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00:00:17

타흐신 야즈즈

<colbgcolor=#e30a17><colcolor=#fff> 타흐신 마나스트르 야즈즈
Tahsin Manastır Yazıcı
파일:attachment/타흐신 야즈즈/yazici.jpg
출생 1892년
오스만 제국 모나스트르
사망 1971년 2월 11일 (향년 79세)
튀르키예 앙카라
국적
[[튀르키예|]][[틀:국기|]][[틀:국기|]]
학력
직업 군인
최종 계급 소장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튀르키예 독립전쟁
6.25 전쟁

1. 개요2. 생애
2.1. 한국 전쟁2.2. 휴전 이후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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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 군인이자 정치인.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선정 2018년 4월의 6.25전쟁영웅에 선정되었다.

2. 생애

1892년 오스만 제국 땅이던 현재의 북마케도니아 비톨라에서 태어났으며 오스만 제국군에 입대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과 튀르키예 독립전쟁에 참전했다.

2.1. 한국 전쟁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준장으로, 파한 튀르키예 제1여단장을 맡아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한국에 파병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이 끝나고 한국에 도착한 튀르키예 제1여단은 후방인 대구에 주둔하다가 전황이 급박해지자 군우리 전투에 참전한다. 이후 군우리 전투와 금양장리 전투의 승전으로 튀르키예 제1여단과 여단장 야즈즈 준장은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으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1]

파일:attachment/타흐신 야즈즈/walker_and_yazici.jpg
월튼 워커 장군으로부터 은성 훈장을 수여받고 있다. (1950년 12월 15일) 사진출처

2.2. 휴전 이후의 불행

6.25전쟁 파병 후 소장으로 진급, 1952년 퇴역했다. 1954년 정당한 선거에 의해 민주당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1960년까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나,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을 반대한 세력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하고 그로 인하여 국회의원 자리에서 쫓겨난 뒤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후 재판을 통해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으나 얼마 못 가 특별사면법으로 석방되었다. 말 그대로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단지 정당을 잘못 택한 탓에 개고생을 한 셈이다.

터키를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전투에 참전해서 무훈을 세웠을 뿐인 야즈즈 장군은 전과로 인해 참전용사 및 퇴역 장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전부 박탈당한 채 살다가 1971년 앙카라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1] 튀르키예군이 낯선 한국 땅에 적응을 못해서인지 군우리 전투에서 1개 중대가 명령도 없이 무단으로 철수하는 등 승전하긴 했어도 체면을 상당히 구겼고 이후 금양장리 전투에서는 야즈즈 장군 휘하 모든 장병들이 독기를 품고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 특히 튀르키예 정부가 한국전쟁을 신을 부정하는 공산당을 때려잡는 지하드로 규정했기 때문에 금양장리 전투에서는 무단 철수했던 중대가 선봉에 서서 총검과 기관총으로 중공군을 그야말로 일망타진하여 모조리 섬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