불공정하다"라고 호소한다면 여성인권을 주장하면서도 핍진성에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그 시대에 여성 인권이 남성보다 낮았던 것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기 때문. 물론 핍진성을 보강해 줄 수 있는 추가 설정이 있다면 문제 없다. 박씨전처럼 신묘한 초능력을 가졌다거나,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거나 하는 것처럼.

SNS에서는 드라마 조선구마사에 대한 논란이 한창 이어질 당시 이 핍진성의 극단적인 예를 표현한 드립이 있는데 이른바 '아머드 태종'이다. 조선의 임금인 태종을 빔샤벨을 휘두르는 슈퍼로봇으로 표현해도 핍진성이 보장된다면 창작물로서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 실제 흥행 여부를 재쳐두고 창작물에서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정을 근거로 조선 시대를 미래풍으로 설정한다면 이런 아머드 태종 또한 현실성이 없다고 할 수 있어도 핍진성 자체는 보장될 수 있다.

위 예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물질적 요소보다 정신적 요소의 핍진성을 맞추는 것이 더 어렵다. 기술이나 도구는 실제 역사에서도 즉각즉각 도입할 수 있지만[17] 문화는 적어도 세대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 괜히 문화 지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태종이 빔샤벨을 드는 거야 '그런 세계라 하면 가능'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만 세종이 태종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변화 자체는 더 사소할지라도[18] 그런 조선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핍진성이 깨졌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2021년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에서 일어난 핍진성 미비는 이 되기도 했다. 해당 작품에서 공작 캐릭터가 기사 2만 명을 동원할 수 있다고 언급하는 장면에서 시작된 떡밥으로, 설정과 몰입을 중요시하는 디시 장르소설 마이너 갤러리에서 '중세 시대 공작한테서 일반 병사도 아니고 기사 2만 명이 현실에 맞냐'며 열띤 토론의 장이 벌어졌고, 결국 기사 2만 명이라는 밈이 되었다. 비슷하게 까이는 것으로 《시한부 악녀의 해피엔딩》에 나오는 6kg 단검이 있는데, 여기에 판타지는 애매하게 설정하면 반영을 엉망으로 한 듯이 보이니 뻔뻔해야 한다며 370kg짜리 단검이 글에 나오면 오히려 무슨 내용인지 보고 싶어진다는 도 올라왔다. 이 문서에 나오듯이, 사실성을 낮춰서 오히려 핍진성을 확보하는 사례도 있으므로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파일:17f9659c3413a0c6d.webp

개연성/현실성/핍진성을 설명하는 위의 이미지가 유명하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민간인들이 매트릭스가 만든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19]은 작중 세계의 인물이 자신들의 '현실'에서 핍진성이 어긋나는 감각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9. 관련 문서



[1] 동음이의어 '핍진(乏盡)하다'는 근대 이전의 소설 낙천등운(落泉登雲)에서부터 일찍이 등장한다. [2] 계단 낙상사고는 현실에서 굉장히 위험한 사고지만, 원피스 작품은 워낙 사람이 잘 안 다치기 때문에 핍진성이 무너진 것이다. '현실성'과 '핍진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예시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3] 스타워즈의 하이퍼스페이스 이동은 물리적인 간섭 자체는 가능하나, 체급이 더 큰 함선에 유의미한 피해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로그 원에서 다스 베이더의 기함이 하이퍼스페이스에 진입하는 소형 반란군 함선을 충각하며 파괴하는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8편에서는 체급이 작은 함선이 하이퍼스페이스 이동으로 경로 내의 초거대 함선을 파괴한다는 핍진성이 파괴된 장면을 내보냈다. 이 장면은 시리즈 전체 서사에서 숱하게 벌어져 온 여러 함대전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 최악의 장면으로 꼽힌다. [4] 창작물에서 이런 예는 위의 예들보다 매우 찾기가 어렵다. 일단 설정을 짰으면 지키고, 안 짰으면 현실의 감각에 맞추려고 하지, 미리 짜둔 설정을 무시하면서 현실성도 없는 전개를 내놓기란 작품 자체를 공들여서 망가뜨리지 않고서야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망작이야 세상에 널렸지만 그런 작품들은 보통 설정 자체가 엉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문의 예는 스타워즈 시리즈라는 유명 시리즈에서 '공들여 쌓아놓은 과거 설정을 일부러 무시하는 식으로' 대놓고 핍진성을 어그러뜨리는 장면이 나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예이다. [5] 개연성에 의심이 드는 때는 대체로 엉성한 구성이나 인과관계 때문이다. [6] 물론 정통 사극의 경우에 해당한다. 퓨전 사극, 판타지 사극은 핍진성과 사실성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이 줄어든다. [7] 게임 장르에서는 TRPG와 같이 참여자들끼리 주사위를 던져 그때그때 확률을 무작위로 정해가며 전개를 결정할 수 있으나 소설에서는 그런 방식을 쓰기 어렵다. [8] 일본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고 한다. [9] 위 전쟁영웅의 예를 들자면 "과거에 그 영웅이 어릴 적에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죽을 뻔했지만 극적으로 살아났다" 등의 일화를 넣어서 "그때 천운으로 살았으니 지금 운 나쁘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짐작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옛날에 운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이랑 지금 운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 상관 없지만 독자들이 그걸로 납득을 하기 때문에 개연성을 보강할 수 있는 것이다. [10] 그리고 톨킨은 이를 더 보강하고자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어딘가에서 들은 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일 뿐"이라는 식으로 설정해두고 있다. [11] 그런 제한을 통해 아무개가 대현자를 마법으로 쓰러뜨리는 터무니 없는 전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도 부차적인 이득이다. 사실 그런 전개가 터무니 없이 느껴지는 것 역시 현실에서는 여러 제한 사항이 많아서(강력한 힘을 얻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등등) 그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12] 그런데 계단 실족사는 현실성은 높지만 개연성은 없는 죽음이다. 당장 주변 사람이 우연히 돌연사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자기 앞에 그런 일이 펼쳐진다면 아득히 황당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현실에서 죽음이란 것은 개연성 있게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인식의 괴리이다. 창작물에서는 최소한의 개연성은 지녀야 하기 때문에 이런 돌연한 죽음에도 불길한 징조가 느껴졌다든지 등의 복선을 넣을 수밖에 없다. [13] 어떤 이들은 커다란 물체가 별 효과 없이 조용히 움직이는 데에서 의외라면서 재미를 느낄 순 있다. [14] 그래서 일반 TV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유난히 현란한 시청각 효과를 사용할 때가 많다. 극장은 관객의 감각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시설이므로 거기서 상영을 하기로 한 이상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관람자들도 그런 영화를 보면 "이건 꼭 영화관에서 봐야 돼"라면서 영화관 관람을 부추기곤 한다. [15] 위에 예로 든 리얼로봇물 역시 "현실성과는 별개로 일단 거대로봇이 나오긴 했으면 좋겠다", "거대로봇이 왜 나와야 하는지 (현실성을 추구하는 장르답게) 일단 설명을 해보긴 하겠다" 정도의 선에서 향유자와 창작자가 합의를 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핍진성을 따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리얼로봇물을 보는 사람들도 완전히 현실적인 밀리터리물이 아니라 거대로봇이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 고증 문서에서 보듯 이 용어는 정확성의 문제가 있어 현재 본 위키에선 ' 창작물의 반영 오류'라는 표현을 쓴다. ' 시대착오적'도 비슷한 의미이다. [17] 근대 동아시아에서는 당장 몇 달 전까지 가마 타고 다니다가 어느날 갑자기 철도가 부설되어 기차를 타고 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18] 가능성만으로만 치자면 태종이 빔샤벨을 들 가능성은 0%이지만 세종이 태종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분명히 가능성이 존재하는 사건이다. [19] 애니매트릭스에서 달리기 선수가 한계를 뛰어넘고는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는 단편.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8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8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