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7:54:15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크림 위기에서 넘어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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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colcolor=#fff>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전투 크림 최고 라다 점령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 시위
친러 미승인국 도네츠크 · 루간스크 · 하리코프 · 오데사
돈바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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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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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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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및 전투
동부 우크라이나 전선
[첨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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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자1] 파일:우크라이나 원형 국기.png : 우크라군의 승리, 파일:러시아 원형 국기.svg : 러시아군/친러반군의 승리 [첨자2] 파일:ongo.png : 진행중, 파일:우크라이나 원형 국기.png : 우크라군의 승리, 파일:러시아 원형 국기.svg : 러시아군의 승리, ▣: 무승부 [첨자3] 파일:우크라이나 원형 국기.png : 우크라군의 공격, 파일:whattheydo.png : 공격주체 미상, 그 외 각주 참조 [BLR] 벨라루스 파르티잔 공격 [A]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 이후 러시아 연방에 편입된 군민정청 [A] [B] 러시아의 동남부 우크라이나 병합 당시 독립적인 주로서 러시아 연방에 편입되지 않은 군민정청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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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Annexation of Crimea by Russia
Крымский кризис
Кримська криз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일부
파일:러시아 크림 합병 체결.png
크림 공화국, 세바스토폴 합병 조약 체결식[1]
기간
2014년 2월 20일 ~ 3월 18일
장소
크림반도
원인
유로마이단 혁명 여파로 인한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갈등
교전국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러시아|]][[틀:국기|]][[틀:국기|]]

[[크림 공화국|]][[틀:국기|]][[틀:국기|]]
지휘관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올렉산드르 투르치노우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아르세니 야체뉴크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이호르 테뉴흐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미하일로 쿠친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세르히 하이두크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아르센 아바코우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발렌틴 날리바이첸코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안드리 파르비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아나톨리 모힐료우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세르히 쿠니친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라파트 추바로우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무스타파 제밀레우
[[틀:깃발|]][[틀:깃발|]][[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

[[틀:깃발|]][[틀:깃발|]][[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
[[틀:깃발|]][[틀:깃발|]][[세르게이 쇼이구|
세르게이 쇼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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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게라시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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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비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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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크 벨라벤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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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악쇼노프
]]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알렉세이 찰리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틀:깃발|]][[틀:깃발|]][[틀:깃발|]] 루스탐 테미르갈리예프
병력
우크라이나군 러시아 연방군
결과
러시아의 승리
1. 개요2. 배경
2.1. 코소보의 독립2.2. 크림반도의 편입 과정
3. 경과
3.1. 유로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부추김3.2. 친러 세력의 반도 장악3.3.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언어정책
3.3.1. 과도정권의 자충수였다는 측의 주장3.3.2. 반박측의 주장
3.4. 러시아군의 진주3.5. 크림 친러 정권의 러시아 합병 추진, 각국의 중재 시도3.6. 러시아 병합3.7. 이후 상황3.8.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위기
3.8.1. 2014년 4월3.8.2. 2014년 5월
4. 여파5. 러시아의 득실
5.1. 손실5.2. 이익
6. 평가
6.1. 친러시아 측 시각6.2. 친우크라이나 측 시각
7. 이후
7.1. 2015년7.2. 2016년7.3. 2017년7.4. 2018년7.5. 2019년7.6. 2020년7.7. 2021년7.8. 2022년
8. 여담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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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1ca9b74d-7cb6-4bdd-96a1-c5dd71512e80.jpg
좌측은 친서방파 우크라이나 시민, 우측은 러시아군과 친러파 우크라이나 시민, 하단 설명은 "흑해의 긴장" 그리고 우측 끝은 에 올라탄 블라디미르 푸틴이 있다.

1. 개요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 러시아가 점령한 사건. 러시아 측 명분은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 과정에서 크림 반도의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러시아에서 개최되어 진행 중인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어서 세계적인 파장이 컸다.

그리고 이후 벌어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2. 배경

2.1. 코소보의 독립

(SBS)코소보와 크리미아
(한겨레)‘코소보 독립 인정’ 놓고 엇갈리는 나라들
(중앙일보)세르비아인 크림반도 잠입 … 유럽 민족분쟁 불씨 되나
(중앙일보)[불타는 발칸] '코소보해방' 美의 진짜 속셈은…
(한국일보)[세계는 지금] 크림 독립 반대하는 미국, 코소보 독립엔 지지 '이중 잣대'
(연합뉴스)<우크라사태> '영토보전'vs'민족자결'…수백년 논란 재점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진영은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하여 러시아에게 크림반도 합병의 명분을 일정부분 제공한 바 있다. 당시 스페인·그리스·키프로스·슬로바키아·불가리아·루마니아등 유럽내에서도 동의하지 않을 정도[2]로 비논리적이였던 코소보 사태와 코소보의 독립이 단행됐으며 이에 러시아는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결국 미국과 서방의 지지를 받으며 코소보는 일방적으로 독립해 버렸고 # 이에 세르비아와 함께 러시아에서 반감을 가진 것이다.

코소보 사태는 발칸반도의 한 국가의 자치 및 독립이지만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에 잠재돼있던 분리주의 민족자결주의라는 화약고에 불씨를 던진 심각한 사건이었다. 세르비아의 코소보내에서의 행보는 논란을 초래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코소보내의 세르비아의 행보는 "국제법상" 공격을 받을 정도의 행위도 아니였다. 코소보 사태는 엄연히 " 자국 내 분쟁"이였으며 평화를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해당이 안되는 사안이였으며 자국에 속한 지역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국가에서는 반란을 토벌하고 있었던 것이다.[3]

때문에 코소보 독립이 이뤄질 경우 심각한 부작용들이 예상된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 코소보 독립에 대해 러시아 미국에게 코소보 독립에 대해 전 세계 분리.독립운동을 자극할 수 있다고 반대하며 # 서방에 의해 일방적으로 코소보 독립이 인정된다면 그루지야 내 두 자치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코소보가 일방적으로 독립선언을 한지 하루만에 바로 코소보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며 " 코소보의 독립이 다른 지역의 선례가 되선 안된다" #는 '코소보예외론'을 주장하며 이중잣대를 시전한다.

코소보 독립 움직임에 전혀 대처할 수 없었던 세르비아의 무기력함[4]과 코소보에 대한 미국, 유럽의 일방적인 지지에 힘입어 코소보는 국가로 분리독립하게 된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이번에 러시아는 과거 미국과 유럽이 저질렀던 일방적인 코소보 독립과 똑같은 행보를 한 것이다. 단지 유럽연합이 지지한 코소보 독립, 러시아가 지지하는 크림 자치정부 독립으로 주체와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5]

또한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의 이율배반적인 이중잣대로 논란거리가 됐다. 모스크바는 코소보의 독립은 승인하지 않으면서 크림반도 주민의 자결권은 부추기고 있다. 반면 서방은 코소보의 분리는 인정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영토는 온전히 보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소보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번 크림반도 사태도 국가의 영토보존 문제와 민족 자결 문제에 명확한 기준잣대가 없이 자국의 이익과 당시 상황에 따라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언제나 달랐던 것에서 근원이 있는 것이다. #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러시아 전문가인 새뮤얼 차라프 연구원은 지난주 모스크바를 방문한 자리에서 "어떤 나라도 이 문제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결국 이 문제는 코소보독립과 함께 수백년된 논란인 '영토보전'vs'민족자결'이 다시 점화된 것이며 국제사회가 특정 지역의 분리독립을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결국은 상황논리에 달려 있다는 대전제를 재확인한 것이다.

2.2. 크림반도의 편입 과정

Q. 편입은 흐루쇼프의 단독 의사 결정이었나.

A. 그렇다. 당시 소련 헌법에 따르면 영토 문제는 최고 소비에트 회의의 동의와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1953년 서기장에 취임한 흐루쇼프는 절차를 생략하고 이듬해 편입을 일방적으로 지시했다. 크림 반도가 우크라이나에 주는 '흐루쇼프의 선물'이라 불릴 정도였다.
(조선일보)우크라이나에서 아내까지 얻은 흐루쇼프, 現地지지세력 강화 위해 크림반도 '선물'
여기에 니키타 흐루쇼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기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점도 있었다.

3. 경과

3.1. 유로마이단 혁명과 러시아의 부추김

KBS 심층 탐사 보도 따르면 2014년 당시 크림반도의 민족 구성은 약 60%의 러시아계, 약 20%의 우크라이나계, 약 15%의 타타르계, 그리고 그밖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러시아계의 다수는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가 경색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당시 크림 반도는 관광산업 비중이 높았는데, 부유한 러시아인들이 크림반도로 많이 찾아와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우크라이나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반면 우크라이나계는 자신들의 모국은 우크라이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타타르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러시아인들이 크림반도에 들어오기 전부터 살았던 크림반도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고, 스탈린 시절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다가 소련 붕괴 후 가까스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타타르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심했고, 자신들이 고향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2014년 2월말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친러 성향이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고,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구성되었다.

러시아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며,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이라고 맹비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 등 친서방 진영으로 기우는 것을 맹렬히 반대하고 있었으며, 일부 현지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으로 간다면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돌려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 FSB)은 이미 몇주 전 부터 "야누코비치를 축출한 유로마이단 세력이 머지않아 서방을 끌어들이고 크림반도로 들어올 것" 이라고 푸틴에게 보고를 했다.

당시 크림 자치공화국 총리였던 아나톨리 모힐로프(Анатолій Могильов, 1955 ~ )는 새로 세워진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인정하고자 했다. 대부분의 크림 반도 지방정부 수장들도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이들 대부분이 속해 있는 정당인 지역당(Партія регіонів, Партия регионов)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도 속해 있었던 정당으로 친러적 성향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크라이나는 틀 안에서 친러적이었던 것이지 크림 반도의 독립 혹은 러시아 합병에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로마이단의 여파로 지역당은 붕괴해가기 시작했고 친러적인 크림 반도 주민들은 유로마이단과 이로 인해 세워진 친서방 성향 과도정부에 불안감을 갖기 시작했다.

2014년 2월 25일, 러시아 하원 독립국가 연합 문제 담당 위원회 레오니트 슬루츠키 위원장이 이끄는 의회 대표단이 크림 자치 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을 방문하여, 지방 정부 및 의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민 투표 및 의회 결정 등을 통해 병합해 요청이 들어올 시 이를 신속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크림 반도에서도 각지에서 친러 시위대와 반러 시위대가 충돌하는 등 혼란에 빠져들었다.

3.2. 친러 세력의 반도 장악

2월 25일, 세바스토폴 시내 광장에서 러시아계 주민 수만명이 러시아 국기를 들고 나와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와 현 세바스토폴 시장, 그리고 의회의 해산을 주장했다. 친러 시위대의 집회 도중에 러시아 태생의 알렉세이 찰리(Алексей Михайлович Чалый, Aleksei Chaly, 1961 ~ )라는 사업가가 친러시아 시위대에서 새로운 세바스토폴 시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1987년부터 전기용품 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사업가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바실리 찰리라는 소련군 제독이었고 독소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친러시아 시위대의 지지를 받은 알렉세이 찰리는 볼로디미르 야추바(Яцуба Володимир Григорович, Volodymyr Yatsuba, 1947 ~ ) 현직 세바스토폴 시장을 사임시키고 스스로를 새로운 세바스토폴 시장이라고 선언했으며, 친러시아 시위대에 압박을 느낀 세바스토폴 특별시 의회도 이를 인정했다. 그런데 당시 세바스토폴은 우크라이나의 특별시로 시장을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는데다가, 그는 우크라이나 국적이 없는 러시아 국적자였다. 따라서 그가 세바스토폴 시장에 취임하는 모든 과정이 우크라이나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불법이었다.

2월 26일 알렉세이 찰리는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의 어떠한 명령도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해산되었던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베르쿠트의 대원들을 다시 소집해 자경단으로 삼았다.
파일:external/www.sisainlive.com/19685_38736_656.jpg
세르게이 악쇼노프(1972 ~ )
Сергей Валерьевич Аксёнов( 러시아어)
Сергій Валерійович Аксьонов( 우크라이나어)
2월 27일, 갑자기 등장한 의문의 인물인 41세의 몰도바 태생의 세르게이 악쇼노프(Sergey Aksyonov)가 크림 자치 공화국의 총리가 되었다. 이 사람은 그 전부터 알려진 정치인도 아니었고, 지지율 3%짜리의 군소정당의 듣보잡 의원이었던 인물이다. 정치 이전의 이력도 불투명하다. 그는 1990년대부터 담배와 우산 판매 사업을 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업가라기보다 범죄 조직을 이끌며 담배를 밀수하던 조직을 거느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크림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에 가입했고, 2010년에 '러시아 통합당'[6]을 만들었다. 이 당은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 100석중 3석만을 차지하는 소수 정당이었다. 키이우에서 유로마이단 사건이 터지자 바로 친러시아 자경단을 조직하였고 세를 불려나갔다.

그가 27일에 총리로 선출된 과정은 전광석화와 같았다. 총기와 로켓 발사기 등으로 무장한 20여 명의 병력이 크림 자치 공화국 의회 건물과 지방 정부 청사를 순식간에 점거했다. 몇 시간 뒤 악쇼노프는 의회로 유유히 걸어들어가 즉각 의원들을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아나톨리 모힐로프를 해임하고 총리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크림 자치 공화국 영토의 안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러시아는 즉각 "(그들의 요청을) 못 본 척하지 않겠다"고 답했고, 러시아군의 크림 반도 점거가 시작됐다. # #

악쇼노프는 친러파이긴 하나 러시아에서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악쇼노프가 뼛속깊은 러시아 애국주의자이며 그의 가족이 소련군 장교였던 것과 연관이 있다고 전했다. # 이 사람이 크림의 러시아 병합을 이끈 장본인이지만 그는 크림 주민의 선거 결과로 선출된 총리가 아니다.

3.3.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언어정책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언어정책이 분리주의 운동을 촉발했다는 주장이 있다. 즉 2012년 언어법을 폐지하여 러시아어를 공용어 지위에서 기존의 지위(소수언어)로 되돌린 것이 분리주의 운동을 일으켰으며, 그러므로 과도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3.3.1. 과도정권의 자충수였다는 측의 주장

"당장의 승리에 우쭐해진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경솔하게도 미련한 성명들을 발표했다." 그 중에는 여러 지역에서 제2의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러시아어의 지위를 폐지하겠다는 사항이 들어 있었다. 그 지역들에 러시아어 사용자들의 대다수가 살고 있고 친러시아 정서 또한 강하다는 점과 실제로 크림 반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성명이 반발을 불러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게다가 이는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내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할 필요성을 공공연히 떠들어대는 격이었다.
팀 마샬(Tim Marshall)[7] <지리의 힘> - 141 page.-
2014년 2월 23일 우크라이나 임시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주민 10% 이상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지역에서 러시아어 공용어 지위를 허락했던 기존 언어법을 폐기함으로써 수도 키예프의 움직임을 불만스럽게 주시하던 친러시아 성향의 동남부 지역에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
형제국가들의 역사전쟁,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의 기원 ###
또한 2월 23일 의회에서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등 특정 지역에서의 제2 공용어 지위를 박탈하는 법률이 채택되었으며(3월 1일 대통령 대행 거부권 행사), 이는 크림 자치공과 세바스토폴 특별시의 반유로마이단 시위의 촉발과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 합병 정책 촉발시켰다.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정부의 외교정책과 주요국 관계 - 고재남 유럽·아프리카연구부 교수 ###
4) 현 과도정부의 초기 동부지역 끌어안기 실패도 직접적 원인은 아니더라도 사태확산을 방어하는데 소홀한 점이 있을 수 있다. 현 과도정부 수뇌부들은 야누코비치 망명 이후 동부지역 시민의 불만이 될만한 언행("러시아어 공식어 사용 규제 법안"-추후 취소했지만, 이미 불만이 고조된 후였다. “반테러리즘 축출작전"-일반 시민 중 현 과도정부에 불만을 가진 자 중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등 꼭 법안 명칭을 “반테러리즘”이라고 했어야 했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을 해왔고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설득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다. 물론, 본인들 또한 대접받지 못하고 동부지역은 친러시아 층이 두텁기 때문에 여의치 않았던 사항을 이해하지만 별다른 포용정책과 안정호소에 신경을 쓰지 않아 동부지역 시민들의 현 과도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고 오히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과 동부지역 시민 보호와 대변은 친러시아 세력 지지자들의 응집을 도운 것으로 판단된다.
[전문가 기고]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은 결국 둘로 쪼개져야 끝이 나는 싸움인가? #

우크라이나 과도정권의 자충수였다고 보는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유로마이단으로 친러 정부인 야누코비치를 쫓아내고 친서방 세력들이 주도권을 쥔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에서 2012년 7월 당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당인 '지역당'이 제안한 '국가 언어정책 기초에 관한 법률'을 334명 의원 가운데 232명이 찬성표를 던져 폐지했다. 이러면서 폐지측에서는 헌법 제10조가 우크라이나어 외에 러시아어를 유일한 국가 소통어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 주민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조치는 러시아를 비판하는 서방조차도 틀린 행동으로 평한다.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하는 지역들을 반발을 야기했기 때문. 크림반도만해도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한다.결국 야누코비치의 갑작스러운 축출로 인한 정국 혼란에 불안해하던 우크라이나 친러 지역들과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어 사용까지도 제재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의혹과 불신을 품게 된다. 뒤늦게 대통령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불만이 고조된 후라서 늦었다.

애초 크림반도 내 인구 구성비에서 러시아인의 다수성(65% 이상, 우크라이나인 16%, 크림 타타르인 13%; 2014년 기준)과 러시아어 사용 인구(97%, 2014년 기준) 등으로 우크라이나와 거리가 멀은 지역으로 분리 독립의 위험성이 있던 곳이였다.[8]

3.3.2. 반박측의 주장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언어정책에 관한 친러측 주장에 반박하는 측에서는 애초에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또는 일방적으로 러시아 및 러시아어 사용자의 입장에서만 서술했다고 주장한다.

첫째, 애초에 러시아어는 공용어가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헌법이든 2012년 언어법이든 우크라이나어 외의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적이 없다. 1996년 우크라이나 헌법 제10조에서 우크라이나어는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공용어로 명시되었고, 이것은 2004년, 2010년 헌법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2012년 언어법에서도 우크라이나어를 공용어라고 하였으며, 러시아어는 '지방언어(Регіональна мова)' 및 '소수언어(Мова меншини)'로 규정되었지 러시아어를 공용어라고 명시한 구절 자체가 없다. 즉 러시아어가 2012년 언어법으로 공용어가 되었다가 유로마이단으로 지위가 폐지되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Стаття 7. Регіональні мови або мови меншин України
2. У контексті Європейської хартії регіональних мов або мов меншин до регіональних мов або мов меншин України, до яких застосовуються заходи, спрямовані на використання регіональних мов або мов меншин, що передбачені у цьому Законі, віднесені мови: російська, білоруська, болгарська, вірменська, гагаузька, ідиш, кримськотатарська, молдавська, німецька, новогрецька, польська, ромська, румунська, словацька, угорська, русинська, караїмська, кримчацька.
제7조. 우크라이나의 지방언어 또는 소수언어
제2항. 유럽 지방언어·소수언어 헌장(European Charter for Regional or Minority Languages)에 따라, 다음의 언어들은 이 법안에서 우크라이나의 지방언어 또는 소수언어로 규정하며, 이 법안에 규정된 정책의 대상이 된다: 러시아어, 벨라루스어, 불가리아어, 아르메니아어, 가가우즈어, 이디시, 크림 타타르어, 몰도바어, 독일어, 그리스어, 폴란드어, 집시어, 루마니아어, 슬로바키아어, 헝가리어, 루신어, 카라임어, 크림차크어.(강조 표시는 필자에 의함)
2012년 우크라이나어 언어법(콜레스니첸코-키발로프 언어법) 원본 #

둘째,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언어적 특수성을 간과하였다. 2012년 언어법은 각 지방에서 10% 이상의 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를 러시아어를 소수언어일 뿐만 아니라 지방언어로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지방언어로 인정된 언어는 해당 지방의 법원, 학교 및 정부부처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각 주에서 10%를 넘는 언어가 러시아어를 제외하곤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 언어법을 유지할 경우 25개 주(크림반도 포함) 중 13개 주에서 러시아어는 지방언어로 격상하게 된다. 그래서 노골적인 러시아 영향력 확대 정책으로 보였으므로, 반러주의자들은 10%가 아닌 50%라는 수정안을 제시하였고 여기서 논쟁이 촉발된다. 애당초 러시아어 금지를 처음부터 주장했으면 50%라는 수정안은 제안되지 않았어야 한다. 러시아는 이 문제에 대해서 소수민족 탄압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실행하였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 정부의 수세기에 걸친 러시아화 정책으로 탄압받은 역사가 있다. 예를 들어 1876년 러시아 제국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엠스 칙령(Эмский указ)을 내려 기존의 문서를 재발행하는 행위를 제외하고 우크라이나어로 된 모든 출판 행위를 금지했고, 1894년에는 한발 더 나아가 해외의 우크라이나어 책 수입을 금지했다. 소련 성립 이후 토착화 정책(коренізація)으로 한동안 우크라이나어는 부흥의 계기를 맞이했지만 스탈린 정권의 대숙청과 흐루쇼프 정권의 교육정책[9], 중앙정부의 무신경으로 인해 쇠퇴기를 맞이하고, 반면에 우크라이나 내의 러시아인 및 러시아어 사용자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10] 더욱이 러시아어는 학술, 출판 및 행정 영역 전반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그 반대로 우크라이나어의 사용 영역은 더더욱 후퇴했다. 예를 들어 1958년 우크라이나에서 출판된 책의 60%는 우크라이나어였지만, 1959년에는 53%, 1960년에는 49%, 1965년에는 41%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러시아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우크라이나어의 퇴조에 발맞추어 급격히 증가했다.[11]

이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인과 우크라이나어 사용자들은 존재적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2012년 언어법은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러시아어의 지위를 준 공용어급으로 격상시켰으므로 그런 위협이 현실화되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결국 해당 언어법은 2018년 2월 28일 우크라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우크라이나어의 공용어 지위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위헌 판결을 맞고 폐지되었다. # 즉 2012년 언어법은 우크라이나 내의 러시아어의 위치를 우크라이나어의 지위가 위협받을 정도로 격상한 법안이었고, 그러므로 폐지를 두고 우크라이나 탓만 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계기는 러시아 정부 당국의 우크라이나어 탄압 및 우크라이나인 동화 시도였으니까.

셋째, 언어문제는 처음부터 중요한 의제가 아니었다. Aaron Erlich와 Calvin Garner의 Is pro-Kremlin Disinformation Effective? Evidence from Ukraine(2021)에 따르면 반군이 점령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는 9.4%와 12.7% 만이 우크라이나어 단독 사용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도네츠크에서는 59%, 우크라이나 동부 및 남부에서는 80%가 러시아어 사용자에 대한 차별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또한 2016-2017년에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KMIS), 여론조사기관 레이팅(Rating) 및 GfK Ukraine에서 조사한 "언어 문제"가 친러시아 유권자를 움직일 것인가?라는 여론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어 법안은 응답자의 1%에게만 중요하였다. 2017년 5월 KMIS 조사에 따르면 동부권에서도 3%에 불과하였다. 국민의 64%는 우크라이나어를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동부와 남부의 응답자(각각 35% 및 38%)도 우크라이나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
Will the “language issue” mobilize the pro-Russian electorate? Opinion polls conducted by KMIS, Sociological Group Rating, and GfK Ukraine in 2016-2017 demonstrate that the status of the Russian language is important to just one percent of respondents. KMIS research in May 2017 shows that the share does not exceed three percent even in eastern regions.

Meanwhile, the same research shows that 64 percent of citizens think the state should support the Ukrainian language above all. Respondents in the eastern and southern parts of the country (35 and 38 percent respectively) also named state support to Ukrainian language as a top priority.
"언어 문제"가 친러시아 유권자를 움직일 것인가? 2016-17년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KMIS), 여론조사기관 레이팅(Rating) 및 GfK Ukraine에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어의 지위는 응답자의 1%에게만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5월 KMIS의 조사에 따르면 동부 지방에서도 3%를 넘지 않았다.

반면에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64%는 정부가 우크라이나어 진흥책을 최우선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응답했다. 동부와 남부(각각 35%, 38%)의 응답자들도 정부의 우크라이나어 지원이 최우선 과제라고 답했다.
Tetyana Ogarkova, The Truth Behind Ukraine’s Language Policy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러시아어 정책을 되돌렸으니 러시아어 사용자가 우크라이나에 반감을 가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생각이다. 정부의 언어정책에 대한 반대가 우크라이나 정부 또는 국가 자체에 대한 반대로 이어진다는 보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제국방안보센터(ICDS)의 조사에 따르면 돈바스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의용병 중 33%는 모어(母語)가 러시아어였으며, 14%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모두 모어였다. 즉 우크라이나 인구에서 러시아어 사용자가 차지하는 비중보다 의용병에서 러시아어 사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았다. # 심지어 네오나치라고 비난받는 아조프 대대마저 과반이 동부 출신 러시아어 사용자들이다. # 언어 문제가 나라를 절단낼 정도로 중요한 의제였다면 진작에 아조프 대대를 비롯해 러시아어 사용자들이 주축이 된 정규군 및 의용군 부대들은 와해되거나 무력화되었을 것이다.

애초에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점령 명분은 언어 문제 따위가 아니라 네오 나치가 우크라이나의 정권을 잡았으며 러시아인을 대대적으로 학살할 것이라는 러시아 측의 허위 선동이었다. 즉 언어 문제는 유로마이단 이후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문제에 가깝다. 정말로 큰 문제는 독립 이후 러시아가 대우크라이나 관계 설정에서 우크라이나를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아예 부정한다는 것, 그리고 우크라이나인의 독자적인 민족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며 이것을 훼손하기 위한 시도를 우크라이나 독립 이래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괴뢰정권 수립 내지는 병합을 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침공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끝으로 위의 자충수였다는 주장에서는 "폐지측에서는 헌법 제10조가 우크라이나어 외에 러시아어를 유일한 국가 소통어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 주민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것은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이다. 헌법 10조는 단순히 러시아어를 '소수언어'로 인정할 뿐, 유일한 국가 소통어로 지정하는 문구 자체가 없다.
Державною мовою в Україні є українська мова.
Держава забезпечує всебічний розвиток і функціонування української мови в усіх сферах суспільного життя на всій території України.
В Україні гарантується вільний розвиток, використання і захист російської, інших мов національних меншин України.
Держава сприяє вивченню мов міжнародного спілкування.
Застосування мов в Україні гарантується Конституцією України та визначається законом.
우크라이나의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이다.
국가는 우크라이나 영토 전역의 모든 공공생활 영역에서 전면적인 우크라이나어의 발전과 기능을 보장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 소수민족의 러시아어 및 기타 언어에 대한 개발, 사용 및 보호를 보장한다.
국가는 국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학습을 촉진한다.
우크라이나의 언어 사용은 우크라이나 헌법에 의해 보장 및 결정된다.
우크라이나 헌법 제10조
또한 과도정부의 언어정책을 서방조차도 틀린 행동으로 평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우크라이나 연구팀은 Language, Status, and State Loyalty in Ukraine에서 2012년 언어법을 가리켜 1989년 우크라이나 언어법을 비롯해 전세계 대부분의 언어법이 고안된 핵심원칙을 뒤집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2012년 법안의 핵심 원칙이 EU 기관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하면서, 단순히 러시아어 우세를 용인해왔던 2012년 이전의 합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에 대한 개입이 러시아어 화자를 보호하는 러시아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보았다.
(전략) The 2012 law shattered the political equilibrium by removing state incentives to learn and use Ukrainian. The persistent dominance of Russian in cities was politically acceptable only as long as the state was perceived as promoting, symbolically and in its policies, the development and ascendance of Ukrainian. In signaling that Russian speakers need not use Ukrainian at all, the 2012 law overturned the core principle around which the 1989 Ukraine language law, or for that matter most language laws around the world, are devised. (후략)
2012년 (언어)법은 우크라이나어를 학습하고 사용하는 것에 관한 국가적 인센티브를 제거함으로써 정치적 평형(equilibrium)을 깨뜨렸다. 상징적인 것으로 그쳤든 정책으로 실현되었든 간에, 정부가 우크라이나어의 발전 및 우세를 추구한다고 받아들여지는 한, 러시아어가 도시에서 차지하는 지배적 위치는 정치적으로 용인되었다. 러시아어 사용자에게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신호를 줌에 따라, 2012년 법은 1989년 우크라이나 언어법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의 언어법이 고안된 핵심원칙를 뒤집었다.
Dominique Arel, Language, Status, and State Loyalty in Ukraine

3.4. 러시아군의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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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체스
우크라이나의 EU는 일반 체스말만 배치했지만 푸틴은 탱크 가스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는 사태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관망하며 훈수를 둔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0px-VOA-Crimea-Simferopol-airport.jpg
2월 28일, 아무런 마크도 없는 소속 불명의 군인들 우크라이나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군은 세바스토폴 해군 기지 안에서 대기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땅의 흙도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CNN에서 이 소속 불명의 군인들을 취재하던 중 한 군인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자 러시아라고 대답하는 저 군인 방사능 홍차 확정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CNN 인터뷰 동영상 아무 마크도 없는 소속 불명의 러시아 군인들을 리틀 그린 맨(little green men)라고 부른다. 이들은 위력 정찰을 위해 투입된 러시아의 군인들이었으나 푸틴은 2014년 4월 공식인정 전까지 우크라이나 영토 내 러시아군의 존재를 부정하며 계속 오리발을 내밀었다.

2월 28일, 러시아는 직접 무력 침공을 감행했다. 2월 28일, 갑자기 세바스토폴 항에 주둔 중인 러시아 해군 흑해 함대 소속 해군 보병들이 크림 반도 주요 공항 2곳을 무혈점령했다. 그리고 같은 날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이 러시아에 나타나 성명을 발표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런데 당시 러시아군은 부대마크 등 러시아군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을 달지 않았고, 때문에 한동안 이 무장 세력의 정체는 우크라이나 친러 세력으로 알려졌고, 러시아가 직접 군을 투입한 사실이 은폐되었다. 당시 서방 언론에 크림 반도의 주요 공항 2곳을 점령한 주체가 러시아군이 아니라 단지 우크라이나내 친러시아 무장 세력이라고 보도했다.

2월 28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러시아군의 침략이라 지칭하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그러자 러시아의 눈치만 보기 급급했던 BBC 등 당시 서방 언론들은 전부 러시아 정부 측의 발표대로 친러 성향의 자경단원들에 의한 점거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처음에 러시아군의 직접 무력 침공을 의심했던 일부 서방 언론들도 친러 자경단원일 뿐 러시아의 직접적인 무력 개입은 아니라는 정정 기사를 내보냈다. 러시아의 이같은 기만을 통해 국제 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 그 대응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 현지 민심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등 초기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갈 수 있었다.

2월 28일, 크림 자치공화국 총리 악쇼노프는 “(크림)주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느끼며 푸틴 대통령에게 크림 자치공화국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을 요청한다”고 요청했다. # #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군사력을 투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이용하게 된다.

2월 28일, 크림 자치공화국 정부는 5월 자치공화국의 '자치권 강화'를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5월 25일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친서방계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상황에서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크림 자치공화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서 분리 독립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확보하는 디딤돌을 놓으려는 목적으로 추정되었다. 참조

2월 28일, 그동안 잠적하여 행방이 묘연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이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에 나타나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여전히 합법적인 정통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며 목숨의 위협을 받아 러시아로 피했지만, 위협이 사라지는 대로 귀국하여 불법을 저지른 세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다만 인터뷰 과정에서 크림 자치공화국의 분리나 러시아 편입에 반대함을 명백히 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망명 이후 푸틴이 자신을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고 주장하여 푸틴에게 버려졌음을 직접 암시했다.[12]

3월 1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에 무장 병력 2천 명을 투입했다. 러시아군 침공 영상 1, 2 이에 즉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란 짧고 굵은 답변을 내놓았다.

3월 1일, 언론은 우크라이나 국방 장관의 말을 인용하여 크림 반도로 러시아군 6천 명이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3월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상원에 요청했으며 신속히 통과되었다.

3월 1일, 크림 자치공화국 총리 세르게이 악쇼노프는 긴급성명을 통해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또한 직접적인 독립은 아직 요구하고 있지 않으나 그와 별도로 자치공화국의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주민 투표를 3월 30일로 당긴 상태이다. 기사

3월 1일, 크림 반도에 투입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해군의 핵심시설이 있는 세바트로폴 해군본부와 해군기지를 급습하여 포위하여 무장해제하라고 요구했다. 유로마이단 혁명 당시인 2월말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야누코비치의 측근이었던 해군 사령관을 해임하였고,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에 진입한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관은 공석이었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3월 1일 데니스 베레좁스키 소장을 급히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해군은 러시아군 혹은 친러 크림 자치공화국으로 속속 투항했고, 데니스 베레조프스키 역시 마찬가지로 러시아와 크림자치공화국 측에 투항했다. 다음날인 3월 2일 베레좁스키는 러시아 TV에 출연해 크림 자치공화국에 충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3월 2일 데니스 베레좁스키를 해임하고 국가반역죄로 형사소추에 착수했다. # #

이와는 별개로 소말리아 해적 소탕에 투입된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이 러시아로 귀순하였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고 러시아 해군 흑해 함대가 주둔한 세바스토폴 항구에 있던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 10여척이 군사 충돌을 피하기 위해 항구를 이탈했는데 이것이 왜곡되어 러시아 귀순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한다.

미국은 계속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대가를 치를 것이란 입장 반복하고 있는 데다 EU는 아예 전쟁 놀이 감상하듯이 구경만 하는 중. 단지 폴란드 동유럽의 몇몇 국가만이 러시아를 규탄하고 있지만 이들은 실질적인 힘이 없어 역시 손만 빨고 있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90분 동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전화통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러시아군 크림 반도 침공 사태에 대해 황급히 UN 안보리에 제의했으며 다른 서방세력과 함께 러시아를 비난했지만 러시아가 함정 카드를 발동해서 의미가 없어졌다. 애시당초 상임이사국이 나설 경우 UN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한편 칼자루를 쥔 러시아는 상원 의결이 즉각적인 군사 행동을 의미하진 않는다면서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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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현재 우크라이나 심페로폴 외곽 페레발노예 마을에 소속 불명 부대의 러시아군과 수십 대의 군용 차량과 장갑 차량이 우크라이나 해군 보병대 기지를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하였으나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거절하고 입구에 BMP-2 장갑차를 배치한 상황이다.[13]

3월 2일,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 침공에 대해 "우리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안이 만장일치로 통과 소식이 알려진 후 3월 2일 우크라이나 전군에 전투태세를 명령했으며, 오전 8시부터 병역 의무가 있는 40살 미만 성인 남성에 대해 예비군 소집령을 내렸다. 많은 예비군이 모였으며, 군복이 없는 예비군은 사복을 입고 훈련에 참가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예비군들은 자신이 군인임을 알리기 위해 해외에서 군복을 구매하기도 하였다. #

3월 2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은 러시아에게 크림 반도에 군사를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으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시 미국 기업의 철수와 같은 경제 제재 또는 G8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겠다고 경고했다. #[14]

3월 2일, 폴란드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군사이동을 하는 것이 외신에 포착되었다. # 일단 폴란드 정부는 현재 군의 국경 배치는 폴란드 안보 및 훈련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3월 4일, 러시아 공군 Il-20 정찰기가 흑해 상에서 강행 정찰에 나서며 터키 영공을 침범, 터키 공군 F-16 전투기들이 긴급 발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3월 4일,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흑해 함대 사령관 알렉산드르 비트코는 이날 "4일 새벽 5시(현지시간·그리니치 표준시 기준 오전 3시)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크림 반도에 주둔 중인 모든 우크라이나 해군 부대들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겠다"고 경고했다고 우크라이나 국방부가 밝혔다. # 그러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최후통첩을 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하였고 실제로 어떠한 교전도 일어나지 않았다. #

3월 5일, 러시아 전략 미사일군이 아스트라한에서 카자흐스탄 내 가상 표적으로 중거리 탄도 미사일 실발사 훈련을 시행하였다.[15] 6일 밤에 러시아 해군은 우크라이나 해군 기지의 출입 항로를 퇴역한 카라급 순양함 오차코프 함을 자침시키는 것으로 완전히 봉쇄했다. 같은 날, 러시아군은 서부 군관구 일대에서 치러진 대규모 군사 훈련이 종료된 지 3일 만에 또 다시 대규모 방공전 훈련을 개시했다.

3월 5일, 지난 2월말 유로마이단 시위 당시, 시위대와 경찰의 시신에서 나온 총알의 탄흔이 다 일치하며, 따라서 같은 사람이 시위대와 경찰 양쪽 모두에 총격을 가해 죽인 것 같다는 내용의 대화 도청되어 파문이 일고 있다. 대화 당사자는 에스토니아 외교관과 EU 고위직. 따라서 야누코비치 정권 당시 우크라이나 야당이 친러 성향의 현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화해무드로 돌아서던 시위대와 경찰 수 십 명을 저격수로 사살한 것이 아닌가하는 음모론이 퍼지기도 하였다.

에스토니아는 도청되어 유감이라는 의견만을 전했고, 에스토니아의 우크라이나 담당대사는 야누코비치나 야권이 아닌 제3자가 있으며 정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발언을 했다. EU는 어떤 답변도 거부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저격 배후 미스테리설이 최초기사가 러시아에서 나왔다는 점이나 도청능력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있다.

러시아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 미국도 본격적으로 대응을 개시했다. 3월 5일~6일에 걸쳐 리투아니아에 F-15E 6기가 추가 배치되어 기존에 방공 작전을 지원 중인 동일 기종 4기와 합세했다. KC-135 공중 급유기 2기도 추가 배치 예정이며 동시에 폴란드에도 F-16 전투기 12기가 긴급 배치되었다.

해상에서는 아라비아 해로 향하던 미 해군 USS 조지 H. W. 부시 함 기함으로 하는 항공모함 전단 그리스 앞바다에서 대기하여 여차하면 흑해로 진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항모 호위함인 알레이 버크급[16] DDG-109 USS 트럭스턴 함이 이미 선두로 흑해에 진입하여 루마니아/ 불가리아 해군과 연합 훈련을 할 것이라고 미 해군이 공식 발표했다.

3.5. 크림 친러 정권의 러시아 합병 추진, 각국의 중재 시도

3월 6일,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는 크림 자치공화국의 지위를 묻는 주민투표의 날짜를 3월 16일로 옮기고, 아예 주민투표의 질문을 1992년 헌법을 채택하느냐, 혹은 러시아에 합병되느냐로 바꿨다.[17] 우크라이나 잔류를 선택할 방법은 없어졌다.

3월 11일,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는 세바스토폴 의회와 함께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결의했다. 참조

3월 11일, 당연히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3월 11일, 크림 반도에서는 주민 투표를 앞두고 화폐를 러시아의 루블화로 바꾸는등 노골적으로 러시아 편입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

3월 11일, 러시아군은 공수부대 4천여 명과 수십여 항공기가 동원된 대규모 공수 훈련을 이바노프에서 실시했고, 중부 일대에서는 A-50 조기 경보기와 MiG-31 전투기를 동원한 항공 훈련을 동시에 시작했다.[18] NATO는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공중조기경보 통제기를 각 1기씩 배치하였다.

3월 11일, 미국이 제시한 중재안을 러시아가 거부하였다. 사태가 이쯤 되니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러 정책이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3월 12일, 우크라이나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동부 국경 너머에 러시아군 8만여 명, 전차 270여 대, 항공기 140여 기가 결집하여 침공을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서부 일대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급히 크림 및 동부 러시아 접경 지역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한편, 러시아군에 의해 크림의 해군 사령부가 봉쇄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서남부 끝의 오데사로 해군 사령부를 이동시키기로 발표했다.

한편, 벨라루스 폴란드 발트 3국에 증강된 미군 전력을 이유로 안보 불안을 주장하며 러시아에 공군 파병을 요청, 13일부로 Su-27 전투기 6기와 지원병력을 실은 수송기 3기가 벨라루스 내 공군기지에 전개했다.

3월 13일,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 합병할 경우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경고하고, 유럽연합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 정치적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참조

3월 15일, UN 안보리에서는 크림 자치공화국에서 16일 치러지는 러시아 귀속 여부에 대한 찬반 주민 투표 결과를 불인정한다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친 가운데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기권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작성한 이 결의안은 크림 자치공화국의 주민 투표는 효력이 없으며, 각 국가와 국제기구는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이 이날 반대가 아닌 기권을 선택함에 따라 '러시아 고립'이라는 미국 등 서방의 의도가 일정 정도 달성되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기사 중국이 러시아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19]

3월 15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본토에 군사 침공을 감행했다. 러시아는 이날 오후 1시 30분경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헤르손 주 스트렐코보예 마을에 있는 가스 공급 기지를 점령하였다. 기사 이는 크림반도의 투표를 하루 앞둔 러시아의 영향력 행사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기사

러시아는 지금까지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크림반도만을 군사적으로 장악해왔지만 이번에는 반도 바깥의 우크라이나 영토에까지 직접 군사력을 투입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우크리아나 정부는 러시아의 침투를 군사침공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비난했다. 미국은 '충격적인 긴장 고조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의 예정된 군사 협력 사업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기사

3월 16일 새벽, 독일 언론이 G8에서 러시아를 제외한 7개국이 원래 예정됐던 러시아의 소치 대신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문제를 타진중이라고 밝혔다. 독일 정부의 한 대변인은 15일 신화통신에 독일 정부는 다른 G7 국가들과의 합의에 따라 소치의 G8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를 중단했으며 아직 다른 어떤 결정도 내린 바 없다고 말했다.

크림 자치공화국에서 치러지는 독립 및 러시아로의 귀속에 대한 찬반 투표를 앞두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우크라이나 국기와 러시아 국기를 흔들면서 "러시아의 크림 점거는 러시아의 불명예다.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고 외치는 등 푸틴 정부의 크림 반도 점거에 항의했다. 오후 2시께 5천 명이었던 시위 참가자들은 2시간 후 5만 명 가량으로 급속히 불어났다. 물론(?), 푸틴을 지지하는 수천 명의 지지 시위도 있었다. 기사

3.6. 러시아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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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투표가 시작되었다. 투표는 1) 러시아로 흡수합병과 2) 1992년 헌법 체제와 지위로 돌아가는 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데, 1992년 헌법 체제 회귀도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지 않겠다는 ‘분리독립’ 선언과 마찬가지여서, 실질적으로 어떤 것을 선택해도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기사

12% 가량의 소수민족 타타르계는 투표 거부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타타르족 전부가 거부한 것은 아니고, 30% 정도는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고.

3월 17일, 독립 및 러시아 귀속 찬반 투표가 96.77%(127만 2000명)의 찬성으로 종료되었다.

3월 18일, 푸틴이 크림 공화국의 귀속안을 의회에 공식 통보했다. 이로써 크림 자치공화국은 크림 공화국이 되었다.

3월 19일, 크림 공화국 민병대를 자칭하는 무장 병력이 세바스토폴 항구에 있는 우크라이나 해군 본부에 난입, 정박해 있던 초계함 3척을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해군 장병들을 무장 해제시켜 추방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 지난 3월 3일 해임된 데니스 베레좁스키 제독의 후임으로 임명된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관 세르히 하이두크 제독은 이 무장 세력에게 억류되었다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 장관의 석방 지시로 석방되었다. 3월초에 이어 이번 사태로 우크라이나 해군은 호위함 1척을 제외하고 모든 전투함과 잠수함을 러시아에 빼앗기게 되었고,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3월 20일.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크림 반도에 주둔한 우크라이나군을 전부 철군하겠다고 선언하고, 대신 크림 공화국 지역에 대한 전기, 수도,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3월 20일과 21일, 러시아 하원과 상원이 크림 병합 조약, 법률안을 비준하였다. 하원은 444명중 443명 찬성, 상원은 155명 전원 찬성으로 조약을 승인하였다.[20]

3.7. 이후 상황

3월 22일. 오랜 수감으로 인한 병 치료를 위해 해외에 나가있던 전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가 우크라이나 현지 방송에 출연해 "푸틴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순간부터 우크라이나를 영원히 잃었다"며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이날 크림과의 합병을 매듭지은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는 친러 시위가 격화하는 동부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에 진격할 계획이 없다며 침공설을 일축했다. 기사 단, 현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동부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이전에 언급하기는 했다.

3월 23일. 21~22일에 거친 동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세력의 시위에 대응하는 의미로 키이우에서 대규모 친정부 지지시위가 열렸다. 기사

3월 24일. 우크라이나는 크림 반도에서 자국 군대의 철수를 명하였다. 러시아와 크림 자치공화국의 합병이 마무리되고 크림 반도에서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신변 위협이 갈수록 높아지자 당국이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기사 당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 안보 정상 회의에 미국과 러시아 측의 외무 장관이 만나 회담을 하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 러시아군이 집결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측의 주장이 있다.

3월 25일. 러시아를 제외한 G7은 소치 G8 회담에 불참을 선언하고 브뤼셀에서 G7회담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로 BRICS 국가들은 이런 제재에 반발하고 있다.

3월 26일. 러시아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서방과 갈등을 겪기 이전부터 경기 하락세를 보였던 러시아가 크림 사태 이후 외국인 투자 자본이 빠른 속도로 이탈하면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3월 20일까지 55억 달러가 빠져나갔으며 영국 시장 조사 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올 1분기에만 700억 달러의 자본이 유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21] 골드만삭스는 올해 러시아에서 빠져나가는 자금이 최대 13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 국영 은행 스베르방크는 1분기 자본 유출이 1000억 달러에 이를 경우 러시아 성장률이 제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였으며,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러시아 SMP은행은 "90억 루블(약 2억 4800만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갔다"고 발표했다. 기사

3월 27일. 오바마와 미 의회에 의해 러시아의 크림 합병과 관련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를 제재하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통과되었다.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된 이 법안들은 통합 합의를 거쳐 오바마의 서명을 거치면 발효된다. 기사

한편, 이날 오후 우크라이나 당국은 "약 10만 명 정도의 러시아군 병력이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체르니고프), 하르키우(하르코프), 도네츠크 등의 접경 지역 인근에 주둔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이는 미국 국방부가 추정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 미국 정보 당국의 기밀 보고서를 인용해 러시아가 크림반도와의 육상 운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으로의 러시아군 병력 집결은 지난 1990년대 중반 체첸 전쟁과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을 앞둔 시점의 병력 이동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기사

3월 28일.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각각 21억 달러, 10억 달러를 제공키로 했다. 일본도 14억 유로를 건네기로 했다. 각국 정부와 IMF가 지원하기로 한 자금을 모두 합치면 270억 달러에 달하며, 우크라이나 정부는 2년 안에 350억 달러를 갚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한 숨 돌렸다는 분위기다. 기사

3월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버락 오바마에게 1시간에 걸친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논의하자고 요청하였다. 통화는 푸틴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중동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오면서 성사되었다. #

30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가졌던 미러 회담은 결국 서로 타협점을 찾지 못해 결렬되고 말았지만 외교적인 회담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로 결의했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국경선 근처에서 군사 훈련을 한다는 명목 하에 있던 수만 명의 러시아군은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며칠 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모인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언급했으나 4월 1일, 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국경선에 있는 러시아군은 전혀 철수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허나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러시아군의철수가 확인 되었다고 밝혔다. 기사

일부 서방 언론사는 러시아가 친러 지역인 동부 지역이나 우크라이나 전체를 점령하기 위해서 때를 보고 기다리는 것이란 평가도 있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지금 우크라이나 국경선 근처에 있는 러시아군의 움직임이 남오세티야 전쟁 체첸 전쟁 직전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4월 1일. 러시아는 유럽으로 공급되는 가스 가격을 10% 인상했다. 기사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러시아군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푸틴은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전화하여 일부 병력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 또한,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는 서방이 준비한 우크라이나의 봄 시나리오와 같은 것이었다며 러시아 국방 장관이 말했다. 그리고 서방이 당사국 안에 있는 문제를 끄집어내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케 하고 기존 정권을 축출해 친서방 정권을 내세우는 아랍의 봄과 비슷한 시나리오가 우크라이나에서도 전개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 국가 주권에 대한 위협이고 이런 위협은 우크라이나의 정치 경제 위기 때문이지 러시아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당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가스 공급가를 무려 43.5%나 인상하기로 했다. 가격 인상은 1일부터 적용되며 러시아 국영 가스 회사 가스프롬은 협약에 의해 공급가를 할인해주면서 가스 대금 체불액을 변제해주기로 했지만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원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인상인데, 천 세제곱미터에 268.5달러였던 가스 공급가가 1일부터 485.5달러로 확정되었다고(...).

#이에 유럽 의회에서는 우크라이나 제품에 대해 관세 철폐를 승인하였다. 관세 면제로 우크라이나 측은 연간 4억 8천 700만 유로의 가격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중 농산물 관세 철폐로 인한 혜택이 3억3천만 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혜택은 11월 1일까지로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21일 EU와 정치분야 협력협정을 체결하였고 올해 11월까지 FTA를 성사시킬 예정이다. # 또한 미 하원도 우크라이나 대출 담보 지원안을 통과시켰다. #

4월 3일. 러시아 국영방송에서 우크라이나인 25명이 러시아에서 파괴 행위를 계획한 혐의로 러시아 보안 기관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 같은 날 키이우에서는 시위대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기자회견을 통해 "시위대 학살은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4월 10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EU한테 우크라이나가 밀린 가스대금 22억 달러를 갚지 않으면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공급을 중단하겠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기사 만약 가스공급이 정말로 중단된다면 당장 서유럽은 고사하고[22] 24시간 동안 러시아산 가스를 사용하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의 석유화학, 중공업, 조선, 자동차 등,제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앞서 지난 4월 1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가스 공급가를 81%나 올려버렸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수치보다 무려 8배나 상승한 것(...).

한편 4월 14일, 흑해에 파견된 미 해군의 이지스함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USS 도널드 쿡 함에 러시아 공군의 Su-24 두 대가 다가와 90분간 초저공비행을 하며 150m 상공까지 내려와 12번이나 함에 접근하며 위협비행을 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23] 미 해군은 최신형 SM-2 대공미사일을 갖추고 있었으나, 공해상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뭘 어쩌지 못한듯.

4월 16일, 러시아는 나토가 러시아군의 이동을 군비 증강을 목적으로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만에서 12만, 10만, 6만, 4만, 결국은 3만까지 내려간 나토의 불확실하고 변동이 큰 병력 추산을 비판했다. 출처 또한 우크라이나는 동부에 군대를 투입했으며, 심지어 극우 민병대 프라비 섹토르까지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중 크라마토르스크로 파견되었던 공수부대 50명과 DMB 장갑차 6대가 동부 우크라이나 민병대에 합류했다고 한다. 이 부대는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슬라뱐스크로 이동했다고 한다. 출처물론 러시아가 할말은 아니다

4월 18일, 푸틴은 TV 생중계에서 러시아군의 개입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 이유는 '우크라이나군이 크림 주민들을 향해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러시아군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2014년 5월 9일,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을 맞아 푸틴 대통령이 세바스토폴 만에서 온 세바스토폴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흑해함대를 사열했다.[24][25]

크림 반도에 주둔하던 우크라이나 장병들 중 80%가 러시아 시민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라디미르 쿨리소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은 28일 리아 노보스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크림에 잔류한 우크라이나 장병들 중 80%가 러시아 시민권과 여권을 받았다”며 이들이 포함된 국경 경비 조직들이 구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 합병 직후 정치,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크림의 러시아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하자, 모래주머니와 진흙으로 댐을 지어 북크림 운하를 막아서, 크림반도의 물 공급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3.8.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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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2014년 4월

4월 우크라이나에서는 극우 민족주의 조직 프라비 섹토르와 경찰간의 충돌이 진행되고 있다. 이 극우 민족주의 조직은 야권 시위 과정에서 경찰과의 무력 대결에 앞장서는 선봉대 역할을 했으나 이후 과도정부의 무장 해제 요구를 거부해 갈등을 빚고 있으며 3월 25일에는 이 조직 지도자 중 한 명인 알렉산드르 무지치코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3월 31일(현지시간) 키예프 독립 광장 인근 한 식당에서 한 30대 남성이 총을 난사해 3명이 부상당했으며 그 가운데는 키예프 부시장도 포함됐다. 이후 경찰과 지도부 간의 타협으로 이들이 시외곽 휴양소로 떠나면서 상황이 해제됐다. #

크림 반도가 러시아와 합병되자 하르키우 및 도네츠크 같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연방제 운동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즉 한 국가로 지내기는 힘드니 연방제를 실시하자고 시위하고 있는데 연방제가 되면 키예프 과도정부가 변변한 통치력이 없는 만큼 크림 반도처럼 러시아로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사실상 분리 운동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러시아로서도 국제 사회의 압박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방안이므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의 이런 대응에 대해 미국 및 서방국가들은 러시아를 압박할 별다른 수가 없는 실정인 만큼,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돌아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서 미국은 이지스 방공미사일 시스템이 탑재된 원양 구축함을 추가로 흑해로 파견하였다. # 또한 러시아의 압박이 계속될 경우 NATO에 가입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이 응수하였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전 최대 야당이자 새로 들어선 중앙정부 핵심 세력인 ' 바티키우시나'(조국당) 소속 의원들은 앞서 지난달 초 우크라이나의 기존 비동맹 지위 원칙을 폐기하고 나토 가입을 국가 전략 목표로 설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

이런 상황 중에 트란스니스트리아 의회 의장이 러시아 국회의장에게 자국의 러시아 합병 가능성을 묻는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26] # 이에 티모프티 몰도바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이 몰도바나 러시아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만일 그런 절차를 밟는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고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의 위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전초기지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이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 3월 24일, 나토(NATO) 사령관은 러시아의 다음 목표가 트란스니스트리아 합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4월 20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슬라뱐스크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공식적 발표에 의하면 친러시아 분리주의 민병대가 설치한 검문소를 우크라이나 정부 계열로 추정되는 일련의 무리가 습격한 것이다. 이게 골 때린 것이 제네바 4자 교전중지 협정 위반 부활절 주간의 민간인 공격이다. 공격자들에 의한 최초의 총격으로 분리주의 시위대 3명이 죽고 3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이어서 도착한 민병대가 반격을 하면서 공격측에도 적어도 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진압전을 시작한 적이 없다고 발표를 했지만, 친 러시아 측에서는 공격측에서 프라비 섹토르의 상징물(서방제 섬광탄 등)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노발대발하는 상황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동부 민병대는 러시아에 군사 파견을 요청하면서 긴장이 더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 와중에 영국의 MI6국장이 혹시나 있을지 모를 EU의 군사 개입을 반대하고 나섰다. EU의 군사개입은 러시아와의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EU전체의 군사력이 최악인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정도로 3차대전을 일으킬만한 가치는 없다는 것.

3.8.2. 2014년 5월

5월 4일, 우크라이나 동부가 11일에 독립 주민투표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 주민투표 결과 도네츠크주(투표자의 89% 찬성)와 루한스크(루간스크)주(투표자의 96% 찬성)가 분리·독립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는 독립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결과에 따라 독립을 선언했고 러시아에 합병 요청을 했다. 키예프 과도정부는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진압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러시아는 투표 결과는 존중한다고 밝혔지만 크림 반도 때와는 달리 바로 독립을 인정하지는 않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27]

이렇게 사실상 내전이 된 상황에서 5월 16일 마리우폴의 상징이자 우크라이나의 최고 철강그룹 '메틴베스트'의 회장인 리나트 아흐메토우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측과 다각적 '각서'에 서명했다. 이 각서의 내용은 도네츠크주 제2의 도시인 마리우폴의 평화와 질서 안정을 위한 서로 간의 양해와 조건이 들어있었다. 이게 이루어진 이유는 마리우폴의 상황은 정부-친러 측의 갈등이 있는것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서로 상충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

각서의 내용중의 요약은,
  1. 마리우폴의 안정을 위해 불법행위를 일절 금지-무기 사용금지(모든 인원, 친러측도 지켜야 함)
  2. 시민들로 구성된 인민 자경단(소련시절에서도 있었던 자경단 형태다)과의 협력을 통한 도시 내 약탈-훼손 방지를 꾀한다.
  3. 동시적으로 키예프 군이 주둔한 지역 군 검문소에서 후퇴하는 제안을 공동적으로 진행할 것이고, 이후의 주둔은 시 경찰이 담당하고 인민 자경단측이 지원
  4. 시민 생활안정을 위한 인프라/서비스등의 구축을 위한 계획 구성
  5. 전투로 인한 도시의 피해들을 복구
  6. 전투로 사망한 모든 희생자들을 영구히 기억할 것(즉 뜻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
  7. 이러한 문서에는 다른 마리우폴의 사업자도 서명이 가능하며, 현 당국은 물론 이러한 문제를 국제조직, 언론 등에 기고될것.
으로 요약된다. 더 요약하자면 마리우폴의 경제적 지도자라고 할수 있는 양반이 현재 인민 자경단이라는 시민들로 이루어진 휘하의 자경세력을 구성하고 시에 남아있는 공권력등을 규합해서 질서 유지 등과 키예프 당국에 압박을 주는 것의 의견에 합의하고, 그 대신 민병대들을 데리고 가라는 말. 다만, 이것은 합의하에 간거지 총으로 막 쏘고 그런건 아니다. 그런데...

합의를 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양측 사이에 파열음이 발생했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측이 리나트 아흐메토우에게 '우리 주권 국가 잘 돌아갈 수 있게 돈(세금) 내놔. 키예프 과도 애들하고 결별했으니까 걔네한테 돈(세금) 갖다 바치지 말고.'라고 하자 리나트가 여기에 반발하여 부분적 파업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것. 이에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임시정부 공동의장 데니스 푸실린은 “지역 올리가르히(재벌)들이 공화국 정부로 세금을 내길 거부해 기업 국유화 조치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면서 역내 기업들의 국유화를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5월 19일 주민투표를 통해 분리독립을 선포한 동부 지역의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가 자체 정부를 구성했다. 도네츠크주의 분리주의 세력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입법부인 최고회의는 4월 7일부터 임시정부 공동의장을 맡아온 데니스 푸실린을 국가수반으로, 러시아 국적을 가진 컨설턴트 출신의 알렉산드르 보로다이를 총리로 선출했다.

도네츠크주에 이웃한 루한스크주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공화국의회도 국가수반으로 지난 4월 말 인민의 주지사로 뽑혀 활동해온 발레리 볼로토프가 임명, 총리로 루간스크 인민 민병대 공보실장을 맡아오던 바실리 니키틴이 선출되었고 헌법을 채택했다.

5월 25일 201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가 있었지만 분리주의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동부 지역에서는 친러시아 무장세력이 투표소들을 장악하는 등 투표가 불가능해졌다.

이후의 내용은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 문서 참조.

4. 여파

크림 위기 사건의 발생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유로마이단으로 인한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 축출이나 기본적 원인에는 반러, 친서방 성향의 서부와 친러, 반서방 성향의 동부 간 갈등,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러시아의 패권주의적 성향의 강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크림 반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친러 성향을 띄지만 사실 주민의 과반수가 우크라이나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 단지 오랫동안 러시아인들과 같이 지내오고 통혼해왔기에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에 반감을 덜 가질 뿐이다. # 단적인 예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국적으로 출전한 동부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도 있었고, 2014년 3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귀환한 우주인 중 올렉 코토프(Олег Валериевич Котов)는 심페로폴 출신이라 정국 어수선한데 카자흐스탄에 떨어지자마자 고향 정세 어떻게 생각하냐는 난처한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다.

크림 반도 주민들(주로 러시아계)은 CNN등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크림 반도가 "강한 나라"인 러시아에 귀속되어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바란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 동안 우크라이나의 불안한 정치 상황, 오렌지 혁명과 유로마이단에서 대변되는 격렬한 시위를 통한 정권 바뀜 과정을 몇번 겪은 러시아계쪽 주민들이 그 동안 이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EU와 NATO 가입 시도 등으로 친서방&반러시아 노선 시도를 싫어하는 국민도 상당수라는 뜻이다. 또한 2000년대 중반부터 BRICS의 일원이라고 불리며 경제력을 급속히 불린 러시아에 대한 동경도 한 몫했다. 러시아로 편입되면 경제와 생활이 현재보다는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즉 돈이 문제다 소련으로부터 분리된 후 20여년간, 경제는 뒷걸음치고 정치권은 싸움만 하고, 빚은 갈수록 늘어나 IMF 구제 금융을 요구하게되는 상황에서 친러계 주민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속감과 자부심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실효 지배하게 되었으며 동부 지역 또한 러시아로 편입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단 야누코비치에 대한 평가는 동부에서도 안 좋긴 하지만[28] 그렇다고 해도 혼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고 서부의 과도정부나 야누코비치나 다를 게 뭐냐는 반응도 있다. 키예프 과도정부가 러시아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할 뻔한(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대실책을 한 덕분에 안 그래도 서부에 감정이 좋지 않았던 동부 지역이 더더욱 열받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사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친러계열이 우세한 동부의 분리 독립을 그렇게까지 원하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러시아와 현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부라는 것. 이런 주장에서 나와 있듯이 애초에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독립국으로도 보지 않고 심지어는 푸틴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당신도 알겠지만 우크라이나는 국가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그런 푸틴에게 있어서 우크라이나 전부를 러시아의 영향권에 두는 것이 본전이라는 소리. 한때, 서부 지역은 빛 좋은 개살구인 데다 미국과 EU를 정면으로 자극할 것이므로, 푸틴이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를 먹고 만족할 것이란 전망이 대세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여 괴뢰 정권을 수립하거나 아예 병합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각은 옛말이 되었다.

한편, 크림 반도만 해도 인구 60% 가까이가 러시아계이며 12% 정도를 차지하는 튀르크계인 타타르인들( 외몽골에 살다가 칭기스 칸의 유럽 원정에 주 병력으로 따라온 후 이 지역에 주저앉은 튀르크계 종족으로 슬라브족과 혼혈되어 용모는 몽골계가 아니다)의 반응도 주목된다. 과거 크림 칸국 시절 크림반도를 지배하던 시절처럼 타타르인의 땅이라고 여기는 타타르인들이 있는가하면 러시아를 반대하지만 우크라이나를 특별히 따르지 못하겠다는 의견을 가진 타타르인들도 있다. 타타르인들은 소련 시절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약 20만 명이 강제 이주를 당해 절반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월 26일 크림 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에서 친서방 세력이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를 장악하자 이에 항의하는 친러파 시위대 수백 명과 반러파 타타르인 시위대 수천 명 간에 충돌도 벌어졌다. # 이들과 같은 민족으로 구성된 터키에서 크림 반도의 혼란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2012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서 크림 반도를 다룬 기사를 낸 적이 있는데 이 기사에서도 타타르인들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 지배에 부정적이라는 반응을 다룬 바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러시아도 별반 다를 거 없는 분위기. 특히 이런 분위기는 크림 사태 이후에 더욱 강해졌는데, 우크라이나의 지배를 몰아낸 크림 지역 정부가 오히려 타타르인들을 억압하고 몇몇 타타르 인사들이 납치, 폭행, 살인의 표적이 되는 등 심각한 인권 유린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

하여튼 크림 반도는 이전에 러시아 땅이었기 때문에 병합 혹은 분리가 비교적 쉽다. 동부 지역은 명백한 친러라고는 해도 크림 반도처럼 극단적인 정도는 아니어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쉽지만은 않다. 서부는 EU와 미국을 대놓고 자극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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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시조인 류리크 가문의 문장

거기에 서부도 막상 러시아 싫다고 들고 일어났어도 군사력이고 자원이고 뭐고 지리멸렬한 상태라 러시아가 한 마디 하면 덜덜 떨 수밖에 없는 상황.

국내 밀리터리계에서는 중국이 군사기술협력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혼란을 껄끄럽게 생각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미 우크라이나가 가지고 있던 기술적 우위, 요컨데 러시아가 중국에 이전을 안해줘서 우크라이나에게 의존하던 항모기술( 랴오닝급)이나 함재기 기술( J-15)은 이미 2000년대 중반무렵 중국으로 넘어온 상황이다. 아직 중국은 전차 공격력 부족을 비롯해 각종 무기체계에서 기술상의 여러 문제점이 남아있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 측에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라서(...) 현재와 별로 다를 것은 없다.[29] 그나마 아직까지 중국이 탐을 낼만한 것은 항공기 엔진 정도가 있는데, 이쪽은 러시아제로 대체가 가능하고 실제로도 러시아에서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라는 수입선을 잃는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99식 전차가 가지는 엔진의 심각한 결함을 우크라이나제 엔진으로 메우려고 하는데 이 수입선이 막히면 이 부분에서는 러시아제로 대체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문제점은 있다.주포도 그렇고 그놈의 전차가 문제 이에 관해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국의 입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은 확실히 이 지역에 대해 유럽이나 러시아, 심지어 미국과 비교해도 갈등과 그 결과물에 대한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 고작해야 우크라이나에 발주한 대형 호버크래프트가 정시에 도착하길 바라거나, 자국군을 위해 키예프에 발주한 제트엔진이나 농업 투자에 대한 보장을 원하는 정도다." 관련 기사 물론 러시아의 팽창과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사례의 증가가 중국의 안보에 꽤 신경이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가 완전히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푸틴이 벨라루스,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추진해 온 유라시아 연합의 꿈에 성큼 다가간다. 관련 기사. 다만 카자흐스탄 같은 경우도 '유라시아 연합 이거 소련 부활 아님?'이라고 차갑게 보는 시선이 많아 대통령이 어디까지나 경제적 협력이라고 선을 그은 상태고 카자흐스탄에도 러시아계가 많은데 자국의 러시아인들을 명분으로 개입한 러시아의 행동을 껄끄럽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유라시아 연합 내에서 러시아와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러시아의 크림 합병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비슷한 존재인 남오세티야 압하지아를 러시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승인하지 않기도 했다.

중국과 더불이 이 사태를 좀 신경쓰는 나라가 바로 파키스탄. 인도에 맞서 무기와 장비를 갖추려고 해도 엄청난 시장성을 가진 인도를 거슬리게 하기도 어렵거니와 경제적으로 인도에게 상대가 안되는 파키스탄이 이웃 우호국 중국과 더불어 많은 무기를 수입하던 나라가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인도에게 큰 고객인지라 파키스탄은 당연히 무시하던 터에 러시아가 끼어드는 우크라이나 동부 문제에 대하여 파키스탄도 무시할 수가 없다. 다만 파키스탄은 우크라이나가 없어도 중국이 있긴 하다.[30]

군사적으로는 NATO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압박 아래 유럽연합 국가들은 군축을 재고하고 있으며 중립국 스웨덴 핀란드도 나토군와의 협력에 나섰다. 유럽연합은 공동의 위협 출현으로 인해 뭉쳤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EU 지도자들이 오래 된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왔으며, 유로존 가입에 회의적이던 폴란드가 태도를 바꾸게 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오바마와 대비되는 굳건한 위기대처 능력을 보여주었다. #

신흥국의 강성과 버락 오바마의 군비 축소로 인해 약해졌던 미국의 세계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회복되고 있다. 특히 유럽으로 하여금 프리즘 폭로 사건에 대해 느꼈던 분노를 잊고, 새로운 협력을 하도록 만들었다. 유럽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셰일 가스를 판매해 줄 것을 당부했으며 자유무역·투자 협정의 신속한 체결에 동의했다. #

러시아 국내적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고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외국 투자자본의 유출, 서방의 자산동결과 여행금지 제재 등으로 인하여 불안감도 병존하고 있다.

불똥은 우주산업까지 튀어서 미국 NASA와 러시아 간의 우주산업과 관련된 협력이 대부분 중단되었다고 한다. # 아래쪽은 네이버에 보도된 관련 뉴스이다. #

4.1.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

3월 14일, 크림 공화국 총리 세르게이 악쇼노프는 신임 법무장관에 33세 여성인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를 전격 임명했다. 폭력 사건을 전담한 적이 있는 12년 경력 검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이 엘프 미녀라서 화제가 되었다. 사진. 현지인들 입장에서도 동안으로 보여서, 20대 후반 정도로 착각할 정도라고 한다. 기사 나탈리아 신임 검사장의 인터뷰 동영상(러시아어)

러시아 언론들도 대충 냄새는 맡은 분위기. 3월 24일, 이런 화제와 관련하여 인터뷰를 했다.

4.2. 페트로 포로셴코

5월 우크라이나 대선을 앞두고 '초콜릿왕' 페트로 포로셴코가 독주체제를 보이고 있다.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가 예상 밖의 낮은 지지율을 보이면서 사실상 포로셴코의 독주 체제가 완성됐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경제장관 등을 역임한 포로셴코는 제과회사 '로셴'의 창업자다. 그 덕분에 별명도 '초콜릿왕'. 그는 1998년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추후 대통령이 된 빅토르 유셴코를 도와 2004년 오렌지 혁명에 자금을 댔고, 유셴코 정권의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포로셴코가 대선 1순위 후보로 떠오른 것은 재산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번 반정부 시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유일한 재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로부터 분리 독립을 꾀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고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상당수 우크라이나 국민은 그가 이런 배경을 살려 경제를 되살리고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분열된 나라를 통합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다. # 본인도 당선되면 3개월 안에 러시아와의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결국 당선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면 54.7%로 당선, 반면 티모셴코는 12.81%였다. 포로셴코의 대통령 취임식은 6월7일에 거행될 예정이라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보도했다. 그렇게 고른 지지를 받아 통합 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었지만, 취임 이후 그는 동부 분리주의 세력에 대해 강경책으로 군대를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진압중 유로마이단 시위때를 상회하는 인명피해를 내면서 동부와 서부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다.

물론 현실을 모르는건 아니라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결국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불러 일으킨 러시아를 응징하고 싶지만 대화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우크라이나인들은 스웨덴이나 캐나다를 이웃국으로 두고 싶겠지만 현실은 러시아"라며 러시아와의 상호이해는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국경을 유지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의심한다면 그를 설득할 가장 좋은 방법은 강력한 군대와 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를 예로 들며 "국가가 작더라도 부강하면 아무도 이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8일 키예프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3자 협의를 언급하며 "러시아와의 견해차가 크지만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포로셴코는 그러면서도 "러시아에 기분 좋은 파트너가 되려고 노력할 생각은 없으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폭력적인 분리주의 세력과 러시아와의 유착 관계를 단절시킬 선택 방안이 없다"며 "이는 더 이상의 공격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확실하게 막아줄 국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과 함께 안보 문제와 관련 도움을 요청했지만 확답을 받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협정을 체결하는 것도 지지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각서는 지난 1994년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미국, 러시아, 영국 등 강대국들로부터 주권과 안보, 영토 등을 보장받았던 국제협정이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친러 반군과의 평화 협상을 서두를 것이라고 밝혔다.

포로셴코는 6월 16일 국가안전보장회의 개회 연설에서 이번 주중에 정부의 구체적인 평화안을 발표할 것이라며 평화안의 시행은 친러 세력과의 정전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번 평화안은 헌법 개정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동부 반정부 세력의 핵심 요구사항인 권력 분산 문제도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31]

계속 내전을 하는 와중에도 평화협정을 위한 각계의 노력 끝에 결국 포로셴코는 9월 러시아와 EU가 참관한 가운데 민스크에서 동부 반군과 휴전협정을 채결했다. 다만 휴전 협정 이후에도 전면적인 군사 작전은 없지만 계속해서 포격과 국지적인 교전이 이어져 일부에서는 허울뿐인 휴전이라고 비판하는 상황.

4.3. 이고르 스트렐코프


우크라이나 동부 민병대 지휘관으로 자칭 도네츠크 공화국의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다. 발표 이전부터 자칭 도네츠크 공화국군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었다는 수수께끼의 인사. 우크라이나에선 그가 러시아 군사정보국 GRU 소속의 현역 대령으로, 1970년생의 이고르 기르킨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러시아에선 퇴직한 연방보안 국제 대테러조직의 퇴직자일 뿐으로, 단지 ' 밀리터리 매니아'라고만 주장하고 있다.[32]


우크라이나에선 민병대가 특수부대를 토벌합니다! 이 사진 가운데에 있는 흰 수염의 인물은 '바바이'라는 코드명의 카자크족 알렉산드르 모자예프로, 스트렐코프와 함께 동부 민병대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으나, 2014년 7월 13일 스트렐코프와의 동맹 관계를 결렬하고 이탈해 독자 노선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스트렐코프 휘하의 민병대는 크림 출신의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은 숙련된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정부군에게 매복공격을 가하고, 우크라이나 스페츠나츠 알파를 포로로 잡았으며, Mi-24 하인드를 격추하는 등 정부군에게 타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5월 14일에는 공개적인 최후통첩 방송을 보내는 등 기세등등하였으나 정부군의 반격이 거세지고 말레이시아 민항기 격추사태가 벌어진 이후 동부반군에 대한 지지도와 러시아에 대한 세계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반군이 수세에 몰렸고, 그 가운데 스트렐코프는 사퇴하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교수직을 하고 있다.

5. 러시아의 득실

단기적으로 러시아는 동유럽은 물론 세계에 영향력을 과시했고, 장기적으로는 크림반도를 확보하여 영토 영해라는 잠재력 높은 자원을 얻었다. 그 반동으로 날아온 경제제재의 여파가 소련 붕괴 이후 차근차근 성장하던 러시아 경제의 해빙기를 더디게 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러시아 주변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 서유럽 국가들에게까지 러시아 위협론과 대러 적대감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게 쌓이고 쌓여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이때를 기회로 삼아서 2022년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더 강화하게 되었다.

5.1. 손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적극적인 침략 전쟁은 동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회복했지만 그 대가로 서방과 마찰을 빚게 되었다.

게다가 크림 반도 또한 러시아에게 부담이다. 크림 지역이 복속되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가 지던 부담도 러시아가 고스란히 물려받아야 한다.현재 크림 지역은 전체 예산의 70%, 수도 공급의 90%, 에너지와 식량 대부분을 우크라이나에 기대고 있으며 크림 복속으로 러시아가 크림 지역 주민들에게 이를 공급하는 것만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주식구매한 사람들의 비명(...).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야누코비치 정권에서 포기한 EU 협력을 3월 20일 체결한다고 발표했으며 CIS 탈퇴를 시사했다.[33] 또한 푸틴을 ' 히틀러'로 묘사하는 등 여론도 나빠지고 있어 러시아가 크림은 얻었을지언정 우크라이나와의 사이는 멀어지고 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푸틴과 히틀러를 비교하며 분석하였다. #

미국이 약하게나마 물러나지 않고 외교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이뤄내고 있기에 17일 이후의 경제 제재 이후의 상황은 좋지 않을거라 예견하기도 한다. EU의 러시아 수출 비중은 EU 역내 총 생산( GDP)의 1% 수준에 불과한 반면 러시아의 대 EU 수출 규모는 GDP의 15%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셰일가스를 유럽에 판매하고, 비축유를 시장에 풀어 놓는 법안을 상/하원에서 동시에 발안하여 에너지경제 위주의 러시아를 압박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를 '어린애들 짜증 수준'이라고 비웃었지만 #(...) 시간이 지나 경제제재의 효과는 확실하게 다가왔다.

러시아는 현재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겨우 8.7%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옛 라이벌을 비롯해 EU의 어느 국가들과 심히 비교되는 편(...). 그러나 러시아의 이런 낮은 부채는 에너지 수출로 비롯된 것으로 러시아는 석유·가스가 수출·수입의 70%를 차지하며, 이는 연간 예산의 52%에 해당한다.

알렉세이 울류카에프 러시아 경제 개발부 장관은 27일 "자금 유출이 올해 1000억 달러[34] 까지 늘어날 수 있다"며 "종전에 잡은 성장률 2.5%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경제 개발부는 올 1분기에만 600억 달러가 빠저나간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지난해 총 자금 유출액인 630억 달러에 벌써 근접한 수치다. 이는 미국과 EU의 잇단 제재로 투자 심리가 심각하게 악화되면서 대규모 자금이 러시아를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그리고 외교적으로 러시아는 사실상 주요 8개국( G8)에서 배제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와 국제에너지기구( IEA)가입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서방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모두 취소한 상태.

위기로부터 반년이 지난 2014년 12월, 지속되는 서방의 경제제재와 셰일 오일 개발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미국의 원유 생산량 및 중동의 석유 증산으로 3월 무렵 100달러 대였던 유가가 50달러 대까지 하락하면서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있다. 저유가가 2~3년 지속되리란 전망마저 있어서 에너지 수출이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은행이 추산한 2014년 러시아 경제상장률은 0.5%, 2015년 경제성장률은 단 0.3%! 반년 전 미국의 경제제재를 "어린애 짜증 수준"이라고 비웃던 상황이 무색하게 푸틴이 직접 "미국이 세계질서를 어지럽힌다"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판국이다. # 이는 미국의 2.8%~3% 성장은 물론이고, 약 2014년 1%, 2015년 1.4% 성장이 예상되는 유로존보다도 낮은 것.

유가 하락으로 발생한 경제 상황 악화는 루블화의 폭락으로 이어졌고, 러시아는 루블화가 심리적 저항선인 1달러=60루블을 돌파하자 12월 16일 기준금리를 10.5%에서 17%로 올리는 비상조치를 시행했으나 루블화의 폭락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16일 증시는 12%나 하락, 11월 기준 물가 상승률도 9.1%에 달하는 등 모든 경제지표가 러시아 경제의 추락을 나타내고 있다. 올봄까지 서방의 경제제재에 자신만만하던 푸틴과 러시아는 현재 1998년의 디폴트 재현을 두려워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다만 디폴트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 서울대 경제학 교수의 칼럼 참고로 주의할 점은 링크의 본 주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승전 70주년 기념일에 대한 것이다. 글 사이에 디폴트까진 안갈 것이라는 견해가 담겨있다.

5.2.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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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잃는 것들. 저 영해와 자원도 러시아 것이 된다.

우크라이나는 흑해 유전을 잃었다. 러시아는 이미 엑손모빌과 2008년에 흑해 두 곳의 광구 개발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2015년부터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될 전망이다.[35] 근데 서방 국가들의 대러시아 제재 때문에 사실상 엑손모빌과의 협력은 무산된 상황(...).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자국의 영토로 합병하였다. 크림 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생각하면 크림 반도를 먹으면 흑해를 장악한다. 그와 더불어 크림 반도와 흑해에서 나오는 자원도 러시아가 접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크림 반도의 병합은 타국으로부터 강렬한 항의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생까지만(...).

러시아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군사적, 외교적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다. 서방 국가들이 받은 충격은 남오세티야 전쟁보다도 더욱 컸으며 경제적인 압박을 제외하면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동구권 국가에게 러시아에게 대들면 안된다는 경고를 주었을 뿐 아니라, 친서방 정책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주었다. 또한 강한 러시아의 이미지를 대외에 드높였을 뿐 아니라, 서방으로 하여금 냉전 시대 소련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생각나게 하였다.

한편, 남오세티야 전쟁뿐만 아니라 유로마이단 사태에서도 형식적으로나마 항의하고 제재 제스처를 취한 미국과 달리 유럽연합은 무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동유럽과 러시아 주변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하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그나마 적극적으로 규탄에 나서는 건 폴란드 정도로, 러시아에 대한 수출이 경제 상당수를 차지하는 발트 3국이나 러시아에서 에너지 자원을 수입할 수 밖에 없는 불가리아 같은 나라들은 제재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한 푸틴과 통합러시아도 지지율이 크게 올랐고 2018년 연금개혁 이전까지 러시아에서 푸틴의 입지는 그야말로 신이나 다를바 없게 되었다. 애초에 푸틴이 크림반도 합병을 지시한 이유도 러시아쪽에서 크림반도는 원래 우리 땅이라는 정서가 강했던데다가 안 그래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입지가 약화할게 뻔한데 친서방측에 반감을 가진 친러측 지지자들이 알아서 병합하라고하니 그걸 덥석 문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이 이때는 약해서 살짝만 건드린것만으로도 쉽게 무너졌기도 했다. 애초에 크림반도 병합을 안했으면 무능하다면서 지지율이 떨어질게 뻔했던지라 경제적, 외교적 손해를 감수한것이고, 그 수가 러시아 국내 정치적으로 통한 것이다.

27일 이후 러시아 경제 제재가 구체화 되어감에 솜방망이라던 서방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를 흔드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다만 경제 제재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큰 영향을 받기에 서방의 압도적 유리함만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서로가 손해이며 30%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보이고 있는 유럽과 에너지 수익으로 인한 국가소득이 예산의 50%를 차지하는 러시아의 맷집 싸움으로 진행되어 장기적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36] 이런 장기적인 소모를 막기 위해서 30일 푸틴은 오바마에게 파리회동을 제의하였다. 또한 유럽과 우크라이나에게 판매되는 가스의 가격을 각각 10%, 43.5%씩 올렸다. 결국 43.5%에서 100달러 오른 지난달 가격보다 81% 상승한 가격으로 우크라이나 가스값이 결정되었다.

6. 평가

6.1. 친러시아 측 시각

우크라이나 사태는 애초에 러시아가 원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경제적 원조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부적인 사정에 의해 친러 정권이 붕괴해버렸다. 이는 친유럽 세력에 의한 것이었기에 이를 방관할 경우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자국의 영향력 안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개입하게 된 것이다.

서방 언론, 특히 미국 언론들이 러시아를 악마화하면서 마치 러시아가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우크라이나에 침략적 본성을 드러내 부당하게 개입하여 우크라이나의 고유 영토인 크림반도를 강탈하려 하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현실은 크림반도 거주민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해나가기를 원했다.

당사자들인 크림반도 거주민들 입장에서 당시 소련 서기장이였던 흐루시초프의 억지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일방적으로 편입당한 것이지, 크림반도가 원해서 우크라이나에 편입된게 전혀 아니였다.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소련에게서 독립한 시기 크림반도에서도 당연히 우크라이나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었다. 때문에 크림반도는 러시아를 싫어하는 우크라이나계, 크림 타타르계를 제외한 크림반도 주민의 대부분(러시아계) #은 우크라이나를 자국이라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영국인 작가[37]조차 자신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의 여러 고문들을 직접 만나서 수차례 이야기해봤지만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측 인사들" 사이에서 크리미아 인구의 대다수가 다시 우크라이나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38]고 밝혔다.

당연한게 크림 반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대대로 살아온 영토가 아니다. 튀르크 계통의 크림 타타르인들이 살아왔던 곳을 18세기에 러시아가 전쟁으로 획득한 이래로 러시아인들이 살아온 곳이며 크림 반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된 것은 단지 소련 시절 때 1954년 흐루쇼프가 자신의 고향에 선물 겸 달래기 용도로 넘겨줬기 때문이다. 당시의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구성국이었지만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이다. 과거 소련이 크림반도의 행정구역을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일방적으로 변경했을때 처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독립적 지위 자체를 부정한다면 모를까 일단 인정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역사적으로도 러시아 고유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그대로 우크라이나에게 쥐어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39]

또한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서 개발과 투자를 받지 못하면서 차별을 받는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때문에 차라리 러시아로 간다면 러시아로부터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이에 크림타타르계 주민들이 반발했으나 끝내 대세를 막지 못했다. # 이후 서방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유지하며 고립으로 경제난이 심해져도 크림반도 주민들 대부분은 경제가 어려워도 우크라이나로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다. #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독일 통일 승인을 요청하면서 당시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나토를 더이상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나토는 불과 10여 년 만에 이를 일방적으로 깨고[40] 냉전 시대 동구권 국가들( 체코, 폴란드, 헝가리, 발트 3국 등등)을 대거 가입시키면서 나토의 영향권을 러시아 코앞까지 계속 확대해왔으며, 이는 러시아 측이 서방의 의도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부시 정부는 푸틴 집권 뒤에도 우방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으로 안보 우산을 지나치게 확장하여 러시아를 자극했으며, 테러와의 전쟁과 거품 붕괴의 후유증으로 인한 미국 자체의 쇠퇴, 서유럽인들의 안보불감증까지 겹치면서 지금 사태까지 왔다는 견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적대세력이 앞마당까지 밀고 들어온 판국이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41]

실제로 소련에 대해 가졌던 경쟁심리와 적대감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유럽에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미국은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친민주당, 친공화당을 막론하고 미국 언론들은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미국 언론이 이렇게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는 이유는 "국익"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국내 문제에서는 비교적 공정함을 유지했지만, 해외문제에 있어서는 진보 언론이고 보수 언론이고 국익 우선의 자세를 고수해 왔다. 물론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은 어느 나라 언론에나 있지만 미국 언론은 그 정도가 지나쳐서 거의 국가의 나팔수 수준.[42]

일각에서는 서방 언론의 편향성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동유럽계 이민자들인 폴란드계에서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폴란드계는 극렬한 반러시아 성향으로 유명하다. 미국 언론계나 학계에는 폴란드계 인사들이 매우 많다. 지미 카터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했던 즈비그니에프 브레진스키(폴란드식으로 하면 즈비그니에프 브제진스키, Zbigniew Brzeziński), 토크쇼로 유명한 래리 킹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것은 애꿎은 폴란드계 미국인을 희생양삼는 시각이다. 오늘날 미국에서의 폴란드계의 인구와 영향력, 정체성은 일관되게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예시로 든 래리 킹의 경우는 유대계이며 폴란드계와 사이가 좋지 않다.[43]

경제적 귀속으로 인한 식민지화 우려는 러시아 주변의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닌 여러 나라의 사정이 겹쳐 있다. 그러나 남오세티야 전쟁도 그렇고, 이번 사태도 러시아가 타이밍을 잘 잡은 측면은 있다. 푸틴의 향후 결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크림 반도 분리 독립 움직임을 코소보 독립 사태와 같으며, ICJ(국제사법재판소)에서 코소보 독립을 인정한 권고적 의견, "어느 누구의 독립선언도 국제법은 금지하고 있지 않다" 논리가 적용된다. 실제 과거 미국이 코소보 문제에 개입한 논리와 국제 사회의 결의들은 현재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미국의 발목을 잡을 정도. (출처)

코소보 독립 사건 때도 세르비아는 국제법상 코소보의 독립을 '국제법상 불법'이라고 주장하였으나, ICJ(국제사법재판소)에서 코소보의 독립을 사실상 인정하는 권고 의견을 내린 바 있어, 코소보의 주민의 자결권은 인정하면서 크림 반도 주민의 자결권은 인정하지 않는 서방은 이중잣대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지아에 대한 압하스인들의 독립권, 아프리카 수단 남수단의 분리 독립,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독립 등 국제법이 확고부동하고 명확하게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한 이런 '애매한 이중 기준과 예외 조항'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44]

코소보 독립은 국제법에서 판결을 하면서도 심각한 문제점들이 산재되어 있었다. 때문에 ICJ의 코소보 독립에 관한 권고적 의견은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명확하고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45]하며 코소보의 분리독립과 자결권의 적용에 대해 충분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결국 코소보 독립 사안이 전세계에 분리주의를 합리화하고 부추기는 엄청난 사안임을 뒤늦게 인지하고 미국에서 콘돌리자 라이스가“미국은 오늘 코소보를 주권국가로 공식 인정했다”고 밝히면서, “코소보의 (독립) 사례는 다른 지역의 선례가 돼선 안된다”고 주장 #하며 내로남불을 시전한다.

미국은 현재 유엔 총회를 들먹거리며 주장의 당위성으로 거론하는데 정작 미국이야말로 이스라엘을 위해서 팔레스타인에 관련된 유엔 총회 결의안 결정들 # # 을 대놓고 조롱하거나 비판하며 유엔 총회의 결정의 위상을 계속 추락시킨 핵심 당사자였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에도 미국이 거부하며 막아왔다. ## 러시아를 자국 이익을 위해 상임이사국 권리를 남용하며 휘두른다고 욕하지만 정작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임이사국의 권리를 남용해댔다.
뉴욕타임스(NYT)도 24일 사설에서 트럼프의 골란 고원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 인정 발언은 미국의 국익보다 이스라엘 정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서 이스라엘이 현재 골란 고원 점령과 관련해 어떠한 외부 압박도 받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트럼프의 발언은 총선을 앞두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재선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서 한편으로 이는 이스라엘 우익정당들에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병합 주장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골란 고원의 병합은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과 유대 민주국가로 이스라엘의 장래 희망을 무산시킬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이스라엘 주재 미 대사관 이전과 이란 핵 합의 철회 등 지난 수십년간 전임자들이 구축해온 미국의 가치 있는 외교적 레버리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포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이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지속해서 비난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미 전문가 "골란 병합인정, 중동평화 더욱 어려워질 것"
결정적으로 미국이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 스스로 이스라엘 골란고원 합병을 지지하는 치명적인 자충수를 저지른다. 실제로도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마저 미국이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병합을 인정하게 되면서 크림반도 합병을 가지고 러시아를 비판할 명분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Despite promoting ‘territorial integrity’ in Ukraine, Biden administration refuses to reverse Trump’s Golan recognition.
우크라이나에서는 '영토 보전'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골란 인정을 번복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알자지라 뉴스)Three years on, US still views Syria’s Golan as Israeli territory
이후 알자지라 또한 조 바이든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주장하면서 정작 골란고원에 대해선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이전 행정부의 정책을 계속 유지하며 철회시키지 않는다고 보도하며 미국의 태도가 이중적인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알자지라에 인터뷰한 국제법 전문가 Jonathan Kuttab는 알자지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게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행동에 대한 비판에 일관성을 유지하려면 과거 미국이 저지른 이스라엘의 시리아 영토 합병에 대한 승인 #을 즉시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46][47]

6.2. 친우크라이나 측 시각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 반도가 우크라이나를 벗어나 러시아에 병합되면,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미국, 영국, 러시아가 서명)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였으나, 러시아와 서방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핵을 포기하여 "성공적인 비핵화" 국가의 선례라고 칭송받은 적도 있는데, 만약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해버리면 이 각서는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다. 현역 우크라이나 의원은 이때의 결정이 "실수"였다며 #, 우크라이나에서는 열강들을 너무 쉽게 믿고 안일하게 대처하여 결국 영토를 뺏기게 되었다고 분개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핵무기가 있었다면 러시아군이 이렇게 쉽게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수 있었겠냐며...[48]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보증한 이 각서를 위반하고 크림 반도를 병합할 시, 이는 나라 사이의 국제적 신뢰도 문제와 전 세계적인 핵 비확산 움직임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결과를 끼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 헌법에서는 분리 독립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주민 "전체"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크림 지역 내에서 한정된 투표를 하고 있는 크림 반도 분리 움직임은 우크라이나 헌법에 배치된다.

서방 측은 크림 반도 분리 독립 움직임에 대해 코소보 사태와 다르다고 말한다. 코소보의 독립은 세르비아 측의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이 있었고, 이에 대해 유엔이 개입하여 유엔군 주둔하에 독립 투표를 진행한 것이지만, 크림 반도의 경우 러시아계에 대한 학살이나 인종 청소는 없었다. 즉, 코소보는 국제 사회에서 "얘네들은 독립하지 않으면 학살당하니 독립해주자"는 유엔 차원에서 국제적 총의가 있었지만, 크림 반도 사태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크림 반도 사태가 코소보와 달리 국제적 총의가 없었다는 것은 유엔 결의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러시아는 매우 패권주의적인 국가고, 미국처럼 맘에 안드는 이웃나라에는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불사해왔기 때문에 러시아 또한 잘한 건 없다. 유튜브에서 그나마 공정하기로 유명한 바이스 뉴스 측 기자는 몇몇 서방 기자들이 러시아 군인 및 크림반도 민병대원들에게 체포 및 카메라 압수를 당했다고 보도했으며, 그 기자 또한 러시아 군인들에게 잡혔다가 풀려나기도 했으며( 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특히 무력으로 빼앗은 건 쉴드쳐 줄 여지가 없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강도들도 다 저마다의 딱한 사정은 있는데, 다른 국가들이 러시아의 사정을 이해해 줘야 하나? 저런 식이면 나치독일이나 일제도 다 타국을 침략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으므로 비판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더군다나 미국 언론이 정부의 나팔수면, 러시아 언론은 푸틴의 나팔수이다. 미국 언론에도 문제는 있으나 적어도 러시아 언론에 비할 바는 아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으나, 푸틴과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 언론이 상상이 가능한가? 친서방적인 기사 게재 자체도 불가능하다.

2014년 3월 17일, 유엔 안보리에서 크림 반도 분리에 대한 주민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는데 15개 이사국 가운데 거부권을 행사한 나라는 러시아가 유일하며, 중국은 러시아와는 달리 기권했다.[49] 러시아는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나머지 13개 나라는 결의안에 찬성하였다. 결의안에 찬성한 나라는 3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과 10개 비상임이사국( 나이지리아· 대한민국· 룩셈부르크· 르완다· 리투아니아· 아르헨티나(?)[50]· 요르단· 차드· 칠레· 호주)이다.

2014년 3월 27일, 193개국 유엔 총회는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을 확인하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유도한 주민 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 총회는 이날 표결에서 찬성 100, 반대 11, 기권 58로 결의안을 승인했다. #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찬성하고 승인한 나라는 러시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볼리비아, 쿠바, 북한, 니카라과, 수단 공화국, 시리아,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11개국이며,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반대하였다. # 기권한(abstained) 58개국은 여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 유엔 찬반 투표에서 러시아가 몇몇 국가들에 대해 러시아의 입장에 반대하면 보복하겠다며 위협했다고 한다. 유엔 주재 외교관들이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가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아프리카의 상당수 국가를 위협의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전하고, 러시아 입장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이민 노동자 추방, 천연가스 공급 중단, 수입 규제 등이 보복 조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

터키도 이에 대해서 민감한데, 크림 반도가 러시아의 영토가 되면 흑해를 건녀면 바로 러시아와 맞닥뜨리게 되므로 지정학적으로 불안해진다. 터키는 과거 오스만 제국 시절 흑해 주도권을 놓고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크림 칸국을 상실한 후로, 오스만 제국은 1:1로는 러시아에게 이긴 적이 없다. 당연히 오스만 제국의 후신인 터키가 이를 기억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다 보니 터키는 오스만 제국과 크림 칸국의 우크라이나인 약탈에 따른 역사적 악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사이가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협력하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을 인정할 나라는 친러시아 국가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51] 크림 반도 분리의 근거가 되었던 ICJ의 코소보 판결이 전 세계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 판도라의 상자를 연 만큼, 영토 분리주의를 과거부터 반대해 왔던 러시아와 중국뿐 아니라, 서방도 이번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국제법상 주민의 자결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논쟁거리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이런 주민 투표 결과를 정당하다고 인정해버리는 경우, 전 세계에서 혼돈의 카오스가 벌어질 수도 있고 만약 정당하지 못하다라고 정해 버리는 경우에는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분리독립은 헌법으로 막아놓은 형편이다. 다만 분리 독립을 논할 정도라면 법적 절차보다는 정치적 합의가 중요시되는 상황이기는 하고, 또 분리 독립이나 합병, 통일 같은 문제도 헌법개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는 하다. 물론 순순히 평화적으로 들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52]

친러시아적 시각에서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영유권을 인정한 것을 두고 미국도 러시아와 다를바 없으니 러시아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러시아도 비판할 일이지, 미국은 부당하고 러시아는 정당하다는 식의 이상한 양비론을 설파할 게 아니다. 그리고 이 논리는 2014년 2월 전까지 러시아에 총 한발 안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건국 이래 골란 고원에서 이스라엘 멸망을 목표로 갖은 도발을 일삼아온 시리아를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것이다. 애초에 이스라엘은 제1차 중동전쟁 제4차 중동전쟁에서 시리아의 전면침공을 당했고 심지어 그 사이에는 제한전 형태로 갖은 도발을 당한 입장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시리아 관계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를 등치하는 것은 국경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무리수다.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통치정책에 법률자문을 하는 유진 콘토로비치(Eugene Kontorovich) 법학박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다수의 화평안을 제시했으나 시리아는 수많은 위반행위들을 저질렀으므로 법적 정당성을 모두 상실한 상태다.
The relevant international law only prohibits taking territory in a war of aggression. Indeed, if international law does not allow attacked countries to make border changes in some circumstances, it would actually invite aggression, because the attacking country would be insured against losses to the defender. Israel made 'multiple good-faith peace efforts to return the territory' and that Syria 'lost all legitimacy by committing mass atrocities.'

관련 국제법은 오직 침략 전쟁에서 영토를 차지하는 것만 금지한다. 실제로 국제법이 공격당한 국가에게 어떤 상황이든 국경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공격하는 국가는 방어측이 가하는 손실로부터 보호받게 되므로 사실상 침략을 초래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수차례에 걸쳐 영토 반환에 관한 선의의 화평 노력"을 했고 시리아는 '수많은 잔혹행위들을 저질러 모든 정당성을 결여'했다.

유진 콘토로비치( 노스웨스턴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9년 3월,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기사에 실린 사벨 박사와 콘토로비치 박사의 기자 회견

7. 이후

7.1. 2015년

11월 22일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 국경에 폭발이 발생, 크림 반도로 들어오는 송전선 4개가 파괴됐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강성 민족주의 세력의 소행으로 크림 반도의 160만명에 넘는 주민들의 전력 공급이 끊기는 초유의 정전 사태가 터졌다.

이에 뒤집어진 러시아에서 비상용 발전기 수백대를 특별기로 날랐고 긴급 복구에 착수했으나 크림반도내 반러시아 시위대가 복구 작업을 방해하며 충돌하였다. ## 이와중에 우크라이나측에서 크림반도로 들어가는 교통과 화물 운송을 끊어버렸다.

결국 크림반도의 전기난은 2019년 2개의 화력 발전소의 건설이 완료되면서 해소됐다.

7.2. 2016년

2016년 11월 30일에 우크라이나군이 크림 부근에서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자 러시아가 반발했고, 긴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외교 정책 고문담당을 맡은 카터 페이지가 러시아의 크림 영유권 주장 부정은 잘 못된 것이라며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지 않는 건 잘못된 것이란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페이지의 주장일 뿐,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공공연하게 친러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고 트럼프 본인이 2016년 8월 크림의 병합은 해당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원했던 것이었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크림 문제에 대해 친러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당장 러시아의 미국 대선 해킹 의혹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대러 제재를 두고 # 미국이 이제 더 크고 더 좋은 일로 넘어가야 할 때라며 사실상 제재가 연장되지 않을 것임을 밝혔고 이에 대한 대응을 유보한 푸틴에게 똑똑하다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현실주의 외교 안보 정책의 대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역시 미국의 국익을 위해 미국-러시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함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조언하며 동부 우크라이나의 내전을 종식하는 대가로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방안(심지어 제재도 해제)을 제시했다. 미국의 최대 위협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우크라이나에게는 설상가상으로 이미 유럽연합 역시 러시아의 크림 반도 영유권을 인정해주고 동부 우크라이나의 자치를 보장하는 연방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마무리하자는 방안이 일고 있는만큼 향후 크림반도의 문제가 키신저의 복안처럼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점쳐지고 있다. 물론 대러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 역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이로 야기된 러시아의 대 유럽 제재로 유럽연합 역시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뜩이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의 국가들은 대러 농산물 수출이 막혀 지난 2년간 이탈리아 북부의 농가들에서만 2억 4000만 유로의 손해를 입었고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역 역시 전체 농가의 10%에 달하는 2만여 농가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럽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우크라이나를 위해 대러 제재를 계속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고 있다. 사실상 크림 반도의 합병을 인정하고 러시아와 타협할 가능성이 큰 셈.

7.3. 2017년

트럼프 정부라고해도 러시아와는 좀 다툴수도있는게 크림반도에 대해서 러시아가 반환을해야 제재 해제 가능하다고 유엔 대사 니키 헤일리가 주장했다. 연합뉴스

2017년 3월 4일에 러시아 정부는 크림 반도에 첨단방공미사일 S-400(!)을 추가 배치한다고 밝혔다. #

크림 반도가 러시아의 영토가 된지 3년이 되었고 러시아인의 절대다수는 크림 반도가 러시아의 땅이 된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78%는 손해보다 이득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 2017년 9월 25일에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는 보고서에서 크림 반도의 인권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 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포함한 200루블짜리 신지폐를 발행하면서 영토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

7.4. 2018년

2018년 1월 13일에 크림 반도에 첨단방공미사일 S-400을 추가배치했다. # 2018년 3월 14일에 푸틴 대통령은 크림 반도를 연결하는 공사현장에 참여하면서 대규모 대선 유세를 벌였다. #

2018년에 헤이그 중재사무소는 크림병합으로 피해를 본 우크라이나 기업들에게 1천700억원을 러시아 정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 2018년 5월 15일에는 크림 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크림 대교가 1차 개통되었다. # 이제 크림 반도가 러시아 육로로 연결되어 완전히 본토처럼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5월 23일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 다리가 우크라이나 소유라고 주장했고 일각에서는 크림 대교를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8년 6월 14일에 트럼프는 G7정상회의에서 크림 반도는 러시아의 영토였고 우크라이나는 부패한 나라라는 발언을 했다고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가 보도했다. #

2018년 6월 20일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크림 다리를 군사적인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

2018년 10월 17일에 케르치의 한 대학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18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당했다. #

2018년 11월말에 우크라이나 함정이 러시아군에 의해 나포된 사건을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갈등하면서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 최신 방공미사일을 배치했다. # # # 그리고 2018년 12월 21일에 러시아는 크림 반도 인근 해역에서 전투훈련을 실시했다. # 2018년 12월 22일에 유엔 총회에서 크림 지역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러시아는 반발했다. # 그리고 러시아는 크림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철책을 설치했다. #

7.5. 2019년

EU는 2019년 6월 20일에 대러 제재를 2020년 6월 23일로 연장했다. #

애플이 러시아 요구에 맞춰 러시아가 합병한 크림 반도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표기하자 우크라이나측에서 반발했다. #

2019년 12월 9일에 유엔 총회에서 우크라이나 측이 제출한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규탄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3표, 반대 19표로 가결 처리했다. #

러시아와 크림 반도를 연결하는 철도개통식이 열리면서 푸틴 대통령이 시범운행열차에 탑승하자 EU와 우크라이나측은 반발했다. # 하지만 러시아측은 크림 반도의 적극적 인프라 투자를 통해 영토반환 거부의지를 표명했다. #

7.6. 2020년

크림 반도의 주민들이 마스터카드를 썼지만, 카드 사용이 이미 정지됐다. #(러시아어) 12월 10일에 유럽연합은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6개월 연장했다. #

7.7. 2021년

친러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임기 때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이 그럭저럭 이었지만 반러 성향의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이 되며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라고 밝혔다. # 그리고 크림 반도 합병에 대해 러시아의 책임을 물을것이라고 밝혔다. #

G7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앞으로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3월 29일 북대서양 조약 기구 소속 군용기가 회원국 영공에 접근한 러시아 군용기를 격퇴하기 위해 약 6시간동안 러시아 군용기가 북대서양, 북해, 발트해, 흑해 상공의 나토 국가 영공에 접근한 것에 대응해 총10여회 출격하며 군사적 충돌 위기가 고조됐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및 크림반도 지역에 10만여명의 병력 및 전투기를 집결시켰다. 4월 6일 크림반도 지역의 활주로에 러시아의 Su-30 전투기가 배치된 모습이 인공위성에 찍히기도 했다. 지난 3월 말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지역 내 다른 곳에서는  Su-34s,  Su-27s 등 다른 전투기들이 찍혔다. 이날 크림반도 해역으로 흑해 함대 소속 군함들과 발트함대, 북해함대 소속 상륙함 등도 대거 배치됐으며 크림반도 동부에는 이전에 없던 군사 진지들이 생겨나기도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군사력 이동 배치가 정례 훈련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남부군관구는 4월 19일 크림반도에서 50대의 군용기와 방공 시스템, 흑해함대 등이 참여하는 공군 훈련이 실시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훈련이 소련 붕괴 후 크림에서 이루어지는 최대 규모 훈련이라고 분석했다. 지난주 크림반도 동부에 전에 없던 대규모 군사 진지가 생겼으며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으로 배치된 러시아군 병력이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참가했던 규모를 웃도는 것으로 평가했다. #
  • 이에 미국 군함 2척이 몽트뢰 조약[53]에 의해 다음 주 흑해로 진입해 5월 4일까지 그곳에 머물 예정이라고 터키 측에 통보했다. #
  • 2021년 4월 20일에 러시아는 위에 관해 흑해와 크림반도 상공에서 비행제한구역을 발표했다. #

우크라이나측이 축구 대표팀에 크림 반도를 포함한 지도를 그린 유니폼을 공개하자 러시아측은 반발했다. #

6월 23일 영국 해군 구축함이 흑해의 러시아 해역에 진입하자 러시아 해군과 전폭기가 폭탄을 투하하며 경고 사격에 나섰다.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더타임스는 냉전 종식 이후 NATO와 러시아군의 가장 심각한 대치라고 전했다. #
  •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당시 러시아 군함이 영국 구축함을 격침했더라도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영국은 러시아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안다는 취지로 말했다. #

6월 29일에는 흑해에서 항대하던 네덜란드 함대를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러시아 전투기가 5시간 동안 위를 날며 공격하는 시늉을 하고 통신장비를 교란하는 등 위협 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국방부는 러시아의 위협 비행에 대해 자유로운 항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러시아가 서방 국가의 비우호적 행동 때문에 자주권이 위협받는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새 국가안보전략에 서명했다. 러시아의 국가안보전략이 업데이트된 것은 2015년 12월 31일 이후 처음이다. #

NATO와 우크라이나 해군이 2주간 합동 해상 훈련을 흑해에서 2주일 동안 해상 합동훈련을 실시하면서 굳건한 방위 동맹을 과시했다. 훈련명은 ‘시 브리즈 2021’(Sea Breeze 21)이다. #
  • 원래 이 훈련에 한국도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불참했다.[54] 이에 미국 국방부는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 우크라이나와 나토 국가들이 흑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 중인 때 러시아 군함들이 흑해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 또한 러시아가 전투기를 동원해 가상의 적 군함을 폭격하는 연습까지 진행하였다. #
  • 러시아가 훈련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미군 해상 초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키기도 했다. #

암스테르담 법정이 크림 반도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유물들을 우크라이나로 반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러시아어)

11월 4일 푸틴 대통령이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국민 화합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

7.8. 2022년

결국 2021년 우크라이나 위기가 계속 고조되다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크림 반도 방면에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러시아의 공격이 진행되었다

2022년 3월 18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크림반도 합병 8주년 기념식에서 "크림반도를 치욕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크림 반도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일단 우크라이나가 상수도를 죄다 막아버려 크림은 사실상 황무지나 다름없게 변해가고 있고,[55] 작살난 인프라를 그나마 유지라도 해 주던 러시아가 2014년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제재로 나라가 망하느니 마니 하는 상황까지 가는 마당이라 더 이상 식수를 포함한 생활물자가 안정적으로 공급될지조차 불투명하다. 이번에 하천을 막던 보를 러시아군이 파괴했다곤 하지만, 러시아의 승전 가능성이 땅을 치고 있는 마당에 우크라이나가 바보가 아닌 이상 크림을 다시 못 돌려받으면 저 보를 다시 안 지을 리가 없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차단하고 있던, 크림반도에 물을 공급하는 운하를 재개통했다. # 러시아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크라이나 침공의 중대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크림 반도를 탈환할 것을 선언했다. #

크림반도를 두고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공방전이 벌어지는 중,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크림 반도 주요 보급로인 크림 대교를 붕괴시켰다. 이에 러시아군이 해당지역에서 활동에 큰 차질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8. 여담

크림 반도는 연간 650만명이 방문하는 인기 관광지였으며 관광 수익이 지역 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사태의 여파로 관광객은 350만명 수준으로 이전의 반토막 수준이다. 그나마 러시아 연방 정부가 보내오는 공무원 관광객이 많다. 여기에 2014년 12월 유럽 연합은 크림에 대한 유럽인의 투자를 금지하고, 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흑해 크루즈 여객선의 입항도 비상시를 제외하고 금지하는 등 대대적인 경제 제제를 가했다. 기사 러시아 경제가 경제제제로 위기를 겪고, EU의 제제가 본격화되면서 2015년의 관광객은 그 숫자가 더욱 줄어들 전망.

지역경제가 막장으로 치닫는 가운데, 크림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던 기업과 자산이 속속 강제 국유화되고 있다. 말이 국유화지 실제로는 푸틴화다. 기사
  • 3월, 니콜라이 2세가 설립한 유서깊은 와인 회사 마산드리 와이너리가 국유화되었다. 와인 산업 촉진을 이유로 했다.
  • 8월, 크림 최대 민간 조선소 '자리프'는 친(親)러시아 민병대의 강요로 경영권을 모스크바의 한 기업으로 넘겼다. 러시아는 "크림 반도의 조선업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10월, 우크라이나 재벌이 소유한 대규모 리조트 단지 아이바 조브스키가 압류되었다. "인근 공원에 대한 시민의 접근성을 해친다"는 이유.
  • 11월 12일, 크림의 최대 제과·제빵업체 '크림클렙'이 국영화됐다. 러시아 매체는 "크림클렙 소유주가 돈세탁을 하고, 우크라이나의 반(反)러시아 세력을 지원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 크림 공화국 의회는 2014년 11월 12일, '사회적·문화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개인 자산은 국유화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크림 자치정부의 관료들은 그저 러시아만 바라보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측근들의 환심을 사려고, 공공재산 사유재산을 가리지 않고 헌납하고 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크림 정부가 고급 별장 수 채와 450㎢에 달하는 크림 반도 최대 자연보호 구역, 고급 스파, 어린이 캠핑장, 유서깊은 와이너리 등을 무상으로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의 자산관리국으로 넘겼다"고 보도했다. 과거 스탈린이 즐겨 머물렀던 유스포프 궁전, 유명한 온천 마을의 별장 두 채, 사냥 오두막집, 리조트 6채 등도 푸틴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크렘린으로 넘어갔다. 이런 자산들의 관리는 러시아 본토에서 그러하듯이 푸틴의 측근들이 맡게 될 것이다. 기사

이렇게 지역 경제를 떠받쳐주던 관광 시설도, 산업 시설도 러시아에 헌납하고, 경제 제제의 직격타를 맞아서 경제가 파탄이 난 크림 자치국 주민들은 오직 러시아의 지원만 바라보고 있지만 러시아 경제는 합병할 때 큰소리쳤던 것과 달리 서방의 경제 제재와 저유가로 인해 아주 골로 갔다. 그러나 2015~16년 적자 재정을 편성할 정도의 상황에서도 러시아는 크림에 대한 지원 공약을 대부분 이행했다.

2015년 2월의 여론조사 역시 이에 대한 반증이다. 크림 주민의 91%가 러시아 귀속을 긍정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 후회없는 선택 사실 이런 이유에는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가 훨씬 잘 살기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러시아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대인데 반해서 우크라이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보다 훨씬 낮다 보니까 그런 것.

2015년 6~7월에는 러시아 내에서 크림으로의 휴가를 가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벌어지는 등 크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크림 주민들은 압도적으로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로의 편입을 지지했고 지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은 크림반도 문제에 대해 입장이 좀 다른데, 유럽은 크림반도의 러시아 병합은 인정하는 대신 동부 지역에서 손떼는 딜을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미국은 부다페스트 협약 상으로 둘 다 안 된다는 입장이다.[56] 물론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내주지 못하는 건 물론, 동부 지역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 영토의 지위 인정 외에 다른 것은 지킬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크림 위기는 시리아 내전과 함께 오바마 정권의 몰락을 불러온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사실상 시리아 내전을 방조하였으며 크림 반도를 러시아가 저항 없이 점령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미국인들은 오바마 정권의 대외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고, 가뜩이나 위기였던 민주당은 결국 2014년 미국 중간선거 참패를 시작으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16년 미국 양원/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에게 패배하여 야당이자 소수당으로 전락하게 되며 2018년 미국 중간선거 이전까지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

또한, 뜬금없이 NASA ESA, JAXA도 헤드샷을 맞았다. 우주인 해상 훈련 시설을 소치 앞바다에서 크림 반도로 옮긴다는 로스코스모스의 방침이 나오자 이제 소유즈 타려는 외국 우주인들과 관계자들은 졸지에 우크라이나 입국 금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우주인 선에서 그치면 차라리 다행이지, 이들이 모두 군인 내지 국가공무원 신분임을 고려하면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외교마찰이 우주개발분야에서 뜬금포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드래곤이나 스타라이너가 데뷔하더라도 미/러/유럽/ 일본의 우주선 공유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지만 미국인과 유럽인이 소유즈를 타지 못할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 반도를 허가없이 방문하는 사람은 3년 이상 우크라이나에 입국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 2016년 8월 7일에 러시아 정보기관은 크림 반도에서 테러공격을 저지르려고 했던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총국의 계획을 사전에 차단하고 유격대원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군인 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 크림에서 일어난 테러시도사건으로 인해 러시아는 첨단 방공미사일 S-400을 배치했다. #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크림을 합병한 러시아를 제소하고 러시아는 크림 반도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 2016년 9월 9일에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서 12만 명을 동원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

특이하게 친러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고나서 미국 외교전문가들이 트럼프에게 제안한 크림,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 문제 해결의 4가지 해법으로 러시아에 크림반도 지배 인정(다만 대러 제재는 계속 이행),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 동결(종전을 목적),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유럽화 전략을 포기하게 한다였다. #


소련 및 러시아의 락밴드 텔레비조르(Телевизор)의 곡 '우리를 용서해 주게(Ты прости нас)'. 2016년 곡이다.
텔레비조르의 리더 미하일 보르지킨은 소련 시절부터 대놓고 정부를 파시스트니 개자식이니 비판하다 콘서트 중 전기가 끊기고 정치 깡패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등 용자로 살아온 사람이며, 지금도 방사능 홍차를 주입당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푸틴과 극우파들을 까며 살고 있다. 저 곡도 대놓고 '용서해 주게, 우크라이나인들이여, 우리 러시아인들이 크렘린의 흡혈귀를 키워내고야 말았구나!'라고 외치는, 어찌보면 참 용자스러운 곡이다.

특이하게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러시아 락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현재 살아있는 락 음악가들의 크림 사태에 대한 태도를 기술해 놓았는데, 보르지킨 외에도 락 뮤지션 마카레비치(마시나 브레메니 보컬), 젬피라, 유리 셰프추크(데데테 리더), 부투소프(전 나우틸루스 폼필리우스 리더) 및 그레벤시코프(아크라비움 리더) 등이 전쟁 반대를 주장하였다.

일로바이스크 교전 당시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 포로들을 붙잡아 심문한 영상이 있다. 영상속 인물들은 친러시아 반군과 러시아군의 공격에 전원 사망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들 포로들을 데리고 철수하려 했으나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우크라이나군이 몰살당하면서 이들도 같이 죽었다.



국제천문올림피아드(IAO)에도 영향이 갔다. 원래 IAO에는 각국의 국가대표 외에 개최 지역 대표팀도 참가하는데, 이와 별개로 모스크바 크림 자치 공화국은 IAO 설립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이유로 고정적으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대표팀과는 따로 대표팀을 파견해왔었다. 그러나 크림 위기 이후로 크림 자치 공화국팀은 따로 IAO에 참가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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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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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부터 세르게이 악쇼노프,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블라디미르 푸틴, 알렉세이 찰리. [2] 당연한게 스페인, 그리스,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등은 자국내 분리주의로 인해서 골치를 썩고 있다. 다만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는 이후 코소보를 승인한다. [3] 출처: 역전다방59 ◆유고슬라비아전쟁 ep7. ★전황을 바꾼 나토 폭격과 민간군사기업, 육군사관학교 심호섭 교수, 캔자스대학 역사학 박사 [4] 코소보는 당시 코소보 지역이 1999년 이래 유엔의 보호관리를 받는 상태에서 독립선언을 해버린 거라 코소보 독립에 대해 세르비아가 대처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5] 때문에 세르비아에서도 러시아의 크림반도 귀속 움직임에 불편한 시각을 보내며 크림반도로 건너간 자국인들이 귀국하면 사법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6] Руська Єдність(우크라이나어)/Русское Единство(러시아어). 당 명칭부터가 러시아와 병합하자는 거다(...). [7] 저자 정보(출처:교보문고) [8] 크림반도는 훨씬 전부터 자신들이 우크라이나에 일방적으로 묶이게 된 것에 불만이 상당했다. 실제로 1990년도때에도 우크라이나와 떨어지려고 시도했었던 지역이다. [9] 흐루쇼프는 민족어를 말살시키려던 스탈린 정책을 비판하고, 대신에 개인의 의사에 따라 민족어와 러시아어를 선택해서 각 언어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게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소련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소련 주류에 편입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주류에 속하는 러시아어로 교육받기를 원했고, 흐루쇼프의 정책은 본의 아니게 민족어를 말살하는 정책이 되어버렸다. [10] 1926년 인구조사에서 9.2%에 달했던 러시아인 비중은 1989년 22.1%까지 증가했다. 우크라이나인 절대다수 지역인 갈리치아 지방이 1945년에 편입되었음에도 그랬다. # 우크라이나어는 2001년 인구조사에서 67.5%가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2009년 키이우 국립언어대학교(KNLU) 조사에 따르면 서부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대부분은 러시아어와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피진인 수르지크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우크라이나인의 민족정체성이 반쯤 말살된 것이다. [11] Serkii Plokhy, Lost Kingdom: A History of Russian Nationalism from Ivan the Great to Vladimir Putin # [12] 물론 지지 세력들에게조차 대통령 부적격자로 찍힌 인간을 푸틴이 안 만나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13] 헤드셋과 커다란 두꺼운 신형 케블라 헬멧, 디지털 패턴 위장무늬 전투복을 입은 러시아군과 소련 시절 민무늬 Ssh-68 철모에 1988년 구 소련군에 지급되었던 구형 TTsKO위장무늬 전투복을 입은 우크라이나군의 모습은 양국 군대의 전력차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군복/러시아군 항목에 있듯이 러시아군이 TTsKO-> VSR-> 플로라-> 디지털 플로라로 위장복을 4차례나 개정하고 장구류도 계속 바꿔가는 동안 우크라이나군은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다. [14] 그러나 미국이 그다지 건질 것도 없는, 파탄 상태에 근접한 우크라이나를 단지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군사적 개입까지 감행하며 도울 이유가 없다. 또한 공업적으로 발달한 우크라이나 동부가 러시아에 넘어가면 우크라이나와 군사적 협력을 진행 중인 중국은 큰 낭패를 보게 된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선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먹고 만족한다면 위험을 감수하고 크게 개입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15] 단, 미러 양국 간 탄도 미사일 협정에 따라 이 실발사 훈련 일정은 미국에 통보된 상태였다. [16] 한국 언론에서는 핵 추진 순양함이라고 오보를 냈다. 아마 함명만 보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CGN-95라는 함번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핵 추진 순양함인 CGN-95 트럭스턴은 오래 전에 퇴역했다. [17] 1992년에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와는 별개의 국가로 독립하려 했다. [18] MiG-31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기종은 방공 요격 전투 임무에 특화된 기체로, 냉전시 소련 본토로 들어오는 미국 폭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만든 기체이다. 즉, MiG-31 투입 훈련은 우크라이나 위협용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세계에 대한 위협이다. [19] 반대로 (자기들 생각에) 중국의 세력권 내인 센카쿠 열도 동중국해 분쟁 지역, 말레이시아항공 370편 사고에 구호 인력 파견, 소수민족 분리 독립 관련에는 굉장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중국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이 아직 타국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국력이나 준비가 안 된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20] 하원 의원들 중 야당 의원인 일리야 포노마료프 정의 러시아당 의원만 단독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21] 이것은 작년 러시아의 총 자본 유출 규모인 630억 달러보다 많은 수치. [22]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제외. [23] 원래 Su-24는 냉전시절 초저공으로 미 해군의 항모전단을 공격하기 위한 임무를 맡은 기체다. [24] 타란툴 III급 미사일 초계함 3척, 나티야급 소해함 1척, 해안경비대 루빈급 경비정 1척, 그리샤급 초계함 1척, 보라급 공기부양 미사일 초계함 2척, 크리박급 호위함 1척, 카라급 미사일 순양함 1척, 모스크바급 미사일 순양함 1척, 항해훈련용 3돛대 범선 팔라다 호와 흑해함대 항공대의 각종 항공기가 동원되었다. [25] 당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진행된 군사 퍼레이드에서도 크림 반도와 세바스토폴 출신 군인들이 탄 흑해함대 소속 제810 독립 차량화소총병 여단의 BTR-80 장갑차들이 선두에 크림 공화국 깃발, 세바스토폴 시 깃발, 흑해함대 깃발을 꽂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이 등장하자 들려오는 전설적인 세바스토폴 또한 백미. 이에 앞선 보병 퍼레이드에서도 이전까지는 해군의 행진 때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을 우려해 연주를 꺼리던 전설적인 세바스토폴이 대놓고 연주되었다. [26] 친러시아 성향의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몰도바 동부와 우크라이나 서남부 경계에 자치공화국으로 인구는 약 51만 명이다. 지난 1990년 몰도바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아직 어느 나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 2006년 주민 투표에서 97%의 주민이 러시아 편입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다. [27] 비록 과도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매우 싫어하는 우크라이나 동부라도 어쨌건 러시아계보다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더 많은지라 신중할 수밖에 없다. [28] 주지육림을 연상케 하는 저택 공개 이후 민심이 싹 돌아섰다고 한다. # 나라 재정은 파탄 지경인데 단순하게 자기 저택을 꾸미는데도 한화로 치면 수백억을 썼다고 하니 욕을 안 먹는 게 이상한 상황. [29] 125mm 전차포 탄자 관련 기술은 러시아가 독보적이라 중국이나 우크라이나보다 사정이 낫긴 하지만 그나마도 관통력 부족이라서 포발사 미사일이 해답인데 최소사거리가 너무 길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되는 모양이다. 125mm 주포를 쓰는 전차들 모두가 가지는 고민거리. [30] 중국 신무기 단골 고객이 파키스탄이다. [31] 동부의 반군들은 ' 연방화'를 원하지만, 포로셴코는 폴란드식 '자치권'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 [32] 이와 별개이지만 밀리터리 매니아 성향을 지닌건 맞는거 같다. 2014년 이전에 독소전쟁때 소련군을 비롯한 각종 군대의 리인액트를 했던 사진들이 상당히 많다. [33] 원래 우크라이나는 CIS 창설 협정에 서명하고서도 이 조직의 헌장을 비준하지 않은 채 어중간한 지위를 유지해 왔다. [34] 한화로 무려 116조 1천억이다! [35] 흑해 주변의 루마니아 터키도 광구를 발견하였으며, 심해에서도 광구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발견된 곳은 크림 반도 일대의 소량뿐(...). [36]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러시아와 두 곳의 광구 지분의 50%을 인수한 엑슨모빌의 피해가 있다. [37] Owen Matthews. (##)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과 그 과정에서의 투표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38] (원문)I didn't find a single person who genuinely believes that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of Crimea wish to be Ukrainian again. - 출처 자유유럽방송 # : Interview: What Ukraine Wants From Russia May Be 'Moral,' But Is It 'Practical'? [39] 실제 푸틴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러시아로의 병합 요구를 몰도바 고유 영토라는 이유로 거부한 바 있고,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자들의 병합요청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 자체의 특수 지위로 가는 게 맞다며 거절하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푸틴이 아무리 패권주의를 추구해도 시진핑마냥 막나가지는 않고 나름대로 명분을 따지는 셈. [40] 물론 아들인 조지 W. 부시가 주도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빌 클린턴은 비록 약화되긴 했지만 엄연히 유럽의 강국 중 하나였던 러시아를 지나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동구권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나토의 안보 우산에 끌어들이는 것은 꺼리고 친서방 중립에서 만족했다. 폴란드, 체코 1999년 클린턴 정권 말기가 돼서야 나토에 가입했으며, 그나마도 1998년 러시아 경제가 파산하여(한국의 1997년 외환 위기보다 심각한 위기였다!) 러시아가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서 가입시킨 것이다. [41] 발트 3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1940년~ 1991년까지 소련 영토였던건 우크라이나나 마찬가지니까. 더군다나 이들 지역은 러시아 제2도시이자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코앞이기도 하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국가 안보와 지정학적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소련이 발트 3국을 강제 병합했음을 고려한다면 자업자득이라는 말도 있다. [42] 미국은 엄연히 민주 국가이고, 베트남 전쟁 이후 최소한의 저널리즘은 갖추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자신들을 편들어주기를 바랄지언정 굳이 자국 언론에게 그러라고 강요하거나 압박하지는 않지만, 미국 사회의 보수성, 국수주의로 사회적 압박은 어느정도 고려되어야한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유력 언론들이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대중에 반애국적으로 보여지는 걸 원치 않을 뿐만 아니라 언론 시장에서 불리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언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판단은 각자 알아서하자. [43] 폴란드 출신 유대계 미국인 폴란드계 미국인이 서로 사이가 좋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44] 코소보의 경우 생존권과 연관되어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실상 인종청소의 주역인 밀로셰비치와 극단주의자들은 이미 처벌을 받았고, 현재의 세르비아는 문제가 많긴 해도 민주 국가고 당시의 일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한편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이 100% 무고하고 선량하기만 한 사람들은 아니며, 현재 일부 세르비아계에 대한 반인륜 범죄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45] ICJ는 독립을 선언한 행위에 대해 다룬 것이고 코소보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주장의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니다 ICJ는 국제법은 어느 누구의 독립선언도 금지하지 않기에 위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한 것이다. [46] 알자지라 원문. Kuttab, who specialises in international law, called on the Biden administration to immediately reverse US recognition of Israel’s annexation of the Syrian territory if it wants to be consistent in its criticism of Russia’s conduct in Ukraine. [47] 이런 지적이 나온 이유는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선 합병을 인정하고 러시아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는 이중잣대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 [48] 다만 우크라이나는 독립 당시 핵무기와 당시의 군대 규모를 유지할 비용도 없어서 핵무기를 결국 포기한 점도 있긴 하다. [49]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은 중국이 외교정책에서 언제나 강조하는 내정 불간섭과 분리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두 가지 원칙을 한큐에 깨버린 사건이다. 따라서 아무리 중국이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와 공조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이 결의안을 비토하면 결국 티베트 위구르, 대만 등에 대한 중국 영유권의 정당화도 어려워지게 된다. 그렇다고 찬성을 할 수도 없으므로 기권은 당연지사. [50] 그러나 (당시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미국과 영국이 크림을 러시아 일부로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곳이나 크림반도나 똑같이 주민투표를 했는데 한쪽은 인정하고 다른 한쪽은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중기준(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오히려 미국과 영국을 비난했다. 관련기사 참조. 그리고 3월 27일 유엔 총회 투표에서는 후술할 내용의 "여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부분 참조. [51] 사실 대외적으로 볼 때 친러시아 성향을 지닌 국가들 중에서 무조건 서방까지 적대시하며 러시아 일변도로 러시아를 옹호하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 혈맹 수준인 벨라루스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북한, 시리아 같은 일부 극단적인 반미, 반서방 성향의 국가들 정도? [52] 애초에 미국조차 남부가 독립을 선언하자 바로 남북전쟁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도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나, 그렇게 되면 결국 미국 vs 러시아 구도가 되는지라(...). [53] 몽트뢰 조약은 흑해에 해안선을 접하지 않은 국가의 군함이 해역에 진입하기 위해선 최소 15일 전에 터키 측에 통보해야 하며, 21일 이상 흑해에 머물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54] 아무래도 한러관계를 안정하게 지키려고 불참한 것 같다. [55] 링크 [56] 이건 부다페스트 협약에 대한 해석의 문제인데 러시아는 부다페스트 협약을 우크라이나의 정당한 영토 보전으로 해석하는 한편 크림 반도는 애시당초 우크라이나 영토에 합법적으로 편입된 지역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서방은 어쨌건 1994년부터 2014년 이전까지 우크라이나가 지배권을 행사하는 걸 러시아가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던 주제에 나중에야 침략행위를 한 걸 불법행위로 보는지라 우크라이나 영토라는 입장이다.