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7:49:26

페네르바흐체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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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네르바흐체 SK
Fenerbahçe SK
<colbgcolor=#002749><colcolor=#ffef00> 정식 명칭 Fenerbahçe Spor Kulübü
(페네르바체 스포츠 클럽)
별칭 Sarı Kanaryalar (노란 카나리아), Fenerbahçe, Sarı-Lacivertliler (노랑파랭이들)[1], Fener.
창단 1907년 5월 3일 ([age(1907-05-03)]주년)[2]
소속 리그 쉬페르리그 (Süper Lig)
연고지 이스탄불 (İstanbul)
홈구장 페네르바흐체 쉬크뤼 사라졸루 스타디움 (Fenerbahçe Şükrü Saraçoğlu Stadyumu)
(50,530석 수용 가능)
라이벌 갈라타사라이 SK - 크탈라르아라스 데르비
구단주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Fenerbahçe S.A.[3]
회장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알리 코치 (Ali Koç)[4]
단장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에롤 빌레식 (Erol Bilecik)
감독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이스마일 카르탈 (İsmail Kartal)
주장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에딘 제코 (Edin Dzeko)
부주장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두샨 타디치 (Dušan Tadić)
역대 한국인 선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민재 (2021~202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진호 (2023~ )[5]
영구결번
12
서포터즈[6]
공식 웹사이트 파일:페네르바흐체 SK 로고.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지난 시즌 성적 (2022-23시즌) 쉬페르리그 2위
우승 기록
★★★[7]
쉬페르 리그 (1부)

(19회)
1959, 1960-61, 1963-64, 1964-65, 1967-68, 1969-70, 1973-74, 1974-75, 1977-78, 1982-83,
1984-85, 1988-89, 1995-96, 2000-01, 2003-04, 2004-05, 2006-07, 2010-11, 2013-14
튀르키예 쿠파스
(7회)
1967-68, 1973-74, 1978-79, 1982-83, 2011-12, 2012-13, 2022-23
쉬페르 쿠파
(9회)
1968, 1973, 1975, 1984, 1985, 1990, 2007, 2009, 2014
발칸컵
(1회)
1966-67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파일:스페인 국기.svg 다니엘 귀사 (Dani Güiza)
(2008년, From RCD 마요르카, 1,4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파일:코소보 국기.svg 베다트 무리치 (Vedat Muriqi)
(2020년, to SS 라치오, 2,100만 €)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엘비르 발리치 (Elvir Baljić)
(1999년, to 레알 마드리드 CF, 2,100만 €)
최다 출장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뮈즈다트 예트키네르 (Müjdat Yetkiner) - 763경기 (1980~1995)
최다 득점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제키 리자 스포렐 (Zeki Rıza Sporel) - 470골 (1915~1934)
리그 득점왕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레스 (Alex) 2회 (2006-07, 2010-11)
1. 개요2. 역사
2.1. 2022-23 시즌
3. 리그 소속 기간4. 선수
4.1. 명단4.2. 유명 선수
5. 기타

[clearfix]

1. 개요

튀르키예의 프로축구 구단. 이스탄불을 연고로 하고 있다.

같은 이스탄불 연고팀인 갈라타사라이 SK 베식타스 JK와 함께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대표적인 명문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나머지 두 팀과 함께 튀르키예 3강팀으로도 분류되고 있다.

2. 역사

1907년 오스만 제국 시절, 지야 송귈렌(Ziya Songülen), 아예툴라 베이(Ayetullah Bey), 네지프 오카네르(Necip Okaner)를 위시로 한 초급 장교들이 카드쾨이에서 창단한 축구단이다. 구단명은 연고지인 카드쾨이에 있는 등대 '페네르바흐체 등대(Fenerbahçe Feneri)'[8]에서 유래했다. 1903년에 노동자들이 모여서 창단한 베식타스 JK, 1905년에 오스만 제국 귀족 자제들이 창단한 갈라타사라이 SK와 같이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3대 구단(사실 이 말고도 이스탄불스포르나 이스탄불 BB같이 이스탄불을 연고지로 하는 축구단은 10개가 넘으나 이 3대 팀에 압도적으로 가려져 2011-12 시즌에 죄다 2부 리그 이하로 강등되어 있다가 14-15 시즌에는 이스탄불이 연고지인 카슴 파샤가 1부리그다.)이었으나 초창기에는 귀족들이 중심으로 후원하던 갈라타사라이 SK와 달리 자금면으로 떨어져 비슷한 처지인 베식타스 JK와 같이 무척 고달픈 시절을 겪어야 했다.

1909년 처음으로 참여한 공식 대회인 술탄컵에선 갈라타사라이에게 0:2 패배를 당한 뒤로 1921년까지 갈라타사라이를 상대로 공식경기 24전 전패, 비공식 친선전으로도 15전 전패를 당하며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 굴욕적인 초창기 역사 때문인지 갈라타사라이와 원수지간 라이벌이 되어 이스탄불 더비로 알아주게 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lkSampiyonlar.jpg
그래도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1911~1912 시즌 첫 시즌 오스만 챔피언십 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갈라타사라이의 독주가 이어지다 1922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할 무렵,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과정에서 양팀의 사정이 뒤바뀐다. 구 기득권층인 오스만 귀족들이 대부분이던 갈라타사라이로선 아타튀르크와 반목하던 반면, 대조적으로 초급장교와 사병들이 주축을 이룬 페네르바흐체는 오스만 제국 타도에 앞장서면서 갈라타사라이는 자금면에서 몰락하고 페네르바흐체가 탄력을 받게 되었다. 그 뒤로 둘은 만나기만 하면 아주 난장판으로 경기를 벌였다. 1952년 이스탄불 리그가 창단되면서 두 팀이 베쉭타쉬와 같이 리그 우승을 독점했고 다시 튀르키예 전역으로 리그가 재편된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이후로 1959년 쉬페르리그 초대우승을 거쳐 현재까지 페네르바흐체는 리그 19회 우승을 거두고 있다.

갈라타사라이가 서포터 수가 더 많고 클럽 국제대회(UEFA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점을 내세우는 데 비해, 페네르바흐체도 인기면에서 뒤쳐지지 않는데다가 갈라타사라이와의 팀간 상대전적에서 앞서기 때문에 서로가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1인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쉬페르 리그 우승횟수는 갈라타사라이가 22회로 페네르바체의 19회보다 약간 앞서지만, 준우승 횟수는 갈라타사라이가 13회, 페네르바흐체가 22회로 갈라타사라이를 압도한다. 리그 2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시즌을 합치면 페네르바체가 41시즌으로, 우승+준우승 시즌 35회의 갈라타사라이를 앞선다. 그리고 페네르바체는 1959년 쉬페르 리그 정식 출범 이후 초대 우승팀이다.

페네르바흐체는 구단 공식홈페이지에 튀르키예의 건국 영웅인 아타튀르크가 페네르바흐체의 팬이자 서포터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와의 축구경기를 관람하던 아타튀르크가 자신의 옆에 갈라타사라이 팬 세 명, 그리고 페네르바흐체 팬 두 명이 있는 것을 보고 "여기도 3-3이네(당시 경기결과도 3-3으로 끝났다). 왜냐하면 난 페네르바흐체 팬이거든"라고 하였다는 일화와 함께 클럽의 빌딩이 화재로 전소되자, 가장 먼저 재건 기부금을 쾌척한 사람이 아타튀르크였다는 점, 그리고 직접 클럽에 방문해서 축사를 적어놓고 가기도 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아타튀르크 자신이 군인 출신이었고, 군인들을 중심으로 창단된 페네르바흐체의 창단비화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와서도 한때 자금난에 시달려 선수들에게 돈도 지급하지 못하던 갈라타사라이와 달리, 화려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기장인 쉬크뤼 사라졸루 스타디움은 UEFA에게 4성 경기장으로 인정받아 UEFA컵 결승을 비롯한 국제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클럽 국제대회 성적은 1963-64 시즌 위너스컵(유로파리그)에서 거둔 8강이 첫 토너먼트 진출. 하지만, 라이벌 갈라타사라이가 먼저 1962-63 시즌 유러피언컵(챔피언스 리그) 8강을 거뒀던 것이 있었으며 이후로 페네르바흐체는 40년이 넘도록 클럽 국제대회 토너먼트를 넘지못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스가 80년대 유러피언컵 4강 및 8강을 거두고 2000년대 초반에 와서 각자 유로파리그 우승 및 8강을 거둘때까지 페네르바흐체는 토너먼트를 넘어서지 못해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스 서포터들에게 놀림받곤 했다. 그나마 4인자인 트라브존스포르도 토너먼트를 넘어선 적이 없긴 하지만 이걸로 위안을 받지 못한다.

이런 서러움을 떨친게 김연경 선수와의 일화로 국내에도 어느정도 알려진 아지즈 이을드름(Aziz Yıldırım, 1952년생)이 구단주가 되면서였다. 재벌인 그의 막대한 투자로 2007-08 시즌에는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비롯한 유명선수들을 영입한 끝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인터 밀란, CSKA 모스크바, PSV 아인트호벤과 같은 조를 이뤄 조 2위로 16강에 처음 올랐다. 그리고 16강전에선 전번 UEFA컵 우승팀인 세비야 FC를 만나 1승 1패 끝에 승부차기로 이기며 챔피언스리그 개편 사상 첫 8강 진출을 이뤘다. 8강전에서는 첼시 FC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지만 뒤쳐지지 않은 선전이었다.

2009-10 시즌에서 리그 마지막 경기(34라운드)에서 웃지 못할 사연을 만들었는데, 이 당시 페네르바체는 승점 73점으로 2위 부르사스포르에 승점 1점차로 앞서있는 상태였다. 리그 마지막 경기는 페네르바체와 트라브존스포르, 그리고 부르사스포르와 베식타스의 경기였는데, 페네르바체가 트라브존스포르와 후반전 1-1로 비기고 있던 와중에 장내 아나운서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관중들에게 외쳤다. 부르사스포르가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베식타스에게 연거푸 실점하며 2-2 동점이 되었다는 것. 경기장에 환호성이 울려퍼졌고, 선수들도 이 소식을 듣자마자 굳히기에 들어갔다. 결국 경기는 1-1로 끝났고, 기쁨에 찬 선수들과 관중들이 그라운드에 어우러져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던 와중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이유인 즉, 장내 아나운서가 사실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주위에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부르사스포르의 경기결과를 2-2로 알린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 장내 아나운서가 부르사스포르의 소식을 들었던 때에 부르사스포르가 베식타스에게 실점을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2-1이 되는 만회골이었고, 경기는 그대로 2-1 부르사스포르의 승리로 끝이 났던 것. 결국 부르사스포르가 승점 3점을 획득하며 종합 승점 75점으로, 페네르바체를 2위(74점)로 끌어내리고 역전 우승한 것이다. 결국 쉬크리 사라조을루 스타디움에서 우승의 환희에 빠져있던 관중들과 선수들은 각자 지인들에게 핸드폰으로 연락해서 사실을 확인해보는 진풍경을 연출하였고, 이내 허탈감과 분노에 빠진 관중들의 폭동으로 경기장과 카드쾨이 지구는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오보를 저지른 장내 아나운서가 이을드름 단장에게 폭행을 당하고[9], 이것도 모자라서 팬들에게 한동안 살해 위협을 받았던 건 덤이다. 이 모든 해프닝들은 1984년 이후, 26년만의 비(非) 이스탄불 연고 클럽의 우승이자,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창설 이후, 52년간 4강 갈라타사라이, 페네르바흐체, 베식타스 JK, 트라브존스포르)의 우승독점체제를 종결시킨 부르사스포르의 우승과 결부되어 지금도 페네르바흐체의 흑역사로 언급되고 있다.

2010-11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위하여 승부조작을 저지른 게 드러나면서 회장인 아지즈 이을드름이 구속되었으며 최대 93년 징역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튀르키예 축구거물에서 꽤 부유층인 아지즈 이을드름 회장[10]이 이렇게 승부조작을 저지른 것이 공교롭게도 2009-10 시즌 리그 우승 좌절 때문이 컸는데 페네르바흐체가 마지막 리그 경기 34차전을 비기면서[11] 부르사스포르가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우승(승점 2점차)을 거뒀던 점 때문에 입지가 큰 타격을 받자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구금되었던 이을드름 회장은 페네르바체 서포터들의 극성스러운 반발과 시위로 인해 결국 2012년 7월 출소하여 지금도 왕성한 집권활동을 하고 있다. 이을드름 회장에 대한 팬들의 존경과 지지는 국부(國父) 아타투르크에 비견된다. 여담으로 승부조작 사태가 있었지만 알레스(1977)은 득점왕을 차지한다.

2011-12 시즌에 리그 우승은 실패하였으나, 튀르키예 쿠파스에서 29년 만에 우승하였다.

2012-13 시즌에 유로파리그 8강전 SS 라치오1승 1무로 팀 역사상 처음이자 튀르키예 구단으로선 14년 만에 유로파리그 4강에 진출하였다.

2013-14 시즌에 UEFA로부터 승부조작 혐의를 의심받아 올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과 함께 향후 3년간 유럽대항전 진출권을 8월 말에 열린 스포츠중재재판소(CAS) 최종 판결 결과로 인해 2013-14 시즌 UEFA 클럽대항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리그 우승에도 불구하고 유럽축구연맹(UEFA)의 징계로 인해, 다음 시즌에도 유럽대항전 진출자격을 박탈당했다.

2014-15 시즌은 지난 시즌 리그 우승을 이뤄냈던 에르순 야날 감독을 전격 경질하였으며, 이스마일 카르탈 수석코치가 새 감독이 되었다. 그 와중에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는 '지난 수 년동안 페네르바흐체에게 성공을 안겨다 준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었다.'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2015년 4월 4일 리제스포르 원정 경기에서 5-1 승리를 거두고 공항으로 향하던 구단 버스에 총격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운전 기사가 부상을 입었고 이후 튀르키예 리그 및 컵대회 경기가 일주일 동안 중단된 바 있다.

이미 저 위에 이스마일 카르탈 임명사건[12] 부터 시작해서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의 경솔한 언행, 독단적 행정에 지친 서포터들이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의 사퇴를 외치기도 했지만, 아지즈 이을드름은 차기 구단주 선거에 출마하여 6,500표 중 5,000표 이상을 득표하며 보란 듯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13] 여기서 힘을 얻은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는 감독 자리에 이웃나라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의 감독 비토르 페레이라를 데려와서 감독 자리에 앉혔다.

2015-16 시즌에는 재선에 성공한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는 지울리아노 테레아노(Giuliano Terraneo)를 스포츠 디렉터로 영입하고 본격적으로 선수영입에 나선다. 먼저 시몬 키예르를 이적료 765만 유로에 영입했고, 부르사스포르로부터 2014-15 시즌 튀르키예 쉬페르 리그 득점왕 페르난당(Fernandão)과 셰네르 외즈바이락르(Şener Özbayraklı)를 데려왔으며, 브라질 상파울루 FC의 수비형 미드필더 조세프 데 소우자(Josef de Souza)를 이적료 800만 유로에 영입해왔다. 또한 FC 포르투의 골키퍼 파비아누(Fabiano)와 센터백 압둘라예 바(Abdoulaye Ba)를 임대영입한 것도 모자라다고 느꼈는지, 월드클래스 급 플레이어를 데려오겠다고 천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로빈 반 페르시 나니를 영입한다. 그야말로 '분노의 영입' 스킬을 시전한 셈인데, 이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이적료로 약 3,300만 유로를 지출했다. 여기에 부르사스포르의 주축 선수들인 오잔 투판(Ozan Tufan)과 볼칸 셴(Volkan Şen)까지 영입하면서 이적료로 약 4,300만 유로 가까이 지출했다.

하지만 그렇게 선수영입을 하고도 유로파리그에서도 신통치 않았고, 준우승만 2번 기록했다.

2018-19 시즌에 리그와 유럽대항전에서 부진하자 37대 회장 선거에서 결국 이을드름은 재선에 실패하고 또다른 대재벌 알리 코치가 회장에 새롭게 취임했다. 이에 속이 상한 건지 이을드름은 3년 뒤인 2021년 6월에 알리 코치가 나보다 나은 게 뭐냐고 방송에 나와 징징거리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후, 2시즌(2019-20, 2020-21)에도 부진하게 되기도 했다.

2021-22 시즌은 김민재를 영입하면서 페네르바흐체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준 시즌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활약을 했으나, 트라브존스포르가 38년만에 리그 우승하면서 아쉬운 시즌이라 볼 수 있다.

튀르키쉬 쿠파스에선 16강전에서 카이세리스포르에게 0-1로 져서 탈락해 무관에 그치게 되었다.

HJK 헬싱키와의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5:2로 대승을 거두면서 1, 2차전 합계 6:2의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유로파리그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올림피아코스에게 2패를 당하고 1승 3무 2패로 3위를 기록하며 컨퍼런스리그 진출하여 16강 플레이오프에서 슬라비아 프라하를 만나게 되었으나 총 점수는 6-4로 진다.

2.1. 2022-23 시즌


결국 리그 준우승을 하며 UEFA 챔피언스 리그 2차 예선에 진출했다. 상대는 우크라이나의 FC 디나모 키이우. 1차전에서는 0-0으로 비겼다. 2차전에는 1:2로 지면서 예선 탈락했는데 팬들이 우크라이나에게는 철천지 원수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연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사실, 튀르키예는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편들고 있고 튀르키예가 자랑하는 바이락타르 무인기는 러시아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며 아예 제조 공장을 우크라이나에 짓기로 할 정도이다. 이건 특정구단이 벌이는 짓이기에 이에 UEFA는 8월 6일(이하 한국시간) 페네르바흐체에 5만유로(약 6650만원)의 벌금과 UEFA 주관 대회 홈 경기 관중석 부분 폐쇄 징계를 부과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페네르바흐체는 1차례 UEFA 클럽 대항전 홈경기에서 최소 5,000석 이상 관중석을 비워두고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렇게 UEFA 유로파 리그/2022-23 시즌/조별리그로 내려갔으나, 조 추첨 결과 또다시 디나모 키이우, 그리고 스타드 렌 FC, AEK 라르나카와 한 조에 편성되었다. 덕분에 1차전 홈경기는 또 디나모 키이우랑 맞붙게 되었고 5000석이 넘는 관중석을 비워야 했다. 그래도, 2-1로 이겼으며 라르나카를 2-0, 2-1로 다 이기며 원정에서 2-2로 비긴 스타드 렌과 똑같은 3승 1무로 1위이며 남은 2경기랑 상관없이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키이우는 승점 0이고 라르나카는 3점이라 2경기를 다 이겨봐야 10점인 페네르바흐체랑 렌을 넘을 수 없기 때문. 6차전인 키이우 원정도 2-0으로 이기며 라르나카와 비긴 스타드 렌을 제치고 조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16강에서 세비야를 만나 1차전에서 2:0 패배하고 2차전에서는 1:0으로 승리했지만 도합 2:1로 16강에서 탈락한다.

리그에선 4위에서 중반 시점에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갈라타사라이에게 뒤집어줬고, 10점 차로 2위를 했다.

튀르키예 컵에서는 이스탄불 바샥셰히르를 2:0으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 2023-24 시즌 #===
파일:페네르바흐체 SK 로고.svg
파리 프리미어 컵
2023년 7월 13일 목요일 00:30 (KST)
스메나 스타디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심: 예브게니 쿠쿠랴크
관중: 3,075명
파일:페네르바흐체 SK 로고.svg
1 : 3
파일:FK 츠르베나 즈베즈다 로고.svg
페네르바흐체 츠르베나 즈베즈다
79' 젠기즈 윈데르 (A. 제이든 오스터펠더) 파일:득점 아이콘.svg 1' 피터 올라인카 (A. 장필리프 크라소)
39' 미르코 이바니치 (A. 피터 올라인카)
82' 블라디미르 루치치 (A. 라자르 니콜리치)
매치 리포트 | 경기 하이라이트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자마자 윌프레드 자하의 이적설이 있었으나 결국 7월 말, 라이벌팀 갈라타사라이에 빼앗겼다.

원더키드 아르다 귈러가 2천만 유로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하였으며, 김민재의 수비 메이트였던 헝가리 왼발 수비수 어틸러 설러이도 결국 1천2백만 유로에 호펜하임으로 이적하며 오랫동안 뛰었던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인테르에서 에딘 제코가 자유계약으로 이적하였다. 등번호는 9번, 이적하자마자 주장으로 임명 받았다.

아약스의 10번 두샨 타디치도 자유이적하며 아르다 귈러의 이적으로 비었던 10번이 다시 채워지게 되었다.

전 시즌 페예노르트에서 성공적인 임대생활을 마친 공격형 미드필더 세바스티안 시만스키를 페네르바체가 약 1천만 유로로 소속팀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이적 시켰다.

지난 시즌 준우승을 하며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2차 예선에 진출했다. 상대는 몰도바의 FC 짐브루 키시너우. 1차전에서는 5-0으로 승리했다. 2차전에서도 4-0으로 승리했다. 3차 예선 상대는 슬로베니아의 NK 마리보르. 1차전에서는 3-1로 승리했다. 2차전에서도 3-0으로 승리하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네덜란드의 FC 트벤터. 1차전에서는 5-1로 승리했다. 2차전에서도 1:0으로 승리했다. 조별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여 16강에 올라갔다. 벨기에의 위니옹 생질루아즈 전에서 총 3:1로 8강으로 진출했다.

3. 리그 소속 기간[14]

4. 선수

4.1.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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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네르바흐체 SK 스쿼드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bottom: -15px"
페네르바흐체 SK 2023-24 시즌 스쿼드
<rowcolor=#002749> 번호 포지션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2 D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찰라르 쇠윈쥐 Çağlar Söyüncü [1]
3 D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사메트 아카이딘 Samet Akaydin
4 D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세르다르 아지즈 Serdar Aziz
6 DF 파일:가나 국기.svg 알렉산더 지쿠 Alexander Djiku
7 FW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페르디 카디올루 Ferdi Kadioglu
8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메르트 하칸 얀다시 Mert Hakan Yandaş
9 FW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에딘 제코 Edin Dzeko 주장
10 FW 파일:세르비아 국기.svg 두샨 타디치 Dušan Tadić 부주장
11 FW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라이언 켄트 Ryan Kent
14 DF 파일:브라질 국기.svg 루앙 페리스 Luan Peres
15 FW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조슈아 킹 Joshua King
16 D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메르트 뮐뒤르 Mert Müldür
17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이르판 잔 카흐베지 Irfan Can Kahveci
18 MF 파일:브라질 국기.svg 링콩 Lincoln
19 DF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레오나르도 보누치 Leonardo Bonucci
20 FW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젠기즈 윈데르 Cengiz Ünder
21 MF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브라이트 오새이새뮤얼 Bright Osayi-Samuel
22 FW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우무트 나이르 Umut Nayir
23 FW 파일:벨기에 국기.svg 미시 바추아이 Michy Batshuayi
24 DF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제이든 오스터펠더 Jayden Oosterwolde
25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엠레 데미르 Emre Demir
26 MF 파일:슬로베니아 국기.svg 미하 자이츠 Miha Jajc
28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바르투 엘마즈 Bartuğ Elmaz
33 MF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 라데 크루니치 Rade Krunić [2]
35 MF 파일:브라질 국기.svg 프레드 Fred
40 GK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도미니크 리바코비치 Dominic Livakovic
50 DF 파일:브라질 국기.svg 호드리구 베캉 Rodrigo Becão
53 MF 파일:폴란드 국기.svg 세바스티안 시만스키 Sebastian Szymański
70 GK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이르판 잔 에으리바야트 İrfan Can Eğribayat
77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부락 카파자크 Burak Kapacak
80 MF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이스마엘 윅세키 İsmail Yüksek
97 GK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푸르칸 오누르 아크위즈 Furkan Onur Akyüz
99 FW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엠레 모르 Emre Mor
구단 정보
회장: 에롤 빌레지크 / 감독: 조르제 제수스 / 홈 구장: 페네르바흐체 쉬크뤼 사라졸루 스타디움
출처: 페네르바흐체 SK 공식 홈페이지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8월 19일

[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임대 [2] AC 밀란에서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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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유명 선수

5. 기타

파일:attachment/페네르바흐체 SK/2b.jpg
이미지 출처
페네리움(Fenerium, 페네르바흐체 공식 기념품점)에서 둘리가 무단도용되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샤다라빠에 의해 밝혀졌다! 현재도 팔린지 불분명하다.

파일:Fcof.jpg
항상 같이 경기를 보러 오는 İhsan과 Mümtaz라는 노부부 팬이 있었는데, 둘 다 어릴 적부터 페네르바흐체를 응원했다고 한다. Mümtaz 옹은 2016년 타계했으며 그 후로도 İhsan 할머니 혼자 경기장을 찾다 2020년 12월쯤 타계하였다. 그러자 평생동안 페네르바흐체를 응원한 노부부를 기려 구단 차원에서 관중석의 그들이 앉던 자리쯤에 노부부의 모습을 입간판으로 세웠다고 한다. 짤의 변종이 많아 처음 1~2컷(노부부가 같이 있는 부분)의 년도가 2011년에서 2015년 사이를 오락가락하지만, 할머니 혼자 경기장에 온 사진과 입간판이 세워진 사진은 각각 2016년과 2020년 말이 맞다.
파일:external/imggaleri.hurriyet.com.tr/Adam%20gibi%20adam.jpg
한때 페네르바흐체 서포터들의 흑역사였다.[15]

[1] 튀르키예어로 sarı 노란색 , lacıvert 진한 남색 을 의미한다. 거기에 사람을 뜻하는 접시사 li와 복수형 접미사 ler가 붙은것. 라이벌팀인 갈라타사라이의 별명은 마찬가지로 Sarı-kırmızlılar (노랑빨강이들)이다. [2] # [3] 알리 코치를 구단주로 아는 경우도 많지만 페네르바흐체는 FC 바르셀로나처럼 주주들 모임이 구단주이며 주주들이 회장 선거로 대표를 뽑는다. 사실,튀르키예 구단 대다수가 이런 체제라서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쉬 역시 주주들 모임이 구단주이다. [4] 37-38대 회장으로 FC 바르셀로나의 스폰서였던 가전제품 브랜드 Beko를 보유했다. 코치 그룹은 튀르키예에서 으뜸가는 대기업으로 유명하다. 코치 가문의 재산은 80억~100억 달러(약 1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튀르키예 관련 책을 여럿 쓰고 튀르키예에서 대학교수를 역임 중인 이희수 교수가 쓴 튀르키예 관련 책자에서 코치 그룹을 "튀르키예의 삼성그룹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서술했다. [5] 23/24 시즌 FK 노비 파자르로 임대 [6] 선발 라인업 11명 다음의 번호인 12번을 팬들을 위해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놓았다. [7] 5회 우승에 별 하나다. [8] 1562년 보스포루스 해협에서의 해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쉴레이만 1세의 명으로 세워진 등대이다. 이 등대는 지금도 남아있으며 지금의 등대는 1857년 세워진 등대이다. [9] 아지즈 이을드름의 아들이다. [10] 건설업계의 대부호인데 이분이 회장에 오른뒤 페네르바흐체는 엄청난 자금력을 지니게 된다. 그동안 페네르바흐체도 갈라타사라이와 똑같이 재정부침이 컸는데 이을드름 회장 취임뒤 매출과 수입이 개선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된다. 가장 대표적인걸로 쉬크뤼 사라츠오울루구장인데 이 구장도 원래는 종합경기장이었다가 차츰차츰 개조를 해서 현재의 5성전용구장이 탄생한거다. [11] 그런데 당시 페네르바흐체 측 중계 아나운서가 부르사스포르가 마지막 경기를 비겼다고 잘못 보도하면서 1점차로 페네르바흐체가 이긴줄알고 페네르바흐체 선수들과 관중이 환호하다가 몇 분 안가 부르사스포르가 이겨서 우승 좌절했다는 게 알려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아나운서는 살해협박까지 받으며 엄청나게 욕먹었다고 한다. [12] 이것이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가 비판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감독 자리에 앉혀놓고 시즌 내내 우승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으며, 급기야는 '구단의 성공은 이스마일 카르탈 감독에게, 실패는 나에게' 라고 슬로건까지 내걸며 잘못되더라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던 사람이 바로 아지즈 이을드름이었다. 그런데 막상 팀이 이번 시즌 2위에 머물게 되자 이스마일 카르탈 감독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는 정작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일종의 촌극이 빚어진 것이다. 결국 3년 뒤 회장 선거에선 이을드름은 압도적으로 밀려 재선에 실패했고 무난히 당선되리라 믿던 이을드름은 분노해 몇년이 지나도 알리 코치를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을드름의 비난이 무색하게 알리 코치는 회장에 재선되었다. [13] 2000년대에 페네르바체의 중흥기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아지즈 이을드름 구단주이며, 상대 출마자들의 공약이 워낙 현실성이 떨어지는 내용(멀쩡히 있는 쉬크뤼 사라조을루 경기장을 버리고, 주변 부지를 매입해서 그 자리에 70,000명 수용규모의 새 경기장을 짓겠다고 했다.)이다. 하지만 다시 3년 뒤에는 또다른 재벌 알리 코치가 회장 선거에서 이을드름을 제치고 당선된다. [14] 쉬페르리그의 첫 시즌은 다른 시즌과 달리 유일하게 1959년 단일 시즌이였지만 예선은 1958년부터 시작하였고, 다른 시즌과의 차이점을 피하게위해 1958-1959로 표기. [15] 사나이중의 사나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라고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